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79화 (79/119)

〈 79화 〉 79화. 이세계 탈주닌자 (4)

* * *

펑­! 펑­!

난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투명도마뱀 마탑의 직원들이 발사한 마법대포가 적군의 톤­그란텐을 터뜨리는 소리였다.

­ 히히히히힝~!

“몰아치는 삭풍!”

유검경 아가사와 홍염룡 기사단의 공세에 붉은고래 마탑의 전투 마차가 파괴됐고.

슈슉. 슈슉. 슈슈슈슈슉.

어디선가 나타난 환검경에 의해 방패병들에게 보호받던 붉은고래 마탑의 마법사들의 목이 날아갔다.

“이 멍청한 것들! 정신 차려! 마탑주는 괴물이다! 국왕님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부려 먹고 있는 게 붉은고래 마탑이고!”

강검경은 그를 따르는 기사들과 함께 이르갈 왕국의 병사들을 막아내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었고.

“난 이제부터 우익을 맡겠다.”

“네!”

용병왕 베아트릭스는 용병단과 함께 키메라 부대를 압도했다.

이렇듯 분투를 벌이고 있는 저항군이었지만, 전장의 흐름은 붉은고래 마탑에게 우세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칠검경을 대표로 한 비대칭전력이 병력의 평균적인 질을 커버할 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항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들은 농민이나 모험가, 상인, 잡일꾼이었고,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적군은 훈련된 군인 또는 어릴 때부터 살인 병기로 세뇌된 자들이었다.

저항군의 숫자가 적군보다 3배는 많다 해도 개인의 전투능력과 장비의 차이를 좁히기는 부족한 숫자였다.

그래도 적군 진영에서 칠검경의 발을 묶어놓을 만한 강자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 결국 승리하는 것은 저항군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탈주닌자가 마탑주를 쓰러뜨린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했다.

지이이이잉­!

부아아아앙­!

탈주닌자와 마탑주가 벌이는 신화적인 결투 때문에 생기는 굉음이 전장 옆에서 마구 터져 나오는 상황.

“제, 젠장! 이건 미친 짓이야!”

“나, 너무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자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공포를 이겨내고 맞서 싸울 각오도, 비겁자가 되어 도망칠 용기도 없는 자가 있었다.

“...”

시체들 사이에서 죽은 척 누워있던 새튼이 그런 사람이었다.

“새튼 씨! 여기서 뭐 하세요! 빨리 일어나요옷!”

“끄헉!”

다 떨어진 화살을 줍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던 지나가 새튼의 등을 때렸다.

“그, 그렇지만! 철퇴가 부러졌단 말이오! 어쩔 수 없었소!”

“그것도 변명이라고 하는 거에요! 여기 널린 몽둥이가 몇 개인데! 아무거나 집어들어요! 빨리!”

화살을 몇 개 주워든 지나가 다시 궁수들 사이로 합류했다. 보니타의 특훈을 받고 성장한 지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노련미를 풍기고 있었다.

“따흐흑…!”

눈물을 삼킨 새튼이 철제 몽둥이를 꼭 쥐고 죽은 시체에 다가갔다.

입고 있는 고급 갑옷을 보아하니 붉은고래 마탑 진영의 다수를 차지하는 갱생대원이 아니라 상위 전투원 같았다.

그의 손에서 철제 몽둥이를 빼낸 순간이었다.

쉬익­!

장검을 든 무표정한 갱생대원이 새튼에게 달려들었다.

“히이익!”

겁에 질린 새튼이 철제 몽둥이를 아무렇게나 휘둘렀고.

텅!

“쿠홧!”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갱생대원이 저 멀리까지 나가떨어졌다.

“...아?”

눈을 동그랗게 뜬 새튼이 철제 몽둥이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이상한 문양이 손잡이에 새겨진 그것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하.”

틀림없는 마법 무기.

“하하하하!”

자신감을 되찾은 새튼이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음하하하하! 이제 이 새튼의 활약을 보여 줄 때가 됐­”

***

탈주닌자. 탈주닌자는 무엇인가?

무엇이 탈주닌자를 탈주닌자로 만드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유인원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세상을 위협하는 강대한 야사요(야쿠자­사무라이­요괴)를 쓰러뜨리며,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견뎌 내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치는 것.

삐뚤어진 유인원들의 사고방식을 물리치료로 고쳐주며,

관대함과 공명정대함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것.

멀고 먼 이세계에서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를 꿈꾸고,

믿음을 갖고, 낙원에 닿는 것.

그것은 부처의 선택을 받은 탈주닌자의 임무이자 의무다.

사실 라 만차의 닌자 톤키톤키호테 뮤지컬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사람 또한 닌자였으니 인용해도 문제는 없다.

톤키톤키호테가 말년에 치킨집을 차렸듯이, 나도 말년에 라멘가게를 하나 차리는 게 꿈이다.

공통점이 이렇게 많으니 그도 내 인용을 용서할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지이이이잉­!

천마 모니카 소버린의 낫에서 또다시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왔다.

피하는 순간 아군 진영이 불바다가 되니 막을 수밖에 없다.

“­닌자 실드.”

쩌정!

실드가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나간다.

그래도 레이저 빔의 위력을 많이 감소시켰으니 제 할 일은 다 한 거다.

이걸 막고 나서도 끝이 아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니카가 낫을 휘둘렀다.

“양심이 있는 거냐?”

폴짝폴짝!

닌자축지법으로 피해 준 후 숨을 골랐다.

닌자 실드가 아니라 닌자 무지개 반사 실드가 필요한데.

갑자기 지민이가 생각났다.

­ 짝꿍이네. 안녕.

녀석이 처음부터 띠껍게 굴었던 건 아니다.

­ 탈주닌자? 그거 네루토에 나오는 거 아니냐? 그냥 존나 쎈 악당 닌자 아님?

나름 말도 많이 나눴다.

­ 탈주닌자가 백성을 구한다…? 그런 내용이 네루토에 나왔나? 뭐? 이거 보라고?

그때부터였을까.

­ 네루토와 닌자 슬레셔? 뭐야, 이거 팬픽이잖아. 그것도 그림 존나 못 그리는 삼류 만화네. 이딴 건 어디서 찾은 거냐?

놈과 내가 어긋난 순간이.

­ 닌자 무지개 반사? 미치겠다. 이렇게 뜬금없고 재미없게 만들기도 힘들 거 같은데. 딱 정신병자나 볼법한 만화...아바밧!

물론 그 유인원 새끼는 찍소리도 못하게 두들겨 패줬다.

힘 조절을 못 해서 실수로 이빨을 몇 개 부러뜨려 줬더니 다음부터 꼼짝 못 하더라.

­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야.

쓸데없이 또 텔레파시를 보낸 모니카의 주먹이 쉬고 있는 날 때렸다.

“그것도 내 잔상이다.”

정확히는, 닌자 블랙을 때렸다.

우수수­

그녀의 주먹에 직격당한 마탑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 닌자 블랙이 있던 자리다.

“씁.”

놈을 아군이랑 떼어놓기 위해 내가 마탑 쪽으로 움직인 건 좋았다.

트리보의 생각대로 마탑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기는 한 모양이니, 천마 모니카도 도망만 다니는 내 상대를 해 주는 거겠지.

계획대로라면 지금 마탑 안에 있을 트리보랑 닌자 셋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알아서 살아남을 거라 믿었다.

죽으면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닌자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는다. 그만한 영광은 좀처럼 없으니까 녀석들도 만족할 거다.

“닌...”

문제는 이쪽이다.

내 필살기인 궤도 폭격의 술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맨 처음 모니카의 낫과 내 궤도 폭격의 술이 충돌했을 때 뒤로 밀려난 건 모니카였으니까.

문제는 마나가 숨풍숨풍 빠지는 강력한 기술을 썼음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궤도 폭격의 술은 딱 두 번뿐.

그 두 번으로 모니카를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이기는 방법은 없었다.

기회를 노리며 모니카와 쥐잡기 운동 또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파지잉­!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마탑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빛이 꺼졌다.

침착하던 모니카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떠오른다.

“닌?”

트리보와 닌자 삼형제가 성공한 걸까?

“뭐, 뭐야!”

“추락한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적들이 타고 있던 톤­그란텐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리보, 성공했구나.

녀석이 자기 임무를 다했으니, 나 또한 그래야 한다.

“­궤도 폭격의 술.”

부아아아아앙­!

벙찐 표정으로 톤­그란텐의 추락을 지켜보던 모니카에게 다시 한 번 필살기를 발사했다.

그것도 처음이랑 다른 엄청난 속도로.

모니카가 급하게 왼팔을 들어 올려 이마를 가렸다.

급하게 오른손에 든 낫을 들어 올리기에는 늦었으니 저렇게 행동한 것이리라.

특별한 사전 동작 없이 발사할 수 있을지는 그녀도 몰랐겠지. 역시 모든 수를 보여주고 싸우면 안 된다.

그건 그렇고, 반사적으로 이마를 가렸다?

이건 이마가 약점이란 뜻이다.

“와자뵷­!”

천천히 공략하기는 상황이 좋지 않다.

내 특기인 장기전이 아니라 단기전으로 끝내야 한다.

너덜너덜해진 왼손을 바닥으로 떨군 놈의 이마를 향해 닌자 개구리 점프로 날아갔다.

“­궤도 폭격의 술 한 번 더!”

부아아아아아앙­!

연속으로 두 번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몰랐겠지.

모니카, 닌힘숨을 간과한 네 패배다.

콰콰콰콰콰­!

다시 한 번 왼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가린 모니카. 그녀의 손이 푸른빛의 에너지 빔에 파괴되어 간다.

퍼펑!

모니카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녀의 왼손은 파괴된 상태.

그렇지만 내 필살기인 궤도 폭격의 술을 두 번이나 받아내고도 모니카의 이마는 멀쩡했다.

녀석은 이제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아직 한 발 남았다.”

궤도 폭격의 술이 뿜어내는 빛으로 적의 시야를 가렸고, 곧바로 모니카가 쓰러질 자리를 향해 달렸다.

내 필살기는 가림막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건 내 몸으로 직접 공격하는 것이었다.

페이크의 페이크의 페이크인 셈이다.

“와자뵷­!!!”

닌자도에 젖 먹던 힘까지 불어넣고 달려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땅바닥에 드러누운 모니카의 이마를 공격할 수 있으리라.

모니카가 씩 웃은 건 그때였다.

“닌?”

그녀의 이마에서 갑자기 돋아난 흉측한 눈이 무지개색 빔을 발사했다.

이런 씨, 모니카도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던 거였다.

비이이이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내 몸을 짓누른다.

힘이, 내가 가지고 있던 힘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

이건, 단풍잎 마을에서 얻은 힘인 거 같은데.

내 몸을 채우고 있던 장기가 하나 빠져나간 느낌. 실제로 마나량이 줄어들었다.

이마를 가린 건 속임수였나…!

아니, 아니다.

내 전투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때 모니카가 지었던 표정은 연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얍!”

기합을 넣고 계속 움직였다.

비이이이이임­!

다시 걷는 사이 또 힘이 사라졌다.

골돈에서 얻은 힘 같다. 확실한 건지는 모른다. 직감적으로 알 뿐이다.

그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마 위의 눈은 녀석의 심장이면서 동시에 내가 얻은 힘을 삭제시킬 수 있는 무기였던 것이다.

최강의 무기가 자신의 심장이니 쓰는 걸 망설이거나 고민했겠지.

지금 보니까 사정거리도 아주 짧네.

“간다아…!”

너덜너덜해진 몸을 질질 끌었다.

모니카는 ‘미친 새끼, 그걸 맞고 움직인다고?’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낫을 들고 있는 오른팔을 움직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잘 안 되는 모양.

이제부터 근성의 싸움이다.

포기하지 않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싸움.

“끄으윽…!”

그리고 난 그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죽어어!”

포르노를 쓰러뜨리고 얻은 힘마저 사라졌을 때, 난 닌자도를 모니카의 이마에 내리쳤다.

[아, 아!]

이마에 돋아난 눈에 구멍이 뚫린 모니카가 육성으로 비명을 지른다. 꽤 감미로운 소리였다.

“흐으…!”

거인 천마의 몸에 생기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 직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경고했다.

아직 남아 있는 힘인 영혼 시야를 빠르게 켰다. 그것 말고도 아직 몸을 지탱하는 정체불명의 힘이 하나 더 남아 있었는데, 산세리프의 기도는 아닐까 살짝 생각해봤다.

역시나.

세 번째 눈에서 빠져나온 붉은색 도깨비불이 하늘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모니카의 본체겠지.

저게 남아있는 한 제육천마왕은 죽지 않을 것이다.

“...”

그 짧은 순간에, 이 녀석을 확실하게 죽일 방법이 생각났다.

“­그렇군.”

부처가 왜 나를 사도로 선택해서 이세계로 보냈는지 알겠다.

왜 영혼을 보게 해 주는 쓸데없는 능력을 준 건지도 알겠고.

이건 백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천마 모니카 소버린.”

붉은색 도깨비불, 아니, 모니카의 영혼을 붙잡고, 내 영혼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게 꽤 예쁘다.

“­넌 나랑 같이 간다.”

모니카의 영혼을 내 영혼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리가 풀리고, 눈이 스르르 감긴다.

이렇게 사망 플래그를 회수한 건가.

“...”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 했을 뿐.

후회는 없다.

...오르페한테는 좀 미안하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