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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87화 (87/119)

〈 87화 〉 87화. 웰컴 투 용주골 (6)

* * *

규칙도 명언도 부모님조차 없는 사갈의 꼬리 조직원들처럼 엉망진창으로 닌자마을을 운영하지는 않을 거다.

대청소에 들어가기 전, 이건 확실히 해야 했다.

“이제부터 모든 후보생의 대답은 ‘닌닌’으로 통일한다! 알았나!”

‘닌닌’과 ‘와자뵷’.

탈주닌자 뿐만 아니라 모든 닌자가 사용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넹?”

“닌닌!”

“네? ‘네’라고 한 새끼 누구야?”

대부분은 칼밥 먹고 살았던 놈들이라 눈치가 빨랐지만, 어딜 가나 병신은 있는 법.

“합!”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입을 막으며 눈을 크게 뜨는 여자가 보인다.

쌍팔년도 씹덕 소녀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포즈.

“쪼커, 또 너야?”

“웩.”

부른 건 쪼커인데 대답은 유전자 정보를 흡수해 심마가 되려는 요괴, 가 아니라 오큘리우스가 하네.

얌전히 쪼커의 품에 안겨 있는 게 얼핏 보면 귀여워 보이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광견병 주사를 맞고 인간수업을 들었다 한들 요괴는 요괴.

일대일 대결 중에 내 피를 보고 눈깔이 돌아간 델라미온처럼 언제 지랄발광을 할지 모른다.

“후보생 쪼커, 넌 대청소가 끝난 후 기합이다.”

“안돼용!”

“돼.”

이 쓸데없는 대화를 끝냈다.

후보생들을 굴려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대청소를 할 중요한 기회에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으니.

쾅!

무너진 입구에 제트킥을 날리니, 입구가 다시 만들어졌다.

제트킥이야말로 입구 복사 치트다.

“자! 이제부터 후보생들은 일렬로 서서 날 따라온다! 실시!”

50명이나 되는 후보생들과 오르페가 잘 훈련된 군인처럼 날 따라 용주골로 들어오는 모습이란…가슴이 뛰는 무언가가 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중학생일 때였나? 방학 중이었던 건 기억난다.

파워드­마운틴 고릴라가 처음 보는 해병대 출신 아저씨의 집에 날 보낸 적이 있다.

­ 가서 정신교육 좀 받고 와!

그렇게 말했었지. 해병대 아저씨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난다.

­ 반갑다! 대식이 아들이면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지! 내가 널 ‘남자’로 만들어주겠다!

파워드­마운틴 고릴라와 ‘전우애’를 나눈 전우였다고 주장한 해병대 아저씨는 내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간섭을 가했다.

정말 짜증 나고 귀찮은 사람이었지만, 쓸모없는 놈은 아니었다.

­ 악!!!

그는 나에게 전투 기술(특전사 무술이라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을 가르쳐 줬고, ‘기합’으로 안될 건 없다는 걸 똑똑히 보여줬다.

­ 기열…넌 기열이야…! 이 괴물!...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다 좋긴 했는데 너무 멘탈이 약했다는 게 문제였다.

자거나 밥 먹을 때 기습 공격(ambush)을 몇 번 가했더니, 에로망가사우루스(Eromangasaurus australis Sachs, 2005) 화석을 처음 본 일곱 살 계집애처럼 질질 짜면서 날 내쫓았다.

그때는 크게 실망했다.

귀신 때려잡는 해병이라길래 닌자만큼 강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지.

“닌닌.”

딴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용주골 안이었다.

“후보생, 입장!”

““닌닌!””

아기새처럼 따라 하는 후보생들이 꽤 귀엽다.

“저…여기가 닌자마을인가요?”

하이디가 불안한 표정과 눈빛으로 용주골 주변을 둘러본다.

하긴, 이해는 간다.

아이오지 광산이었던 이곳은 몇 년 안 본 사이 하드코어 난이도의 던전처럼 변해 있었으니까.

“음.”

주변에 널린 정체불명의 뼈다귀들과 깨진 유리병, 동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거미줄과 벽에 새겨진 이름 모를 빨간 글자까지.

­ ㅅ ㅏ ㄹ ㄹ ㅕ ㅈ ㅜ ㅓ

­ Liberate tuteme ex inferis

빨간 물감이 바닥에 질질 흘린 채로 굳은 게 인상 깊다.

끼리릭. 끼리리릭.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요괴 무리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우리가 선 곳이 곧 닌자마을이다.”

“...네?”

“이제부터 대청소를 시작한다!”

탈주닌자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

“물건이든, 생물이든 상관없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깔끔하게 치워라!”

어차피 요괴든 뼈다귀든 치워야 하는 건 후보생들이다.

“이것 또한 시험이니, 진지하게 임하도록!”

당연하지만, 이건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눈치챘는가?

내가 끌고 온 이들은 ‘닌자’가 아닌, ‘닌자 후보생’이다.

용주골까지 끌고 왔다 해서 전부 닌자로 받아줄 건 아니라는 뜻이다.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몬스터 같습니다.”

“이 거미줄은…아라크네다. 제법 성가신 몬스터들이야. 지능이 낮아서 치료제도 통하지 않는 놈들이지.”

“적어도 1년 전부터 이곳을 주거지로 정한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새끼를 많이 까는 아라크네라면, 성체만 100마리 넘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루녹스, 막시무스, 후크가 차례대로 말했다.

“훌륭하다.”

스스로 움직이며 답을 찾아내는 닌자. 내가 원한 그림이 이거다.

다른 후보생들은…

“웩!”

“앗! 오큘리우스! 그건 먹는 게 아니에용! 거미줄은 지지에용!”

좆같아서 바로 눈을 돌렸다.

“몬스터가 있나 봐.”

“장비는 챙겨왔지?”

“가장 많이 죽이는 놈이 진짜 닌자다.”

“저기 루녹스 님도 있는데 그건 좀.”

“봐. ‘검은 황소’ 막시무스가 쌍도끼를 꺼냈어.”

“용병이잖아. 사람은 몰라도 몬스터 죽이는 건 잘 못할 거야.”

전투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다른 후보생들이 신나서 무기를 꺼내 든다.

물건도 청소하라 했는데 요괴에 정신이 팔린 건가.

“읏…”

하이디는 어디선가 주워 온 막대기를 이용해 뼈다귀를 모으고 있었다.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한 게 분명했다.

쪼커도 하이디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가볼까용!”

“웩.”

손가락 하나만한 단검을 들고 호다닥 달려가는 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삼류 소설가 새튼에 세이렌 음유시인 무카, 그리고 광기의 코미디언 쪼커까지…이세계의 해악이 아닐까.

그들 또한 필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해?”

기분이 풀렸는지 다시 말을 걸어오는 오르페.

“맞춰봐.”

“음, 고대용사의 검?”

“그게 왜 여기서 나와?”

“...여기서 얻었잖아. 직접 가져왔으면서.”

“그랬나?”

오래 전 일은 잘 기억 못 한다.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제육천마왕 모니카와 정신세계에서 존나 오랫동안 싸워서 그런 거다.

“...”

후보생 다수가 요괴를 잡으러 떠나서 그런지 주변이 휑하다.

오르페와 잡담을 나누면서 용주골을 살폈다.

살짝 음침하면서도 넓고 깊은 동굴.

이 주변에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는 차원문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가나다 왕국이라던가…처녀귀신 월드라던가…

“윽, 머리가…”

마치 봐서는 안 되는 평행세계를 본 거 같은 감각.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를 다시 떠올린 느낌이다.

“이상한 생각은 그만 하고, 우리도 따라가자.”

오르페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용주골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거짓말쟁이.”

“...”

손이 딱밤을 때리기에 최적화된 자세를 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아라크네는 만만한 몬스터가 아니야. 다 자란 성체 크기가 어린아이보다 커. 그런 놈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으면 후보생들도 위험할 거야.”

“알아서 잘할 거 같은데.”

평소에는 다른 것에 잘 관심을 보이지 않던 오르페가 오늘따라 유난스럽다.

내가 닌자마을을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이랬던 거 같은데, 역시 닌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가?

고대용사의 아이템을 계승하지만 않았다면 슈퍼닌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끼리릭­! 끼릭끼릭­!

“거기로 간다! 잡아!”

“이 새끼들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났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후보생들은 알아서 잘 센스 있게 거미 요괴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오르페, 넌 ‘안목’을 더 길러야 할 것 같군.”

“...잘 하네.”

전부 다 괜찮았지만, 인상 깊은 애들은 전부 내가 점찍어 놓은 애들이었다.

“­끊어내는 건, 목숨뿐입니까.”

루녹스는 상당히 멋진 말을 내뱉으며 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쟤도 나처럼 명언집을 휴대하고 다니는 건 아닐까?

쉬리릭­! 촥촥!

연검을 변화무쌍하게 휘두르며 거미 요괴를 학살하는 모습에 어쩐지 유검경 아가사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홍염룡 기사단에 있었다고 했지.

아가사한테 직접 배운 건가?

그럼 내가 아가사의 제자를 빼돌린 셈이 되는데.

“...”

더 강한 사람을 따르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 문제는 없다.

“탈주닌자님께 바칩니다!”

막시무스는 바이킹이나 쓸법한 쌍도끼를 요괴의 머리통에 내려찍었다.

보기에는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 때려 박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알 수 있다.

도끼를 내려찍기 좋은 장소로 거미들을 유인하고, 놈들의 머리통에 도끼를 박은 후 발로 밀어내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빼낸다.

수십년동안 도끼를 사용한 장인의 동작. 확실히 유명한 용병이긴 했던 거 같다.

“죽어죽어죽어죽어! 이건 아버지의 몫! 이건 여동생의! 할머니의!”

후크는 중얼거리면서 요괴의 배때지를 칼로 막 쑤시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호러 영화의 살인마 같았다.

멘탈이 좀 약해 보이는 게 흠이지만, 내 정신훈련을 받게 되면 나아지겠지.

“호에에에엥~!”

“웩~”

쪼커랑 오큘리우스는 열심히 요괴를 피해 도망을 다니고 있다.

뭐, 세 마리 이상 잡지 못하면 탈락 처리 할 거니까 상관없다.

“빨리 눈앞에서 꺼졌으면 좋겠군.”

대충 둘러봤으니, 이제 대청소가 끝날 때까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가 농땡이를 치면 된다.

“가자.”

오르페랑 같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거미 요괴들은 전부 베어 버리면서 말이다.

“좀 쉬자.”

바닥에 대충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오르페 때문에 마차에서 못 잤으니 지금이 기회다.

“...어? 저, 저기.”

주변을 둘러보던 오르페가 눈을 동그랑땡처럼 뜨더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봤는데…웬 깡통 하나가 암석 사이에 껴 있었다.

“트리보?!”

이 새끼, 여기서 길이라도 잃어버린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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