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2화. Who watches the Watchme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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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던 오르페를 깨워서 이 일에 대해 논의했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트리보와 용주골 닌자들에게 하이디의 진실을 알렸다.
어차피 하이디의 몸에 감시자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용주골을 떠나는 건 불가능하니 여럿이 뭉쳐 고민하자는 게 취지였다.
자칫하다간 하이디 왕따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따돌림을 주도하는 새끼들은 내가 처리할 거니 아무 문제 없다.
“환영 마법진을 손보고 왔어요. 인적 드문 장소지만, 혹시 몰라서요.”
가장 늦게 온 빅빵댕이는 눈치가 보였는지 변명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거짓말은 아니라는 듯 땀을 뻘뻘 흘리는 게 포인트다.
이 아줌마는 동굴 끝 통로에 있는 우리 용주골을 환영 마법으로 감싸고 보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꽤 알아주던 마법사라는 거 같다.
전투직종이 아니라 과학자에 가까운 직업인 마법사임에도 마법봉으로 거미 요괴를 잘 때려잡는 걸 보면 좀 치던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닌자마을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과거의 잘못을 씻기 위해서라는데, 쓸데없이 어려운 말이라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렸었지.
이윽고 모두 모인 걸 확인한 오르페가 설명을 시작했고, 모두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네요.”
“과연. 잘못을 저지르는 건 인간, 살인을 저지르는 건 감시자라는 뜻입니까.”
“여차하면 말하십쇼. 살리는 방법은 몰라도, 끝내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오큘리우스도 잘 모르겠데용. 자기는 감시자에게 빙의 당한 적이 없다공…”
“웩.”
막시무스, 루녹스, 후크, 쪼커, 오큘리우스 순으로 말했지만, 도움이 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감시자의 빙의를 푸는 방법은 없다. 의식을 잡아먹혀 주도권을 뺏기거나, 동등한 관계를 맺고 융합되는 방법만 있다. 너처럼 역으로 주도권을 빼앗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왠만한 틀니보다 오래 살았던 트리보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흠.”
감시자.
놈들의 우두머리 다섯을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감시자 모두를 죽이지는 못했다. 누벨피어의 본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이 넘는 감시자를 죽인 게 최근이다.
대, 대부분은 실패했다 판단한 후 모성으로 넘어갔다! 이 행성에 남아 있는 것도 우리가 마지막일걸!
그때 ‘인터뷰’로 얻어낸 감시자의 확언이 있기는 했지만, 봐라. 아직도 감시자들이 더 남아있지 않은가.
이세계를 떠돌면서 쓸데없는 음모를 꾸미는 녀석들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조종당한 델바나스와 융합에 성공한 제이드같이 사악한 새끼들이야 죽이면 되지만, 하이디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빅빵댕이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그 거짓말, 진짜인가?”
“...거짓말은 아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시도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 방법이 뭔데?”
“루베나르교 성직자에게 데려가는 거에요. 혈마법이라면 방도가 있을지도 몰라요.”
“뭔베나르? 성직자?”
성직자? 지금까지 이르갈 왕국을 떠돌면서 종교나 성직자를 본 적이 없는데?
이 세계는 판타지 세계치고 종교가 드물다. 이해는 간다. 신을 자처하던 감시자가 깽판을 부렸으니 신앙심이고 나발이고 다 없어질 수밖에.
내 눈치를 보던 오르페가 설명을 시작했다.
“코름갈드 왕국의 국교야.”
루베나르교. 혈신 루베나르 루베스 루베드를 섬기는 집단. 성직자들은 피를 제물로 바쳐 운명과 한 해 농사, 날씨를 점친다.
대충 요약하면 이랬다.
[루베나르는 고대시대의 인물이다. 다른 이계인들과 똑같이 이 행성으로 끌려왔지. 그는 고대용사 다음으로 제일가는 감시자 후보였다. 고대용사가 같이 감시자와 맞서자고 건의했지만, 루베나르는 거부했다.]
“그, 그게 사실인가요?”
빅빵댕이가 트리보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렇다. 코름갈드 건국 때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종교까지 만들었을 줄 몰랐다.]
“쓸데없는 말은 거기까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대답해라, 빅빵댕이.”
지금 중요한 건 하이디지, 루베뭐시기가 아니다.
“그 이름은 대체…네오네오솔리트론에서 코름갈드에서 이주한 루베나르교의 교도가 있다고 해요. 그자를 찾아보죠.”
“사람 찾는 건 자신있어용! 저랑 오큘리우스가 찾아볼게용!”
“아침에는 찾고, 밤에는 똥 치우렴.”
“...”
쪼커가 사람 수색을 맡기로 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고.
“찾았어용!”
결과는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먼저 만나서 용건까지 말했어용. 오늘 점심때 볼 수 있데용!”
“세례는 받았다고 했나요?”
물어본 건 빅빵댕이다.
“그건 아닌데, 구마예식(exorcism)은 할 수 있데용.”
“그럼 됐군요.”
확인을 마친 마법사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휴…”
조금은 안심했는지 한숨을 쉬는 하이디의 어깨를 톡톡 쳐준 후, 식사를 끝내고 출발했다.
“이쪽이에용.”
나와 오르페, 하이디와 쪼커 네 사람이 얼룩덜룩한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아이입니까…?”
가부키 화장을 한 여자가 향을 피워놓고 앉아 있었다. 쪼커보다 진한 화장을 한 아줌마였다.
“쪼커, 네 언니 아니냐?”
“아니거든용!”
“아님 말고.”
하이디를 지켜보던 가부키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너무나도 음험한 기운. 당장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네.”
가부키녀가 길고 뾰족한 바늘을 들어 올려 자신의 손끝을 찔렀다. 작은 그릇 안에다 피를 흘린 그녀는 하이디에게 그릇과 바늘을 내밀었다.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네…”
바늘을 보고 파랗게 질린 하이디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손끝을 찌른다. 아무리 봐도 정신나간 사이비들의 행위 같지만,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됐습니다.”
두 사람의 피가 담긴 그릇을 책상 위에 둔 가부키녀가 이상한 막대기를 양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오른발과 왼발을 정신없이 움직였는데…
“루베루베루베루베루베루베루베루베루베~~~!”
이런 씨, 갑자기 몸을 신나게 흔들어 제끼면서 노래를 부른다.
얼굴만한 왕사탕을 핥는 아이의 혀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부키녀의 혀. 깜짝 놀란 하이디가 뒷걸음질친다.
“루루의식 중에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앉아 계십시오!”
가부키녀의 말에 멈춰선 하이디는 기계처럼 움직여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게 의식이야?”
“나도 처음 봐.”
오르페도 당황했는지 눈만 껌뻑인다.
“흐르는물을건널수없는분이시여거울에비치지않는분이시여햇빛을싫어하는분이시여가시를싫어하는분이시여사악한자들이목숨을앗아가는분이시여이곳에강림하여가여운자를도우소서혈맹의이름으로부탁드립니다.”
뭐라 외쳐대며 더욱더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가부키녀. 요괴에 조종당하는 사람처럼 눈깔이 뒤집어진 상태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는 건가? 의심이 지워지지 않아 멸혼안을 키고 하이디를 봤다.
…
그녀의 영혼에 빌붙어 있는 감시자 잔다르칸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미친년!”
뻥~!
클럽 죽순이처럼 아직도 지랄발광하는 가부키녀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루베루베루베루베밧!”
바보같은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얼굴을 박는 아줌마.
“감시자를 내쫓는 거냐? 요괴를 부르는 거냐? 이 사이비 새끼!”
바닥과의 입맞춤 때문에 화장이 뭉개진 카부키녀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벌써 10분이나 지났어!”
“제, 제 방식에 문제는 없습니다. 저 아이의 신실함이 부족한 탓”
“이얍!”
“켁!”
헛소리나 지껄이는 년의 의식 따윈 필요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종교단체의 일원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서 걸렀어야 했는데.
부처가 자신 이외는 다 이단이라는 말을 했다면, 녀석을 죽였을 수도 있겠다. 뭔베나르교는 부처의 넓은 마음씨에 감사해야 한다.
“하이디, 나가자.”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하이디를 끌고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나 또한 물리치료사니 자격은 있을 터. 하이디의 감시자 제거 수술, 내가 직접 집도하는 수밖에 없다.
***
“아, 아직 시간은 많아요…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하이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손바닥이 불나도록 싹싹 빌었다.
별 건 아니고, 동굴 깊숙한 곳에 오붓하게 단둘이 대면하는 시간을 만들어 줬더니 저러는 거다. 전부 다 치료를 위한 과정이다.
“너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이미 절반 정도가 침식된 상황이야.”
[그래 보인다.]
“조심해.”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멀리서 트리보랑 오르페가 지켜보는 중이니, 엄밀히 따지면 우리 둘만 있는 건 아니다.
“하이디, 알고 있나? 사자는 새끼를 절벽으로 민다. 그것과 비슷한 방식이니까 불만 품지 말고.”
“자기 자식을 절벽으로 미는 동물은 없어. 잘못된 정보…앗.”
조용히 지켜보다 딴죽을 거는 오르페. 바로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날 곤란하게 하기 위해 말한 것보다는 그냥 평소의 오지랖 같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바로 이의를 제기한다. 책벌레들의 흔한 특징이랄까.
“지구의 사자는 그래.”
“...정말로?”
[지구와 이 행성의 사자는 다르지 않다.]
“넌 좀 닥쳐.”
하이디 앞에서 탈주닌자도를 꺼내고, 바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감시자들은 숙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할 때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는다. 기껏 얻은 숙주가 아까워서 그런 것인지, 무슨 유대감이라도 생겨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이 사실은 델바나스의 대가리가 날아가자마자 황금볏과일박쥐로 변신했던 하스싼다가 증명한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를 정도의 위기를 겪게 해 주면 하이디를 숙주로 삼은 감시자도 본모습을 드러낼 터. 진정한 의미의 물리치료시간이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디를 야사요라고 생각해야 된다.
“...”
하이디를 조용히 노려봤다.
하이디는 야쿠자짓을 하다 쇼군의 눈에 들어 사무라이 직위를 받았고, 더욱 더 강한 힘을 갈망한 나머지 요괴가 되어버린 악당 중의 악당이다.
이년은 인구 10만명이 사는 안데스 마을에서 51만명을 죽였고, 착한 칠검경을 스물여섯이나 벴고, 오르페를 다섯 번 정도 죽였다.
“우, 아앗…!”
겁에 질린 하이디의 바지가 촉촉하게 젖는다. 저것 또한 기만하기 위한 위장이겠지.
“로빈!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응?!”
오르페가 웅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와자뵷!!!”
“끼야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비명을 지르던 하이디의 육체를 어디선가 튀어나온 검은 촉수들이 휘감더니,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방어막을 만들었다.
“촉수똥물?”
위천마 히틀러처럼 촉수와 본체가 분리된 형식이 아니라, 온몸이 촉수 점액으로 뒤덮여 있는 형태.
“이건…”
베놈. 아니, 베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