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화. 웰컴 투 용주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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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마을 닌자 대모집☎
내 이름은 로빈, 탈주닌자다.
부처의 명으로 야쿠자와 사무라이, 요괴를 멸하고 죄 없는 백성을 수호하고 있지.
요괴들의 제왕이자 악의 근원인 제육천마왕도 사라진 이 세계에서…(중략)
그리하여 타락한 닌자들의 마을을 심판했으나, 닌자마을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기에…(중략)
원래 드래곤 닌자를 키우려 했으나, 그녀의 심성이 여리고 여려 닌자보다는 그냥 제빵사에 가까운 탓에…(중략)
그런고로 닌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선정하여 부처의 사도인 내가 직접 키우려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중략)
닌자. 닌자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우선 전쟁과 약탈,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에 대한 정보를…(중략)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는 자, 백성의 안전을 누구보다 신경 쓰는 자, 굳센 신념과 의지를 갖춘 자, 나이와 성별, 출신은 상관없다.
최강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으면 어서 빨리 지원해라.
모집장소는 실리번 영지의 ‘양념 통닭이 참 맛있는 집’ 여관 앞이다. 여관이지만 파는 통닭이 맛있으니 먹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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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16페이지 정도 되는 닌자마을 모집글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창작의 예술혼을 담은, 걸작이다.
이 모집글에 담긴 철학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겠지?
“어때?”
“진심이야?”
내 명작을 끝까지 다 읽은 오르페는 미간을 좁혔다.
다크서클이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예전만큼 험악하고 퇴폐적이지는 않았다.
“난 언제나 진심이야.”
“...모집글이잖아. 핵심만 간단하게 짚어야지. 이거 닌자 매니아 대상으로만 쓴 거 아니지?”
“당연하지.”
“글씨도 좀 알아보기 힘들어. 너무 삐뚤빼뚤하다 해야 하나…”
“그건 어쩔 수 없어.”
아직도 글씨 쓰는데 익숙하지 않다. 솔직히, 오르페가 옆에서 끈질기게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배우다 포기했을 거다.
“불필요한 정보도 너무 많아. 야쿠자, 사무라이…이런 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면 그것도 설명하면 돼.”
1페이지 정도를 더 추가해서 야사요에 대한 상식을 알리는 것도 좋겠다.
“아무튼 이렇게 올릴 거야.”
이건 단순한 모집글이 아니다.
불교의 정수와 탈주닌자의 철학, 닌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신념 등을 집대성한 예술이란 말이다.
덤으로 내가 좋아하는 양념 통닭에 대한 정보도 실었다. 이건 진짜 맛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었지.
여관에서 나에게 양념 통닭을 대접한다면 조금의 가산점을 줄 생각도 있다.
“...그래. 정말 재밌게 잘 쓴 거 같아. 네가 지금까지 말하고 다녔던 모든 게 들어가 있네.”
오르페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그렇지?”
“응. 누구라도 이 모집글을 읽으면 닌자가 되고 싶어할 거야. 그렇지만 아까 말했듯이, 글씨가 좀 걸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알아볼 수 없으면 안 되잖아.”
“그건 그러네.”
“그러니까 내가 다시 써도 될까?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글씨의 문제니까.”
“뭐, 상관없어.”
오르페의 글씨체가 예쁘긴 하다. 어렸을 때 한석봉 전문학원이라도 다닌 게 아닐까.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갈게.”
“오키.”
오르페는 내 모집글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벗어났다.
“...”
갑자기 누벨피어 생각이 난다.
“나름 강했지.”
마지막 위대한 다섯 성령은 감시자의 협곡에서 지금까지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거대 해마 요괴의 몸을 차지한 녀석은 인간형 요괴들을 제 하수인처럼 부리며 나와 맞섰다.
모니카를 흡수하고 얻은 내 새로운 인술과 궤도 폭격의 술에 죽었지만, 마지막 꼼수를 부려 날 다른 차원으로 보냈었지.
아마 천마 모니카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기술이 아닌가 싶다.
“닌닌.”
그 차원에서는 용사도 있었고, 마왕도 있었다.
심지어 난 용사와 같이 야쿠자요괴 영주와 싸우기도 했다. 그래, 완전 ‘주인공이 용사와 탈주닌자임’이었지.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니 오르페와 트리보, 유검경과 홍염룡 기사단, 흰돌고래, 사갈의 꼬리 닌자마을의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지.
힘을 보태줬다는데 정확히 뭘 어떻게 해준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응원이라도 하고 있던 건가?
...오랜만에 그 차원에서 쌓은 인연이 떠오른다.
“위트니, 잘 지내니? 슈퍼닌자는 됐고?”
그리고 난 모집글에 대해 전부 잊었다.
***
“다 모였나?”
대망의 모집일.
‘양념 통닭이 참 맛있는 집’ 여관 앞에 모인 닌자 지망생들의 면모를 천천히 살폈다.
수백명 이상은 되는 것 같았는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전국에서 모집글을 돌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오다니.
“저기 봐. 탈주닌자야.”
“진짜 탈주닌자인가? 사칭은 아니고?”
“그런 미친놈이 있을 리가 없잖아. 누가 누굴 사칭해. 모집글 안 봤어?”
“암, 글씨도 유려했고, 핵심만 콕 집은 내용도 좋았지. 영웅의 품격이 느껴졌어.”
“맞아. 나도 모집글 보고 왔다니까.”
여관 바깥에 무질서하게 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지망생들.
흑인 닌자 지망생인 막시무스 빼고는 다 낯선 얼굴뿐이다.
작고 약한 요괴인 오큘을 껴안고 있는 여자도 있었는데, 화장을 너무 짙게 해서 갸루(잠재적 야쿠자 아내)처럼 보였다.
“닌닌.”
요괴와 갸루. 이건 대체 무슨 조합이지?
생김새 말고는 특이점이 없어서 일단 넘기고, 지망생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부터 묘하게 소란스러운 게 거슬린다.
“세상에, 쟤는 루녹스잖아. 기사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던!”
“그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 검사’?”
“그거 자칭 아니었어?”
“유검경이 있는 기사단에 들어갔다 하지 않았나?”
유명한 인물도 이번 지망생으로 온 거 같아, 떠드는 자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고추장처럼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도도하게 생긴 여자가 날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쟤가 루녹스인가.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 타이틀이 좀 건방지다. 그건 나에게만 있어야 하는 타이틀인데.
“루녹스야. 기사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걸로 유명해. 최근에 홍염룡 기사단을 떠났다고 들었는데, 닌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오르페의 부연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열정과 재능이 있는 젊은이가 찾아왔다는 거 아닌가.
루녹스의 몸을 대충 보면서 전투력을 측정했다.
키가 오르페만큼 크고 팔다리도 길쭉하다. 선천적인 전사의 몸이다.
철판 갑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어 근육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나량 측정은 대충 가능한 정도다.
기운을 감추고 있지 않다고 치면 일반적인 기사단장급, 그러니까 4점은 될 거 같다.
“쓸만하군.”
물론 여러 부분을 고려했을 때는 진짜 기사단장보다 딸리겠지만, 잠재능력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
지망생들을 더 살펴봤지만, 루녹스 이상 가는 인재는 보이지 않았다.
끽해야 전에 본 막시무스가 비등비등한 정도?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 많은 용병이라 해도 응애(Baby)때부터 살인기술을 배워 온 기사, 그것도 재능충한테는 안 되는 법이다.
나만해도 지구의 유인원들이랑 종자, 아니 종족 자체가 달랐다.
난 중학생 때부터 수많은 체육대회에서 트로피를 받으면서 일진이라고 까부는 놈들을 줘 패고 다녔다.
내가 스포츠맨에 뜻이 있었다면 올림픽도 나갔을 거다.
동네 양아치 새끼들을 손보다 소년원에 갈뻔한 적도 있었지. 엄마와 여동생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선처를 구하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수도.
법과 질서는 탈주닌자가 되지 못한 나와 내 가족에게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좀 자제했다.
“지금부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놈들은 왼쪽으로 붙어라.”
마나 사용자 또는 마나를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놈들을 꼭 찍었다. 감각이 예민한 나에게는 그게 전부 보인다.
정확한 전투력은 칼을 맞대봐야 알겠지만, 한 명씩 지도해 주기에는 귀찮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야사요와 싸울 때지 지금이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소울대학교라는 명찰만 보고 다 패스한다 하지 않은가. 이것도 그거 비슷한 셈이다.
수십 번의 ‘손가락 움직이기’ 끝에 이동이 끝났다.
“뭐야…한 번 쓱 보기만 하고 끝이야?”
“나 시험 보려고 사흘 동안 걸어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지…”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벌써 수군거리는 탈락자들.
“조용!!!”
“우왓!”
일단 닥치게 하고, 후보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망생을 세어 보았다.
아니, 너무 많아서 오르페에게 시켰다.
“46명이야.”
“그렇군.”
딱 50명을 채우고 싶었던 나로서는 살짝 아쉬운 숫자다.
“좋다. 특별전형이다.”
그래서 4명만 더 받기로 했다.
“거기 너, 한손맨.”
왼손이 없는 젊은이를 가리켰다.
“네, 넵!”
어깨를 살짝 떨더니 큰 소리로 대답하는 녀석. 기백은 마음에 든다.
“너에 대해 설명해 봐라.”
“그, 모험가 일을 10년 정도 했습니다! 몬스터, 아니, 저주에 걸린 난폭한 이계인들을 사냥하고 다녔습니다.”
트리보가 요괴들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든 후부터 인간에게 우호적인 요괴는 이계인으로 불리게 됐다.
치료를 받아도 인간에게 적대행위를 하는 이계인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놈들만 요괴(이쪽 말로 몬스터)라 부른다.
갸루가 안고 있었던 오큘도 치료받은 이계인일수도 있다.
“손 한쪽을 잃기는 했지만, 전 싸울 수 있습니다. 나쁜 새끼들은 전부 찢어 죽이겠습니다! 그리고…존경합니다!”
괜찮은 자기소개다. 눈빛도 살인마 같은 게 마음에 든다.
제 구역에서는 나름대로 요괴 슬레이어였겠지.
“좋아. 장애인등 대상자 특별전형이다.”
일단 한 놈을 뽑았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후크다. 왼쪽으로 서라.”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전 후크입니다!”
후크는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왼쪽으로 이동했다.
“꼬맹이. 너 말이다 너.”
“아…!”
아빠 옷을 입고 왔는지 헐렁한 복장을 한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자기소개.”
“제…제 이름은 하이디구요...안데스 마을에서 왔어요…좋아하는 음식은 감자고요…잘하는 건 감자 캐기에요. …우리 마을 감자가 맛있어요.”
“그만.”
“네…”
“농어촌특별전형 및 미성년자특별전형으로 통과다. 왼쪽으로 가.”
“지, 진짜요…?”
“그래.”
엄밀히 말하면 특별전형 때문에 뽑은 건 아니다.
그녀에게는…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까이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렇게 2명은 뽑았고, 다음은…
“거기 갸루와 작은 요괴.”
“네, 넹?!”
할머니 화장을 한 갸루를 지목했다. 나이는 20대 중반이 아닐까.
“자기소개. 거기 오큘 소개도 시켜.”
“전 예술가입니당.”
“불합격. 꺼져.”
음핫핫핫!
오홍홍홍~!
새튼과 무카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어, 엄밀히 따지면 연극배우입니당! 닌자는 전투뿐만 아니라 잠입과 연기에도 능해야 한다 들었어용! 제 역할이 분명 있을 거에용!”
“그 병신같은 말투는 뭐냐? 연극에서 배웠냐?”
“이건 제 개성이에용.”
“어휴.”
야사요였음 벌써 죽였는데.
내 눈치를 보던 갸루가 오큘을 들어 올렸다.
“여, 여기는 오큘리우스에용. 치료제는 당연히 맞았어용. 저랑 둘도 없는 친구인데, 사람 말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들어용. 험한 산도 잘 오르고 헤엄도 잘 치니 분명히 쓸모가 있을 거에용!”
“웩.”
마지막 말은 오큘이 낸 소리다.
그녀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
잠입을 해서 정보를 빼 올 사람도 필요했고, 닌자견 역할을 할 동물도 필요했다.
“...좋아. 넌 예술가특별전형으로, 저 요괴는 비인간특별전형으로 통과다. 왼쪽으로 가.”
“감사합니당!”
“웩.”
“오늘부터 니 이름은 쪼커다.”
연극배우(코미디언)에 삐에로 같은 갸루 화장, 이거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쪼, 쪼커용?! 싫어용! 남성의 생식기 부위 크기를 말하는 단어 같잖아용! 그런 단어를 제 이름으로…”
“한마디만 더 하면 쭈쭈짱커로 부른다.”
“쪼, 쪼커로 할게용…”
“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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