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1화. 비탄의 쇼군 (5)
* * *
투쾅!
저택을 박살 내고 바깥으로 나온 제이드가, 공중에 뜬 상태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완벽한 육체를 얻은 후 힘을 좀 더 쌓는다면 더한 것도 가능하다.
“음?”
주변을 살펴보던 제이드의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눈물이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검고 끈적한 무언가.
죽은 육체를 강제로 소생시킨 대가다. 오래는 못 버틴다. 그러니 어서 육체를 구해…
지이이이이잉
하멜리온의 목소리가 끝맺기 전에,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가로등이 붉은빛을 내뿜으면서 가동됐다.
“무슨?”
수상함을 느낀 제이드가 눈물을 닦다 말고 가로등을 살폈다.
붉은고래 마탑이 시민들을 천천히 세뇌하기 위해 설치한 물건. 그의 심복이자 연인인 이리나의 설명은 그랬다.
4급 직원인 자신도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마법 주문과 기계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니 모른 척하되 가볍게는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고그마그족이… 잠깐!
당황한 하멜리온의 경고와 함께 가로등의 램프에 맺힌 붉은 빛이 제이드를 향해 발사됐다.
수십 개의 붉은 광선이 제이드의 몸을 꿰뚫는다.
“흐아악!”
제이드가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흩어져 내렸다.
제이드! 정신 차려라!
제이드가 몸을 깨부수는 듯한 충격을 참으며 눈을 부릅떴다.
너희들이 이계인이라고 부르는 종족 중 하나가 개발한 무기다. 우리 감시자에게 치명적인 성분을 조합해 만들었지.
“끄으윽…!”
제이드가 한 기억을 떠올린다.
‘어쩐지 쉽사리 수락하더니.’
유물을 하나씩 나눠 갖자는 제안을 마탑에서 받아들인 건 다 대비책이 있기 때문이었나.
‘마탑주는 이것조차 예상했던 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완전한 융합에 성공한 ‘우리’는 평범한 감시자와 다르다. 저항해라. 우리는 할 수 있다.
“흐.”
제이드가 비명을 삼키면서 힘을 끌어올렸다.
흩어지던 검은 기운들이 다시 뭉쳐 치더니,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렇지.
드래곤의 머리 형상으로 새롭게 탄생한 기운들이, 아가리를 벌린 채 가로등을 공격했다.
쾅!
직격당한 가로등들이 부서지고, 램프가 깨져나간다.
제이드를 구속하던 정체불명의 빛이 사라졌다.
그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고.
“너는…!”
“넌!”
검은 도복을 걸친 남자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온 채로 공중제비를 돌 뻔했다.
그랬으면 아이작 클라크인가 유턴인가 하는 사람이 주장한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눈알이 땅바닥으로 떨어졌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 언데드 사무라이?!”
예전에 죽인 사무라이 놈이 다크 아우라를 온몸에 걸친 채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냥 아우라가 아니라, 공룡 대가리처럼 생긴 아우라다.
“아니.”
일반적인 언데드 사무라이를 훨씬 넘어서는 강함이 눈으로만 봐도 느껴질 정도.
이 새끼, 흑염룡이라도 잡아먹은 건가.
“그렇군.”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닌자도를 쥐었다.
딱 보기에도 사무라이의 상위호환격 악당.
S급 사무라이의 육체와, 언데드 사무라이의 부활능력, 대요괴만이 뿜어낼 수 있는 강대한 요력까지.
이놈의 정체는 유추할 수 있다.
“너는.”
야사요. 아쿠자, 사무라이, 요괴의 줄임말이다.
거대한 악의 세력인 만큼 그들을 지휘하는 수장이 있기 마련.
요괴들의 수장으로 제육천마왕이 있고.
야쿠자들의 수장으로 오야붕 킨토깡이 있듯이.
사무라이들도 그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있다.
이 자식의 정체는, 틀림없는.
“비탄의 쇼군.”
쇼군. 사무라이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을 일컫는 말이다.
비탄의 쇼군 또한 그런 평범한 간부 중 하나였다.
닌자에게 목이 잘린 후, 제육천마왕의 힘으로 부활하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나 애새끼처럼 눈물을 질질 흘리기에 비탄의 쇼군이라 불린다고.
이 새끼도 눈물 비슷한 검은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으니 맞을 거다.
원래 요괴는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대요괴면서 쇼군이니까 특수보정이 들어간 셈이다.
“당신은…!”
피부색이 검게 변한 녀석이 얼굴을 찡그렸다.
백인이 흑인분장을 한 것 같은 비주얼. 20세기의 흑인분들을 조롱하기 위해 인종차별주의자가 자주 썼던 방식이다.
악당 아니랄까 봐 생김새 하나하나에 인종차별적인 제스처가 실려 있다.
“뭐라고요? 이 녀석이? 감시자를? 융합하거나 지배당한 게 아니라, 먹었다? 잡아먹었다?”
혼잣말을 잘하는 걸로 보아 찐따 경력도 상당하겠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제이드는 비탄의 쇼군으로 진화한 게 분명했다.
“안녕. 슈퍼 탈주닌자 로빈이다.”
그런 악당이라도 보스몹이면 인사를 하는 것이 닌자의 예의.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해줬다.
“...하.”
제이드가 코웃음을 치더니 눈썹을 찡그렸다.
“변검경, 제이드 홀입니다.”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대답하는 예의 중시형 사무라이. 물론 위선이므로 진지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결정했습니다. 당신의 육체로 하죠.”
인사를 끝낸 놈이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뭐라는 거야 아까부터.”
내 몸으로 뭘 한다고?
“너 변태 새끼야?”
역시, 빨리 쳐 죽일 수밖에 없다.
“사시미 살법.”
제이드 이 새끼는 자다 일어나 조깅하러 왔는지 갑옷도 무기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
바로 살법을 날렸다.
“어딜!”
제이드가 사시미 살법을 향해 손을 뻗자, 녀석 주변을 감싸던 흑염룡 대가리들이 움직였다.
마치 저번에 본 공중부양 무기들을 보는 거 같은 느낌.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콰앙!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흑염룡들이 사시미 살법과 출동했다.
사시미 살법의 강력한 절삭력에 몸이 갈려 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흑염룡떼.
이대로 가다간 접근도 못 하고 상쇄 당하게 생겼다.
“와자뵷!”
사시미 살법에 기대하지 말고 직접 나가서 싸울 수밖에 없다.
“괴상한 소리를...이 미치광이가!”
제이드가 남아 있는 흑염룡을 뭉치더니 검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흑룡검…. 이건 귀하다.
닌자도와 맞설 만한 검일지도?
챙!
두 무기가 부딪쳐 맑고 청명한 소리를 냈다.
“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닿은 두 검. 나도, 제이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근력은 비슷하려나.
“탈주닌자!”
제이드가 괴성을 지르자 어느새 사시미 살법을 갈아버린 흑염룡들이 내 쪽으로 돌진해왔다.
“씁.”
다구리로 인해 내 살법이 패배한 것인가.
하지만 문제는 없다. 다구리에는 다구리가 답인 법.
나 또한 방법이 있다.
“닌자포위진.”
예전의 그 물리 공격도 안 되는 허접한 인술이 아니다.
요괴나치 연합군과 싸우면서 수천, 수만 번 강화를 거친 개사기 인술.
퐁퐁퐁퐁!
그 결과는 수십 명의 닌자.
나와 비슷하게 생긴 분신도 아니고, 물리 공격력이 없는 잔상도 아니고, 전에 한 행동만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아니다.
전부 마나를 불어넣어 만든, 가지각색의 닌자부대.
그 이름하여.
퐁퐁닌자, 가 아닌.
“닌자전대.”
레드, 블랙, 핑크, 옐로 등 다양하게 다 있다.
“미친!”
눈이 동그랑땡으로 변한 제이드가 검은 액체를 질질 흘린다.
녀석이 놀라 눈으로 오줌을 지리는 것도 이해는 간다. 히틀러의 부하들도 기겁한 기술이니까.
“준비됐지, 옐?”
“아아. 물론이지, 핑.”
예전의 닌자포위진과는 다르게 의사소통도 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일종의 인공지능 사이버 닌자 분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진짜 인공지능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싸우면서 내가 만들어낸, 제2의 인격들이다.
혼자서 싸우기만 하긴 심심하니 나도 머릿속 친구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혼잣말을 좀 많이 하게 돼서 요괴나치 연합군에게 다중인격자라는 말까지 들었지.
“공격!”
하나의 세계(I'm the world)가 된 나의 힘을, 비탄의 쇼군에게 보여줄 때가 왔다.
“포위해서 닌자도로 베어라!”
물론 내 분신들의 닌자도 또한 전부 마나를 뭉쳐놓은 가짜. 그렇지만 저 녀석은 현실을 모르니까 피할 수밖에 없을 거다.
쿠궁! 쾅!
닌자전대를 흩어지게 하기 위해 흑염룡이 대지를 강타하며 돌진해온다.
전대원들은 어떨 때는 맞부딪히고, 어떨 때는 피하기도 하면서 천천히 제이드를 압박했다.
“잡았다!”
흑염룡 대가리를 휘두르며 저항하던 제이드가 분신 중 하나를 흑룡검으로 썰었다.
“어딜 보는 거지?”
녀석이 두 동강을 낸 건 나랑 가장 비슷하게 생긴 닌자 블랙.
색깔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분신을 컬러풀하게 만든 건 좋지만, 본체를 숨기기는 힘들기에 닌자 블랙만 5명 정도 찍어놨다.
녀석은 그 수법에 걸려든 거다.
“그건 내 뜬그림자다.”
놈이 몸을 돌리기 전에 닌자도로 심장이 있는 부분을 꿰뚫었다.
“큭!”
제이드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한 번 지르고 흑룡검을 휘둘렀다.
위험한 기운을 솔솔 내뿜는 공격이기에 가볍게 공중제비를 돌며 피해줬다.
역시, 언데드 요괴 사무라이라 그런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다.
지하국대적이나, 언데드 노부츠나처럼 온몸을 박살 내는 수밖에.
이 녀석 또한 오야붕 델바나스처럼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닌자전대와 함께 다시 압박하려던 때였다.
“헛짓거리는 거기까지입니다!”
크라이베이비 사무라이 제이드가 대량의 흑염룡 대가리를 소환했다.
크오오오오!
놈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닌자전대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들이 근거리에 다가왔고, 전대원들이 저번처럼 막거나 피하려고 몸을 움직일 때.
펑!
갑자기 흑염룡들이 풍선처럼 불어나더니 폭발했다.
“좆망했지, 옐?”
“아아. 물론이지, 핑.”
폭발에 휩싸인 전대원들의 몸이 박살 난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나와 제이드의 마나.
“자살테러?!”
테러리스트나 쓸법한 수법.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신념을 위해 죄 없는 백성들까지 죽이는 테러리스트 또한 사무라이의 하위 개념이다.
어쨌든,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녀석 또한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
나와 똑같은 세계니까.
“너야말로 지랄은 거기까지다!”
닌자 축지법을 쓰면서 놈에게 다가갔다.
지켜본 결과, 나와 제이드의 마나량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결국 판가름을 낼 건 육탄전이라는 뜻이다.
챙챙챙챙챙챙!
흑룡검과 닌자도가 부딪히며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땅이 갈라지고, 근처에 있던 건물들이 찢겨나간다.
슈퍼 닌자와 슈퍼 사무라이의 치열한 접전. 그야말로 슈퍼초인무쌍.
“또, 똑같은 수법에, 또다시...!”
시간이 지날수록 밀리는 건 제이드였다.
요괴의 힘을 얻고 나서도 장기전에 취약한 건가.
두 번째 기회를 얻고서도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녀석은…다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시미 살법.”
“크윽!”
근거리에서 발사된 살법을 막아낸 변검경의 흑룡검이 부러졌다.
놈이 뒷걸음질 치면서 물러서더니 다시 흑룡검을 생성하려 했다.
닌자도를 던져 놈의 손을 잘라 흑룡검 생성을 막고, 따라붙었다.
“딱 대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하앗!” “흐앗!”
제이드의 몸을 무자비하게 난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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