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59화. 광산과 홍삼캔디와 천마 히틀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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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열심히 했는데, 올해도 떨어졌구나. 이제 미술 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아돌프 히틀러.
이것은...!
미술대학에 붙지 못해 재수를 해야 했던 그는 낡은 고시원에서 고대의 쿵푸 비급서를 찾아냈다.
아뵤~!
쿵푸 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히틀러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일본 춘화 감상 시간까지 포기하면서 비급을 익혔다. 그 비급서의 이름에 담긴 불길한 아우라를 느끼지 못한 채 말이다.
힘이 제멋대로 으아아아아악!
초월적이며 음험한 쿵푸파워가 담긴 비급서의 이름은 ‘천마의 정석’.
너무 위험하다 여겨 고대의 쿵푸 마스터들이 봉인해둔 그것은, 쿵푸 세계에 뿌리 깊게 박힌 악습인 ‘약육강식’을 누구보다 추종하던 자들이 요괴와 합심해 만들었다 전해지는 마도서였다!
본좌가, 세상에 우뚝 서리라.
그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요기에 잠식당한 히틀러는 ‘천마의 정석’을 전부 익히는 데 성공해 규격 외의 강자로 재탄생한다.
빙빙 도는 세상은 변하고 있다. 너희들도 변할 차례다.
히틀러는 본인을 ‘제육천마왕’. 즉, ‘천마’라 자칭하고, 지구의 심해(브론즈 아님)에서 잠자던 세력들을 규합했다.
이제는 어린아이들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삼류악당들로 전락한, 과거의 망령들을 말이다.
난 기존 질서를 거부한다! 윤회를 거부한다! 이름만 다른 독재자들이 지배해온 세상을 증오한다! 이 썩어빠진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어리석은 신, 부처는 나의 적이다! 나는 그 오만한 자를 쓰러뜨릴 것이다! 이건 그 의지의 상징이다!
불교의 상징인 만(卍). 히틀러는 그것의 귀퉁머리를 한 대 친 거 같은 비주얼의 그림을 국기로 삼았다.
우리가 ‘하켄크로이츠’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부처와 불교에 반기를 든 자.
닌자가 처리한 사무라이들의 뼈다귀를 찾아내 사술로 부활시킨 자.
반부처연합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와 툴레 협회를 부추겨 기갑사우루스를 복원한 자.
첨단과학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공사판에서 노가다나 하고 있던 쿵푸 마스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자.
그 외 기억도 안 나는 녀석들을 부랴부랴 모은 자.
내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새끼의 얼굴이, 멀리서 보였다.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는 그 손짓마저 역겹다.
심장이 외쳤다. 개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저 새끼를 죽여야 한다고.
“….”
히틀러를 보좌하던 군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눈치채지 못했을 때 한 방으로 끝내기 위해 품속의 비수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저거, 닌자잖아.”
해골가면을 쓴 후드티의 남녀가 내가 서 있는 방향을 정확히 노려봤다.
“암살 교단의 후예들?!”
놈들의 생김새를 보자마자 알아챘다. 히틀러를 제외한 요괴나치 연합군 소속 중에서 내 뜬그림자를 눈치챌만한 녀석들은 암살 교단 소속 암살자들뿐이니까.
하산 에 사바흐가 사원수도승들을 암살하기 위해 만든 어둠의 조직이자, 닌자의 라이벌로 몇 세기 동안 유명세를 떨쳤던 암살 교단.
똑바로 서라, 하산! 어째서 그런 상도덕 없는 짓거리를 한 거지?!
같은 동종업계 종사자임에도 스포츠맨십 없이 더 낮은 가격에 의뢰를 받던 녀석들이라, 닌자가 몰살시킨 녀석들이다.
교단의 부활을 위해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는 썰은 진짜였나.
“교단의 원수!”
과거의 망령들이 암살검을 뽑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벼려낸 칼날 같은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 상당한 수준의 암살자들이었다.
“너희 암살 교단 놈들은 항상 말이 많아.”
하지만 난 판타지 세계의 기괴한 야사요들을 무찌르며 단련된 슈퍼 탈주닌자.
녀석들의 움직임?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만지작거리던 비수를 하나씩 던져 연놈들의 머리통에 하나씩 박아줬다.
“아사싯?!”
“에지옷?!”
녀석들은 공중제비를 돌다 죽었다.
“느리구나. 피하는 것조차.”
마하 3에 가까운 내 투척속도를 녀석들이 피하는 건 불가능.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다.
“상대는 닌자! 우리의 적이다! 쏴라!”
캐놋!
나치 장교의 명령에 기갑사우루스들의 9286식 100+10cm 캐논포가 불을 뿜었다.
삐슝뿌슝빠슝!
병신티비도 놀라 달아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효과음. 그 화력과 정면으로 맞선다? 불가능한 짓이다.
“두고 보자!”
어쩔 수 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로 했다. 전성기의 요괴나치 연합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니까.
사사사삭
가까운 숲 안으로 들어갔다. 천마 히틀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뒤돌아 뛴 녀석들이 많아서인지 날 쫓아오는 연합군의 수는 적었다.
나 말고 다른 닌자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 게 분명하다.
“hey guy!”
축지법으로 내 뒤를 바짝 쫓아오던 라틴계 여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붉은 도복과 까맣게 탄 피부. 화산파의 쿵푸 마스터인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이 분명했다.
화르르르륵!
그 추리가 진실이라는 걸 대답하듯이 파이어 브레스를 뿜어내는 그녀.
“우왓!”
간발의 차로 피한 후 브레스가 만들어낸 파괴의 여파를 확인했다.
풀이든 나무든 바위든 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타 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SORRY. I AM STRONG.”
자랑스럽게 웃는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그 면상에 타코야끼 살법을 먹이려 움직일 때.
휘리리리리!
제갈세가의 독공이 날 덮쳐왔다.
“이런 시발!”
샤아아아!
독에 물든 앞니를 앞세운 독사들이 쇄도한다. 허겁지겁 닌자도로 그 축생들의 목을 쳐 방어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다 느낄 때였다.
“By Fire Be Purged!”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손에서 불꽃이 뿜어져나왔다.
사삭!
피하려고 재빨리 엎드렸지만, 머리카락까지 보호하지는 못했다.
두건과 함께 홀랑 다 버린 내 윤기 나는 머리카락.
“야이…!”
순간적으로 획 돌아가는 눈동자.
안돼! 여기서 획 미쳐버리면 안 된다. 여기가 내 꿈속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서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켰다.
“네놈의 머리털도, 가져가겠다.”
현실로 돌아가면 원상복구 되겠지? 안 된다면 가발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는데.
“Surprise~motherfucker! ha ha ha!”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배꼽을 잡고 웃는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휘리리리리!
후방에서 세뇌 리코더로 독사를 조종하는 제갈세가의 쿵푸 마스터, 스네이크 하트.
“Aye, Aye!”
어느샌가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행형 중무장 상어를 탄 검은 수염 해적단.
상대해야 할 적이, 너무도 많았다.
20세기의 닌자들은 이런 괴물들과 전쟁을 벌이고, 승리했다는 건가?
닌자도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려온다.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겨야만 한다.
21세기 판타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네오 요괴나치 연합군은 이보다 더 강대한 세력을 일구었을 것이다.
얼마나 강해 보이든, 상대는 100년 전의 퇴물들이다.
이런 새끼들을 상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삼류 닌자가, 탈주닌자가 될 수는 없는 법.
“와자뵷~!”
바이오히드라 독사들의 대가리를 잘라내고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파이어 브레스를 피했다.
푸슈~ 펑!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비행형 중무장 상어의 미사일이 내리꽂히고, 폭발했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숲.
“take this!”
불길을 피하고 있을 때, 신묘한 보법으로 거리를 좁힌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정권 지르기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아빠 품에 안기렴.”
그 주먹을 잡고 비튼 후 내 쪽으로 끌어들였다.
역시, 풀꽃이나 펑펑 쏴재끼는 화력형 쿵푸 마스터라 그런지 근접전이 나에 비해 빈약하다.
“what~!?”
당황해 끌려오는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복부에 제트킥을 먹였다.
어릴 때부터 단련한 게 틀림없는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탄탄한 복근. 하지만 칼날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내 제트킥의 킥력은 그 내구도를 훨씬 상회하는 공격이었다.
특별 등급 방패와 모든 걸 뚫는 전설 등급 창의 충돌.
“Comeandgo!”
등급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는 법. 복부에 빵꾸가 뚫린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전기장판마냥 아직도 후끈후끈한 화산파 쿵푸 마스터의 시체가 그대로 날아가 스네이크 하트와 충돌했다.
“커억!”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빵댕이가 세뇌 리코더에 닿는 순간, 그것을 입에 물고 있던 스네이크 하트의 인중이 움푹 들어갔다.
퍼석!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토마토즙.
“놀랍군. 입에도 뿔을 단 유니콘이 있다니.”
적당한 미사여구를 내뱉으며 검은 수염 해적단의 미사일 세례를 피해냈다.
두 놈을 처리했지만, 여유는 없었다.
쿵쿵!
히틀러의 안전 확인을 마친 후 다가오는 기갑사우루스들의 발소리가 들렸으니까.
피슝 피슝 피슝
규칙적으로 하나씩 날아오는 비행형 중무장 상어의 아틀란티스 아쿠아 미사일.
타 타 탓!
계단처럼 일정하게 배치된 그것들을 하나하나 밟고 공중으로 향했다.
꿈속이라 그런지 물리 엔진도 한층 대단해진 느낌이다.
“Nani?!”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어 위에 올라탄 후, 당황한 해적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와플 기계로 BTS(Black Tiger Shrimp) 치킨너겟 세트 누르기.”
납작 쿵!
예쁘게 짓눌린 해적의 머리통. 고대 아틀란티스인의 후손이라 그런지 피 색깔이 투명했다.
“당장 저 녀석을 죽여!”
주인을 잃고 추락하는 상어 위,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는 나치 장교의 모습이 보였다.
이딴 잡몹들 하나하나 죽여봐야 타격도 없다.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상대는 오직 하나.
놈들의 수장이자, 사상의 주체이자, 연합군의 핵심전력인 천마 히틀러였다.
쾅!
상어 옆구리에 매달린 기계를 발끝으로 내리찍어 부쉈다.
파지지직!
기계가 전기와 함께 엄청난 양의 연기를 내뿜었다.
쾅!
상어가 바닥에 추락하자마자, 뜬그림자를 펼쳤다. 연기가 시간을 벌어줘서 안전하게 펼칠 수 있었다.
이제는 히틀러를 찾아야 할 때다.
사삭 사사삭
자욱한 연기를 노려보고 있는 나치 장교들을 지나쳐 숲을 빠져나왔다.
히틀러를 호위하고 있는 놈들은 언데드 사무라이였는데, 녀석들은 불사의 몸을 얻은 대신 감각기관이 썩어서 내 뜬그림자를 알아챌 수 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숲 쪽을 바라보던 히틀러에게 다가갔다.
“...”
100m 안에 들어왔는데도 날 눈치챈 기색이 없다. 유검경 아가사는 내가 움직이자마자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챘는데.
이 새끼, 칠검경보다 약한 게 아닐까?
“자네. 그거 알고 있나?”
“?!”
히틀러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기 머리통을 톡톡 쳤다.
“아직도 김이 나고 있다네.”
아,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이 시발련이 진짜...
어차피 이번이 아니면 기습할 기회는 없다. 그냥 달려들었다.
투다다다
젖 빨던 힘까지 다해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히틀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내 쪽을 향해 오른손을 쭉 뻗을 뿐이었다.
“천마.”
그 말에 실린 막대한 힘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내 머리카락을 전율케 했다.
“감마 레이 버스트(Gamma Ray Burst).”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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