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51화 (51/119)

〈 51화 〉 51화. 반가운 얼굴들 (4) [여기부터 리메이크]

* * *

“왜…. 왜?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횡설수설하며 뒷걸음치는 메이드. 고개를 휘휘 내젓는 게 정신없다.

555? 넘버링을 들으니 동기 같은데 얼굴이 생각 안 났다.

저렇게 감정이 풍부한 동기가 있었나. 오르페 빼곤 다 죽은 눈을 하고 있었는데.

뭐, 감정을 다시 찾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빠르게 수긍했다.

그런데 왜 겁에 질려 있는 걸까. 나도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의문에 대한 대답은 작게 속삭인 오르페가 대신해줬다.

“‘죄 없는 이들의 피를 흘리게 한다면, 내가 찾아가겠다.’ 그 말 기억나?”

아, 그런 말을 했었지. 내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왔다고 착각한 거 같다.

일단 555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리에서 살짝 일어났다.

아멜리아가 호의를 보이기 위해 만들어준 자리니, 망치면 안 된다.

“거, 일단 얘기를 좀...”

“히에에엑~!”

555가 벼락 맞은 사람처럼 두 손을 높이 들고 비명을 질렀다.

왜 이러는 걸까? 그때 몰살한 건 후보생이 아니라 교관들이었는데.

“아니...”

“아이에에에에~!”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555. 저 속도를 보니 사갈의 꼬리 출신이 확실하다.

“아달리! 어디 가는 거야! 돌아와! 아달리!”

애달픈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아멜리아. 555, 아달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

누구도 예상 못 한 사태에 주방이 침묵에 잠겼다.

디아나조차 먹던 고기를 내려놓고 부서진 주전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케모타일...”

이 새끼는 그냥 차를 마시고 싶었던 거 같다.

“아… 어린 시절부터 험한 일을 많이 겪은 애라 그런지 가끔 이상하게 굴 때가 있어요. 원래는 착한 애에요. 차는…. 아깝네요. 다른 하녀를 시켜 커피라도 내올게요.”

“좋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멜리아의 말에 동조해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달리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면 싸해질까 봐 참았다.

같은 도시 안에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정말 큰 도시죠? 웬만한 영지의 다섯 배 크기라 하더라고요.”

“다섯 배나 됐군요. 크다고는 들었는데…. 대단하네요.”

“솔리트론 주변의 땅을 사들여 통합했다고 해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반년 만에 대도시로 만들었다는 건데, 저도 들을수록 놀라워요. 붉은고래 마탑의 명성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졌던 음식들도 거덜 난 지 오래.

웃음을 되찾은 아멜리아가 오르페와 잡담을 나누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네오­솔리트론을 만들면 어떤 이익이 있길래?”

“음…. 제가 들은 바로는, 땅 밑에 지하자원이 아주 많이 묻혀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지하자원이요? 석탄이라도 나오는 건가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네요. 석탄이 나온다고는 들었는데…. 새로운 자원이 발견됐다는 얘기도 있어서요.”

“정말 흥미롭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는 오르페. 예전에 비해 자연스러운 미소다.

“아, 바깥이 어두워지고 있어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거 같아요.”

아멜리아가 식탁에서 일어난 후 손뼉을 두 번 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와 접시를 정리하는 메이드들. 당연하지만, 아달리는 보이지 않았다.

짐 싸고 도망친 건 아니겠지?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골돈의 사람들을 위해 악과 맞선 용감한 전사들의 앞길이 축복으로 가득하길.”

그 말을 끝으로 아멜리아가 주방을 떠났다. 너무 떠들어서 그런지 살짝 피곤해 보인다.

실눈 집사의 안내를 받아 저택을 빠져나왔다.

“우리 집은 어디야?”

가장 중요한 걸 여태껏 안 물어보고 있었다.

장소가 중요하다. 공원 옆이나 광장 옆처럼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면 안 된다.

밤이 되면 인적이 뜸해지는 그런 곳이 닌자활동을 하기 편하다.

“아, 그렇지.”

오르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멜리아의 저택 옆에 있는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곳이야.”

“닌?!”

뭐야? 진짜로? 깜짝 놀라서 다시 물어봤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저곳이야. 많이 놀랐어? 눈이 동그래졌어.”

난생처음 장만한 집이 마당이 딸린 이층집?!

이건 생각 이상의 개이득이다.

“우와…! 저렇게 크면 방도 많겠죠? 혼자서 방을 써도 되는 건가요? 그렇겠죠?”

벌써부터 신난 디아나가 내 집을 향해 뛰어나갔다.

방이 부족하면 포켓요괴답게 개집 안에서 기르려고 했는데. 운이 좋은 녀석이다.

[정말 좋다. 이제야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거 같군.]

“생산적인 활동?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설계도가 있으니, 재료와 시설만 갖춰지면 만들 수 있는 게 많다.]

설명충이 엔지니어까지 겸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트리보라면 수리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본다.

“좋아. 살펴보러 가자.”

대문 앞까지 위풍당당하게 걸어 도착했다. 양옆에 오르페와 트리보가 있으니 폼이 좀 산다.

커다란 두 개의 쇠고리에 주먹만 한 맹꽁이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열쇠는 하나인데, 나중에 시간 날 때 복사해올게.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까?”

“그러렴.”

오르페가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끼워 넣었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시골집 대문처럼 끼이익­ 소리가 안 나는 게 참 좋다.

“오늘부터 여기가 탈주닌자 본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집을 쓱 훑었다.

화장실 두 개. 방 다섯 개. 침대 두 개. 주방이랑 합쳐진 부엌이 하나. 좋은 구성이다.

다락방도 큰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큰 방은 내가 쓴다. 두 번째로 큰 방은 오르페가 써. 나머지는 알아서 하고. 짐 정리 끝나면 바로 대청소를 시작한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이니 깨끗하게 하자고.”

당연히 난 안 할 거다.

“닌닌.”

내 짐만 홀랑 챙겨서 방에 들어왔다.

무기 보관용 방으로 변할 다락방을 채워야 할 시간.

지금까지 수집한 장비를 꺼내 바닥에 나열했다.

주요 무장인 닌자도, 비수들, 닌자슈트 세트, 아밍소드와 모험가용 갑옷.

델바나스한테 뜯어낸 회초리도 있었는데, 내가 사용하기엔 쓸모가 없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돈이 부족해졌으니 팔아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참기로 했다.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까.

몇 개 빼곤 보관방에 넣기 위해 일어서려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

[나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괜찮나?]

“꺼져, 병신아.”

닌자도를 빼 들고 트리보의 대갈통을 향해 겨눴다.

노크도 할 줄 모르는 십새끼랑 할 말은 없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들어왔으면 오코노미야끼 살법으로 떡반죽을 만들었을 텐데.

[...미안하다. 다음부턴 꼭 문을 두드리겠다.]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행동한 후 후회하는 새끼들은 어떤 심정일까? 똥 싸고 휴지 없다는 걸 확인한 느낌?

이해할 수 없다.

“뭔데. 중요한 게 아니면 죽여버리겠어.”

[로빈. 솔리트론은 감시자들이 만든 도시다. 골돈과 똑같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대답해.”

[톤­그란텐 같은 감시자들의 전쟁병기가 지하에 묻혀있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내 동족을 만날 수도 있겠지. 나완 다르게 기억이 온전했으면 좋겠군.]

요괴­나치 연합군의 비밀기지. 네오­솔리트론의 삶이 안정된 순간 그곳을 노려야겠다.

도시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변검경인지 변기통인지 하는 새끼도 알아봐야 하는데, 할 게 은근히 많다.

[로빈. 날 좋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거겠지.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네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러니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오늘따라 묘하게 트리보가 저자세다. 이게 신도시 효과인가?

아까부터 생각하던 걸 말했다.

“수리검 만들 수 있어?”

[설계도는 없지만, 모습을 흉내 내는 건 가능하다. 금속을 녹일 시설이 필요해 지금 당장은 힘들다.]

“그럼 됐어. 이제 가서 자.”

[난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

“아까처럼 몰래 VR야동이라도 보던가.”

나무에 기대어 자는 척하며 트리위키를 보는 새끼는 없다.

아까는 오르페랑 디아나가 있길래 간단히 넘어가 줬지만, 난 진실을 알고 있다.

[...]

음습한 자아의 로봇 트리보가 방문을 닫고 나갔다.

붕붕­ 파파팟­ 휙휙­!

오랜만에 가라테와 주짓수, 태권도를 펼친 후 침대에 누웠다.

공간이 넓으니 실내에서 운동도 할 수 있다.

안 쓰는 방을 트레이닝 룸으로 만들어 볼까?

괜찮은 생각이다.

껌뻑껌뻑.

눈이 솔솔 감긴다. 아, 양치해야 하는데. 이 세계는 치과의사가 없어 이빨이 썩으면 임플란트도 못 한다.

닌자기상법으로 다시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

“감찰관님?”

멍하니 서류만 지켜보던 제임스가 고개를 돌렸다. 골돈의 영주 조안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실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소.”

“그렇군요. 이상한 점은 없는 거죠?”

조심스레 묻는 조안나의 등 뒤에는 트렌과 레너드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쓱 훑어본 제임스가 씩 웃었다.

“몽타주가 필요할 거 같은데…. 날 도와줄 수 있겠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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