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84화 (84/119)

〈 84화 〉 84화. 웰컴 투 용주골 (3)

* * *

살짝 당황했다.

이놈이 왜 내 정체를 알고 있는가는 둘째치고, 탈주닌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타이틀을 뺏으려는 놈의 등장이 기분 나빠 당황한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분 좋은 당황에 가까웠다.

내 탈주닌자 복장을 참고한 거 같은 검은색 쫄쫄이를 본 순간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봐라. 막시무스의 눈동자도 아이돌을 만난 소녀팬처럼 똘망똘망하지 않은가.

“그렇군.”

이놈은 내 사생팬이 분명했다.이제 판타지 세계도 ‘탈주닌자’의 멋짐을 알게 된 것인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내가 탈주닌자인 건 어떻게 알았고?”

그래도 확인할 것은 해야 하는 법이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놈이 더 많다면, 곤란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이놈이야 혼자 왔고 내 팬이니 망정이지, 적당한 무력을 가진 단체가 이쪽으로 쳐들어온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고대용사 풀세트를 착용한 오르페야 칠검경급이니 괜찮을지 몰라도, 청소부 아주머니나 가끔 놀러 오는 디아나는 내가 집에 없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게…”

그렇게 막시무스의 긴 설명이 시작됐다. 벌써 졸리네.

“...이렇게 된 겁니다.”

막시무스는 내가 천마 모니카를 죽이는 걸 보고 탈주닌자 사생팬이 된 중년 남자로, 모니카를 잡고 쓰러진 나처럼 마탑의 전투원들을 죽이다가 중상을 입어 쓰러졌다.

치료가 끝나고 바로 날 찾았지만, 오르페와 릴리아를 비롯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철저하게 은닉된 날 찾는 건 불가능했기에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모험가 로빈과 같이 활동했다는 사람을 찾아 외모 또는 근황을 물어본다. 그게 막시무스가 생각한 방법이었다.

막시무스가 찾아간 사람은 세일린이었다. 세일린. 골돈에서 같이 움직였던 그 야쿠자 슬레이어가 맞다.

세일린은 어린 시절 막시무스가 소속된 용병단에서 활동했고, 그에게 직접 전투기술을 배웠다.

그 인연 때문인지, 아니면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일린은 스승인 막시무스에게 로빈의 인상착의를 털어놓았다.

그 인상착의가 담긴 게 막시무스가 들고 있는 종이다.

그는 종이를 든 채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날 찾았고, 마침내 이곳까지 도착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알아낸 거 같았다.

뭐, 요약하면 이랬다.

“전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항상 승리했던 건 아니었지만, 언제나 제 역할 이상의 활약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검은 황소’ 막시무스라고 하면 지금도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적당히 자기 어필을 해 주면서 점수를 따려고 하는 막시무스.

“대부분의 전쟁은 권력자들의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백성이죠. 싸워야 한다면 권력자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긍지를 가진 전사로 싸우고 싶습니다. 탈주닌자가 되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다.”

지원동기까지 말한 막시무스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나에게 발사했다.

40대 중년 남자의 뜨거운 열정. 이렇게 생각하니 좀 부담스러운데.

좋은 자세와 열정이지만, 하지만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넌 탈주닌자가 될 수 없다.”

막시무스의 입이 떡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진짜 존나 허탈해 보이네.

석화된 것처럼 가만히 있던 막시무스가 입을 연 건 1분이 지나서였다.

“...이,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유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약했기 때문이다.

녀석은 ‘탈주닌자 등급표’에 따르면 10점 만점에 기껏해야 4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4점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면 우선 탈주닌자 등급표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

등급표에서 10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받은 자는 딱 두 명이다.

천마 모니카 소버린과 슈퍼 탈주닌자 신노빈.

궁극기와 광역기, 강력한 대인 전투력까지. 거의 신과 같은 전투력을 보유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과장 좀 보태어 말하자면, 혼자서 세계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다음은 9점이다. 세계관 최강자 다음으로 강한 이인자들이라 볼 수 있다.

비탄의 쇼군 제이드와 위천마 히틀러가 이 단계에 속한다.

비탄의 쇼군은 슈퍼 탈주닌자보다 단계가 낮아 맥없이 털리기는 했지만, 천마 모니카나 슈퍼 탈주닌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막지 못할 초인이었다.

모니카의 등장으로 천마가 아니라 위(, 거짓) 천마가 된 히틀러도 그렇다.

10점이 세계관 최강자고, 9점이 세계관 이인자라면, 8점은 최상위권 강자라 볼 수 있다.

변검경 제이드와 탈주닌자 신노빈이 8점이다.

칠검경 최강 타이틀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변검경 제이드는 탈주닌자 신노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간계 최강자였다.

그 강함은 비슷한 수준의 칠검경 셋이 합동공격을 한다 해도 동수를 이룰 수 있을 정도.

탈주닌자 신노빈은 현재 나의 상태를 뜻한다.

모니카 그 잡년 때문에 감시자의 힘을 전부 뺏긴 내 전투력은 비탄의 쇼군과 싸우기 전 상태로 떨어졌다.

궤도 폭격의 술을 한 번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능력과 마나량이 많이 떨어졌기에 8점이라 측정했다.

뭐, 그래도 9점과 10점이 전부 사라진 이 세상에서는 최강자에 속한다 봐도 된다.

7점은 유검경 아가사와 절검경 제임스, 꿀벌여왕과 패검경이다.

나라 하나는 대표할 수 있는, 상위권의 강자들이라 볼 수 있다.

칠검경(전투력 측정기)급 강자 두 명이 달라붙어야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패검경과는 싸워보지 않았지만, 환검경과 오르페, 그리고 쓸모없는 고철 로봇 트리보를 동시에 상대했으니 7점이라 쳐도 될 것이다.

6점은 풀템모드 오르페와 쾌검경, 강검경, 환검경, 용병왕 베아트릭스, 벨더가드 이렇게 여섯이다.

칠검경 다수가 포진되어 있는 것답게, 칠검경급 강자들이 이쪽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건 고대용사의 장비를 풀셋으로 착용한 오르페라 볼 수 있다.

아직 성장 중인 오르페가 더 강해진다면 7점도 노려볼 수 있겠지.

벨더가드와 베아트릭스는 직접 싸워보지 않았지만, 오르페의 말과 내 눈썰미로 평가해 이 단계에 넣었다.

이제부터는 좆밥들이니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5점은 델바나스와 델라미온이다. 칠검경보다 좀 떨어지는 놈들이 여기에 속한다. 평범한 기사단 하나는 찜쪄먹을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4점은 까까시와 대머리 교관, 사갈의 꼬리 닌자마스터와 아일린이다. 기사단장급 되는 실력자는 이 단계라 보면 된다.

3점은 평균적인 기사, 2점은 숙련된 전사, 1점은 일반 병사라 보면 된다.

하여튼, 막시무스는 대충 눈으로 살펴도 까까시와 똑같거나 그 이하인 4점이었다.

4점이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약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40대라는 게 걸렸다.

40대면 꾸준히 전투력 향상에 신경을 써 왔다는 가정에 따라 전사로서의 모든 잠재력과 능력이 빛을 발할 나이다.

가장 노련하고 완전해질 시기란 말이다. 그런데 막시무스는 그런 시기임에도 4점밖에 되지 못했다.

탈주닌자 후보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약함. 이게 결격사유다.

문제는 이 탈주닌자 등급표를 막시무스에게 간단히 설명해줘야 한다는 건데…

“로빈님?”

막시무스가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생각이 너무 길었다.

뜬그림자를 풀고 다가온 오르페가 내 어깨를 손끝으로 콕 찔렀다.

대화를 듣고 위험하지 않다 판단한 것 같다.

갑작스런 등장에 움찔하던 막시무스도 그녀를 알고 있었는지 경계를 풀었다.

“알겠다. 메모장에 적어놓은 탈주닌자 등급표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오르페의 입에서 나온 폭탄발언에 나도 막시무스처럼 굳었다.

“아니, 뭔 소리야. 아니야.”

얘는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 걸까.

“근데 왜 등급표인데 등급이 아니라 점수로 표시하는 거야?”

“몰라 임마.”

커플이 되면 서로의 머릿속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네 전투력은 끽해야 4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르페에게 속마음을 들킨 이상 이것 말고 다른 이유를 대야 했다.

목구녕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다른 말을 꺼냈다.

“­탈주닌자는 한 시대에 한 명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뭐, 방금 한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탈주닌자는 닌자 인술의 정점에 오른 지상 최상의 사나이에게만 주어지는 후보.

꼭 남자만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구에서는 육체적으로 남자가 강인했기에 그렇게 부른다.

날 꺾든지, 아니면 내가 인정한 자만이 다음 시대의 탈주닌자가 될 수 있다.

“...일인전승의 무학 같은 거였군요. 하기야, 전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고…”

상심한 막시무스가 주절댄다.

“닌자라면 모를까, 탈주닌자는 안 된다.”

적당한 위로를 한 뒤 보내려고 할 때였다.

“닌…자요? 닌자는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음?”

닌자. 탈주닌자가 아닌 닌자.

그 단어에 잠자고 있던 내 마음속의 닌자소울이 요동쳤다.

지금 이세계에 닌자가 얼마나 되지? 닌자마을은 있나?

아니다. 유일한 닌자마을 사갈의 꼬리는 타락닌자 조직이었기에 내가 전부 죽였다.

그렇다는 건 나에게는 최강의 닌자 겸 닌자마을 부수기를 직접 실행한 닌자로서 닌자마을을 다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닌자마을.”

그래. 닌자마을을 다시 위대하게.

안될 건 없다.

“막시무스, 넌 닌자가 될 수 있다.”

이 친구의 인종은 흑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피부색일뿐더러 은신이나 기습에도 강점이 있을 터였다.

“그, 그렇습니까? 그런데 닌자와 탈주닌자의 다른 점은 뭡니까?”

“그건 나중에 천천히 설명하고, 일단 닌자가 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이요?”

“그래. 닌자 후보생이라면 다들 치뤄야 할 시험이지. 그 시험에서 통과한다면 너도 닌자가 될 수 있다.”

“시험…그렇겠죠. ”

세계의 다양한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 홍보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일단 근처 여관에서 묵고 있도록. 다시 공지하겠다.”

“알겠습니다!”

흰돌고래 모집광고를 베껴서 해야 하나?

가능하면 내가 직접 만들고 싶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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