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34화 (34/119)

〈 34화 〉 34화. 적과의 동침? (2)

* * *

“우리는 홍염룡 기사단이다. 정체를 밝히고 어디에서 오는 길인지 설명하도록.”

씹덕같은 기사단 이름과는 다르게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번쩍번쩍한 고추장 갑옷 아래로 흘러 나오는 절제된 마나의 기운.

철가재 기사단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 느껴진다.

이 강력한 노처녀 기사단(추정)의 기사단장은 유검경.

아일린이라는 사무라이를 만들었으니 그녀도 사무라이일 확률이 높다.

설마 복수를 위해 날 추적해 온 건가?

2주일이면 소문이 퍼지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무카도 있으니 일단은 평화롭게 해결하자.

“지나가던 모험가입니다. 골돈에서 오는 길이고요.”

오르페와 함께 모험가패를 내밀었다.

“골돈? 무슨 일로 간 거지?”

골돈 영주한테 받은 보증서도 보여줬다.

애견 혈통 보증서처럼 멋들어진 글씨로 사인까지 되어 있는 양피지.

정의로운 모험가임을 증명하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

“거기 가만히 서 있도록.”

한 명이 다가오더니 내 보증서를 읽었다.

“...마을은 무슨 일로 들어가는 거지?”

경계를 푼 기사가 칼자루에 손을 뗐다.

역시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의뢰인을 모시고 도시로 가는 중입니다. 걸어 다니며 그곳까지 도착하기는 불가능해 마차가 들어올 때까지 상록수 마을에서 기다리려고 합니다.”

날 대신해 오르페가 또박또박 말했다.

눈빛만으로 대화가 통하는 경지까지 온 거 같다.

“그렇군. 너희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오면서 야인족은 못 봤나?”

야인족은 또 뭔데.

오면서 죽인 요괴 중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놈이 있었나?

“본 적 없습니다. 야인족은 깊은 산 속에 살지 않나요?”

오르페는 뭔가 아는 눈치다. 이거 또 물어봐야겠네.

마트료시카처럼 까도 까도 모르는 게 계속 나온다. 고아인 567에게는 잔혹한 세상.

이게 의무교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원래는 그렇지. 그들이 며칠 전 산에서 내려와 상록수 마을을 공격하려 했다. 유검경과 우리가 지키고 있지만 만일이란 게 있으니 조심하도록.”

“알겠습니다.”

이상하다. 사무라이는 백성들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는데.

보니타처럼 성실한 샐러리맨이 아닌 이상 저렇게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 있다니. 사무라이가?

거짓말이라기엔 녀석들이 눈빛이 너무 진지하다.

“...저 남자는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 얼굴을 보여라.”

얌전히 있던 트리보가 딱 걸렸다.

[...음]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는 듯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트리보.

네가 그러니까 더 수상해 보이잖아.

할 수 없이 다시 집단구타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오르페가 나섰다.

“이분은 온몸의 피부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갈라지는 병에 걸렸습니다. 다티만에서 유행했던 증후군이죠.

얼굴을 직접 드러내놓고 다니면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가면을 쓰게 된 겁니다.

트리보 씨. 장갑을 벗어 주세요.”

[알겠다.]

트리보가 망설이다 왼손의 장갑을 벗었다.

“음….”

세월 때문에 갈라진 틈새가 있지만, 보철물 비슷한 거로 외관이 이루어져 있어 기계의 부자연스러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손.

이렇게 보니 피부가 갈라진 흑인의 손 같다.

“얼굴을 확인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양쪽을 위한 선택지는 아닐 거 같군요.”

좀 세게 나가는 오르페.

이 녀석들이 사무라이라면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그녀의 목을 치려고 할 터.

“...알겠다. 가도록.”

이걸 참다니.

진짜로 사무라이가 아닌 건가? 혼란스럽네.

이렇게 간단히 넘어가고 아일린처럼 나중에 찾아와 해코지할 가능성도 있으니 안심하긴 이르다.

“업무 수고하십쇼.”

대충 인사하고 빠져나왔다. 천천히 알아봐야겠다.

***

상록수 마을에 도착하고 여관부터 잡았다.

나와 트리보, 오르페와 디아나 이렇게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무카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 대신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떠났다.

여관도 다른 곳을 잡는다고 했고.

솔직히 다행이다.

무카랑 같은 여관에 산다는 건 아침마다 ‘지옥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지옥은 그저 단어에 불과하다.

그 실체는 더 끔찍하다.

상록수 마을이 골돈의 파괴병기인 ‘데스­사이렌’ 무카의 음파 공격을 버틸 수 있을까?

­ 쩝쩝쩝.

일단은 잊자.

지금은 다 같이 식사하는 중이니까.

[해가 쨍쨍하니 참 좋군.]

음식을 먹지 못하는 몸으로 태어난 트리보가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르페는 원래 말을 잘 걸지 않는 성격이라 조용히 밥만 먹었고, 디아나는 아까 일 때문인지 날 힐끔힐끔 노려보고 있는 상황.

“오르페. 야인족이 뭐지?”

분위기 메이커인 새튼이 없으니 내가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

새튼 하니 마르톨란이 생각난다.

보니타와 지나, 지나 아빠는 잘 지내고 있을까?

별일 없이 잘 지내면 좋겠다.

“야인족은 산에서 사는 부족을 부를 때 쓰는 말이야. 특징이라면….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성인식으로 얼굴에 문신을 새기며, 난폭하다는 거 정도?”

자연인이나 바바리안 같은 건가?

‘생선 대가리 카레’나 ‘고라니 생간’ 같은 걸 먹진 않겠지?

먹는다면 요괴라고 봐야 한다.

[설명을 더 붙이고 싶군. 야인족은 감시자들의 지배를 피해 산으로 도망친 인간을 뜻한다. 산 정령과 계약해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권리를 얻었다고 전해지지.문신은 그 증표로 새기는 거다.]

“이르갈 왕국의 역사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군요.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건지….”

어쨌든 마을을 습격하려는 놈들이면 처리해야 한다.

“오르페. 유검경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줘.”

저번에는 그냥 칠검경 중 하나이자 아일린의 스승이라고만 들었다.

이제 녀석과 맞붙게 될지도 모르니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유검경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아. 그래도 생각나는 걸 말해 볼게. 현재 칠검경 중 가장 젊고, 활동적이야.

정의롭다고 민중들에게 소문이 자자한 편이야. 그렇지만 독불장군 기질이 강해 검성회 일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어.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도 있고….”

아니 뭐가 이렇게 설명이 길어.

“그녀가 단장으로 있는 홍염룡 기사단은 소수정예로 움직이는데, 신분을 따지지 않고 강자만 뽑기로 유명해. 여자 기사단이니 성별은 따지겠지만.

죽인 자의 영혼을 거두는 검을 가지고 있다는데, 사실인진 모르겠어. 원래 이런 건 과장이 많거든. 정령마(馬)도 소유하고 있어. 이것도 내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불확실한 정보지만.”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이 말할 수 있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다.

“트리보. 들었지?”

[저장했다.]

일단 위키에 입력했다.

“난 충돌을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칠검경은 차원이 다른 강자들이야. 유검경이 네 적이라고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일단 빠져나가서­”

“유검경이 사무라이가 확실하다면, 난 싸울 거야.”

야쿠자 천막 때처럼 전략적인 후퇴는 할 수 있어도 완전히 도망치는 것은 안 된다.

적이 강하다고 겁먹고 도망치는 병신새끼는 탈주닌자가 아니다.

내가 힘을 기른다는 핑계로 떠난다면, 야사요는 백성들을 쥐잡듯이 죽이고 다닐 거다.

그 꼴은 죽어도 못 본다.

“이건 절대로 못 바꾸니 그런 줄 알아.”

“...네 뜻이 그렇다면.”

순순히 물러나는 오르페.

나름대로 날 생각해서 의견을 내준 거겠지.

그녀의 접시에 고기 몇 점을 올려줬다.

“먹어. 지금까지 잘 해줬잖아.”

그녀가 왜 내 따까리를 자처하며 여기까지 왔는진 아직도 모르겠다.

강해지고 싶다. 그렇게 단순하고 순수한 이유로 날 따라왔을까?

오르페같이 ‘음침’하고 ‘깐깐한’ 아이가?

분명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난 괜찮은데.”

“줄 때 조용히 먹자.”

그렇지만 캐묻지 않을 생각이다.

오르페가 날 도우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건 사실이니까.

설마 결정적인 순간에 날 창으로 찌르거나 하겠어?

“...맛있겠다.”

지켜보던 디아나가 옆에서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살짝’ 때문에 디아나를 챙겨주기로 했지.

“후…. 디아나 학생? 이번뿐입니다.”

그렇게 고기를 또 넘겼다.

“닌?”

씨발, 이러니 내가 먹을 게 없잖아?

“난 진짜 괜찮으니 먹어. 여기.”

“오르페.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

줬다 뺏는 건 멋이 안 나니 참기로 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할 때였다.

­ 마차마차마차마차마차~! 마차~! 마차~! 마차~! 마차~! 마차~!

“아, 뭐냐고.”

평소보다 10배는 커진 무카의 목소리가 음식점까지 들려왔다.

진짜로 마을 사람 전체에게 노래를 들려줄 생각이었나?

­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불의를 참지 못하는 마을 사람 A가 무카에게 도전한 모양이다.

“빨리 먹고 여관으로 들어가자.”

식사 끝나고 디아나의 인형을 알아보려 했는데, 안 되겠다.

불똥이 우리에게 튀진 않겠지?

밤에 활동할 예정이라 귀찮은 일이 터지면 곤란한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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