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1화. Who watches the Watchmen? (2)
* * *
지금 일어나는 일은 하이디가 내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난 하이디를 닌자 후보생으로 받은 직후에 그녀가 왔다는 안데스 마을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정보는 주로 오르페가 수집했지만, 그녀를 옆에서 격려해주고 응원해준 내 몫도 크다.
…로빈. 안데스 마을은 이제 없다는데?
그냥 바람처럼 슝 하고 사라진 게 아니라, 일주일 전에 요괴 무리의 습격으로 마을 사람들이 전부 죽었단다.
지방 영주가 토벌을 위해 병사를 끌어모아 온 산을 뒤졌지만, 요괴 무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직후였다고.
몸에서 솔솔 풍겨오는 감시자의 기운에, 불길한 사건까지. 수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감시자라는 확신이 들 만큼 기운이 강하지 않았기에, 지금 최종통보를 하는 중이다.
“10.”
천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 죽어.”
깔끔하게 절단하기 위해 탈주닌자도에 마나를 불어넣은 순간이었다.
“기, 기회! 읏.”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두 팔을 휘휘 내젓는 하이디. 말하고 나서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는지 합 하고 입을 틀어막는다.
“조용히 말해.”
“기회가 되면 말하려 했어요.”
“네가 감시자라는 걸?”
“저는 감시자가 아니에요.”
“확실해?”
“...아마도요.”
“깔끔하게 설명 못 하면 죽는다.”
감시자 새끼가 살기 위해 시간을 버는 걸 수도 있으니, 좀 냉정하게 갈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것’을 죽이기는 조금 힘들지만,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백성의 안전을 위해서 야사요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이는 게 탈주닌자니까.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세줄로 요약해서 말해.”
“세줄이 뭐죠?”
“...”
“죄송해요. 진짜로 몰라서 물어본 거였어요. 잘못했어요.”
후, 꼬맹이라 그런지 말귀가 어둡다. 이래서 애들이 싫은 건데.
“최대한 줄여서 말해봐.”
“아, 알겠어요.”
하이디의 설명은 일주일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됐다.
“날씨도 좋고, 일거리도 없어서 산책하러 나갔어요. 혹시나 해 감자를 몇 개 쪄 갔는데”
“야,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감자를 쪄 가든 고구마를 구워 가든 아스파라거스를 볶아서 가져가든 내 알 바 아니다.
“핵심만 요약해서 말하라고. 알았어?”
“...감시자가 제 몸에 들어왔어요. 이름은 ‘잔다르칸’.”
“야이씨,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이래서 눈치 없는 꼬맹이는 싫다.
“처음에는 그게 감시자인지 몰랐어요. 머리가 조금 아프기만 했거든요. 햇볕을 너무 많이 쬐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죠. 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건 마을로 갔을 때 깨달았어요. 그녀가 계속해서 속삭였거든요…”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죽여버릴까?’ 나, ‘말만 해. 난 피를 좋아하거든.’등의 말을 하면서 제 몸과 마음을 조종하려 했어요.”
“그렇군.”
내 몸에 처음 감시자가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한스싼다였나?
놈은 자꾸 이상한 지도를 보여주며 그쪽으로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거부하자 지구에 잘 있는 여동생과 부모님의 환상을 보면서 꼬드겼고.
그 새끼가 만든 공간을 열심히 두들겨 패니 알아서 죽었던 걸로 기억한다.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진 꼬맹이가 말을 이었다.
“몇 번은 참을 수 있었어요. 들리지 않는 척도 하고, 싫다고 소리도 질러 봤어요. 하지만 그녀는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때 일을 회상하고 있는지 손을 부들부들 떠는 하이디.
“계속 버티던 중이었어요. ‘끼야호우!’라는 비명이 머리에서 울려 퍼졌고, 전 정신을 잃었어요.”
“음.”
“정신을 되찾고 일어나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어요…그 괴물이 제 몸을 빌려서 한 짓이 분명했죠.”
이제 슬슬 끝나려나?
“너, 너무 무서웠어요. 우리 가족도, 저에게 항상 알감자를 챙겨준 제이 언니도, 장난감을 만들어준 톰 아저씨도, 제 손으로 전부”
“야.”
설명에 사족이 너무 많다. 얼굴이 험상궂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계속 도망쳤어요. 목소리가 계속 들렸으니까. 또 언제 날뛸지 몰랐으니까.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모집글을 보고 날 찾아온 거고?”
“탈주닌자님은 감시자를 수도 없이 무찌르셨다고 들었어요. 또 날뛰어서 누군가를 죽이느니, 차라리 탈주닌자님의 손에 죽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첫날에 바로 털어놓지 않았지?”
난 나쁜 사람이니 죽여달라 부탁했으면 바로 죽여줄 수 있었는데. 당연히 사실관계 확인은 하고 죽였겠지만.
“너, 너무 무서웠어요. 죽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녀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해한다. 다 자란 어른도 죽는 건 무서워하니.
타인을 지키기 위해 죽음이라는 선택지에 뛰어들 수 있는 건 나처럼 굳건한 정신력과 강한 신념을 지닌 초인만 가능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직 감시자한테 완벽히 먹힌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하이디의 몸에 들어간 감시자를 빼낼 방법을 찾는 게 탈주닌자의 의무이리라.
괴벨스의 최면어플에 당한 제13SS기갑사단 천마경호친위대도 구원해준 나다. 하이디 또한 구할 수 있다.
“그, 그리고. 탈주닌자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어요. 당연히 날뛰는 일도 없었고요.”
“뭐?”
“이대로 계속 탈주닌자님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그녀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숨겨서 죄송해요…”
“그런 슬픈 사정이 있었구나.”
사실 별로 슬프지는 않았지만, 유인원들은 슬퍼할 이야기였기 때문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줬다.
“하이디, 내 품에 안겨서 애새끼처럼 징징 짜도 된다.”
사실을 말했으니 넓은 아량을 보여줄 때다. 하이디를 안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 그건 사양할게요.”
싫으면 말고.
“감시자의 기운은 아직도 남아 있단다. 더 자세히 확인해 봐도 되겠니?”
“네, 네.”
난 조심스럽게 하이디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무언가가…느껴진다.
지잉
더 자세히 확인해 보기 위해 최고위 인술을 발동했다.
“타, 탈주닌자님. 오른쪽 눈이 붉게 빛나고 있어요…”
“나도 알아.”
천마 모니카를 흡수하고 얻은 사륜안, 아니, 멸혼안(???, 소울 디스트로이어 아이즈)이다. 영혼을 없앤다는 의미 그대로다.
너, 너 같은 미치광이 따위에게 질 수는 없어. 내 이름은 모니카 소버린…우주를 지배했던 고대신족의 후손이야!
좆까.
나, 난 김성훈과 한 약속을 지켜야…
모니카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끼, 죽을 때도 예술이었지.
김성훈은 내가 죽였다. 그 겁쟁이 새끼는 뒤질 때도 애새끼처럼 비명을 지르더군. 바지에 똥오줌을 지리고, 입으로는 구토를 했었지. 눈물 콧물 다 흘리는 놈의 꼴은 정말로 꼴불견이었다. 제육천마왕 모니카, 너 또한 그렇게 되겠지.
너무 김성훈 얘기만 하길래 홧김에 그렇게 말했다. 끈질기게 버틴 모니카 잘못이다.
뭐? 헛소리…! 넌 김성훈을 본 적도 없잖아!
받아라!
으앗!
어떤가? 김성훈을 죽여버린 내 펀치맛은?
으, 읏.
그래! 내가 죽였다! 내가 김성훈을 죽여버렸다고! 김성훈을 죽인 내 펀치를 받아라!
신나게 두드리니 천마도 별수 없더라.
그놈 곁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고, 결국 그렇게 해 줬다. 소원을 이뤘으니 그년도 성불할 것이다.
영혼이 없어서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모니카는 이 기술로 내가 흡수한 감시자들의 영혼과 능력을 전부 날려버린 적이 있다. 마지막까지 버틴 비탄의 쇼군 영혼 덕에 도망치는 모니카 영혼을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 자식의 영혼도 모니카를 죽인 후 사라졌다.
[감시자는 지적 생명체의 영혼을 굴복시킨 뒤 그 육체를 장악한다. 장악당한 육체는 숙주인 감시자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지적 생명체가 감시자의 영혼을 굴복시켰다면 그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겠지. 그 산증인이 바로 로빈, 너다.]
갑자기 우리 대장장이 트리보의 설명이 생각나네.
“...하이디, 가만히 있어라.”
멸혼안.
이걸로 누벨피어의 영혼도 한 방에 보내버렸지. 그 자식의 능력을 흡수하지 않은 건 아깝지만, 또 몇 달 동안 누워 있는 건 싫었기에 없앨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하이디의 영혼에 붙어 있는 녀석이 보인다. 잔다르칸이라고 했었나? 위대한 다섯 성령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히 강한 감시자였다.
저, 저리 가! 날 보지 마!
영혼이 벌벌 떨며 뭐라고 말을 걸어온다.
이 악마! 괴물! 학살자! 얘는 내 것이야! 떠, 떨어져!
“뭔.”
아직 뭘 하지도 않았는데 왜 시끄럽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영혼을 박살내 버릴까?
“으으, 아파요…”
하이디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내 팔을 붙잡았다. 엄청나게 괴로워 보인다.
“음.”
하이디의 영혼과 감시자의 영혼이 뒤섞여 있다. 감시자의 영혼을 소멸시키면 하이디의 영혼까지 소멸할지도 모른다.
“...”
내가 직접 하이디 머릿속에 들어가 이 새끼를 굴복시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한이다.
“하이디.”
멸혼안을 해제하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널 도와주겠다.”
고통에 신음하던 하이디가 날 올려다본다.
“방법을 찾아보자.”
선량한 아이의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탈주닌자의 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