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화. 탈주닌자 vs 야쿠자 (1)
* * *
“존나 머네.”
보니타는 변방까진 아니라고 말했지만, 골돈은 변방만큼 먼 곳이었다. 어지간히 험하다고 소문난 지역인지 마차 운전수들도 가기 싫다고 잡아떼는 걸 오르페가 설득해 근처까지만 왔다.
그 근처가 산을 타고 몇 시간을 더 걸어야 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게 문제다.
“너희 나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거지? 이게 지름길이라고?”
오르페가 지도를 보며 열심히 안내하긴 했지만, 나무와 풀이 잔뜩 우거진 산에서 사람이 손으로 그린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건 미친 짓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따라오며 엿보기를 즐기던 변태 네 명을 물리적으로 초청해 길 안내를 맡겼다.
근데 영 시원치가 않다.
“여, 여기가 그래도 가장 빠른 길이에요.”
머리 양옆에 큰 혹을 단 남자, 귀상어가 엿보기 패밀리의 두목이다.
“아아, 너는 ‘빠르다’라는 뜻을 모르는 건가?”
가볍게 몇 대 쥐어박으며 진실게임 시간을 가지니, 선량한 여행객들을 꼬드겨 길 안내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양아치라고 스스로 밝힌 녀석들.
야사요에 비하면 양아치는 귀여운 편이지만, 야쿠자로 전직할 가능성도 있기에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초장에 확실히 잡아 길을 들여놔야 백성들이 안심하고 잘 수 있다.
“유니콘, 앞으로 나와라.”
“네...”
곧바로 이마에 커다란 뿔(혹)을 단 여자가 내 앞에 섰다. 빨리 온 게 기특해 어깨를 살살 주물러줬다.
“우우우욱…. 흑흑...”
시원한 안마를 받은 유니콘이 기쁨에 차 눈물을 흘렸다. 유니콘의 눈물, 이건 귀할지도?
“이제부터 귀상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유니콘의 뿔이 하나씩 늘어난다. 알겠지?”
“앗, 네!”
두 양아치의 친구들인 코주부와 아귀는 오르페의 창끝만 보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얼굴 크기보다 코와 입이 너무 작아 보여 한 번씩 잡아당겨 균형을 맞춰주니, 이제야 정상인처럼 보인다. 코주부와 아귀는 그냥 애칭이다.
“조금, 아니! 아주 험하지만! 이 길이 진짜 빠른 길입니다!”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길이겠지?”
“그, 시간을 좀 더 주시면...”
“변명은 죄악이라는 거 몰라?”
유니콘의 머리통에 손을 올렸다. 양아치 따위가 이렇게 자꾸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 아무리 스윗닌자인 나라도 참지 못한다.
“1시간! 알겠습니다! 1시간!”
귀상어가 막대기로 나뭇가지를 쳐내며 호다닥 달려갔다. 그래도 동료애는 있는 양아치다.
가면서 종종 디아나가 괜찮나 확인했지만, 역시 요괴라 그런지 평범한 인간 소녀보다 체력이 좋았다. 오히려 조금은 편해 보일 지경. 그러고 보니 양아치들 교육을 하느라 인간수업을 안 했네.
“디아나.”
“네?!”
“수업 준비는 됐나?”
“...”
“됐나?”
“...물론이에요.”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디아나의 표정. 역시 아직은 어린애라 등산은 힘든가? 수업하면 나아질 예정이니 상관없다.
“백성을 위해 배제해야 하는 것들은?”
“야쿠자, 사무라이, 요괴들이에요.”
“야쿠자란?”
“백성들을 때리거나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거나, 노예로 만들어요. 그러다 쓸모가 없어지면 죽이는 사악한 무리예요.”
“사무라이는?”
“칼을 시험하기 위해 사람을 베고…. 때리고?”
“때리는 건 야쿠자라고 했어 안 했어!!!”
“히이이익!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다시 말해.”
“명예라는 가면 아래 숨어서, 칼을 시험하기 위해 백성을 베고, 벌레 취급해요.”
“옳지.”
정확하게는 ‘군국주의’와 ‘선민의식’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야 만점짜리 답안이지만, 어린애에게는 역시 어려운 단어다. 배려심 넘치는 나답게 그냥 관대하게 넘어 가줬다.
“요괴.”
“주로 몬스터라 불리며, 갖가지 형태로 변신하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본능을 가진, 백성들을 잡아먹기 위해 사는 괴물들이에요.”
“그렇지.”
“그, 그런데요.”
“음?”
“전 인간수업을 듣는 게 아니었나요...? 백성을 위해 배제해야 하는 것들은 인간으로 사는 법이랑 별로 연관이 없는 거 같은데요.”
“디아나,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구나.”
“네?!”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참혹한 진실이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요괴는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돌연변이 닌자공룡이 되어야만 명예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그럴 수가...!”
“있단다. 이거나 받으렴.”
난 예전에 회수했던 델라미온의 두건을 디아나의 손에 억지로 쥐여줬다.
“이걸 가지고 있던 새끼는 틀니에다 짝퉁이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인정할 만했어. 이제 ‘진짜’가 될 너에게 이 두건을 맡길게.”
“잉...”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게! 내가 징징대지 말라고 했어요, 안했어요!”
이후 엉망진창 설교했다.
“헥헥, 드디어 도착입니다! 여기가 골돈입니다!”
뽀삐마냥 혀를 길게 빼고 땀을 흘리는 귀상어에게 멋진 미소를 지어줬다.
“참 잘했어요.”
쓰레기통에서 방금 꺼낸 듯한 누더기 성채가 우리를 맞이했다. 성문 중앙에 뚫린 큰 구멍을 커다란 벽지가 막고 있었는데, 큰 글씨로 뭐라 쓰여 있어서 읽어봤다.
골돈 정상운영 합니다.
아무래도 보통 좆된 게 아닌 거 같다.
“저, 형님.”
“누가 네 형님이야?”
“그, 그러면.”
“사장님이라고 불러. 형님은 너무 조폭 같잖아.”
“사장님, 그럼 이제 우린 가보겠습니다.”
“어디를?”
“안내가 끝났지 않습니까?”
말귀가 어두운 아이는 싫어한다.
“끝나는 건 니네 양아치 짓이지. 내가 인간답게 살게 내가 만들어준다니까?”
“네?”
“골돈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에 너희들도 함께 가는 거야. 불만 있어?”
우지끈.
귀상어의 막대기를 뺏어 악력으로 부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양아치 사총사.
“있으면 주먹으로 대화하도록. 절대 도망 못가니, 헛짓하지 말고. 가는 순간 바로 죽여버린다. 농담 아님.”
잠재적 야쿠자 취급하며 전부 몰살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의 교화 가능성이라도 있는 악인을 착한 아이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도 삼장닌자, 아니 탈주닌자의 의무다. 물론, 이미 손에 피를 묻힌 새끼들에게는 가차 없다.
“누, 누구십니까?”
일곱으로 불어난 일행을 이끌고 성채에 다가가니, 다 무너져가는 감시대 위에서 이등병처럼 생긴 까까머리가 튀어나왔다. 100% 나무로 만들어진 나무창을 쥐고 있는 걸 보아하니 골돈의 사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완전 망겜의 탈주닌자인데.”
품을 뒤적여서 모험가패를 꺼냈다.
“모험가입니다. 지원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제 동료입니다.”
“아, 아! 그렇습니까! 들어오십시오!”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건가? 이등병이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성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경비대에게 대충 검문을 받고, 골돈 안으로 들어갔다.
“조, 좆됐다.”
“엄마...”
아귀와 코주부가 눈물을 흘렸다. 아귀라 하니 아귀찜이 땡긴다. 이 세계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적다.
낙원이 오면 라멘집이라도 해야 하나? 근데 먹어본 경험만 많지, 만든 경험은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바로 숙소를 잡아 드리겠습니다.”
요새 안의 마을은 조용했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창문으로 두려움에 가득 찬 눈만 내밀고 우릴 관찰했다. 마르톨란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골돈의 백성들. 가슴이 아파진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닌?”
웬 꼬맹이가 고목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설마 고목 요괴 숭배는 아니겠지? 요괴 숭배는 범죄다.
“뭘 하는 거지?”
남자아이가 흐르는 콧물을 몇 번 닦더니 일어섰다.
“기도 중이에요.”
“누구에게?”
“나무의 정령이요.”
“그게 뭔데?”
“우리 골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에요. 제가 계속 기도를 드리면 강림하실 거에요.”
불쌍하게도, 현실의 참혹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버린 아이였다.
이게 야쿠자가 존재하면 안 되는 이유다. 폭력은 미래의 꿈나무를 광인으로 만들고, 그 광인은 자라서 결국 야쿠자가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연쇄.
뭐라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타인의 조언 따위로 망상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자기 자신의 의지뿐. 요괴숭배는 아니니,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골돈은 내가 지킬 테니 안심하렴.”
“...거짓말쟁이.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은 전부 도망갔어요.”
이등병이 금세 와서 숙소 안내를 해줬다.
***
“일단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점심쯤에 영주님의 자택으로 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른 모험가분들도 그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버려진 집이었는데, 꽤 커서 잠자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좀 더럽긴 한데, 양아치들 시켜서 치우면 된다.
“양아치들은 청소한 뒤 거실에서 자라. 난 귀가 아주 좋으니, 자고 있다고 해서 헛짓을 하거나 함부로 도망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사태가 해결되면 너네도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거니 좋게 생각하도록. 꼬우면 알지?”
일단 제일 큰 방에 내 짐을 던져놨다. 침대도 꽤 큰 게 맘에 든다.
“로빈.”
디아나와 함께 짐 정리를 끝낸 오르페가 내 방으로 왔다. 아까부터 할 말이 있었는지 눈치를 계속 보내긴 했다.
“쟤네 계속 데리고 다닐 거야?”
“골돈에서는 그래야겠지?”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걸. 백성 4명이 도망칠 동안 시간을 벌어주는 토템 4개라고 생각해.”
“...범죄자에겐 진짜 자비가 없구나.”
닌자가 숨겨야 할 건 힘만이 아니다. 때에 따라 자비도 숨겨야 한다.
“유검경의 수제자를 죽였으니, 탈주닌자에 관한 소문이 크게 날 거야.”
“닌닌.”
“알아서 잘하겠지만, 널 쫓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란 것만 알아둬. 언제나 조심해야 해.”
“네, 엄마.”
대충 대답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 골돈 떠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영주에게 마차를 하나 부탁할까? 그냥 디아나가 용이 되어서 날아갈 순 없을까?
똑똑.
“저, 사장님. 누가 찾아온 거 같은데요.”
존나 피곤한데 또 누구야.
어쩔 수 없이 닌자기상법으로 일어나서 문을 열어줬다. 오르페 또래의 여자애가 이상한 악기를 들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음유시인 무카에요~! 우리 골돈을 지켜주시려고 오셨다길래~! 축하의 의미로~! 좋은 노래 한 곡 들려주려~! 여기 왔어요~!”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울리네. 문을 닫으려 손을 뻗었는데, 무카가 허락도 없이 안에 들어와 자세를 잡았다.
“자~! 오늘의 노래는~! ‘골돈의 마차 운전수’!”
“아니, 괜찮다니깐요.”
나는~! 골돈의 마차 운전수~! 뚠~ 딴딴딴~ 뚠~ 딴~ 텔라스의 마차 운전수도 아니다~! 렝헬의 마차 운전수도 아니다~!
아, 시발. 이 여자에게서 새튼의 냄새가 난다. 역시 예술가에게 필요한 건 담당일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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