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30화 (30/119)

〈 30화 〉 30화. 야쿠자데스빔 (5)

* * *

낯선 천장이다.

아니, 너무 익숙한 천장이네.

“닌?!”

우리 집 침대인데?

끼익­

이세계에 존재하면 안 되는 침팬지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빠~♡ 아침이야~♡ 얼른 일어나~♡ 지각하겠어~♡”

“어이가 없네.”

오랜만에 듣는 침팬지의 목소리, 하나도 반갑지가 않았다.

갈라파고스 왕지네 100마리가 동시에 피부를 기어 다니는 거 같은 좆같음만 느껴진다.

“엄마가 된장찌개 하셨다~♡ 무지 맛있어~♡”

진짜 못 참겠네.

이 새끼가 감히 이딴 환상을 보여줘?

“그냥 쳐 죽어!”

벌떡 일어나 침팬지의 배에 ‘진심’ 정권 지르기를 꽂아 넣었다.

“컥…! 오빠…. 어째서...?”

“누가 네년 오빠냐.”

“그치만 오빠...”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바로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린 후 창문으로 집어 던졌다.

“오고곡~!”

와장창­!

무단외출해버린 침팬지.

“닌?!”

창문 바깥의 세상이 이상했다.

­ 짹짹짹.

­ 하하 호호.

­ 낄낄 깔깔.

동영상처럼 반복적으로 세계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요수도시.

팡!

문짝을 박살 내고 거실로 향했다.

보글보글보글.

“노빈이 왔구나~! 찌개는 다 끓였어요~ 여동생은 어딨니?”

우리 엄마는 저렇게 소녀처럼 젊지도, 요리를 잘하지도 않는다.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를 들먹이며 피자 한 판 값만 탁자에 올려놓고 집을 떠나는 잔혹한 샐러리우먼이 우리 엄마다.

“우리 아들! 일어났구나! 뭐해! 어서 앉지 않고! 사내 녀석은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해요! 하하하!”

파워드­마운틴 고릴라는 어쩐지 그대로였지만, 묘하게 살가운 게 역겨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과묵한 연쇄폭력범은 저딴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고기반찬이 없잖아!”

바로 밥상을 뒤엎었다.

“끼야악~!”

“오아앗~!”

코리안 로컬 트레디셔널 푸드 된장찌개에 직격당한 가짜 부모의 모습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 째서...?”

“행복한…. 광경이었을텐데...”

“이 씹덕 새끼야! 이건 우리 가족을 모욕하는 거야!”

유인원은 인간이 될 수 없다.유전자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인 척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나에게 안 통한다.

“­일가족 몰살 파티다.”

화분 옆에 놓인 야구 배트를 들어 올렸다.

팡팡팡팡! 딱딱!

온 집안을 내리치면서 겸사겸사 가짜 부모의 머리도 한 대씩 때려줬다.

야구 배트에 맞은 벽이 일그러지며 허물어지고, 뜬금없이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얼마나 우주를 좋아하는 씹덕인가.

­ 당장 멈춰라. 그렇지 않겠다면 네 ‘사고(??)의 궁전’으로 직접 들어가겠다.

“해보던가!”

팡팡팡팡팡!

­ 각오해라. 난 벨카­투나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생각을 읽어내고, 조작하려 뇌 속에 침투하는 요괴.

내가 취할 행동은 단 하나.내 모든 걸 보여줄 뿐이다.

@#@#@#@%%@#%@%#@%#@#%@#%%#@@%##%#

­ 그, 그만...너무 혼란스럽다...

“이게 탈주닌자의 의지다~!!!!!”

요괴 따위가 내 생각을 지배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팡팡팡팡팡팡!

@#@#%@%@%@%#%#@#@#*#@$@#@&@#

­ 그, 그만…. 이건…. 너무나도...

녀석이 내 머리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친다.

“놓치지 않아요~!!!”

팡팡팡팡팡팡팡!

계속 공간을 부수며 녀석을 붙잡았다.

@#$%&^&%$#@^@#$%^$%^@#$%%^#%%##

­...

녀석이 조용해지더니.

쩌저정~!

공간이 전부 깨져 나갔다.

“닌자기상법.”

확!

이제야 눈이 뜨인다.

“...”

몸이 움직이긴 했지만 조금 찌뿌둥하다.

마나가 요동치는 이 감각, 델라미온을 죽인 후 휴식을 취했을 때와 같았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으며 확인하니 주변은 그대로였다. 현실에서는 1초도 지나지 않은 건가?

스피릿­고문을 당할 땐 100년 정도가 지난 줄 알았다.

오르페의 무덤이나 요괴할멈 디아나를 볼 일은 없겠군.

“닌닌.”

이미 끝난 일보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하다.가볍게 몸풀기로 국민체조를 하고 산속으로 도망친 야쿠자를 쫓았다.이 새끼들은 한 명도 살려두면 안 된다.

슝슝슝­!

잡생각은 임무가 끝나고 나서 하자.

***

결과만 말하자면, 대승리였다.

골돈의 영주 조안나 골돈은 양아치 패밀리를 포함한 우리 모험가들에게 큰 보상을 내렸다.

물질적인 보상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보증서’를 줬다는 게 중요하다.

보증서란 골돈 영주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선량함과 용감함, 인격을 보장한다는 서류다.

이 세계에서는 신분증의 역할도 겸한다고 한다. 이걸로 나, 오르페, 디아나가 이르갈 왕국의 정식 시민이 된 거나 다름없어졌다.

­ 이 늙은 몸!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보필하고 골돈을 수호하겠습니다!

레너드는 자유기사를 그만두고 영지기사가 됐다.할아버지의 제2의 인생.

백성을 위해 열심히 싸우던 그를 봤기에 응원하기로 했다.술은 좀 작작 처먹었으면 좋겠네.

­ 사장님. 저와 유니스는 경비대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을 좁은 마을에서 가축이나 기르며 살았겠죠.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 똥 마려우니 가볼게.

귀상어와 유니콘은 골돈에 남기로 했고, 아귀와 코주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기들 마을로 내뺐다.

정이 좀 없는 놈들이다.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세일린은 말없이 조용히 사라졌다.야쿠자 슬레이어의 사명을 다했으니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이.

본받을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 믿어 굳이 붙잡지는 않았다.악과 맞서는 전사들은 바쁜 법이니.

근데 결국 한 마디도 못 꺼냈네?

씨발?

­ 정말 다행입니다. 레너드 경이 있어 한숨 돌리겠군요. 그런데…. 도른은 있었소?

­ 잘 모르겠군요.

트렌은 크게 다쳐서 요양 중이다.

팔다리가 붕대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결손난 부위는 없었으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몇 달 동안은 조안나가 혼자 움직이게 생겼다.

주어는 없다.

난 뭐 하고 있었냐면.

“낑낑...!”

침대 위에서 나흘 동안 존나게 앓았다.

“로빈! 또 왜 그래?”

성벽이 무너질 때 깔렸다는 식으로 알리바이는 만들었다.

탈주닌자의 정체는 비밀로 두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바, 바.”

문제는 진짜 성벽에 깔려 간신히 탈출한 사람처럼 온몸이 텅텅 부었다는 거다.

공성전 날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니 이렇게 됐다.

“바, 빱 머겨조.”

주둥이도 오큘마냥 툭 튀어나와서 말하기도 힘들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오르페가 영지민에게 얻어온 소시지와 베이컨을 가져왔다.

쩝쩝쩝쩝.

정신없이 먹었다.요즘은 그냥 먹고 자고 싸고 한다.오르페가 날 업고 돌아다니느라 수고를 좀 했다.

뭐, 당연한 권리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오, 오루뻬.”

“...왜?”

“중요환 이야귀가 있으.”

“...긴 얘기야?”

“물논.”

“우선 다 나은 다음 얘기하는 건 어떨까?”

“안돼.”

시간은 금이다.

주절주절.

그녀에게 악몽을 꾸었던 일과 이번에 겪은 일을 말했다.원래 이 세계 주민이 아닌 나는 모르는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줬는데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오르페였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리니 소통이 됐다.

“육체를 빼앗으려는 유령 몬스터…. 이런 건 나도 들어본 적 없어. 사람을 유혹해서 잡아먹는 몬스터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라.”

오르페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위험한 놈도 아니었으니 다음에 또 만난다 해도 문제는 없다.

“델라미온을 죽인 후 강해진 게 아니라, 악몽을 꾼 이후에 강해졌을 확률이 더 높아 보여. 몬스터를 좀 죽였다고 금세 강해졌으면 모험가들은 전부 기사보다 강했을걸.

이건 좀 이른 추측이지만…. 네가 그 신체 강탈자들을 퇴치하고 힘을 빼앗은 게 아닐까 해.”

델라미온이 내 파워업 재료가 아니었다니.

솔직히 믿기 싫었다.

동료에게 전우애가 있듯이, 적에게도 나름의 유대감이 있는 거다.한자성어에도 ‘친구는 멀리, 적은 가까이’ 같은 격언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도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그것이 탈주닌자의 길이니까.

“오루뻬...”

아직 말할 게 하나 더 남았다.

해즈스톤인가 한스싼다였나 하는 녀석이 내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한 지식.

델바나스가 골돈을 가지려 했던 이유가 이 지식 때문인 거 같았다.

똑똑.

“잠시만. 금방 갔다 올게.”

누구지? 마을주민이 또 먹을 걸 가져왔나?

“안녕하세요~! 무카에요~! 병문안 겸~! 기운 내시라고~! 한 곡 들려주러 왔어요~!”

아니 근데 씨발 진짜.저 새끼는 훈련할 때도 안보이더니 왜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나타난 걸까?

완벽한 병역기피자.

아니지. 이런 정신병자를 군인으로 쓰지 않는 게 정상이다.

“자~! 오늘의 노래는~! ‘방화 운전수’!”

“오, 오루뻬. 똗아내. 얼론.”

하지만 오르페도 체념한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뿐.

­ 빠찌찌찌 뿌찌찌찌 빠찌찌찌 뿌~! 빠찌찌찌 뿌찌찌찌 빠찌찌찌 뿌~!

요괴의 절규와도 같은 노래.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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