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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35화 (35/119)

〈 35화 〉 35화. 적과의 동침? (3)

* * *

“닌자기상법.”

바로 일어났다.

생체시계에 따르면 지금은 새벽 2시. 활동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바깥에 나가려고 하는 건가?]

시발 깜짝이야. 방구석에서 트리보가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다.그러고 보니 로봇이라 잠을 안 잔다고 했지.

“탈주닌자는 밤에 활동한다.”

야쿠자 오야붕의 광역 스킬에 성이 부서지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렇군.]

저녁 식사 후 간단하게 내 사명과 신념을 들어서 그런지 별말 없이 넘어가는 트리보.

[정찰만 하고 올 생각인가?]

“일단은.”

닌자탈착의법으로 빠르게 닌자슈트를 입었다. 닌자도 같이 큰 장비는 챙기지 않았다.

유검경이 나보다 청각이 더 뛰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싸울 것도 아닌데 거추장스럽게 닌자도를 달고 절그럭절그럭 움직이다가 들키면 쪽팔린다.

“집 잘 보고 있어. 갔다 올게.”

이렇게 말하니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샐러리맨이 된 느낌이다.파워드­마운틴 고릴라도 이런 심정으로 출근했었나?

솔직히 그딴 폭력배의 생각 따위 알 바 아니다.

[알았다.]

드르륵.

언제나 그렇듯이 닌자는 창문으로 다닌다. 문으로 다니는 건 삼류 이하.

여관을 뜨자마자 뜬그림자를 사용하고 걸었다.

이르갈 왕국 표준 영지 마르톨란이나 명색이 요새도시인 골돈과는 다르게 이곳은 마을.

건물이 너무 낮으니 지붕을 타는 건 금지다.

적당한 길목에 자리 잡은 뒤 닌자­레이더를 사용했다.

우우우웅­

사람의 형체를 한 초록빛들이 누워 있다. 마을 사람들이다.

이런 촌구석에서 백성들이 밤에 할만한 놀이는 혼성레슬링 말고는 없다.해 떨어지고 나면 적당히 배 긁다가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게 정상.

마을 바깥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만이 움직였는데, 절도 있는 걸음걸이를 보아 홍염룡 기사단 같았다.

그들 근처에도 몇몇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마을 바깥에서 자는 새끼가 있을 리가 없으니 아마도 간이숙소에서 대기하는 기사들일 거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경계 근무를 서는 사무라이가 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혼란스럽다.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사삭­

위험을 무릅쓰고 사무라이, 아니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자들은 기사단의 철칙 때문인지 전부 단발머리였다.

멀리서 보니 덩치도 비슷한 게 머리색만 다른 클론 병사 같다.그야말로 개성이 거세된 노처녀 기사단.

철가재 기사단은 일진녀 집합소라 자유롭게 머리를 기른 거였나?

어쨌든 갑옷의 색깔로 보아 홍염룡 기사단 확정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유검경도 있는지 확인하려 할 때.

“가자.”

다른 기사들이 근처 간이숙소에서 나왔다.

내 뜬그림자를 눈치챘다고? 유검경도 아니고 일개 기사단원이?

일단 품속에서 비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시간이 됐다.”

“그렇군.”

단발머리 기사가 자리를 비키니 다른 단발머리 기사가 그곳을 차지한다.

뭐야. 그냥 교대시간이라 그런 거네.

강하니까 방심하면 안 된다고 마음먹으니 쉬운 문제도 어렵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마음가짐의 차이인가? 진중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특이사항 있나?”

“이상 없음.”

“수고했다.”

“수고하도록.”

번쩍번쩍 빛나는 기사들의 눈이 사명감에 가득 차 있었다.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사무라이에게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

작은 의심이 큰 확신으로 변한다.

이들은 사무라이가 아니다.

“그런데…. 유검경이 안 보이시는군.”

“정찰하러 나가셨다. 혼자 하고 싶으시다길래 그냥 보내드렸지.”

“그래도 한 명쯤은 따라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분은…. 알고 있지 않나.”

“...조금 맹한 구석이 있으시긴 하지. 그래도 전투력이 출중하시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찰.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니 마을 바깥에 있었구나.

사삭­

천천히 몸을 빼 마을로 돌아갔다.

방향도 모르는데 굳이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사람이 지치지도 않고 밤 내내 순찰하는 건 불가능.

여기서 천천히 기다리면 오게 되어있다.

뜬그림자를 완벽하게 유지하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우우우웅­

다시 닌자­레이더를 발사했다. 정황을 살피러 막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게 참 좋다.

사실은 꿀 스킬이 아닐까?

우우우웅­

3분마다 레이더를 발사해 확인했다. 레이더의 지속시간은 1분이니 공백은 2분. 녀석이 치타처럼 달려오지 않는다면 파악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게 괄약근을 2시간쯤 혹사하니.

“...”

녀석이 걸려들었다. 마을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온 녀석에게 기사들이 고개 숙였다.

초록빛으로만 표시되지만, 그 윤곽이 선명하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정확히 내 쪽을 향하고 있어 부동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그녀가 골목길을 스쳐 지나갔다.

녹색 눈, 백금색의 단발머리, 고지식해 보이는 일자 눈썹, 170 후반의 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일까.

순찰하면서 마나를 사용했는지 아직 거두지 못한 힘의 편린이 느껴졌다.

이 기운이 전부 그녀의 것이라 한다면, 유검경은 명백히 ‘규격 외’의 강자다.

유검경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후, 따라가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

휙­

“누구냐.”

유검경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걸 잡아낸다고? 이 거리에서? 환장하겠네 진짜.

“모습을 드러내라. 나오지 않겠다면 찾아가겠다.”

유검경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이 사무라이라면 이판사판으로 맞붙겠지만 아직은 그 정체가 불확실하다.

흔히 말하는 좆된 상황.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게 탈주닌자다.

“늦은 밤 수고하십니다. 하하하. 이거 부끄럽군요.”

최상위 닌자탈의법으로 민소매와 팬티 빼고 전부 벗어 구석에 살짝 던져놓은 후 당당하게 유검경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벗으면서 크게 말했으니 던지는 소리가 묻혔을 거다.

“뭐, 뭐냐.”

사갈의 꼬리에서 7개월 동안 실력을 숨긴 나다. 난 내 임기응변 능력을 믿기로 정했다.

“이거요? 아무도 없길래 가볍게 입고 나왔습니다. 기사님들이야 마을 바깥에 계시니까요.”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나?”

“속옷 차림이죠. 운동 겸 정찰을 하려 바깥에 나오니 너무 덥더라고요.”

“...일단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

“네.”

진짜 거짓말 고단수는 99%의 거짓 속에 1%의 진실을 교묘하게 숨겨놓는다. 여기서 그 진실이란 ‘정찰’이다.

다가온 유검경이 내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진 않군.”

닌자탈의법으로 재빠르게 벗었으니 옷을 감춰놨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거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불편하다고 그 차림으로 바깥에 나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제가 인기척은 아주 잘 느낍니다. 누군가 다가오면 방금처럼 숨을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실력에 자신 있는 모험가거든요.”

“모험가라고? 네가 골돈에서 왔다는 그 모험가인가? 진실만을 말해라.”

그렇지. 다른 미끼를 물었다.

“원하신다면 여관에 들어가 모험가패를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골돈 영주님께 받은 보증서도요.”

“나중에 확인하지. 골돈은 왜 간 건가?”

“악당들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갔습니다. 분투하다 성벽에 깔리기도 했지만, 튼튼한 갑옷 덕택에 살아남았죠. 영주님과 같이 싸운 전우들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대화를 시도했다는 건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다혈질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은 유검경이 소문처럼 정의롭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대외적으론 정의롭게 활동하면서 몰래몰래 사람을 죽이는 사무라이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네가 움직이기 전까지 기척을 알 수 없었다. 어떤 수를 쓴 거지?”

존나게 캐묻네 진짜. 빡침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친절하게 웃었다.

“스승님에게 배운 기술입니다. 함부로 발설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곳에 숨어있던 건가?”

“정찰을 위해서입니다.”

유검경이 천천히 나와 눈을 맞췄다.

“정찰? 무슨 뜻이지?”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백성의 안전입니다. 아무리 기사단 분들이 지키고 있더라도 빈틈은 생기기 마련이죠. 그 빈틈을 메꾸고 싶었습니다.”

“홍염룡 기사단의 감시에 빈틈은 없다.”

“그렇더군요. 만족하고 슬슬 들어가려던 참에 기사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모습이 보여주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

동의를 구하니 유검경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 완벽한 말솜씨에 속아 넘어간 게 분명.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네?”

넌 씨발 눈치도 없냐. 추워서 콧물 나오게 생겼는데 왜 자꾸 물어봐.

“백성을 위해 싸운다는 말. 진심인가?”

유검경의 말에 마나가 실려 있었다. 거짓말이라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전 온갖 사악한 존재들로부터 백성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제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생각을 바꿀 일은 없습니다.”

눈을 부릅뜬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번에는 조금의 거짓말도 섞지 않았다. 이게 내 진심이니까.

“...”

긴 눈싸움 끝에 유검경이 먼저 눈을 감았다. 난 눈싸움으로는 져본 적이 거의 없다.

“...말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증명하는 건 행동이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일 점심쯤에 기사단의 임시거점으로 찾아오도록. 거부권은 없다.”

“알겠습니다.”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생겼으니 오히려 개꿀이다.

유검경, 네가 사무라이라면 지금 제 무덤을 판 격이다. 알고는 있나?

“탈주닌자.”

“닌?! 자요? 왜? 요?”

임기응변. 임기응변. 시발 진짜.

“골돈에서 탈주닌자를 본 적이 있는가?”

좆 떨어질 뻔했네.

“많은 병사가 그를 목격했죠. 하지만 전 본 적이 없습니다.”

“...탈주닌자의 정체를 알고 있나? 아니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아뇨.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공성전 때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졌거든요. 골돈 안에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알겠다. 들어가라. 내일은 옷을 입고 나오도록.”

“당근빳다죠.”

“무슨 말인지 원.”

그 말을 끝으로 유검경이 떠났다.

“...후.”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내 두뇌가 명석하지 않았다면 빠져나갈 수 없었겠지.

두뇌전으로 따지자면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

유검경. 확실히 강적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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