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11화 (11/119)

〈 11화 〉 11화. 단풍잎 마을 (2)

* * *

메~!

어디선가 염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거 같소. 우리 마을까지 몬스터가 내려오는 일은 드무오. 그러니 신고할 일도 없지.”

단호한 거절. 당황스럽게도 단풍잎 마을은 요괴퇴치 퀘스트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군요. 길드에서 분명히 이 마을의 요청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혹시 퀘스트를 취소하시는 겁니까? 그러시겠다면 길드에 정식으로 취소장을 보내야 합니다.”

보니타가 감시대 위의 남자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수염 하나 없는 매끈한 턱의 남자는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은 안이 잘 보이지 않게 나무판자로 틈새를 막아 놓은 거대한 울타리로 봉쇄되어 있었는데, 출입구 앞까지만 서도 음산한 공기가 느껴졌다. 수상한 냄새가 마구 풍기는 게 아무래도 감춰야 하는 비밀이 있는 거 같았다.

“요청서 자체를 보낸 적이 없소.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문제도 일어난 적 없으니. 그만 돌아가 주시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소.”

울타리의 작은 틈새로 안을 보니 불안해하긴커녕 주민 전부 집에서 나와서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전부 다 무표정하게 이쪽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게 존나 수상하다. 작은 소리라도 듣기 위해 청각을 강화한 뒤 집중했다. 바로 마을 안의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배고파. 이제 못 참겠어.”

“쉿, 안돼. 길드 소속 사람을 건들면 모험가들이 찾아온단다. 오늘은 참아. 대신 저번에 염장한 고기를 먹는 거로 하자.”

가능성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이 마을은 행인 약탈로 먹고산다. 두 번째, 저 먹보 꼬맹이는 배고프면 처음 보는 사람을 건드는 나쁜 습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새끼들은 전원 요괴라 인간을 처먹는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요괴 특유의 사악한 기운과 기괴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나도 처음이라 혼란스럽다. 요괴라는 게 팔이 4개에 다리가 6개여야 된다는 법칙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의 피를 갈구하는 종족 특성상 특유의 폭력적인 파괴본능이 있기 마련이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을 앞에 두고도 묘하게 침착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후, 일단 알겠습니다. 나중에 길드에 취소장은 꼭 보내주세요. 날이 너무 어둑해져서 그런데, 방 하나만 내주실 수 있나요?”

“안타깝지만 우리 마을은 외부인 출입 금지요. 오랜 전통이고, 어디까지나 질서를 위해서니 이해해 주시오.”

“몬스터가 없다 해도, 우리 모두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정도 대우는 받아도 된다 생각하는데요.”

“미안하오. 어떤 경우든 예외를 둘 순 없소.”

보니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짓고는 등을 돌렸다. 완전히 지친 모양이다.

“말이 안 통하네요. 숲은 위험하니 오늘은 마을 근처에서 노숙하는 거로 하죠.”

“그럽시다.”

“그러죠.”

“네...”

“닌닌.”

다들 지쳤는지 말이 짧다. 아무도 듣지 않는 검성회썰을 즐겁게 풀다가 목이 쉬어버린 새튼의 목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지나 어깨빵 스노우볼 사건’ 때 보여준 그 엄청난 샤우팅을 지른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그때는 참 충격적이었다.

­ 그 노력이! 그 눈물이! 그들이 설계해 놓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법칙이! 오 오 오~ 한낱 필멸자가 바꿀 수 있을 만큼↗ 그리도 가벼워→ 보였던가↗

갑자기 지구에서 본 뮤지컬이 생각난다. 이 세계에도 뮤지컬이 있을까? 예술가 협회가 있다면 있을 거다. 나중에 꼭 보러 가야겠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천막을 쳤다. 다들 대충 짐을 풀었는데, 지나의 짐 속에는 간식부터 시작해 풀로 엮어진 인형까지 없는 게 없었다. 거의 소풍 나온 것 마냥 별것이 다 들어 있는 걸 보니 지나 아빠가 신경을 많이 써준 거 같다. 그 상냥함 때문에 지나는 뺨을 맞았다. 이것이 바로 새옹지마(??之馬)다.

“몬스터…. 보고 싶었는데, 아쉽구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어졌소.”

애새끼처럼 징징대는 새튼. 그런데 그를 쳐다보는 보니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새튼의 헛소리를 들어주기 지친 건가?

“몬스터는 없는 게 좋아요.”

“물론 그렇지만 좋은 몬스터일 수도 있지 않소? 돌아다녀 보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몬스터가 하나 정도 분명히 있을 거요. 왜냐면 몬스터의 조상들은­”

“좋은 몬스터.”

보니타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런 건 없습니다.”

“너, 너무 단언하는 게 아니오?”

풍겨나오는 파티장의 다크­아우라에 당황한 새튼이 허둥지둥 설명하려 했다. 보니타는 수심에 찬 눈으로 바닥만 봤는데, 딱 봐도 과거 회상 스위치가 켜진 거 같았다.

“산속에 중상을 입은 몬스터를 여동생이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고양이를 닮았었는데, 잿빛 털과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이 아름다운 녀석이었죠. 덩치는 대형견 정도였고, 다들 덩치 큰 고양이라 생각할 정도로 온순한 녀석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몬스터답지 않아 동네 사람도 전부 속아 넘어갔어요.”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보니타의 말에는 새튼과는 다르게 힘이 깃들어 있다. 이게 화자의 차이라는 것인가? 새튼이 씨부리면 다 개소리 같고, 보니타가 말하면 다 있어 보인다.

“여동생이 단토라는 이름도 붙여줬어요. 발견된 산 이름이 단토거든요. 단토는 상처를 치료해준 여동생을 정말 잘 따랐어요. 여동생이 어디를 가든 따라가서 기사처럼 지켜줬죠. 그 모습이 너무 좋았는지 단토 경, 단토 경. 어찌나 신나게 불렀는지 아직도 기억나요.”

“고양이…. 음...”

새튼이 입맛을 다셨다. 좆같은 상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두렵다.

“늦은 밤이었어요. 할머니께 바느질 교육을 받고서 신난 여동생이 일가족을 전부 불러서 바느질 작업을 지켜보게 했죠. 옆에는 단토까지 앉혀 놓고서요. 잘하다가 실수한 여동생이 손끝을 찔려 피를 흘렸을 때였어요. 단토의 눈이 붉어지더니,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올라 여동생의 목을 물어뜯더군요.”

“...”

지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살짝 눈을 감았다. 요괴에게 홀린 자의 비극적인 말로다.

“다음으로 당황한 어머니를 공격하고, 아버지를 공격하고... 할머니가 저를 창문 바깥으로 밀어주지 않았다면 저도 죽었겠죠.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아버지가 신뢰하는 친구인 전직 모험가의 집으로 곧장 달려갔어요.”

보니타가 숨을 골랐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퀴퀴한 냄새가 나고, 취해 있었거든요. 무기를 들고 다니는 모험가라는 직업도 꺼림칙하게 느껴졌었고요.

그렇지만 그날은 달랐어요. 언제나 멍한 눈으로 앉아있던 사람이, 내 어깨에 모포를 덮어 준 뒤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줬어요.

그러더니 무장을 하고 달려 나가 가족을 몰살하고 괴성을 지르던 단토를 죽이고 오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몬스터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이해 불가능한 재해일 뿐이고, 사람을 생각하는 건 같은 사람밖에 없구나.”

보니타가 은색으로 빛나는 모험가패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죠.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이다. 우리 가족은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대가로 목숨을 잃었어요. 전 새튼 씨가 그런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해요.”

“음...”

새튼이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진심 어린 호소는 광인에게도 닿기 마련인가? 새튼이 교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미안하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몹쓸 말을 했구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많이 흥분했군요. 자, 오늘은 이만 잡시다.”

말을 마친 보니타가 가장 먼저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쳐 있었던 우리도 쓰러지듯이 누웠다. 마을 새끼들, 존나 수상했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참는다. 기습을 당한다 해도 나에겐 닌자기상법이 있다. 믿는 구석이 있는 남자는 강한 법이다.

“커어어­”

금세 잠에 빠진 새튼의 코골이를 들으면서 잠에 빠졌다.

***

“푸르르르르­”

천막 안은 코 고는 소리로 가득 찼다.

오르페는 깨어 있었다. 아직도 그녀의 정신이 맑았다. 며칠간 숙소 바닥에서 잘 때는 몰랐지만, 역시 바깥에서 자는 건 힘들었다. 집 이외의 장소에 자는 것이 다시금 폐광산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악착같이 버텼지.’

오르페는 정신없이 코를 고는 새튼의 옆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잠자리에 든 남자를 봤다.

567, 신노빈, 로빈, 가끔은 탈주닌자.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마나 각성의 부작용으로 미쳐버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 상태창~!!!!!!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이라,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았다. 후보생들 전원을 공포에 질리게 한 567은 투덜거리며 한 번 더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려 했었다. 교관이 와서 제압하지 않았으면 진짜로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오르페도 모르는 먼 곳에서 온 그이기에 이르갈 왕국 사람들과 사고방식과 행동이 다른 것뿐이다.

­ 닌닌.

­ 와자뵷!

“...”

하도 들어서 지금도 오르페의 귓가에 맴돌았다.

‘정말 그럴까?’

떠오르는 의문. 사실 오르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미쳤는지 아닌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살아남기 위해서, 진실과 복수를 위해서, 더 강한 힘을 얻고 돌아가기 위해서 신노빈은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지금까지 물어보는 일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때가 온다면 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협력을 구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그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르페는 슬쩍 일어나서 외투를 걸치고 천막을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하...”

쌀쌀해서 그런지 오르페의 입에 차가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거의 없었다. 오르페가 부모님과 같이 봤던 별들의 향연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운 시간은 짧고 고통스러운 날들은 길었으니까.

사갈의 꼬리에 납치되어 고된 훈련을 받았을 때는 죽을 날만 기다린 오르페다.

­ 탈주닌자는 백성을 수호하고 야쿠자, 요괴, 사무라이 그리고 타락닌자에 맞선다.

실제로, 신노빈이 없었다면 그 조직의 도구로 쓰이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오르페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웠다는 고대용사의 신화를 떠올렸다.

고대시대, 세계를 지배하던 감시자들의 유희 거리로 이계에서 불려온 용사가 있었다.

검투대결에서 오랜 세월 동안 활약하며 힘을 갈고닦은 용사는 같은 이유로 끌려온 이계인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고, 곧이어 모든 세계가 한마음으로 연합해 맞서 싸운 끝에 모든 감시자를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잔혹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용사를 비롯한 이계인들에게 감시자들이 걸어놨던 저주가 발동했다. 용사는 미쳐버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뒤 자멸했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던 이계인들은 이성을 잃고 퇴화하여 몬스터가 되고 만다.

비극으로 끝나버린 이 이야기에는 감시자들을 무찌른 초인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존경심과 두려움, 그게 오르페가 신노빈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대체 어떤 자가 7개월 동안의 학습만으로 그 수많은 교관을 가지고 놀면서 죽일 수 있겠는가. 그에게 더 시간과 경험이 주어진다면 어떤 존재가 탄생할지 오르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야.’

학살당할 위기에 처한 평민들의 눈물에 분노해 암살자들 전체와 싸우고, 평범한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짓는 악인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것만이 오르페가 그것만이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었다.

“...험가님.”

생각에 잠겨있던 오르페가 흠칫 떨었다.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모험가님, 이쪽입니다.”

마을 울타리의 나무판자 틈새에서 빛나는 커다란 한 쌍의 주황색 눈이 오르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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