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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65화 (65/119)

〈 65화 〉 65화. 로드 투 닌자 (2)

* * *

“지금 내가 네 스피릿­공간을 무너뜨리고 있지 않은 건, 천마 히틀러를 보기 위해서야.”

5분 동안 헛소리를 들어줬으면 된 거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행동할 시간.

“이제 입 닥치고 천마 히틀러를 가져와.”

“내가 보여준 것들이 전부 가짜라고 생각하는 건가?”

“관심 없어.”

사실이든 아니든,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이라면 할아버지의 원수인 벨카­투나는 내가 직접 죽여 원수를 갚은 거니까.

이 새끼가 위대한 성 뭐시기 그것도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요괴라면 포르­페나 이 병신은 그냥 요괴일 뿐이다.

내 신념을 매도하고 날 정신병자라 부르는 거?

야사요 새끼들이 항상 하는 짓 아닌가.

그래놓고는 뭐 대단할 짓을 했다고 쳐 웃는 꼬락서니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네 할 일을 해. 병신아.”

빨리. 하라고. 히틀러.

“...번거롭지만, 이 방법 뿐인가.”

맨 앞의 까까시가 얼굴을 잔뜩 구기더니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얼마나 버틸지 지켜보겠다.”

“진작 그랬어야지.”

다시 공간이 바뀐다.

***

뿌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몽롱해진 정신을 일깨운다.

“수상한 자다! 죽여!”

“저건…. 닌자다!”

이윽고 이어지는 나치 장교의 성난 외침. 그들의 타고 있던 기갑­사우루스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쏠렸다.

“전군, 발사!”

기갑­사우루스들의 캐논포가 불을 뿜었다.

토토토토­

땅바닥에 마구잡이로 쳐박히는 포탄을 피하며 주변을 살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인지 포탄의 명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드디어.”

닌자도를 빼들었다.

“닌…. 자…!”

“우리들의 원수!”

캐논포의 화력쇼가 끝나자마자 언데드 사무라이들이 들이닥쳤다.

“씁...”

언데드 특유의 박살 나도 다시 맞춰지는 몸으로 탱킹을 담당하던 녀석들이니, 전면전은 장기전으로 갈수록 내가 불리하다.

그래도 뭐 어떡하나. 저번처럼 숲으로 유인해 싸우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멀었다. 불리해도 해 보는 수밖에.

“비검, 츠바메가에시.”

“울부짖어라 무라마사!”

냄새나는 구식 갑옷을 걸친 뼈다귀들이 일사불란하게 요도 무라마사를 휘두른다.

각자 다른 스킬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촘촘한 연계는 아니었다.

연계의 빈틈을 노려 놈들의 급소 부위에 일격을 먹였다.

와르르!

일격에 무너져내리는 뼈다귀들.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이 녀석들은 연합군 최고의 탱커들이다.

회피탱이나 흡혈탱 같은 병신같은 게 아니라 죽지 않는, 말 그대로 불사탱인 새끼들.

흩어진 뼈다귀들이 데구르르르­ 구르다가 공중에 붕 떠서 합쳐졌다.

“­느려.”

그래도 부족하다.

내 맞상대를 하려면 적어도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마야모토 무사시, 사사지 코지로 급의 SSS급 사무라이들을 전성기 폼으로 갖다 놓아야 한다.

녀석들을 10번쯤 발로 차서 부쉈을 때였다.

“이 열등종족! 사라지세요!”

“닌자에게 죽음을!”

등에 제트팩을 매고 손에는 일본도를 든 소녀들이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비행기와 맞먹는 속도에 그들의 세일러복이 펄럭인다.

제13SS기갑사단 천마경호친위대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의 개인 경호를 담당하는 무장친위대 사단.

철저히 천마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이들은 요괴­나치 연합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살인병기들이다.

촉법소년이라는 법치적 이점을 이용해 그들이 앗아간 인명은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몰살해버리고 싶었지만...

“후.”

점차 가까워지는 소녀들의 눈을 마주했다. 조금의 생기조차 보이지 않는 썩은 동태눈깔.

모용세가의 최면 어플에 당한 피해자임이 분명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한자성어 사전에서 읽은 진실을 천천히 떠올렸다.

제13SS기갑사단 천마경호친위대 아돌프 히틀러, 줄여서 13천경대라 불리는 이 조직의 조직원들은 전부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한다.

그녀들의 부모님을 인질로 잡은 모용세가의 쿵푸마스터, 괴벨스가 으슥한 곳으로 유인해 최면 어플로 세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면 어플에 당한 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신미약이었다고 깝죽거리는 잠재적 야쿠자들과 다르게 그들은 진정한 ‘심신상실자’ 들이었으니까.

전쟁이 끝난 뒤 한의학의 힘으로 정신을 차린 13천경대의 대원들은 죄를 뉘우치며 죽는 날까지 사회에 봉사했다 전해진다.

이런 씁쓸한 뒷배경과 진실성 있는 앞배경까지 있으니 많이 고려해줘도 되지 않을까?

낙원을 위해서는 애 어른 노인 ­물론 야사요 한정이다­ 따지지 않고 죽이는 나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치기로 했다.

“­방정환 펀치.”

자아를 잃고 악인들의 음모에 놀아나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어린이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위인의 이름을 딴 제압용 권법을 펼쳤다.

상황이 상황이니 노키즈존 펀치는 참기로 했다.

“베밧!”

“호엣!”

방정환 펀치가 머리통에 박힌 13천경대 대원들이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땅바닥에 쳐박혔다. 강화인간이니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애새끼가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위험해. 제트팩은 압수다.”

가장 가까이에서 추락한 대원의 등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붙어 있는 제트팩을 떼어냈다.

푸슈슈­

아직도 뜨거운 연기가 새어 나오는 제트팩. 그것을 착용한 후 작동시켰다.

“닌자! 어디로 가는 것이냐!”

“아직이다! 아직 우리는 멀쩡하다!”

“무인에게 모욕감을 줄 셈인가?”

뭐라 중얼거리며 따라오는 언데드 사무라이들을 무시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제트팩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런가 기갑­사우루스들의 캐논포도 가볍게 피해낼 수 있었다.

“히틀러...히틀러...”

슈팅게임 속 비행기가 된 나는 탄막을 피하며 빠르게 놈을 찾았다. 아까부터 내 머릿속은 그 새끼로 가득 차 있었다.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솔직히 내가 당황해서 못 피한 거지, 별것도 아닌 기술이다.

압도적인 파괴력은 지랄염병. 그깟 허접쓰레기 삼류 무술쯤이야 이번에는 가볍게 피해주리라.

“이 새끼!”

뒷짐을 진 채 하품을 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저공비행 모드로 전환해 기갑­사우루스들의 머리통을 닌자도로 쳐내며 놈에게 접근했다.

“­천마.”

히틀러가 오른손을 쭉 뻗었다. 이번에도 날 보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시발새끼. 머리에 힘줄이 파바박 돋는다.

“나를 봐라!”

내가 관심종자는 아니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자존심이 상한다. 이렇게까지 모른 척하며 방치 플레이를 하는 건 싸우는 상대에게 예의가 아닌데.

“감마 레이­”

그러거나 말거나 지 기술이름만 외쳐대는 자칭 제육천마왕. ‘버스트’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급발진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제트팩의 속도를 살짝 줄였다.

조작버튼이 난텐도 스위치식이라 조종하기 편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무라이 중 하나가 고향으로 돌아가 난텐도를 만든 게 아닐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버.”

두뇌 풀 가동!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스트’를 기다리며 왼손으로 제트팩 조작버튼을 세게 움켜쥐었다.

콰아아아앙!

“아.”

말이 끝나기 전에 발사되는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급하게 버튼을 눌러 방향을 틀었지만,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나도 히틀러도 알고 있었다.

“­스트.”

히틀러가 마지막 주문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크후후훗~!”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녀석.

“...”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죽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닥쳐오는 섬광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에 직격당한 지 5초 정도 지났을까. 눈을 뜨니 다시 들판이었다.

언데드 사무라이들을 무시하고 기갑­사우루스들의 캐논포를 피해 검은수염 해적단의 비행형 중무장 상어를 탈취했다.

13천경대가 사용하는 제트팩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유연성과 판단력을 갖춘 녀석들이라 탈것으로 쓰기엔 더 좋았다.

피슝­ 피슝­ 피슝­

아틀란티스 아쿠아 미사일을 적진 한가운데에 투하했다. 초월적인 화력에 뼈다귀를 흩뿌리며 날아가는 언데드 사무라이들.

어느샌가 쫓아온 13천경대와 공중전을 벌이며 하나하나 제압했다.

이번엔 최대한 날뛰면서 연합군을 처리해 히틀러를 자극할 생각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한 자신만의 제국이 몰락해가는 걸 보면 반인반요인 그라도 판단력을 잃고 분기탱천하지 않을까.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하지만 어림도 없지. 망설임도 없이 적진 한가운데에 필살기를 꽂아 넣는 히틀러.

이번에도 개털린 건 나였다.

좋다. 이렇게 된 거, 이길 때까지 재도전이다. 다시 들판에서 깨어나자마자 뜬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실패했다. 다시 한번 해보자. 다시. 다시. 다시. 이번엔 이렇게. 다시.

­ 우둔한 자여. 이제 그만 끝내도 되지 않겠나.

말을 걸어온 포르­페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게 체감상 24시간이 지나고.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이틀이 지났다. 뜬그림자 솜씨가 갈수록 느는 거 같다.

­ 신노빈. 포기해라. 넌 이길 수 없다.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일주일이 지났다. 예전보다 확실히 빨라진 두 다리를 놀리며 히틀러에게 다가갔지만.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한 달이 지났다.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머리통을 300여 번 정도 잘라냈으며, 스네이크 하트의 이마에 리코더를 250번 정도 꼽았다.

­ 그만.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됐다.

군대 뒤에서 하인리히 힘러와 함께 오타쿠적 물건을 뒤적거리던 괴벨스의 휴대폰을 빼앗아 최면어플을 제거해 13천경대를 아군으로 만든 횟수? 50번이 넘어간다.

온갖 야사요를 죽이며 미친 새끼들이나 생각해볼 만한 작전을 짜 실행해봤지만, 히틀러를 죽인 횟수는 0번이었다.

­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다. 멍청한 짓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힘을 길렀다. 현실 세계로 돌아갈 생각은 잊은 지 오래.

.

.

.

석 달 정도가 지났을까.

“커어억…!”

언데드 사무라이 부대의 최강자.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라고 불렸던 언데드 사무라이가 내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한심한 추태를 보는 것도 10번째. 녀석을 무시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대단하군.”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

나도 짧게 대답해줬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히틀러의 두 눈이 날 향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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