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86화. 웰컴 투 용주골 (5)
* * *
실리번 영지의 ‘양념 통닭이 참 맛있는 집’ 여관 앞의 거리.
수많은 사람이 부대끼어 있는 그곳을 멀리서 지켜보던 두 기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언니.”
“강해.”
좌검경과 우검경, 두 여자의 시선이 교차했다.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들의 시야 끝에는 탈주닌자라 불렸던 사내가 있었다.
“이제부터 너희는 닌자 지망생이 아닌, 닌자 후보생이다! 지금의 후보생들은 제대로 요리되지 않은 음식재료에 불과하다! 문어에 밀가루 반죽과 양배추를 덕지덕지 묻힌 상태에 가깝지! 내가 너희를 타코야끼로 만들어 주겠다! 타코야끼가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머리와 하관에 검은 두건을 두른 남자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맨 앞줄에 있던 여자가 뒷줄로 도망칠 정도로 지나치게 우렁찬 목소리였다.
탈주닌자의 옆에서 부관처럼 서 있는 파란 머리의 여자가 양손을 들어 올려, 귀를 틀어막았다. 그녀의 표정은 침착했다.
“같이 공격하면 승률이 얼마나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언니인 우검경이 여동생의 등짝을 가볍게 쳤다.
팡!
들려오는 소리는 무자비했지만, 적어도 그녀들에게는 가벼운 장난질이었다.
“저 정도의 실력자와 싸워 본 적 없잖아.”
좌검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3할. 운이 좋으면 4할.”
“그 정도밖에 안 돼? 공주님 빼고 계산한 거 맞지?”
엄밀히 따지면 오르페는 이제 공주가 아니었지만, 우검경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얕잡아 보면 2할로 떨어져.”
“얕잡아 본 게 아니야. 많이 낮은 것 같아서 되물은 거지.”
“현실을 받아들여.”
“말 진짜 예쁘게 한다, 언니.”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자매는 새로 임명받은 칠검경이었다.
콤비를 짜면 적수가 없다는 그녀들이 이번에 받은 임무는 탈주닌자 경호 및 치안 유지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랬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세계를 지배하려던 괴물을 단신으로 쓰러뜨린 초인이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집글에는 제자를 기르기 위해서 사람을 모은다고 쓰여 있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군벌세력을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막아야죠!
반역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허가해 주면 안 됩니다!
왕국과 탈주닌자가 공식적으로 협력 관계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거 원 불안해서…
검성회와 칠검경은 뭐 하고 있는 겁니까?
불안에 떠는 귀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보여주기식 감시라도 해야 했다.
‘늙은이들이 입만 살아서는.’
좌검경이 조용히 혀를 찼다.
검성회의 중심이었던 칠검경 중 넷이 목숨을 잃었다. 붉은고래 마탑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서 숙청당한 고위 간부도 많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물어뜯는 귀족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검성회가 가지고 있던 권력이 축소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때?”
감시에 흥미를 잃은 여동생이 언니에게 물었다.
“뭐가.”
“졸려. 집에 가자.”
“조금만 더.”
“언니, 알잖아.”
좌검경이 여관 앞에 선 검은 도복의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눈동자는 자매가 은신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감시나 보호는 의미 없어.”
두 칠검경이 도착한 순간부터 기척을 느꼈음이 분명했다. 자매도 그걸 알고 있었다.
“...”
“가서 보고서나 쓰자.”
좌검경이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양념 통닭.”
“뭐?”
“사가자.”
“그러던가…”
두 여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
닌자 후보생 선정이 끝났으니, 닌자마을을 구해야 했다.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난 닌자마을에 딱 맞는 장소를 한 곳 알고 있었다.
네오네오솔리트론의 아이오지 탄광.
홍삼캔디를 좋아하는 조셉의 아동학대를 막고 비앙카를 비롯한 흰돌고래 조직원들을 도운 곳이다.
제이드의 발악 때문에 금방 잃기는 했지만, 클론 닌자도를 거기서 챙겼었지.
이제는 폐광산이 된 그곳이야말로 신세대 닌자마을에 알맞은 장소였다.
“준비됐어, 오?”
왕국이 가지고 있던 아이오지의 소유권을 사 온 게 맞냐는 뜻이다.
“...그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땅문서를 보여주는 오르페. 잠을 잘 못 잤는지 피곤해 보인다.
“물론이지, 빈.”
그냥 내가 대신 대답했다.
하긴, 혼자서 실리번이랑 네오네오솔리트론을 왔다 갔다 했으니 많이 피곤하기는 했겠지.
같이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여기서 50명이나 되는 후보생들을 돌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편지나 보내달라고 말했는데도 굳이 여기까지 온 건 오르페였으니, 내 잘못은 없는 셈이다.
“후보생, 승차!”
우리 눈치만 보고 있던 후보생들이 하나둘 마차에 탔다. 10대가 넘는 마차가 한 번에 움직이는 모습이 꽤 장관이다.
“참 잘했어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마차의 쿠션에 드러누운 오르페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마차 위에 올라갔다.
이러면 후보생들도 창문으로 날 볼 수 있겠지.
“목표는 네오네오솔리트론의 아이오지! 닌자마을은 그곳에 있다!”
탈주닌자도를 뽑고 높이 들어 올렸다.
그렇다. 닌자도가 아니라, ‘탈주닌자도’다.
내가 쭉 사용하던 닌자도는 천마 모니카와 누벨피어 녀석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누벨피어의 음모 때문에 다른 차원에 가 닌자도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닌자도는 잘 있냐고 물어보니 트리보 새끼가 멀쩡하다고 뻥을 쳤었지.
날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이건 트리보가 닌자도와 똑같은 검을 구해와 개조해 만든, 나만을 위한 슈퍼 스페셜 닌자도다.
깡통로봇의 불법개조를 거쳐서 그런지 일반인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내가 사용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성능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다.
한 마디만 하자면, 개쩐다.
“우와아아아!”
후보생들의 환호성과 함께 출발하는 마차들.
마차 안이 아니었으면 나에게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을 보냈겠지.
“훗.”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주고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많이 피곤했는지 금세 잠든 오르페. 문제는 내가 앉아야 할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는 건데…
새근새근 자는 게 측은하긴 하다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거기, 내 자리.”
내 자리를 침범한 오르페의 상체를 들어올렸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등받이까지 올려준 후 앉았다.
쿠션이 참 편하다 생각할 때였다.
툭.
어느새 내 허벅지를 공격한 오르페의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른 자세로 교정해줬는데도 이러면 곤란한데.
오르페의 머리카락이 덜컹거리는 마차에 맞춰 흔들리며 내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음…”
앓는 소리를 내더니 내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는 침입자.
평소와는 다른 얼빠진 모습이 웃겨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도착했다!”
“여기가 아이오지야? 광산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을이라 했잖아. 광산이 어떻게 마을이냐?”
“닌자마을은 어딨지?”
“웩.”
후보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일어나렴.”
오르페의 이마를 부모님 방문 두드리듯 톡톡 쳐줬다.
“아…다 왔어?”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잠꾸러기.
목소리에도, 눈동자에도 영혼이 없다.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닌자 후보생들이 봐선 안 된다.
내 파트너인 만큼 멋진 모습만 보여줘야지.
“너 자면서 침 질질 흘리더라.”
“지, 진짜?”
입 근처를 닦고 내 허벅지를 살펴보더니, 조용히 노려본다.
“...아니잖아.”
“다 마른 거야.”
“거짓말.”
“진짜로.”
잠만 깨면 된 거다.
짝짜라짝짝!
아직도 소란스러운 후보생들을 위해서 손뼉을 쳐 준 후 마차 바깥으로 나갔다.
“후보생, 주먹!”
“주목이겠지. 바보.”
오르페를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이곳이 아이오지, 우리들의 닌자마을이 될 장소다!”
광산을 가리켰다. 입구가 무너져서 그런지 좀 초라해 보이기는 하지만, 안은 넓으니 괜찮다.
“네?”
“저 박살난 폐광이요?”
“멍청아, 환상 마법이라도 설치된 거겠지.”
“나 이 근방에 사는데, 이거 폐광 맞아.”
“뭐?”
“맞아. 탈주닌자님이 여기서 마탑의 2급 직원을 죽이셨잖아.”
“웩.”
“누가 오큘 소리 냈어?”
잡음이 너무 많다. 루녹스나 막시무스 같은 애들은 조용한데 어중간한 놈들이 말이 많네.
“누가 떠들라 했나!!!”
콰아아아아!
이러면 어쩔 수 없이 마나를 싣고 사자후를 지를 수밖에 없다.
“윽, 무슨 기운이.”
“인간이 아니야…”
“역시 마스터…!”
마지막에 말한 루녹스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잠깐의 소란 후 잠잠해진 닌자 후보생을 한 번 둘러봤다.
“너희들은 애새끼나 아니라, 닌자 후보생이다.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춰야 한다.”
이제야 말할 분위기가 됐다.
“이곳은 후보생들이 먹고 자고 싸고 씻을 곳이 될 거다.”
다시 광산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잡음이 없었다.
“보다시피, 아직 이곳은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봐도 존나 엉망진창으로 박살나긴 했다.
“그러니 오늘부터 우리가 할 일은, 이 닌자마을…잠깐.”
그러고 보니 닌자마을 이름을 짓지 않았네.
타락한 닌자마을조차 ‘사갈의 꼬리’라는 번듯한 마을명이 있었는데.
“닌자마을 아이오지의…아니.”
아이오지 광산에서 만든 마을명도 아이오지라니, 이건 너무 단순하다.
내 뒷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없다.
“...멋진 단어 아무거나 말해봐.”
오르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블랙’과 ‘닌자’, ‘기계’, ‘공룡’ 같은 멋진 단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블랙기계닌자공룡 마을은 안 된다.
“몰라.”
“그러지 말고.”
“거짓말쟁이.”
“뭐?”
“마을 이름으로 거짓말쟁이 해.”
아직도 삐져 있네. 이러면 내가 할 수밖에 없다.
“...”
사갈의 꼬리. 뱀과 전갈의 꼬리라는 뜻이다.
삼류 닌자만 모은 허접 찌끄레기 조직답게 뱀의 머리도 전갈의 머리도 아닌 꼬리를 상징으로 삼았다.
내 닌자마을은…이것보다 나아야 한다.
“용.”
그래. 용의 대가리가(용두) 뱀의 꼬리(사미)보다 낫다.
그렇지만 이 마을의 리더인 나는 일반적인 용보다 더 대단한 부처의 사도니, 좀 더 대단한 새끼가 필요한데…
“용주.”
그래. 적어도 용들의 주인이라 불리는 용주(드래곤 로드)급은 되어야 한다.
“용주두.”
병신같네. 머리가 아니라 그냥 뼈로 할까? 머리를 이루는 두개골도 뼈니 사실 같은 개념이라 봐도 된다.
“용주골.”
좋아, 결정했다.
“오늘부터 후보생들은 닌자마을 용주골을 청소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