〈 7화 〉 7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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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으로서의 삶이 짧지는 않았다.
샐러리맨 듀오인 부모님이 착실히 모아놓은 돈으로 닌자마을을 찾아 세계 곳곳을 떠돌면서 유랑했던 나는 많은 것들을 봐 왔다.
그랜드 캐니언,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주카이 숲, 세들렉 납골당. 그 외에도 닌자가 숨어 있을 거 같은 장소는 닥치는 대로 찾아갔다.
그중에서도 주카이 숲은 닌자마을보단 요괴마을이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요괴들이 장난질해놨는지 나무에 사람 형상을 한 마네킹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딴 삼류 장난질은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정신수행을 위해 침낭 하나만 가지고 뜬눈으로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려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12시가 되자마자 침낭을 깔고 바로 누워서 꿀잠을 자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우중충한숲에왜혼자찾아와있는거니아이야끼히히히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다 무시하고 그냥 잤다. 그날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닌자 이외의 지식을 스스로 찾아본 적은 거의 없으니 모든 정보를 안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얻어낸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부처와 사대천왕에 맹세코 이딴 생물체를 본 적은 없었다.
꾸게게...
진돗개 정도의 크기인 그것들은 새의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품고 있는 것은 알이었고, 다리에는 물갈퀴까지 달려있다. 평범한 조류의 특징. 하지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통통한 몸뚱아리에는 조류의 깃털이 아닌 털가죽이 붙어있었다.
조류의 부리와 포유류의 몸통, 납작한 꼬리를 가지고 있는 기기괴괴한 네발짐승. 인간이 분류해온 모든 질서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그 모습에 경악을 참지 못했다. 이게……. 이게 진정한 요괴들의 모습인가?! 이런 모습으로 지금까지 생명의 순환을 모독해 온 건가?!
“박멸해야 한다!”
자연의 법칙을 완벽하게 부정하고 있는 요괴이자 제육천마왕의 수하, 오큘. 이 새끼와 비교하면 갓파는 쭈그러든 틀니 거북이에 불과했다. 이게 새튼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종교배의 현실이다. 혼혈은 자연종을 도태시키고, 그 종들이 가진 장점들만 베껴와 진화의 양식으로 삼는다.
오큘 이 새끼들은 먹이를 찾으러 민가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식인행위로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흡수해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고 육체를 초월한 심마(心?)가 되어 미륵불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다!
“와자뵷!”
이런 새끼들이 아직도 설칠 수 있는 건 닌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도착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아직 구원받을 수 있다. 오늘의 난 요멸의 칼날 신노빈이다.
꾸게엑~
제트킥으로 눈앞의 어미를 날려 버리고, 닌자 셔플 댄스로 알들을 전부 밟아 으깼다. 자다가 일어난 오큘들이 흰자 없는 검은 눈을 껌뻑이며 비명을 질렀다. 30마리 정도는 되어 보였다.
꾸게게게게게겍!
“로빈 군! 전부 부시면 어떡하나! 식당에 판매하면 돈을 받을 수도 있단 말일세! 내 걸작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고!”
새튼의 말은 씹어버리고 바로 아밍소드를 놈들에게 겨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인술에 세뇌당한 라따뚜이마냥 종말을 향해 달려오는 오큘무리.
“로빈 씨! 그렇게 먼저 뛰어나가시면 안 됩니다! 위험하다고요!”
헐레벌떡 뛰어온 보니타가 할버드를 휘두르며 합류했다. 요괴를 봐서 잔뜩 흥분한 요괴박이 새튼이 그 뒤를 따랐고, 지나가 ‘어떡해’를 연발하며 화살을 꺼냈다. 닌자의 전술에 익숙해진 오르페만이 침착하게 창을 빼 들고 걸어왔다.
암석에 머리를 박고 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어미오큘의 전투력으로 가늠했을 때, 녀석들은 0.01 까까시만큼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술을 쓸 가치조차 없다.
“헬리콥터 검법.”
투다다다다!
헬리콥터의 로터처럼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내 아밍소드가 선봉대 오큘 다섯 마리의 몸을 갈아버렸다.
무협지를 보다 보면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놀아주는 듯이 싸우면서 빨리 죽이지 않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그건 전부 신기술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공짜 실험체를 거부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결과는 퍼펙트. 오큘들이 겁에 질렸다.
"손으로 일하는 사람은 모험가다. 손과 뇌로 일하는 사람은 장인이다. 하지만 손과 뇌와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은 예술가뿐이다!"
오큘들이 뒷걸음치는 걸 보고 자신감이 샘솟은 새튼이 횡설수설 나불대기 시작했다.
“대문호의 검을 받아라!”
급발진한 오타쿠가 두 쓰레기를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는 보니타와 오르페를 제치고 뛰쳐나갔다.
“이얍!”
역수 자세 그대로 오큘의 머리통을 내려찍는 새튼. 숏소드가 그대로 박혀 턱까지 뚫고 나옴과 동시에 새튼의 엄지손톱이 나갔다. 병신아 역수로 찌르면 안 된다고. 첫 퇴마의 쾌감에 취해 눈치도 못 챈 새튼이 웃으며 다음 목표를 포착하고 숏소드를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콱 박혀있는 칼을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이 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음하하하! 어, 어라? 왜 안 빠지지?”
집에서 삼겹살도 썰어본 적 없는 새끼가 닌자 몰살이 가능할 리가 없다. 새튼 이 새끼는 손과 뇌와 젖탱이조차 없는 아메바 이하의 존재다.
꾸꺄앗!
약자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한 요괴답게 오큘들이 새튼을 향해 물갈퀴를 뻗었다.
“호에엣!”
통통 뛰어와 달려드는 요괴들에게 둘러싸여 물갈퀴 싸대기를 맞는 새튼. 궁수의 엄호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나는 화살을 주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빠가 사준 건데…. 귀한건데...”
이래서 가난하면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 똥 씹은 표정으로 지나를 엄호하는 보니타를 대신해 오르페가 창대로 새튼을 집단폭행하는 오큘들을 쳐냈다. 숙련된 몸놀림을 보니 역시 후보생 넘버 2. 쟤네들에 비하면 오르페가 선녀다.
“...낑낑.”
여기저기 짓밟혀 진흙투성이가 된 새튼이었지만,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멀쩡해 보였다. 오큘들의 살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다행이다. 이래서 견습 모험가들의 목돈 강추 퀘스트였나. 확실히 수가 많고 두려움이 적은 놈들이라 평범한 농민 입장에서는 까다로울 만한 놈들이다. 지구에서도 멧돼지 하나만 출몰하면 난리 나는데, 성견 크기의 오큘 3~40마리가 떼 지어 다니면 거의 재연재해다.
꾸겟!
도망치던 마지막 오큘을 벴다. 물 바깥에서는 느려지는지 도망칠 때조차 통통 튀면서 도망가는 꼴이 우습다. 상황이 정리된 걸 확인하고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하도 베어대니 날이 상한 거 같다. 오늘은 오르페가 고생 좀 하는 날이다.
“로빈 씨. 강하시군요. 길드 소속 모험가 중에서도 그렇게 잘 싸우는 사람은 드물어요.”
두 트롤의 엄호만 하며 내 전투를 지켜보던 보니타가 날 칭찬해줬다. 떠돌이 검객 로빈이 아니라 탈주닌자 신노빈을 보면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닌닌. 보니타 씨의 할버드딜링(Dealing) 또한 훌륭했습니다.”
보니타는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해서 인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실전으로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가 있었다. 일단 190c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신체 스펙이 압도적이라 한 수 먹고 들어간다.
마나의 존재 때문인지, 지구와는 다르게 이 세계에서는 여자도 인류 전투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르페에게 여자 기사단의 수가 남자 기사단의 수보다 많다고 들었던 게 기억났다. 모종의 이유로 그렇다고 했는데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줬다. 혼성 기사단의 수가 가장 많다고 얘기해주긴 했다.
“니닝? 그게 무슨 뜻이죠?”
“로빈은 왕국의 변방 출신이라 사투리를 자주 써요. 별 뜻은 아니고, 대충 알았다, 그런 거로 하자, 그러냐 정도의 뜻이에요. 추임새 같은 거죠.”
“아, 사투리였군요. 저도 변방의 사투리라면 몇 개 아는데 다른 지역인가 보네요.”
보니타가 어눌하게 따라 하며 묻는 걸 오르페가 대신 답해줬다. 별 귀찮은 설정을 만들어 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났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알아서 해주겠지. 머리를 긁적이며 똥싸개 두 명을 확인했다. 지나는 화살을 다 회수해서 만족했는지 살짝 웃고 있었고, 벌써 회복한 새튼은 양손으로 멀쩡한 상태로 죽은 오큘의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쓰담쓰담.
“음…. 오…. 이런 느낌이군.”
당장 달려 나가 느끼고 있는 새튼에게 타코야끼 살법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아직 4번의 기회가 있으니 새튼의 처분은 미룬다. 부처님 얼굴은 다섯 번 까지라는 말이 있다.
“자, 슬슬 전리품을 챙기고 갑시다. 제가 가죽을 손질할게요. 다른 분들은 부리나 발톱, 꼬리를 떼 주세요.”
보니타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오큘들의 가죽을 벗겨냈다. 아직도 요괴를 쓰다듬고 있던 새튼은 지켜보고 있는 오르페의 다크서클 가득한 눈을 확인한 뒤 동작 그대로 자연스럽게 발톱을 떼냈다. 눈매가 무섭긴 하다. 지나는 하고는 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서 티가 안 난다.
눈에 띄는 병신과 너무 도움이 안 되는 병신.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게 탈주닌자의 임무다.
***
“그럼 3일 후 점심시간 때 다시 길드에서 봅시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도시에 도착하고 여러 가지 정리가 끝나자마자 먼저 가버리는 보니타. 부업이라도 하는지 바빠 보였다. 똥싸개들 때문에 어지간히 혈압이 올랐을 텐데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 올곧은 인성. 전사이면서 샐러리맨인 자의 여유다. 본받을 필요가 있다.
“흠흠, 첫 퀘스트 성공 기념과 앞으로의 승승장구를 위해 다 같이 식사 한 끼 어떤지? 근방에 괜찮은 닭고기 전문점이 있다네. 4인 이상만 입장 가능한 곳이지. 운이 좋게도, 우리 숫자가 딱 맞지 않는가?”
확정적인 프로혼밥러 새튼이 조별 과제를 기회 삼아 호화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솔직히 닭고기는 땡기니 어쩔 수 없다. 딱히 반대하는 사람 없이 음식점으로 향했다.
간판은 뭐라 뭐라 쓰여 있었는데 글자를 몰라서 해석이 안 됐다. 그래도 병아리가 닭다리를 잡고 있는 그림을 보니 치킨집이 맞는 거 같았다. 나중에 오르페에게 글자라도 가르쳐달라 해야지. 아무래도 공부 안하고는 살기가 힘들다.
"주모! 여기 맥주 4병 추가!"
적당히 음식을 먹다가 새튼이 술을 먹자고 꼬셔서 그냥 시켰다. 567이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성인이니 문제없었고, 이세계의 술맛도 궁금했다. 오르페도 그냥 마시는 걸 보니 대충 성인이겠지 싶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전당이 타락했다는 거네. 전형적이고 전통적이고 전체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이 결국은 문단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어!”
아주 씨발 전전전세가 따로 없다. 벌써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새튼의 옆에서는 지나가 울고 있었다.
“저 무조건 성공해야 해요... 작년부터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저에게 남은 가족은 아버지뿐인데... 아버지가 절 어릴 때부터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키우셨는지... 어렸을 때 개에게 물릴 뻔했는데 아버지가...”
그야말로 집단적 독백의 향연. 아무리 내 인내심이 강하다지만 시간 낭비는 참을 수 없다. 난 부처가 아니라 탈주 닌자다. 대충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 식탁에 돈을 올려둔 다음 오르페와 자리를 떴다.
“다들 힘들게 사네.”
취했는지 오르페의 볼이 새빨갛게 되었다.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어서 갑옷도 절그럭거렸다.
“우리가 저번에 구한 사람들도 저런 사람들이었겠지? 탈주닌자라는 건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나?”
“우리가 아니라 나 혼자라니까. 탈주닌자는 백성을 수호하고 야쿠자, 요괴, 사무라이 그리고 타락닌자에 맞선다.”
사실관계 왜곡은 무슨 무슨 죄로 범죄다. 오르페를 거짓말쟁이 야쿠자로 만들지 않기 위한 나의 진심 어린 노력을 그녀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르페가 싱겁게 웃었다.
“그래그래. 야쿠우자랑 나머지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 나쁜 거겠지. 근데 사람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 이득도 없는데? 비현실적이지 않나?”
유인원은 인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도 유인원인가? 좀 실망스러운데.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에 나왔던 고대의 용사 같아. 멋지네.”
다행히 유인원은 아니었다. 젠장, 믿고 있었다고!
“능력이 있으면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지만 나는...”
오르페가 말하다 말고 바닥에 꼬꾸라졌다. 이래서 사람은 자기 주량을 알아야 한다. 분수를 알고, 한계를 알아야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리미트리스 맨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실수. 그래도 나의 신념을 비웃지 않았으니 그냥 업고 가주기로 했다.
철컹.
“닌닌.”
존나 무겁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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