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66화. 로드 투 닌자 (3)
* * *
“언데드화로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 상태긴 했지만, 그 노부츠나를 쓰러뜨리다니. 보통 닌자가 아니구나.”
이제야 뒷짐을 푸는 히틀러. 감마 레이 버스트를 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남궁세가의 천라지망을 뚫고 정면에서 노부츠나를 쓰러뜨려 히틀러의 흥미를 끈 게 정답이었다.
“누가 고용했지? 카우보이? 그 수전노 소치기 새끼들은 아닐 테고…바이킹인가? 발할라가 불탔으니 정신없이 바쁠 텐데.”
계속해서 입을 놀려대는 이유가 뭘까?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끄는 건 아니었다. 천마가 삼류나 하는 짓거리를 할 리는 없으니까.
“궁금한가?”
“그렇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면, 답변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부처님이 보냈다. 네 못난 콧수염을 뽑고 바지를 벗겨 궁둥이를 흠씬 두드리라 말하셨지.”
평소 같아선 그냥 ‘탈주닌자니까.’ 하고 말았겠지만, 상대는 부처님에게 열등감을 가진 천마. 살짝 자극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적당한 말을 꾸며냈다.
“웃기지도 않는군. 부처의 사도를 자칭하는 놈이, 본좌 앞에서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지껄이다니.”
“상스러운 건 네 저택에 있는 춘화 컬렉션이겠지.”
“갈!”
히틀러가 콧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쿵푸 파워를 끌어올렸다.
고오오오오!
지금까지 싸웠던 쿵푸 마스터들과는 격이 다른 파동이 느껴진다.
천마라 자칭할 정도의 힘은 있다는 건가. 나도 마나를 끌어올려 공격에 대비했다.
“뭐, 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격히 평정을 되찾은 히틀러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살불살조, 살부살모(????????)라. 부처가 보냈다 한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살려줄 이유도,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지.”
“뭐?”
살불살조. 듣고 넘어갈 수 없는 말이다. 부처님을 죽인다니. 이건 절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말이다. 시발, 너무 화나서 두 번이나 강조했네.
“부처님이 네 친구냐? 부처님을 왜 죽여 이 미친 새끼야!”
타다닥!
몇 초도 안 돼서 분노를 가라앉혔다는 건 심신 안정용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뜻. 놈을 더 흔들어보는 건 의미가 없다. 선빵이라도 먹이기 위해 내달렸다.
“브랏카스토펠른.”
이상한 주문을 외친 히틀러의 뒤에서 검은 액체들이 솟아올랐다. 액체 괴물처럼 몰캉거리며 움직이는 게 상당히 기괴하다.
“좋다. 내 친히 어울려주지. 오만함과 자신감은 한 끗 차이라는 걸 알려주마.”
“지랄은 거기까지다!”
놈이 이상한 수를 쓰기 전에 먼저 근접전을 걸어야 한다. 몇 개월 동안 싸우면서 익힌 가속 스킬로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마나량은 잠재력의 한계를 맞이했는지 오랜 시간 싸우면서도 늘어나지 않았지만, 기술의 숙련도와 정밀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스킬 레벨 3에서 8 정도가 된 느낌.
잘만 한다면 천마도 일격에 보낼 수 있으리라.
“쿠후훗. 이것들이 보이지 않는 건가?”
히틀러의 몸 뒤에서 몰캉거리며 커지던 검은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액체였지만, 보기에는 그냥 똥물 같아서 쫄지는 않았다.
촤르르르륵!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똥물이 발딱 서더니 뱀처럼 변해 내 몸을 향해 쇄도했다. 그냥 똥물이 아니라 촉수 똥물이었다.
“제비 다리 부러뜨리기.”
유검경에게 결정타를 날렸던 기술, 놀부신권. 그 기술로 날렵하게 엎드려 똥물을 피했다.
안심하긴 일렀다. 추적 장치라도 달린 것처럼 촉수 똥물들이 방향을 틀어 다시 날 향해 몸을 날렸으니까.
“흡!”
공중제비를 돌아 한 번 더 피했다. 비보이 닌자.
촉수 똥물이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더니 축 늘어졌다.
“슈펙쿠헨!”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한 순간, 히틀러의 주먹이 잔상을 남기며 날아왔다. 슈퍼로켓이 날아갈 때 내뿜는 연기처럼, 쿵푸 파워를 모락모락 흩뿌리며 날아오는 주먹의 도착지는 내 얼굴.
“슈펙쿠헨 받아치기!”
SM을 즐기는 야쿠자 오야붕, 델바나스의 기술인 ‘받아치기’를 사용해 닌자도로 놈의 주먹을 흘려내고 닌자펀치를 날렸다.
당연하지만, 내가 개량한 버전이라 그녀가 사용했던 것보다 더 정밀하고 위력적인 기술이다.
“아뵤~!”
내 주먹을 흘려내고 다시 슈펙쿠헨을 날리는 히틀러.
슈펙쿠헨 받아치기의 받아치기인가. 나도 질 수는 없다.
“와자뵷!”
슈펙쿠헨 받아치기의 받아치기의 받아치기로 맞상대를 해줬다.
이에 이어지는 슈펙쿠헨 받아치기의 받아치기의 받아치기. 다른 건 몰라도, 권법만큼은 확실히 동수였다.
토독! 토도독! 타타타닷! 파파팍! 붕붕!
거기서 다시 한번 또 받아치기.
끝날 줄 알았는데 또 받아치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받아치기.
여기서 끝나면 정 없으니 다시 받아치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와 히틀러의 받아치기 시리즈. 먼저 질린 건 히틀러 쪽이었다.
“브랏카스토펠른!”
바닥에 박혀 축 늘어져 있던 촉수 똥물들이 다시 움직였다. 몽글몽글 움직이는 그것들이 이번에는 끝부분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찔리면 상당히 아플 거 같은 비주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바인스학세!”
송곳 촉수 똥물을 피하고자 살짝 몸을 뺀 순간, 히틀러가 발차기를 내질렀다.
이걸 피하려 몸을 틀었다간 송곳에 찔릴 터. 이러면 발차기는 맞아줘야 한다. 닌자도를 집어던진 후 두 팔을 가슴 가까이에 붙여 충격에 대비했다.
투쾅!
그냥 송곳 촉수 똥물에 뚫릴 거 그랬다.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히틀러의 발차기가 내 몸에 적중했다.
“우걋!”
효과는 엄청났다. 두 팔과 가슴(복장)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잠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
“슈펙쿠헨.”
땅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내 정신을 일깨웠다. 다시 눈을 부릅뜨고 히틀러를 내려다봤다.
그는 오른손을 공중을 향해 쭉 뻗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히틀러는 나와 싸우면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난 적이 있던가? 내 기억에는 없었다.
이 새끼, 아직도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건가.
“쿠후후훗.”
히틀러의 콧수염이 들썩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이제, 진심으로 간다.
“타코야끼 살법.”
예전보다 수십 배는 강력해진 고유기술.
슈우우우우!
떨어지면서 붙는 가속력이 내 살법을 강화한다. 이쯤 되면 타코야끼 살법이 아니라 여래신장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 스치는 소리가 귀에서 멎었고.
쿵!
나의 여래신장급 살법과 그의 슈펙쿠헨이 충돌했다.
콰과과광!
초월적인 힘의 파동에 대지가 울리고, 풀이 요동친다.
“....!”
오바이트처럼 쏠리는 비명을 억지로 삼키고 히틀러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주먹은 살갗이 벗겨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좋다. 공격은 통했다.
다시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내 두 팔도 심하게 망가진 상황이라, 바로 공격하기는 힘들었다.
데미지라도 똑같이 받았으니 다행이다. 잠깐 두 팔에 마나를 집중해 지혈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상황을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촉수 똥물이 다시 물렁물렁해지더니 히틀러의 주먹을 감쌌다.
“흐으으음...”
똥물이 히틀러의 주먹을 뱉어낸 순간, 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닌?”
이런 시발! 놈의 주먹이 생채기 하나 없는 상태로 리필된 것이다!
“부처의 사도는, 그 정도인가?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반인반요 독재자 새끼가 상처가 말끔히 치유된 손으로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부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여. 본좌를 쓰러뜨리고 싶었나? 그렇다면 궤도폭격의 술을 익힌 고대의 슈퍼닌자라도 데려왔어야 할 거 아닌가! 쿠후후후훗!”
히틀러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쉽게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힘으로 말해야 하는 탈주닌자가 힘에서 밀리다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밑천을 다 드러낸 닌자여. 이제 질렸다. 사라지도록.”
녀석이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수백 번은 넘게 본 자세. 무엇인지는 뻔할 뻔 자다.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콰아아아아아앙!
어김없이 날 향해 쏘아지는 궁극의 천마 기술. 두렵거나 분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는 목숨이 무한이니, 다시 도전하면 된다. 마지막에 이기는 건 내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히틀러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직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까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 기술을 창조하는 것보다 지금 익히고 있는 기술을 강화하는 걸 우선시했다. 광역기가 강력한 히틀러니, 근접전으로 몰고 가면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 말로가 이거다.
궤도폭격의 술을 익힌 고대의 슈퍼닌자라도 데려왔어야 할 게 아닌가!
“후...”
그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단지, 외면했을 뿐이지.
“다음 기회에.”
시간은 내 편이다.
히틀러. 네가 허접한지, 내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세계에서 로빈으로 산 시간보다 이곳에서 요괴나치 연합군과 싸운 시간이 더 긴 거 같은데.
어쩌면 지구에서 신노빈으로 산 시간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신노빈. 지칠 때도 되지 않았나.
포르페나가 말을 걸어온다. 엄청나게 오랜만이다.
네가 이곳에 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네 꼴을 봐라. 이제 거의 맹수에 가깝지 않나.
“부처의 사도…. 그렇게 칭할 만큼 강하군. 내 인정하지.”
히틀러의 대사가 포르페나의 대사와 겹쳐진다.
제육천마왕, 줄여서 천마 히틀러.
지금 녀석의 몸은 내 공격에 의해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확실히 목숨줄을 끊어 놓기에는 촉수 똥물의 방어가 견고한 상황.
“하지만…. 나도 비장의 수가 있다.”
그만하면 잘한 거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이건 네 악몽이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악몽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어.
“너 때문에 히틀러의 말이 안 들리잖아.”
눈치 존나 없네 진짜.
히틀러가 씩 웃으면서 손바닥을 뻗었다. 엄청난 파워가 그 손에 모인다.
드디어 결전의 때가 온 것이다.
이제 그만두고 나와 함께하라. 너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터. 우리 감시자는 계속되는 폭력의 연쇄를 끊기 위해 싸워 왔다.
아니 시발.
초월자가 되지 못한 지적 생명체는 전부 똑같다.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하지.
제발 좀.
전쟁, 기근, 테러... 온갖 가학적이며 파괴적인 행위들... 온 행성에서 반복된 역사가 증명한다. 그 모든 지배자와 혁명가, 영웅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적 생명체들은 끔찍한 선택을 하지. 오직 감시자만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눈치가 더럽게 없는 새끼다.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콰아아아아앙!
놈의 손끝에서 파멸적인 일격이 뿜어져 나온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전사들은 몸에서 마나를 끌어내고, 마법사들은 세계에서 마나를 끌어와 사용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일격을 막을 수 없다.
우주적인 재앙에 가까운 저 일격을 막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세계가 되어야 한다.
닌자도를 들어 올리고, 온 마나를 끌어올렸다.
지이이이잉!
천천히 나라는 존재를, 내 세계를 끌어올렸다.
그래, 우리 노빈이. 탈주닌자가 되고 싶다고? 왜놈들이 쓰는 말이라 그런지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좋다. 이 할애비가 응원하마.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행복한 법이니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손길.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에 나왔던 고대의 용사 같아. 멋지네.
절친 오르페의 따뜻한 웃음.
탈주닌자…. 그는 수호신이야!
본 적도 없는 아이의 환호. 이건 또 뭐지? 나도 모르겠다.
부족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 네 이름 계속해서 전해질 거다. 대가 없이 싸워준 영웅으로.
그래. 산세리프가 그런 말도 했었지.
어쨌든.
‘신노빈’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요소들.
그것들이 나에게 힘을 실어준다.
고오오오오!
“드디어.”
감이 잡힌다!
이미 수만 번도 더 해보지 않았는가! 부질없는 짓이다! 이제 그만!
“아아...”
보인다. 나라는 세계가. 들린다. 느껴진다.
신노빈! 네가 만든 세계를 봐라!
부처의 선택을 받은 자.
천마! 쿵푸 마스터! 기갑공룡! 탈주닌자!
닌자마을에서 탈주한 자.
그런 건 네 행성에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야쿠자, 사무라이, 요괴를 무찌르는 자.
이곳은 정신병자가 만든 도피만을 위한 세계!
백성을 지키는 자.
이 모든 걸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너는…!
다시 한번 결심한다.
내가 세계가 되어, 저 파괴적인 물결을 막는다고!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 받아치기.”
이 기술 이름은 좀 오바인데.
“가 아니라.”
그래.
“궤도 폭격의 술.”
이거지.
부아아아아아앙!
닌자도에서 파란 섬광이 뿜어져 나와, 세계를 내달린다.
불, 불가능해!
포르페나의 절규와 함께 발사되는 내 궁극기.
“쿠후후후후웃?!”
천마 감마 레이 버스트와 궤도 폭격의 술이 정면에서 충돌한다.
내 세계가, 히틀러의 세계를.
쩌정!
박살 낸다!
“우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궤도 폭격의 술이 히틀러와 이 공간을 파괴한다.
세계가 유리 조각처럼 깨져나간다.
어, 어떻게…!
하얀 공간으로 변한 눈앞의 세계, 하얀빛에 둘러싸인 여성형 거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게 포르페나의 영혼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망상이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신념이 된다는 건가…!
“뭐라는 거야, 이 시발년! 이리 와!”
으아앗!
관전 플레이를 하고 있던 요괴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제 이 새끼가 맞을 차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