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22화 (22/119)

〈 22화 〉 22화. 탈주닌자 vs 야쿠자 (4)

* * *

“까까시~!!!”

강렬한 증오를 담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이 질긴 인연도 오늘로 끝내리라.

“흐이약!”

겁에 질려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까까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 보니 내 닌자몰살을 어느 정도 보고 있던 게 아닐까.

“385? 어딜 가!”

“죽여!”

다른 4명은 무기를 들고 덤벼왔는데, 움직임을 보니 교관보다 못하다. 아무래도 찌꺼기들인 모양.

“­오리주물럭의 술.”

단검을 들고 달려드는 중년 아저씨의 팔을 꺾은 후 조심스럽게 주물러줬다.

“부오오오!”

시원하게 풀어져서 우수수 조각나는 뼈. 이쯤이면 무력화는 성공이다.

“합!”

요리에 집중한 틈을 타 뽀글머리 아줌마가 옆구리로 칼을 찔러넣었다.

“­오코노미야끼 살법.”

촵촵촵촵!

가볍게 옆으로 피해준 후 두 손으로 머리통을 잡고 마사지를 해줬다. 아줌마의 머리가 길쭉해진 게 잘 반죽이 된 거 같다.

“에에...”

바로 뻗어버리는 아줌마.

“후야앗!”

“므아아~!”

남은 두 명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친다. 이제야 수준 차이를 알았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남자의 뒤통수에 비수를 던지고, 단검으로 여자의 목을 그어 죽였다.

“좆밥.”

코 파는 게 더 어렵겠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단풍잎 마을 전투 이후에 코를 파다 힘 조절에 실패해 코피를 흘린 적이 있다.

당황한 조원들에게 격렬하게 싸워서 그렇다고 말하자 내 짐까지 들어줬었지. 괜히 몇몇 학생들이 체육 시간에 아픈 척하며 보건실에 누워 있는 게 아니다.

“닌닌.”

뒤로 돌아 까까시의 위치와 제압한 남자를 확인했다. 까까시는 옆에 있던 산을 타고 있었는데, 수풀이 흔들려서 동선이 다 보였다.

“오오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남자는 인술에 당해 오른손을 촉수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한 명 정도는 골돈에 증인으로 세워야 하니 잠시만 살려놓자.

“오빠 간다.”

이제 남은 건 까까시 단 한 명. 강화된 두 다리로 대지를 박찼다.

슝슝슝­!

공기를 가르며 전진하니 풍경이 삽시간에 달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력 질주를 하는 까까시가 보였다.

“닌자도랑 목숨만 내놓고 가!”

“으아, 으아아아!”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속도를 올리는 까까시.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살인을 업으로 삼는 닌자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녀석은 삼류 이하다.

“와자뵷!”

한때 내 스승이었던 까까시가 삼류만도 못한 짓을 하다니, 이건 제자였던 날 모욕하는 행위다.

“잠깐! 잠깐 멈춰보세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는지 멈춰서는 까까시. 하지만 악당에게 자비는 없다.

“닌자 헥토파스칼 킥!”

바로 날아갔다.

쾅!

까까시가 간발의 차이로 회피에 성공해 킥이 바위에 꽂혔다. 바로 산산조각이 나는 바위. 확실히 움직임이 다른 애들에 비해 빠르긴 하다.

“으히얏!”

까까시가 비명을 지르면서 드디어 '내' 닌자도를 뽑았다.

“멈춰보시라구욧! 우, 우리 사이에 악감정은 없었잖아욧! 진정하세욧!”

엄청나게 흥분했는지 빨간 얼굴로 윽박지르는 까까시. 윽박? 윽박질러? 피해자인 나에게? 무장강도가 주인집에서 들어가 인권을 들먹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이리 오세요!”

비수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거리를 좁혔다.

“히얏!”

비수를 닌자도로 받아치는 까까시. 역시 명검이라 내 비수가 흔들린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무기를 맞대보니 그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속도와 기술의 정밀함에 있어서 아일린보다 확실히 앞서 있는 느낌.

대충 수치상으로 따지면 1.4 아일린 정도?

장검을 빠르게 휘두를 수 없는 초근접전으로 이끌기 위해 닌자도를 흘려내고 가까이 따라붙었다.

“어디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설교해!”

예전 같았으면 어느 정도 고전했을 상대. 하지만 뽀삐가 나비 아작내듯이 아일린을 후두려 팬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식은 라멘국물 마시기나 다름없는 전투다.

“­심폐소생의 술.”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까까시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 비수의 손잡이로 가슴을 가격했다. 평탄해서 그런지 데미지가 더 들어갔다.

“욱!”

입으로 피를 토하는 까까시. 호흡곤란에 빠진 그녀의 닌자도를 뺏어 들었다.

“닌자도 압수.”

“허억, 허억.”

무릎을 꿇고 가슴을 붙잡는 까까시. 실눈캐답게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강해지는 게 아닌가 해서 천천히 지켜봤지만, 그럴 낌새는 없었다. 괜히 긴장했네.

“대답해. 왜 거기 있었지?”

죽이기 전에 정보를 좀 더 얻고 죽여야겠다. 발끝으로 쓰러진 까까시의 머리를 툭툭 쳤다.

“대, 대답할게요. 대신 조건이...!”

“대답해.”

말이 끝나기 전에 제트킥을 먹였다. 야쿠자의 끄나풀 따위가 탈주닌자에게 조건을 걸 수는 없는 법이다.

“으엇!”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완벽하게 수비자세를 취한 그녀의 배에 정확하게 공격이 들어갔다. 움직임의 동선이 전부 보여서 막아도 소용없다.아일린보다 빨라봤자 나에 비하면 느리니까.

“대답해.”

“조, 조건.”

“대답해! 대답해! 대답해! 대답해!”

퍽퍽퍽퍽!

무자비한 닌자킥을 그 몸에 꽂아 넣었다. 데굴데굴 구르더니 굼벵이처럼 몸을 마는 옛 스승.

“마, 말할게요! 말할게요! 제발...!”

온몸에 발자국이 찍힌 까까시가 눈물을 흘렸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말해. 또 조건 들먹이면 다짐육으로 만든다.”

“델바나스에게 의뢰를 받았어요!”

“델바나스?”

누구였지? 아, 야쿠자 오야붕이었나?

“안대 낀 년 맞지?”

“그래요. 델바나스가 골돈을 조사해 오고, 가능하면 영주도 죽이라고 의뢰했어요.”

“그렇군. 끝이야?”

“나머지는 절 살려주면...”

“잘 가렴.”

마무리로 타코야끼 살법을 먹이려 상체를 숙였다.

“더 있어요옷~!”

이제는 아예 소프라노로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 까까시. 소원대로 멈춰줬다. 어차피 뭘 해도 죽일 거니 좀 더 듣고 판단해도 된다.

“말해.”

“내일 델바나스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만남을 요청하면 오늘도 만날 수 있어요! 다른 일원들 없이 저만 오기로 했으니 의심하지도 않을 거고요!”

“어쩌라고.”

“저, 절 살려서 델바나스가 있는 곳까지 가시면, 그녀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큰 기회죠.”

이야, 똑똑한데? 생각도 못 했네.

쓰담쓰담.

칭찬의 뜻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까까시.

“자. 그럼 당장 출발하자.”

쑤욱!

쓰다듬던 손으로 바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녀를 일으켜줬다. 완벽한 스윗닌자.

“으이잇~!”

감동한 까까시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짜식, 학생 때 선생님 사랑 좀 많이 받았겠는데?

“뭐해? 걸어.”

가보인 닌자도를 되찾았기 때문에 응어리진 마음이 좀 풀린다. 산발이 된 머리칼을 정리하는 까까시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차 줬다.

“오, 옷 좀 털겠어요. 이 차림으로 가면 의심할 거예요.”

“내가 아주 탈탈 털어주지.”

까까시의 오른손을 붙잡고 장갑을 빼내 신나게 까까시의 옷을 털어줬다.

탈탈탈탈탈탈탈!

“으이앗!”

“깨끗해졌군. 가자.”

“...”

말끔해진 까까시가 뭐가 그렇게 흥겨운지 어깨를 떨면서 움직였다. 이년도 이제 리듬을 타는 건가?

“얼쑤!”

나도 봉산탈춤을 추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닌자도를 되찾은 날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

마침내 도착한 야쿠자들의 주거지. 어림잡아도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악당들이 천막촌 주변에 바글바글 뭉쳐 있었다.

“뭐야?”

“가봐. 한 명이잖아.”

까까시를 확인하자마자 몇 명이 무기를 잡고 달려 나왔다.

“멈춰. 누구냐.”

임플란트가 필요해 보이는 야쿠자가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꼬맹이들의 사탕을 얼마나 뺏어 먹었으면 이빨이 저렇게 되는 걸까.

쓱­

야쿠자들이 너무 가까워져서 살짝 움직여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불을 들고 있는 녀석들이 많아 뜬그림자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평야라서 마땅한 지형지물이 없는 것도 그렇고.

“델바나스님의 의뢰를 받은 385입니다. 그분께 말하면 아실 겁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까까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그녀를 명배우로 만들었다.

“아, 들어본 적 있는데. 오늘 만나는 날이 아니지 않소?”

삿갓을 쓴 중년남자가 사탕도둑에게 무기를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간부인가? 삿갓은 원래 좀 하는 놈들이 쓰는 건데.

“내일 보기로 했지만, 중요한 안건이 있어 직접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수 있소?”

“개인적인 의뢰도 포함되어 있어서 힘들 거 같군요.”

“알다시피 독대는 안 되오. 우리가 따라가겠소.”

무장한 7명에게 포위당한 채 움직이는 까까시를 지켜보다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은신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일단 기어가서 거리를 좁히는 게 좋을 거 같다.

“대장님! 저번에 보낸 암살자가 할 말이 있답니다!”

그렇게 움직이다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저기 있는 큰 천막이 야쿠자 오야붕의 집인가?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마법도구의 그것과는 달랐다.

사악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 어째선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은 아닌 거 같았다. 악몽을 꿀 때랑 비슷하네?

“내가 직접 나간다.”

순간, 녹색 빛의 파장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느닷없는 광역기에 일단 몸을 웅크렸다.

우우우웅­

분명 신체와 빛이 접촉했는데도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뭐지? 그냥 멋져 보이는 이펙트인가?

“음.”

다시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펴보니 델바나스로 추정되는 여자가 투창을 들고 바깥에 나와 있었다. 야쿠자 전원 침착한 게 이상하다. 이 녹색 빛에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나에게만 보였나?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델바나스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투창을 집어 던졌다.

붕­!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는 투창. 전직 기사였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닌지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예측 가능한 속도. 바로 닌자기상법으로 일어나서 덤블링을 돌아 피해냈다.

땅에 박혀서 파르르 몸을 떠는 투창.

“뭐야!”

“저 새끼 잡아!”

짧은 시간에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면 어쩔 수 없이 뜬그림자는 깨진다. 무기를 들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야쿠자들.

“이년도 생포해.”

“이잇!”

델바나스의 명령에 삿갓남이 밧줄로 까까시를 포박했다. 아까 처맞을 때 몸을 보호하느라 마나를 많이 사용했는지 별다른 저항 없이 붙잡힌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도와줘야 한다.

슝~ 푝!

“어억...”

까까시의 미간에 비수가 꽂혔다. 그녀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게 ‘구원’해줬다. 잘 가렴!

“미친! 어떻게 저 거리에서!”

“보통 놈이 아니다! 포위해!”

“일어나! 이 병신들아!”

동료들의 외침을 들은 야쿠자들이 천막에서 나와 무기를 들고 달려왔다. 250명이라고 했었나? 솔직히 이런 평야에서 전부 죽일 자신은 없다.인질도 잡았으니 여기서 끝내도 손해도 없고,델바나스도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일단 후퇴하자.

판단이 들자마자 바로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화살이 몇 개 날라왔지만 아까 투창보다 느린 속도라 가볍게 피했다. 당연하게도, 내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느리구나. 추격하는 것조차.”

호다다다닥!

그냥 말없이 도망치기는 폼이 안나 돌아서서 한마디하고 다시 달렸다. 아직은 ‘닌자몰살’카드를 꺼내기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