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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24화 (24/119)

〈 24화 〉 24화. 탈주닌자 vs 야쿠자 (6)

* * *

“여기까지 하고, 좀 쉬었다 들어가자.”

“그, 그래.”

오르페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게 이제는 진짜 한계처럼 보인다.대련을 3시간즈음 했나? 도중부터 근접전을 대비하기 위해 델라미온처럼 잽을 날리며 싸웠더니 주먹이 조금 뻐근하다.그래도 탄탄하게 다져진 오르페의 육체 내구도가 상당히 좋아 문제없이 대련이 끝났다.

얼굴은 안 때렸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 앉아 있어.”

사실 1시간 전부터 내 오줌보가 한계라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바람 좀 쐰다고 말하고 슬쩍 빠지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너무 진지하게 임하느라 말을 못 꺼냈다. 한 대라도 맞았으면 큰일 날 뻔.

오르페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차분하게 걷고, 멀어졌을 때 바로 근처의 산으로 달려 나갔다.

호다닥!

“흐.”

적당한 나무 앞에서 볼일을 봤다.

“씁.”

저 멀리서 누가 큰일을 보고 갔는지 불쾌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화장실이 적어 노상방뇨가 평균인 시대니까 당연한 건가?

노상방뇨 하니 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유인원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자고 정했을 때 진지하게 고민한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변기 사용의 유무였다.

배변 활동은 모든 생물에게 있어 필수적 행위지만, 동시에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물체를 생산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구의 유인원들은 다른 원숭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좁은 공간에 고립 시켜 배변 활동을 해결하고자 변기를 창조했다.

이렇게 따져보면 변기는 결국 남의 눈치를 보기 싫어 만들어진 셈이 된다. 유인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정한 내가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한다? 논리적으로 이상하다.

난 그렇게 주장하며 마운틴 고릴라의 앞에 섰고, 그대로 시루떡이 되도록 처맞았다. 이후 곰곰이 생각하다 변기를 만들 때의 인류는 유인원이 아니었으니까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맞는 것이 무서워서는 당연히 아니다.

“닌닌.”

쪼르르.

근심을 덜고 나니 나른해진다. 지저귀는 새나 벌레 소리도 잘 들릴...

“닌?”

소리가 안 들린다. 산속인데도 말이다. 동물들이 전쟁을 예측하고 미리 이민이라도 간 건가? 이것이 이세계? 소름 돋는 위화감이 몸을 휘감았다.

킁킁.

집중해서 다시 맡아보니 콧가를 맴도는 불쾌한 냄새도 인간의 대변 냄새가 아니었다. 이런 좆같이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은 딱 하나.

요괴뿐이다!

“시팔새끼들!”

이제야 길드 소속 샐러리맨 보니타의 설명이 생각나네. 이 세계의 동물들은 요괴가 멀리서 다가오는 게 느껴지면 바로 자리를 뜬다고 한다. 요괴가 쏘아내는 기묘한 초음파가 동물들을 거슬리게 한다는 모양.

그러고 보니 오큘도 다른 동물들과 공생했던 거 같지는 않다. 새튼이나 무카같은 새끼들.

바로 바지를 올리고 가보인 닌자도를 검집에서 꺼낸 후.

슝슝슝슝슝­!

바람을 가르며 냄새의 근원지를 향했다.

­ 케겟. 케겟.

­ 이히히히히히히힉!

­ 끄애애애애애애앩!

요괴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진다.

철 지난 디스코 댄스를 추면서 부처의 수행을 방해하는 익살꾸러기, 제육천마왕이 침묵을 싫어한다는 건 이미 유명하다. 그런 제육천마왕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항상 끔찍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요괴들이다.

슝슝!

이제야 끊임없이 층간소음을 불러오는 어둠의 자식들이 보였다.

타타타타타!

하이에나와 치타를 뒤섞어놓은 요괴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달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놈들만 대충 세어봐도 50은 넘는다.

뭐가 그리 급한지 바위를 뛰어넘고 우거진 나무를 타면서 움직이는 요괴들. 대체 어딜 가려고?

“닌?!”

그들의 방향이 정확하게 골돈을 향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배고파 단체로 미쳐버리기라도 한 건가?

뭐가 됐든 위험하다. 저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새끼들이 아직도 공사 중인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대참사가 날 게 뻔하다.

“이런.”

순간 정육점이 된 골돈을 상상해버렸다. 야들야들한 스테이크가 된 야쿠자 슬레이어와 디아나표 도마뱀 바비큐.

오르페는 현재 탈진 상태니 나 혼자서 막아야 한다.

­ 와자뵷~!!

기합을 지르고 놈들의 대열 중간에 뛰어들었다.

­ 힠?

­ 앩.

이 새끼들이 병신 보듯이 잠깐 쳐다보더니 무시하고 달린다. 그 눈빛은 지구 유인원들의 비웃음을 닮아 있었다. 여동생을 닮은 요괴떼. 이건 무조건 몰살이다.

“십새끼들아~!”

촥촤라촥촥!

다시 어그로를 끌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녀석들의 모가지를 썰었다. 혓바닥을 내민 멍청한 표정 그대로 바닥에 구르는 머리통들.

­ 케게엣!

­ 애애애애앩?!

몇 놈이 분노를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커다란 턱을 쩍 벌리며 발톱을 세우는 게 상당히 위용이 있어 보였지만.

“전진 베기!”

결국 내 신기술의 먹잇감일 뿐이다.

쇽쇽쇽쇽!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따라오는 녀석들의 머리통을 잘랐다. 아무리 민첩해봤자 델라미온 정도로 빠르진 않다. 평범한 백성들이나 삼류전사들에게나 위험할 수준.

문제는 골돈의 병사들은 대부분 삼류 이하라는 사실. 한 새끼만 성문 안으로 들어가도 네 명 이상은 크게 다칠 거다.

촥!

“친구 대가리는 가지고 가!”

뻑~!

방금 잘려 공중에 회전 중인 머리통에 제트킥을 날렸다. 그 주둥아리가 빙글빙글 돌아가서.

팍!

­ 끄애?!

의도하진 않았지만, 맨 앞에 달리던 녀석이 똥구멍에 박혔다.

와, 머리가 두 개?!

­ 끄애애애애애!

이제야 어그로가 끌렸는지 날 향해 달려드는 요괴들.

“좋아.”

원래 이게 정상이다. 날 무시하고 골돈으로 달려가던 건 비정상이고. 골돈에 얼마나 맛있는 걸 감춰놨으면 이러는 걸까?

“­상하좌우 베기.”

­ 께에에에!

“상하좌우 베기 한 번 더!”

썩둑 싹둑.

위아래와 양옆을 두 번 갈랐다. 순식간에 아이들의 영양간식으로 변한 요괴들.

“­사방연결 베기.”

곧이어 몸을 180도로 회전해 뒤이어 달려오던 녀석들까지 갈아버렸다. 닌자 믹서기가 더 멋진 기술명 같긴 하다.

­ ...

이제는 10마리도 남지 않은 녀석들이 나와 골돈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요괴 아니랄까 봐 집착이 아주 끈질기다. 해탈에 이르라고 강조하는 부처와 반대쪽에 서 있는 녀석들답다.

“­너희들 전원 골돈은 갈 수 없다.”

피범벅이 된 닌자도를 힘껏 휘둘러 털어냈다.

“­내가 여기에 서 있기 때문에.”

­ 케게게겟...

겁먹고 조금씩 뒷걸음치는 녀석들의 눈에서 붉은빛이 조금씩 사라진다. 공포가 광기를 밀어냈나? 난 언제나 차분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로빈! 도와주러 왔어!”

“오르페? 네가 왜 거기서 튀어나와?”

갑자기 오르페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싸우는 소리가 그렇게 컸었나?

“숨어!”

이 요괴들은 과격한 훈련으로 지친 오르페가 상대할 만큼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다.

“숨기 힘들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

“힘든데 나무를 어떻게 타고 올라가?”

그러고 보니 이 자식들이 아까 나무도 타지 않았었나?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하지?

­ 이히히힉!

바로 오르페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녀석들.

“뛰어베기!”

바로 튀어 나가서 몇 놈을 베었지만,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요괴들의 기동력이 너무 좋다. 적어도 3마리 정도는 오르페에게 접근하는 게 확정인 상황.

이건 어쩔 수 없다.

“오르페! 지금이야!”

“뭐?”

“훈련의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야!”

‘즉사 찌르기’를 떠올린 오르페의 얼굴이 전투의 흥분으로 인해 붉어졌다.

“즉...!”

“그렇지!”

“...하압!”

­ 힉!

아니, 시발. 뭐하냐고!

“끝까지 말해야지! 다시 한 놈 간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

“찌...!”

“즉사 어따 팔아먹었어?”

“합!”

­ 끄액!

영혼 없는 기합에 두 마리의 요괴가 죽었다. 이건 뒤진 요괴들에게도 모욕적인 행위다.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촥!

­ 액?!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마지막 놈을 내가 처리했다.

“이럴 거면 대련을 왜 했어?”

“그래도 잘 이기지 않았어?”

“그렇게 결과가 중요해? 내가 그걸로 화내는 거 같아? 왜 그렇게 공감 능력이 부족해?”

“...미안.”

피도 눈물도 없는 결과주의자. 이런 애들이 나중에 커서 ‘냉혹한 현실’을 들먹이며 아이들의 로망을 짓밟는다.

“다음엔 노력해볼게.”

“뭐, 미안할 거까지야. 그래도 잘했어.”

그래도 5초 안에 사과하면 웬만한 건 용서되는 법이다.

“음.”

갑자기 이리저리 둘러보던 오르페가 미간을 찌푸렸다. 막상 사과하니 자존심이 상했나?

“역시 이상해. 이걸 봐.”

“뭘?”

“피 색깔. 초록색이 섞여 있어.”

오르페가 죽은 요괴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요괴니까 그런 거 아닐까?”

“아냐. 하이너들의 피는 붉은색이야. 초록 피를 흘리는 하이너는 들어본 적도 없어.”

오르페가 창끝으로 하이너라 불린 요괴의 시체를 뒤집었다. 붉은 피 사이에서 찐득해 보이는 초록 피가 슬라임처럼 흘러나왔다.

“단체로 뭘 잘못 먹고 미친 건가? 독으로 만들어진 곤약을 요괴들이 주워 먹었다던가?”

“...곤약은 또 뭔데.”

“아아, 모르는 건가? 내가 친절하게­”

“­그것보다, 누가 이걸 먹인 건 아닐까?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까 다 같이 골돈으로 가려고 애를 쓰긴 하던데.”

“...아주 수상해.”

알쏭달쏭하네. 오르페는 벌써 감을 잡았는지 뭔가를 중얼거렸다.

“로빈. 이거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

뭔가가 일어나고 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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