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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28화 (28/119)

〈 28화 〉 28화. 야쿠자데스빔 (3)

* * *

골돈 광장 구석에 방치된 우물.

지하수가 고이지 않으니 쓸모없다고 판단해, 선조들이 나무판자로 밑을 봉쇄해놓은 그곳의 안에서, 한 소년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검은 초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 와자뵷!

번개처럼 나타난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르니, 도적들이 저항하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펑펑펑펑­!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한 광경이었지만, 소년에게는 초인의 활약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탈주…. 닌자.”

나무토막을 잡고 있던 소년의 두 손이 희열로 인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수호신이야!”

***

그러나 델바나스가 다시 광역기를 쓰는 일은 없었다.

팡!

“오앗~!”

제트킥을 맞고 잘 익은 토마토처럼 터지는 야쿠자.

솔직히 통쾌하긴 하다. 날 찍찍이 잡듯이 패던 파워드­마운틴 고릴라의 심정이 이랬을까?

“도, 도망치지 말고 뭉쳐!”

안경잡이가 어떻게든 지휘해보겠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사무라이도 아닌 야쿠자 따위가 공포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명령을 따를 리가 없다.

“닌닌.”

델바나스는 움직이지 않은 채 멀리서 날 노려보기만 했다. 아까부터 저렇게 관전 플레이만 하고 있어 닌자포위진도 그냥 취소했다.

이 새끼도 눈빛으로 폭력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씹덕새끼인가? 안대를 찬 걸 보면 그런 거 같다.

“야. 광역기 쏴보라고.”

“...”

어쩐 일인지 세 번째 광역기를 발사하지 않는 델바나스. 설마 횟수제한이 있거나 에너지 소모가 큰 기술이었나?

이참에 빨리 승부를 봐야 하는데, 도적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촥!

“후부겍!”

또 머리통이 하나 더 굴렀다. 대충 150명 정도 죽인 거 같다.

무슨 수를 써도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녀석들이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바지는 이제 완벽히 익숙해진 상태. 심심할 때 가끔씩 거꾸로 입어볼까 생각할 정도다.

뭐 싸우면서 오줌 쌀 것도 아니고.

“이 병신들아! 뭉쳐서 동시에 찌르라니까! 한 명이잖아! 단 한 명!”

얼굴이 딸기처럼 빨개진 안경잡이가 악을 썼다.

“이 씨발럼이 진짜! 네가 한번 해보던가!”

“뭐, 뭐라고?”

“뭐긴 새끼야! 저렇게 미친놈처럼 날아다니는데 어떻게 찔러!”

“저 새끼 지치지도 않아!”

“그냥 마을이나 털어먹고 빠졌어야 했다고!”

이제는 아예 내분이 일어난 야쿠자 클랜.

“이제 됐다. 내가 하지.”

안전한 곳에서 존나 야려보던 델바나스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너 같은 강자가 이런 촌구석 영지를 구하겠다고 싸우는 게 이상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거지?”

야쿠자 새끼들은 이게 문제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만 존나게 패고 다닌 주제에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해 전투할 때 항상 여유를 부리면서 아가리를 턴다.

그야말로 어리석은 황소개구리.

“닌자 헥토파스칼 킥.”

대답하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발차기를 날려줬다. 긴 거리를 단숨에 돌파할 땐 이거만 한 게 없다.

“대답 정도는 해주지?”

델바나스가 품속에서 이상한 회초리를 꺼냈다.

뭐지? 사랑의 매?

차르르륵­

회초리가 조각나면서 펼쳐지더니 채찍처럼 변했다. 연결선 사이사이에 이상한 에너지가 흐르는 게 마법 무기 확정.

그렇게 변신한 채찍을 델바나스가 휘둘렀다.

쐐액­!

효과음이 예사롭지 않다. 이건 피해야 한다고 직감이 말한다.

휘적휘적!

속도를 줄이기 위해 두 팔을 크게 휘저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고, 날아가던 내 몸이 민들레 씨앗처럼 돌면서 천천히 떨어졌다.

팡!

바닥에 발이 닿는 동시에 채찍이 가까운 땅을 강타했고, 부딪힌 땅에서 전류가 파지직­ 하고 흘렀다.

전기 채찍?!

끔찍하게도, 델바나스의 채찍은 전기충격이라는 특수효과까지 갖추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진 마. 어차피 맞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

SM 클럽의 여왕님처럼 씩 웃는 델바나스. 저 채찍으로 백성들을 마조 대하듯 때렸겠지. 용서할 수 없다.

“너, 나랑 같이 일할래?”

“데, 델바나스 님! 저 녀석은 우리 동료를 죽였습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백 명을!”

포섭을 시도하는 델바나스와 허겁지겁 지적하는 안경잡이.

“동료? 그냥 벌레 같은 새끼들일 뿐이야. 어디서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조금 떨어져 지켜보던 야쿠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야붕이 저렇게까지 말하면 가오가 상할 만도 하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골돈이 너에게 뭘 약속했지? 내가 더 좋은 걸 줄 수 있을걸?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델바나스.

“야쿠자는 죽인다.”

내가 말해줄 건 그거뿐이다.

“이르갈 왕국 사람이 아닌가? 말이 안 통하네.”

델바나스가 휘두른 채찍이 뱀의 몸처럼 구불구불 움직이면서 날 향했지만.

챙!

닌자도로 쳐 내고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손잡이까지 금속은 아니라 감전되지 않았다.

스르륵­!

줄자 감기듯이 채찍이 회수됐고, 다시 그걸 막기 위해 닌자도를 들어 올렸다. 그래도 가까이 접근은 한 상태.

지지지직!

다시 채찍과 닌자도가 부딪혔고, 스파크가 튀었다.

차르륵­

갑자기 뱀이 기둥을 휘감듯 채찍이 닌자도에 휘감겼다. 이어지는 힘겨루기. 그녀의 팔이 달달 떨리는 거로 보아 근력은 내가 앞서는 거 같다.

“하!”

힘대결에서 패배한 델바나스가 오른발로 발차기를 날렸다. 눈 한쪽이 없는데도 정확하게 공격하는 걸 보니 애꾸눈에 익숙해진 모양.

턱!

팔꿈치로 막아낸 후 팔을 돌려서 그녀의 발을 붙잡고, 옆구리 쪽으로 붙였다.

“이게!”

골반을 틀면서 왼발로 발차기를 또 날리는 델바나스. 공중부양까지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실력자는 맞다.

아무래도 이것까지 잡긴 힘들다. 바로 오른발을 놓고 어깨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팍!

무겁고 육중한 공격에 뇌가 잠깐 흔들릴 정도.

좋은 무기와 단련된 강인한 신체.

델라미온보다 강적이다.

이러면 나도 수를 아낄 수가 없다. 놈이 균형을 잡으려 휘청일 때 채찍을 쥔 그녀의 오른손을 가격하고.

“큭!”

채찍에 휘감겨 있던 닌자도를 던졌다.

“엇?”

닌자도와 동시에 날아가는 채찍. 이제 순수하게 육탄전으로 승부를 볼 시간이 왔다.

“­타코야끼 살법.”

내가 가지고 있는 맨손­살인 기술 중 최고를 전개했다.

엄청난 속도로 그녀의 머리통에 쇄도하는 내 살법을.

텁!

델바나스가 팔을 X자로 만들더니 올려 쳐 막아냈다.

“닌?!”

그렇게 내 손이 튕겨 나갔고, 어쩔 수 없이 중심을 잡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하!”

그 순간 델바나스가 ‘타코야끼 살법’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내 이마를 노렸다.

타코야끼 살법 받아치기?!?!

몸을 움직여서 피하긴 시간이 부족해 고개를 살짝 돌려 피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내 기술에 당할 뻔.

“이야아아!”

그 틈을 노려 간 큰 야쿠자 한 명이 나에게 칼을 찔러넣었다.

“이 병신이!”

이번만은 델바나스의 말에 공감한다. 칼날을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압수한 뒤, 녀석의 배를 걷어찼다.

“느려.”

뻥~!

무기보충을 해주러 찾아온 야쿠자를 친절히 돌려보내 주고, 바로 델바나스에게 칼을 휘둘렀다.

“비겁한!”

비겁? 싸움에 그딴 건 없다. 정정당당해야 하는 건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다.

“큿!”

그녀의 왼쪽 허벅지를 살짝 베었다. 아예 잘라버릴 생각으로 휘둘렀는데, 그녀의 움직임이 생각 이상으로 빨라 빗나갔다.

주르륵.

이상하게도 델바나스는 붉은 피가 아니라 초록 피를 흘렸는데, 평소에 야채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저렇게 될 수도 있다 생각해 그냥 넘어갔다.

“오야붕, 약해졌구나.”

녀석의 두 팔이 타코야끼 살법을 막아낸 후유증으로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힘도, 기초체력도 내가 처음부터 앞섰었다. 다리도 살짝 베었으니 속도도 이제 내가 우위에 선 상태.

“잘 가렴.”

“악!”

제트킥으로 델바나스의 어깨를 걷어차 팔을 아예 못 쓰게 만든 후, 무방비해진 그녀의 목을 베었다.

뎅겅!

델라미온보다 강한 적이었지만, 그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내 상대는 아니었다.

데구르르...

쏟아져 나오는 초록 피.

“으아아아악! 대장~!”

그녀의 목이 땅바닥을 굴렀고, 안경잡이가 비명을 질렀다. 다음은 저녀석 차례...

부웅­탁!

갑자기 델바나스의 머리가 공중에 뜨더니 목에 저절로 붙었다!

우우우웅­

이 괴이한 상황에 잠시 넋 놓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던 그녀의 안대가 벗겨지더니 초록빛을 내뿜었다.

“눈갱!”

그 비상식적인 안구 테러에 바로 왼손을 들어 올려 빛을 막았다.

우웅­

이제는 아예 몸이 초록빛으로 빛나는 델바나스.

“대체 이건...”

관전하던 야쿠자들도 당황했는지 몸을 벌벌 떨었다. 목이 저절로 붙고 자체발광하는 야쿠자? 이건 이제 야채인간도 아니다. 그저 요괴일 뿐.

갑자기 한 요괴의 이름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네년은…. 지하국대적!”

한국의 역사책에도 그 실체가 기록되어 있는 지하국대적은 한때 지하세계에서 왕으로 군림했던 대요괴다.

이 요괴의 특징은 목이 잘려도 다시 붙는다는 거였는데, 이게 완전 델바나스와 똑같다.

녀석을 퇴치했다 전해지는 선비­닌자는 잘린 부위에 재를 뿌려 재생을 막았다고 했지만, 전장 한복판에 재가 있을 리가 없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은 계속 잘라보기로 했다. 혹시 모른다.

뎅겅!

하나 남은 눈의 동공이 돌아오지 않는 거로 보아 아직 제정신이 들지 않은 거 같다.

부웅­탁!

이게 또 붙네? 이쯤되면 오기가 생긴다.

뎅겅! 부웅­탁!

뎅겅! 부웅­탁!

뎅겅! 부웅­탁!

뎅겅! 부웅­탁!

팔다리도 잘라봤는데 어김없이 다시 붙었다. 무슨 자석 장난감도 아니고.

“모, 목이 잘렸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몸이 초록색으로 불타고 있어!”

“목이잘렸다붙고잘렸다붙고잘렸다붙고...”

“이에에에에에에~!”

완전히 질려버린 야쿠자들이 칼을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안경잡이는 뒷목을 잡더니 졸도했다.

이번에는 방식을 바꿔서 스테이크처럼 다져보겠다고 생각한 순간, 델바나스가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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