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화. 구원의 닌자 (6)
* * *
“벌써 도착했군요! 이야, 제가 지금까지 본 벌집 중에 제일 크네요!”
유검경의 옆에 선 벨더가드가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들의 눈앞에서 거대한 벌집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바로 가시겠습니까? 제 생각엔 좀 쉬었다가”
“붙잡힌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바로 진입하겠다. 먼저 길을 열 테니 갱생대와 같이 따라오도록. 하앗~!”
히히히힝!
벨더가드의 말을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끊어먹은 유검경이 먼저 출발했다.
“...힘센 바보는 아무 생각 없어도 살만하니 좋겠어. 아주 부럽네.”
유검경이 멀어지자마자 눈빛이 변한 벨더가드가 경멸을 가득 담아 낮게 중얼거렸다.
“난 여기서 대기하겠다. 이제 가서 벌집 구석구석을 전부 뒤져라. 금색으로 빛나는 구슬이 있다면 나에게 가져오도록.”
벨더가드의 명령에 갱생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몰았다.
표정도, 말도 없는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벨더가드가 때마침 자기 옆을 스쳐 지나가던 주황색 머리의 여자 갱생대원을 붙잡았다.
“어휘 능력이 남아 있나?”
그 이상한 질문에 여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잘됐군. 넌 여기서 내 말 상대를 해라.”
“알겠습니다.”
“이름이 뭔가?”
“에바입니다.”
“너무 단답형으로 대답하지 말도록.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지?”
“알겠습니다. 저항군 흰돌고래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흰돌고래!”
벨더가드가 껄껄 웃으며 손뼉을 쳤다.
“이거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 같군! 좋아! 흰돌고래에 들어간 이유가 뭐지?”
“붉은고래 마탑이 독성물질이 들어간 홍차를 보내 부모님을 암살했습니다. 정확히는, 암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마탑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야. 만약에...부모님이 마탑의 음모로 암살당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 거 같나?”
“부모님은 투명도마뱀 마탑의 마법사였습니다. 붉은고래 마탑이 비윤리적 생체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망상을 품고 계셨죠.”
쾅!
beeeeee!
Hornettttttt!
비릭스들의 비명이 벌집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공중을 배회하며 정찰 중이던 녀석들이 육각형의 문을 통해 벌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시작됐나 보군. 어디까지 했었지? 그래, 망상! 네 부모님은 붉은고래 마탑에 열등감을 가진 삼류 마법사들이었겠지! 정신적인 질환이 있었던 게 분명해!”
“그렇습니다.”
“부모에 이어 딸년까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거지! 열등한 자만이 더러운 피를 흩뿌린다더니. 우리 마탑의 ‘우월한 유전자 이론’은 빗나간 적이 없다니까!”
“붉은고래 마탑은 언제나 옳습니다.”
눈앞에서 부모가 모욕당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에바. 그녀의 퀭한눈이 우물에 고인 물처럼 흔들림 없이 탁했다.
“흰돌고래에서 무슨 일을 했지?”
“상인으로 위장해 마탑의 정보를 모았습니다.”
“사람은 죽여 봤나? 갱생대에 들어오기 전에 말이야.”
“다섯 명 정도 죽였습니다. 제 정체를 캐내려고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벨더가드가 과장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야. 남은 가족은 있나?”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지?”
“곧 13살이 됩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혼자 남게 됐군. 여동생의 이름은?”
“미나입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마탑에서 보호한다 했습니다.”
미나.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에바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제가 여기서 일을 잘 해낸다면, 언젠가 볼 수 있을 거라 말했습니다.”
그 작은 떨림을 목격한 벨더가드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 아이가 어디로 맡겨졌는지 아나?”
“조셉 망글로브라는 마법사가 보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주 이름 높고 인자하신 분이라고...”
“조셉? 조셉이란 말이지! 워후!”
벨더가드가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조셉 망글로브는 온갖 기인이 모인 붉은고래 마탑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주‘열정적인’ 마법사였다.
“세상에, 조셉이라니! 그래, 꼭 볼 수 있을 거야. 내 장담하지!”
“감사합니다. 저도 믿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미나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아이들은 빨리빨리 자라니까 말이야! 하하하!”
숨넘어가게 웃는 벨더가드의 두 눈에 눈물이 괴였다.
쿵!
“음?!”
굉음이 울리더니, 무너진 벌집의 벽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뭐야? 벌써 산 정령의 정수를 찾았다고?”
당황한 벨더가드가 혼잣말을 하며 말을 몰았다.
벽을 부수고 나온 건 갱생대원 열두 명과 온몸이 비릭스 점액으로 뒤덮인 사람 삼십 명이었다.
점액 특유의 시큼한 냄새에 벨더가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맨 앞의 갱생대원을 불러세웠다.
“이 새끼들은 또 누구야? 구슬은 찾았나?”
“구출한 민간인들입니다. 구슬은 아직입니다.”
“이런 병신새끼들이. 누가 그딴 쓸데없는 짓을 하라고 시켰어!”
흥분한 벨더가드가 맨 앞 갱생대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고개가 반쯤 돌아간 갱생대원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컥!”
피와 함께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이빨.
“유검경입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남자를 대신해 옆의 갱생대원이 말했다.
“뭐?”
“먼저 앞서나간 유검경이 구출하라며 저희에게 맡겼습니다. 한 명이라도 사라지면 마탑을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발은 씨발, 법도 모르는 애새끼가 감히!”
소란이 커지자 구출된 사람들의 눈이 광분한 벨더가드를 향했다.
대화 내용은 듣지 못한 듯 눈만 껌뻑거리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던 벨더가드가 억지로 웃음 지었다.
“아, 잠시 착오가 있어서 말이죠! 안심하세요! 우린 붉은고래 마탑입니다! 유검경과 함께 여러분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붉은고래 마탑에서 구하러 온 거래!”
“역시! 믿고 있었다고!”
“밥에게 칼을 준 사람도 마탑 소속인가?”
“탄소난자인지 탈주낭자인지 하던 사람?”
“어르신. 탈주닌자라니까요.”
뜻밖의 이름에 눈이 휘둥그레진 벨더가드가 반응했다.
“탈주닌자? 골돈의 수호신이 여기 있습니까?”
“아, 예! 제가 봤습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대답해줬는데, 소문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랑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줬습니다. 읏, 머리가 또 지끈거리는군요.”
대답한 밥이 커다란 혹이 솟아오른 머리를 살며시 만졌다.
탈주닌자.
벨더가드의 기억이 맞다면, 유검경의 제자를 죽인 자였다.
악연이 깊은 두 사람이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다니.
‘지원하러 가야 하나?’
마탑에게 유검경은 작은 골칫덩이였지 큰 위협이 아니었다.
서로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적대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
“뭐해? 다들 다시 들어가. 구슬을 찾으면 유검경을 돕도록.”
“알겠습니다.”
벨더가드의 명령만 기다리던 갱생대원들이 다시 움직였다.
‘생색만 낸다.’
수호신이라는 과장된 별명이 살짝 걸렸지만, 유검경 정도 되는 자가 이제 막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신인에게 당할 리는 없었다.
변방의 도적 수백 명? 칠검경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방관하고 싶었지만, 마탑의 방침을 따르려면 유검경을 도와야만 했다.
그녀는 과거의 망령들과 맞서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였으니까.
“에바, 가까운 마을로 사람들을 안내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까지 떠나보낸 벨더가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천한 것들의 입소문은 질병처럼 빨리 퍼지니 쫓아내는 것만이 상책이다.
전부 없애는 게 제일이었지만 지금 그 방법을 사용하면 유검경과 어떤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니 참기로 했다.
“벨더가드님.”
“음? 너희 둘은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
머리에 피를 흘리는 여자 갱생대원이 남자 갱생대원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이 대원이 머리를 심하게 다친 거 같습니다.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벨더가드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귓속에 도청마법이 심어져 있다… 귓속에 도청마법이 심어져 있다...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나는 텔라스의 농부 앨리스다...!”
“암시가 풀렸군. 전두엽 절제술이 잘 듣지 않은 모양이야.”
여자의 흔들리는 동공을 확인한 벨더가드가 혀를 찼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보여야 하는 단체가 갱생대다. 불완전하다는 증거물은 살려둘 수 없다.
“끌고 가서 조용히 죽여라. 비릭스가 죽인 것처럼 위장해. 끝나면 다시 이쪽으로 와 내 말 상대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콰쾅!
“또 뭔데?!”
몇 번이나 반복되는 소란에 지친 벨더가드가 벌집을 올려다보았다.
날개가 잘린 비릭스들이 부서진 밀랍벽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괴물 같은 년이야.”
***
동선에 혼란을 주기 위해 잠시 뜬그림자로 은신하고 있던 사이 어그로가 이상한 곳에 쏠렸다.
Sawflyyyy!
잔뜩 화가 난 꿀벌요괴들이 숨어든 날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다른 녀석들도 발바닥에 불난 듯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킨더조이 초콜릿처럼 요괴 알에 갇혀 있었던 밥과 친구들 방향은 아니다.
새로운 전사들이 합류한 건가? 요괴들이 큰 빌딩을 쌓으면 부수러 오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이 낄낄 깔깔 동네방네 소리 지르며 쌓은 모래성을 골목대장이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닌?”
그들을 지원하러 가려다 벌집으로 온 제1목표인 성물을 떠올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산세리프와 야인족은 진동모터처럼 덜덜 떨고 있겠지.
아까부터 요괴 비명만 들리는 걸 보니 전사들이 잘 싸우고 있는 거 같았다.
급한 불이 먼저니, 성물을 챙긴 뒤 돕기로 하자.
우우우웅
닌자레이더를 발사했다. 조금 피로해 지는 게 슬슬 제한이 온 거 같다.
여러 생명체가 벌집 주변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 장소에서만 다수의 초록빛이 멈춰 있었다. 아까 레이더로 조사할 땐 이렇게까지 요괴가 밀집된 장소는 아니었는데.
위급상황에 지켜야 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다.
“닌닌.”
이곳에 성물이 있다. 오르페와 디아나, 트리보를 걸고 장담할 수 있다.
아니, 트리보만 걸겠다. 어차피 그 새끼는 지하국대적이니 몇 번 죽어도 문제없다.
슉슉슉슉
닌자축지법과 네루토 달리기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이 전투의 끝이 슬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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