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3화. 비탄의 쇼군 (3)
* * *
“그렇다면?”
닌자도와 클론 닌자도를 꺼내 들었다. 이도류 닌자라면 칠검경 최강이니 뭐니 어쩌고저쩌고 하던 변검경도 별수 없을 터.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는다. 놈을 천천히 살폈다.
“절 죽이려는 이유가 뭡니까?”
놈이 검집을 허공으로 띄웠다.
검집에 손을 올린 게 아니라, 마나를 사용해 공중으로 띄운 거다.
검집만 공중으로 뜬 게 아니라, 변검경 근처에 있던 무기들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한다.
엄청난 수준의 마나 운용 능력.
이러면 내 닌자포위진도 바로 파훼당하겠는데.
“네 죄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식인종 새끼야.”
“식인종…. 이 해골들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녀석의 몸에서 마나가 폭발하듯 치솟는다.
이 새끼,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유검경보다 강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녀석 중 최강이 아닐까.
“이들은 그저 범죄자들일 뿐이에요. 당신이 들고 있는 자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압니까?”
“궁금하지 않군.”
“그래도 한 번 들어보시죠.”
선공을 취하기 위해 빈틈을 찾아봤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저 짧은 팔다리와 작은 몸 어디에서 이런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걸까.
“잿빛늑대 기사단은 30년 전에 있었던 기사단입니다. 그 시대는…. 아주 야만적인 시대였습니다. 법 위에 있는 강자들이, 자기 힘과 권력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시대였죠.”
놈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공격 타이밍을 잡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지금처럼 남성, 여성, 혼성 기사단이 따로 나뉘어 있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잿빛늑대 기사단의 단원은 전부 여자였습니다. 단장인 리사 막시밀리온의 오랜 벗이자 수하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거든요.”
젠장,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다. 변검경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무기들의 수가 점차 늘어간다.
이 공간에 무기가 이렇게 많았던가.
“어느 날, 리사가 한 남자를 종자로 삼고 기사단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직 소년이었던 종자는 멋진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그는 자신을 선택해 준 리사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어검술(무기 자동조종 씹가능 경지)을 익힌 검객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정말 재밌군.”
일단은,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자.
“하지만 리사와 기사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종자를 기사로 만들어주기 위해 부른 게 아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였죠.”
“...”
철가재 기사단의 아일린과 지나, 지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무도 관심 없어 할만한 핵노잼 스토리를 내 앞에서 푸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제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변검경의 입술이 분노로 떨린다. 역시, 뻔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제일 재밌다고 생각하는 동물이니까.
“인간은 야만적인 동물입니다. 오직 법과 질서만이 그 야만성을 제어할 수 있어요.”
공중을 빙빙 돌고 있던 무기들이 멈추어 섰다.
빌어먹게도, 이 전투의 선공권은 변검경에게 달려 있었다.
“힘없는 자가 외치는 정의는 공허하죠.”
“너무 어려운 말은 쓰지 마. 무식해 보여.”
“...법과 질서를 강요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이라 보십니까?”
변검경이 공중에서 떠다니던 한손검에 손을 뻗었다.
한손검이 천천히 날아와 그의 손에 잡힌다.
“공포입니다. 그것도 강력한 힘에 의한 공포.”
한손검을 들어 올린 놈이 말을 계속한다.
“법을 어기면 목숨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그 감정만이 인간이라는 맹수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곳에 널린 머리뼈는…. 상징적인 물건입니다. ”
개똥철학 오지는 새끼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마탑에 끌려가는 걸 도왔나?”
문답무용으로 한 방에 쳐 죽이고 싶지만, 그럴 실력이 안 되니 억지로 참아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
내가 좀 자만했었나. 더블 닌자도라면 이길 수 있을지 알고 잠입했는데.
“제 통제 아래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제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네오솔리트론의 주민들이 실험의 대상이 됐을 테니까요.”
“존댓말로 변명하면 있어 보일 것 같나? 변검경이 아니라 변명경이었군.”
“당신은 마탑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세계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견제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겠죠.”
견제? 일반적인 협력관계가 아니라는 뜻인가?
“당신은 칠검경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뭔.”
“전쟁 억제력입니다.”
놈이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온다. 공중에 떠 있는 다양한 무기들과 함께.
“당신이 유검경을 쓰러뜨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이라는 존재는 커다란 위협이 되겠죠. 이곳까지 찾아온 건…. 뭐, 서로 잘 된 거 아니겠습니까.”
변검경이 바닥을 박차고 공처럼 튀어 올랐다. 엄청난 점프력으로 단숨에 내 눈앞까지 도약한 놈이 검을 휘두른다.
“여기서 리사랑 좋은 얘기를 나누시죠.”
희열에 가득 찬 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챙!
놈의 일격을 닌자도 두 자루를 교차해 막아냈다.
생각보다 힘겹진 않다고 생각했을 때, 변검경이 몸을 틀었다.
쉭!
엄청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발차기. 당연하지만 막대한 양의 마나가 실린 데스킥이었다.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날 향해 날아오는 무기들이 움직임을 제한시킨다.
뻥!!!
“흡…!”
왼팔을 들어서 막아내긴 했지만, 고통이 엄청났다.
“몸놀림은 쓸만하군요!”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변검경이 공세를 퍼붓는다.
유검경보다 움직임이나 기술이 섬세하지도 않았고, 델라미온보다 공격이 묵직하지도 않았다. 꿀벌여왕처럼 단단한 내구도를 가지거나 큰 신체에서 비롯되는 이점이 있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렇지만.
“큭!”
공격에 부족한 무게감을 연격으로 대신하고, 얼핏 보면 단조롭게 느껴지는 움직임을 속도로 보완한다.
몸을 움직이며 생기는 공백은 공중부양 무기들이 채우고, 짧은 팔다리의 사정거리는 마나라는 무형의 기운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완성된 변검경의 공방일체 공격은 아주 매서웠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렇게 싸울 수 있겠지.
챙!
클론 닌자도가 연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닌자도로 공중부양 무기들을 쳐 내고, 클론 닌자도로 변검경의 공격을 쳐 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슬슬 끝이군요.”
변검경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넌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네?”
“난 양손잡이가 아니라 한손잡이다.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지.”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날이 부러진 클론 닌자도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내 전투력은 수치상으로 따지면 50점밖에 안 됐다는 거지. 자, 계산해 봐라. 지금 나의 전투력은 얼마나 될까??”
“헛소리!”
변검경이 공중부양 무기들과 함께 다시 맹공을 퍼붓는다.
아니, 나는 자기 똥노잼 스토리도 열심히 들어주고 반응도 해줬는데, 이렇게 무시한다?
이건 참을 수가 없다.
“대답해!!! 나도 했잖아!!!”
두 손으로 닌자도를 잡고 그 공격을 다 막아냈다.
몸이 더 가볍고 빨라진 기분. 역시, 이도류는 족쇄였다.
“멍청한! 기껏해야 100점밖에 더 되겠습니까!”
“틀렸어! 양손 페널티 제외로 50점이 플러스 되고, 한손잡이 가산점으로 50점이 플러스 되고, 땅딸보인 너를 위해 잠시나마 배려했으니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50점이 더 플러스 된다!”
“말도 안 되는!”
“그러니 지금의 내 전투력은 350점!”
“남은 150점은 대체 어디서”
“닥쳐!”
지금까지 공방하면서 쭉 계산했다.
압도적인 마나량과, 그에 비해 빈약한 육체.
짧은 시간 안에 공중부양 무기들로 공세를 퍼부으면서 단기전으로 끝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 선천적인 육체의 한계 때문이다.
아무리 마나가 많다고 한들 그걸 다루는 육체가 미완성인 상태면 장기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장기전은 내 특기.
애초부터 내가 버티기만 한다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계산도 못 하는 얼간이가!”
빠킨!
미치광이 식인종 사무라이의 한 마디가 내 분노 스위치를 눌렀다.
저기요. 로빈 씨? 열정 있는 건 좋은데, 단순한 계산조차 못 하는데 웬 상인이에요? 저쪽 여자애는 괜찮은데 로빈 씨는 힘들 거 같아요. 아무리 우리가 초보 상인들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몰라서는….
6화에 등장했던 그 빌어먹을 아줌마의 말이 다시금 귀에 떠돈다.
“와자뵷~!!!”
이렇게 된 이상 장기전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순수하게 전투력으로 쓰러뜨리겠다.
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생략)!
변검경과 수백 합을 넘게 주고받았다. 수십 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에.
날아오는 공중부양 무기들은 치명타가 아니겠다 싶으면 그냥 맞아줬고, 부족한 속도는 악으로 깡으로 메꿨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당황한 건 변검경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힘이…”
“계산기나 두드리는 안경잡이는 낼 수 없는 힘이다!”
슬슬 둔해지는 놈을 몰아붙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녀석의 마나는 빵빵한 상태.
쉽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역시 프로였다.
하지만.
“플라잉 닌자도.”
놈의 목을 향해 마나를 듬뿍 담은 닌자도를 던졌다.
숨가쁜 주고받기 공격 중에 발생한 돌발상황.
“미친!”
한손검으로 변검경이 쳐 내는 사이, 성난 황소처럼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듯이 공중부양 무기들을 휘둘렀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푸푹!
“윽!”
그대로 내 몸에 꽂히는 무기들. 괜찮다. 모든 건 다 이 순간 하나를 위해서였으니까.
“정권 지르기!”
막대한 마나가 실린 내 닌자도를 쳐 내고 손을 떨고 있는 변검경에게 다가가 그 배때기에 주먹을 꽂았다.
“크헉!”
“아직이다!”
투투투투투!
그 빈약한 몸에 펀치를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커, 어…!”
피를 토하는 변검경이 한손검을 다시 휘두른다.
푹!
예리한 그놈에게 어깨를 내주고.
“타코야끼 살법.”
식인 변태 개똥철학자 잼민 코스프레 사무라이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이, 이럴….”
미간에 블랙홀이 생긴 놈이 주저앉는다. 끝났다고 방심하기는 이르다.
아직도 공중부양 무기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으니까.
그의 손에서 한손검을 뺏은 후 그걸로 직접 머리를 쳐 줬다.
뎅겅!
“사요나라.”
공중부양 무기들이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나도 주저앉았다.
몸에 무기가 박히지 않은 곳보다 박힌 곳이 더 많았고, 한손검을 막기 위해 내준 왼쪽 어깨는 썰린 고기처럼 갈라져 있었다.
‘트리보.’
목걸이로 동료에게 연락했다.
‘로빈. 오르페가 많이 걱정하고 있다. 왜 이렇게 연락을 늦게’
‘변검경을 죽였어.’
‘뭐뭐라?’
‘죽이면서 입은 상처가 심해. 혼자서 집에 못 들어갈 정도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무기를 천천히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나온다.
‘장소. 장소를 정하라. 나와 오르페가 가겠다.’
‘지금부터 움직이면서 찾아볼게. 연락 끊지 마.’
‘물론이다.’
출타하려는 영혼을 붙잡고 다시 일어났다.
천천히 저택을 빠져나갔다.
아, 안돼! 제이드! 이,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한 여자의 비명이 저택을 울린다. 변검경의 여친이라도 되는 사람인가.
핏자국을 쫓아! 어서!
경비들이 날 쫓는 소리가 들린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그림자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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