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53화 (53/119)

〈 53화 〉 53화. 반가운 얼굴들 (6)

* * *

네오­솔리트론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조사를 하기 전까지는 먹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요즘은 모험가 길드에서 의뢰를 받고 해결하는 중이다.

“이야! 단김에 해오셨군요! 가만있어보자. 머리통이 다섯 개 네요?”

“동굴에서 가정을 꾸린 거 같아요. 다른 개체는 없었습니다.”

“다섯 마리… 이거, 가격을 좀 더 올려드려야겠군요.”

오르페와 대화하던 직원 아저씨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주판을 튕겼다. 동그란 알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그냥 손장난 하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크기로 보아…. 큰 놈이 둘…. 작은 놈이 셋… 증거물 상태가 좋지는 않으니… 이만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처에 괜찮은 고깃집이 있나요?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취급하는 곳이면 좋겠는데.”

“고깃집이라, 전 잘 모르겠군요. 바깥에 나가면 ‘따뜻하고 안락한 돌’ 여관이 있을 겁니다.

거기 주인장에게 돈 몇 푼 쥐여주고 여쭤보세요. 웬만한 건 다 알 겁니다. 솔리트론 시절부터 장사했던 사람이거든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들를게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안녕히 가시길!”

돈을 챙긴 오르페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디아나가 가장 먼저 튀어 나가 오르페를 맞이했다.

“바로 고깃집으로 가요!”

“침착해. 아직 해도 안 졌잖아.”

“점심을 너무 적게 먹었는걸요. 배고파요.”

“집에 잠깐 들렀다 가자. 속옷은 입어야지.”

“알았어요...”

아달리가 가져온 쿠키를 챙겼어야 했나. 다른 사람에 비해 두 그릇은 더 먹는 디아나의 폭식 위장. 이건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훈련을 먹을 것과 연관 지어주면 어떨까?

미션에 성공하면 절반 더 주고, 실패하면 절반 압수. 이거 괜찮은 생각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쓸모없어진 의뢰서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통이 있는 벽 구석으로 향했다.

선택한 후 바로 주머니에 쑤셔 박아서 그런지 땀으로 축축하다.

“로빈 군?”

익숙한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멈춰선 뒤 방향을 살폈다.

“눈치가 참 빠르시오. 오랜만이구려. 골돈 일은 잘 들었소! 정말 다행이오!”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왔다. 턱수염이 좀 자랐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새튼 씨? 어째서 여기에? 고철을 부수는 생쥐는 어떻게 됐습니까?”

방구석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어야 할 새끼가 왜 여기 있을까.

“하나도 맞는 게 없구려. 강철을 마시는 새요. 사정이 있어서 말이오. 그,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 그런 거요.

경험담을 적절히 섞지 않으면 감칠맛이 안 나는 법이니. 더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기 위해 지원했다 보시면 될 거 같소. ”

개소리하는 걸 보니 새튼이 맞는 거 같다.

“네오­솔리트론에서 모험가 일을 계속하신 건가요?”

“그렇소. 적어도 10개가 넘는 의뢰를 처리했지. 혼자서 하기도 하고, 다른 모험가와 협업해서 하기도 했소. 진기한 경험이었지.”

“정말 궁금했던 내용이네요.”

어쩌라고.

“...의뢰 도중에 목숨을 잃은 동료도 있었소. 레베카. 그녀의 시체를 묻으며 맹세했소. 더 강해지겠다고. 어떤 위기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얻겠­ ”

“정말 듣고 싶은 얘기지만, 제가 좀 바빠서 말이죠. 일행이랑 합류하러 가보겠습니다.”

“잠깐, 잠깐만 시간을 내주시오.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러니.”

새튼은 아주 많이 변한 상태였다. 등에 멘 철퇴는 기름을 했는지 번쩍였고, 몸에 걸친 장비는 고급품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히 좋아 보였다.

벌크업을 했는지 몸도 다부지게 변해 있었는데, 오큘 털가죽을 갑옷 위에 걸친 건 좀 깬다.

네오­솔리트론의 네오­새튼? 자리가 사람 만든다는 말은 진짜였다.

“일행이라. 로빈 군이 여기 있다는 건, 오르페 양과 디아나 양도… 저깄구려!”

새튼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우리 일행에게 다가갔다. 트리보를 보고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니 사교성 하나는 그대로인 거 같다.

나쁜 부분은 좋게 변하고, 좋은 부분은 간직한 새튼. 이제 일 인분은 해내지 않을까. 쓰레기도 성장하는 법이다.

“여기서 새튼 씨를 만나다니, 별일이네요. 많이 변하신 게 이제는 숙련된 모험가 같아요.”

“과찬이오. 오르페 양은 더 아름다워졌구려. 눈빛으로 사람도 죽일 기세였는데, 칙칙한 분위기가 많이 사­”

“실례될 말은 거기까지만 하시죠.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나요?”

“큼. 미안하오.”

불쌍한 새튼. 아직도 오르페에게 털리는 걸 보니 갈 길이 멀다.

개구리 풰풰처럼 시무룩해진 새튼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쳐줬다.

“새튼 씨.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긴 한데, 우리가 바빠서요.”

“무슨 일이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소.”

“정말 고맙긴 한데, 고깃집을 찾는 일이니까 굳이 도와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로빈 군은 정말 운이 좋소! 이 근방 고깃집은 내가 다 알고 있소! 전우를 위해 당장 안내하리라!”

의기양양해진 새튼이 어깨동무를 걸더니 날 잡아끌었다. 이 새끼가 건방지게 진짜.

“아니, 바로 갈 게 아니라 집부터 들릴 거라 그래요.”

“상관없소. 그거 하나 못 기다려주겠소? 자, 갑시다. 전우의 집을 구경하고 싶구려.”

새튼의 행복회로는 무적인걸까?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세포가 있는 게 분명하다.

“트리보 씨도 같이 가는 거요?”

[그렇다.]

“목소리에 무게감이 있소. 다양한 사건을 겪었을 거 같은데, 얘기를 한번 듣고 싶구려.”

땅굴에서 잠만 자던 고철의 기계음에 무게감이 있다니.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가?

‘내가 뭐라고 할까?’라고 작게 속삭이는 오르페를 말렸다.

네오­솔리트론에 먼저 와 있던 새튼이니, 색다른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

탈주닌자 활동을 위해서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

“트리보의 인생역경은 정말 대단하죠. 어딜 가도 쉽게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오오.... 기대되는구려."

“그러니 오늘은 새튼 씨가 쏘는 거로 합시다.”

“좋소! 그 정도쯤이야!”

디아나. 준비하렴. 식탐의 시간이란다.

***

“집이 정말 넓구려. 청소하기 참 힘들 거 같소!”

우리 집을 한 번 둘러본 새튼이 껄껄 웃으며 짐을 내려놓았다.

크고 좋은 집을 본 감상이 ‘청소하기 힘들다’라니, 평소에 얼마나 게으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듬성듬성 자른 턱수염도 기른 게 아니라 안 민 게 분명하다.

“좀만 기다리세요.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올 테니.”

오들오들 떨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 디아나를 확인하고 새튼에게 말했다. 갑자기 고개를 젓는 녀석.

“로빈 군. 우린 사선을 넘으며 동고동락한 사이 아니오? 존대하실 필요 없소. 편하게 말씀하시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하려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승급전을 위해 퀘스트를 하는 내내 새튼은 병신 짓과 트롤링으로 인해 사선을 넘나들었고, 단풍잎 마을에선 내가 죽을 뻔했으니.

“그럴까? 거기 바닥에 쭈그려 앉아 기다려. 탁자 위에 있는 쿠키에 손대지 말고.”

쿠키를 가져온 아달리. 아까 집에 들어오면서도 잠깐 봤다.

정원에서 꽃을 손질하고 있길래 아는 척을 해줬더니,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도망갔었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요조숙녀다.

“바로 태도를 바꾸시다니. 적응능력이 참 좋소.”

“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니까.”

잡담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닌자탈의법으로 옷을 벗고 옷장을 살폈는데, 생각보다 일상복이 적었다. 너덜너덜해진 누더기까지 포함해 3개뿐이다.

“...”

일상다운 일상을 보낸 적이 있었나. 지금까지는 모험가와 탈주닌자로서만 살아왔다.

네오­솔리트론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선 ‘모범 시민’ 로빈의 타이틀도 필요한데. 나중에 오르페랑 같이 옷이나 사러 가야겠다.

체크무늬 셔츠는 안 팔겠지?

닌자착의법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일행들과 함께 새튼이 소개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걸어서 10분 거리라니. 새튼치고는 상당히 센스 있는 선택이다.

­ 영양 만점 고기 가득 고소애 식당 ­

가게 간판을 보아하니 우리가 찾던 곳이 맞는 거 같다. 기대감에 가득 차 있는 디아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 희생할 새튼의 지갑에 잠시 묵념한 뒤 벽에 붙은 메뉴판을 읽었는데…

­ 곤충 포크커틀릿

­ 귀뚜라미 튀김 강정

­ 꽃벵이 티라미­슈

­ 헤라꿀레스 장수풍뎅이 냉체무침

­ 들소개구리 파스타

“야 이…!”

새튼 이 머저리 새끼를 믿은 내가 병신이었다. 타코야끼 살법이 튀어 나가려는 걸 참아내고 새튼에게 정중히 물었다.

“내 요구사항이랑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은데?”

“음?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먹고 싶다 하지 않았소?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는 새튼.

이 새끼랑은 말이 통할 거 같지가 않아 디아나와 오르페에게 다가갔다.

트리보는 이번에도 관전만 할 예정이니 의견을 물을 필요 없다.

“애들아. 이건 아니지 않냐? 사람이 어떻게 벌레를 먹어.”

“동굴에서 실컷 먹었잖아. 제대로 조리되지 않아 맛은 별로였지만.”

오르페까지 이렇게 말하다니. 경탄을 금치 못할 상황이다.

야쿠자의 음모로 인해 몰살당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아니었나? 귀족이면 벌레에 혐오감을 가질 만도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거 말곤 먹을 게 없었잖아.

오르페. 진흙탕에 구르며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놈들을 먹고 싶어?”

“그렇게 말하니 끔찍하네… 마탑에서 개량된 식용벌레니, 위생엔 문제없을 거야. 이름은 저래도 고기 맛은 소나 돼지랑 똑같아.”

오르페마저 미개한 이세계인의 사고방식에 세뇌당한 상태. 마지막 희망인 디아나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마주했다.

“디아나. 오늘은 너의 날이야. 알지?”

“네? 네.”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 그렇죠?”

닫힌 사회에서 자란 디아나지만, 라미나의 교육 아래 기본적인 것들은 배웠을 터.

“벌레 좋아해? 싫어한다면 고개를 강하게 두 번 흔들어. 내가 널 구해줄 테니.”

“벌레 싫어하세요? 왜요? 맛있는데...”

“하.”

역시 요괴는 어쩔 수 없다. 눈물을 참으며 저것들을 먹어야 하나?

이제 와서 ‘난 벌레가 싫으니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엔 너무 폼이 안 난다.

오르페나 디아나가 싫다고 얘기하면 다른 곳으로 가자고 얘기라도 꺼내 봤을 텐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새튼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벌레가 싫다면 저것들도 있소. 차림표는 저거만 있는 게 아니라오.”

새튼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에 낡은 메뉴판이 걸려 있었다. 적혀 있는 건 소고기 스테이크나 돼지고기 바베큐 같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메뉴들.

“여기도 원래는 평범한 고깃집이었소. 식용벌레는 왕국명령 때문에 취급하는 거요. 아카데미 급식에도 식용벌레가 나오는 시국이니, 적응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소.”

“미치겠네 진짜.”

폭력과 광기, 음모로 가득 찬 이세계.

자국민들에게 식용벌레를 권장하는 이르갈 왕국은 사라져야 한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