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94화 (94/119)

〈 94화 〉 94화. 진짜 다 몰살함 (1)

* * *

하이디 베년 사건 이후로 2개월이 지났다.

용주골은 꽤 안정된 모습을 갖췄고, 뜬그림자를 사용할 수 있는 닌자들의 수도 늘어났다. 대부분은 간신히 위장만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하이디한테는 따로 개인교습을 시켜줬다. 별건 아니고 주먹으로 때리기, 발차기 날리기, 무기 휘두르기 정도였는데, 어린애라 그런지 손발이 짧아서 그런지 별 소득은 없이 끝났다.

교습은 실패했지만, 막상 전투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방어해주는 베년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닌자 훈련 스케줄이 전부 끝났으니, 용주골 1차 닌자 시험을 슬슬 시작할 때가 왔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닌자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기로 했다. 6개월 동안 잠자코 내 말을 따라준 닌자가었지만, 사람은 후라이드 치킨처럼 겉과 속이 다른 법이다.

모든 용주골 프렌즈들이 오르페의 감시 아래 대련을 하는 지금이 기회다. 뜬그림자를 사용한 후 루녹스의 천막에 들어갔다.

건물은 트리보와 다른 닌자들이 열심히 짓고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로운지 진행속도가 느렸다. 나와 오르페 둘이 사는 집과 강당 정도만 완공되었고 나머지는 계획만 있다.

보급형 닌자도와 닌자복, 수리검 제작은 끝났으니 슬슬 속도가 붙지 않을까.

무기 거치대와 간이(??)옷장, 낚시 의자와 접이식 책상. 루녹스가 챙겨온 건 많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랜턴을 조심스럽게 치워놓고 그 밑에 깔려있는 책을 살펴봤다.

­ 루녹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수필 (함부로 보지 마시오)

표지에 적혀 있는 글귀부터 심상치 않다. 경수필이라면 소설 같은 거 같은데…몰래 소설이라도 쓰고 있었나? 첫 장부터 보기는 귀찮아서 그냥 중간 정도를 넘긴 후 읽었다.

# 10월 11일

꺄오는탈주닌자님이말을먼저걸어주셨어너무기뻐

헬리콥터검법을연습했는데손톱이나가버렸…

바로 덮었다.

…못 본 걸로 하자.

충격이다. 그 루녹스가 띄어쓰기 빵점이라니.

살금살금 빠져나간 후 다른 닌자들의 천막도 염탐했지만 별건 없었다. 새로운 알아낸 사실은 쪼커가 생각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 정도?

깔끔하게 뒷정리를 마치고 용주골의 모든 닌자를 강당으로 모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닌닌!””

안다고 말한 거 맞겠지? 쫄보처럼 ‘진짜로 알고 있어서 대답한 거임?’ 하는 건 좀 그러니 그렇다고 치자.

“그래. 용주골 1차 닌자 시험 시작 날이다.”

녀석들에게 간단한 시험 설명을 시작했다. 네루토의 중급닌자 시험을 베낀 건 아니다.

시험은 꽤 심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포지션을 잡은 후 단체로 움직여 야쿠자, 사무라이, 요괴 순으로 처리한 후 용주골로 무사귀환.

“악당들의 돈은 어떻게 하라고 했지?”

““닌자발전기금으로 쓴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용주골 유지비로 사용할 돈이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대가 없이 싸우는 닌자마을 또한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

그렇다고 백성의 피 같은 돈을 갈취할 순 없으니 악당들에게서 갈취하는 게 맞다. 누벨­피어가 모아뒀던 보석과 보물들이 광산에 허허벌판이었던 용주골을 풍성하게 가꾼 것처럼, 새로운 닌자들이 가져올 닌자발전기금 또한 만인을 이롭게 하리라.

“닌자의 오랜 격언 모음집인 한자성어에는 ‘우물 안 독화살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독화살을 아무리 잘 쏘는 개구리라도 우물 안에 있어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물 안 개구리 아닌가.]

트리보의 딴지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너희도 그렇다. 닌자의 전장은 죄 없는 백성이 핍박받는 곳이지, 용주골 옆의 동굴이 아니다. 수백 번의 연습이 실전 한 번보다 못한 법.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겪고 성장하라.”

적당히 멋진 연설을 끝내고 닌자들을 보냈다.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믿고 맡기십쇼!”

“엎드려 사는 것보단, 일어서 죽겠습니다.”

“저야말로 닌자에 적합하다는 걸 보여드리겠어용!”

“웩!”

막시무스, 후크, 루녹스, 쪼커, 오큘리우스인가. 이제는 말투만 들어도 구별이 된다.

트리보의 수제 마차를 타고 하나둘씩 떠나는 닌자들. 상인으로 위장하라고 한 조언을 들었는지 상인이나 입고 다닐법한 옷을 한 벌씩 챙긴 상태였다.

“탈주닌자님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는 제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하이디가 불안에 찬 눈빛으로 날 올려다본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주로 ‘응원’과 ‘기합’으로 말이지.”

그거 말고도 오르페가 다방면으로 날 도와주고 있긴 하다.

“감시자를 이기지 못한 제가…할 수 있을까요…”

어지간히 가기 싫은지 시간을 끌어대는 하이디.

“이기지 못한 게 아니다. 아직도 싸우는 중이지.”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

“...”

핑곗거리를 차단하기 위해 빠르게 말했다.

“내면의 마구니를 이겨낸 순간, 넌 완성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도 내면의 히틀러를 쓰러뜨려서 슈퍼 탈주닌자로 진화했다.

밸런스 패치를 위해서인지 너프를 당하기는 했지만, 녀석을 쓰러뜨리고 얻었던 깨달음인 ‘궤도 폭격의 술’만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잘만 사용하면 등급표 9점짜리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기술이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지 마라. 넌 더 강해질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것만 생각해라.”

“...알겠어요.”

이제 빨리 용주골 바깥으로 꺼지라는 눈치를 줘 하이디를 쫓았다.

“오르페.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응.”

하이디의 폭주 감시 겸 닌자들이 시험을 잘 통과하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 몰래 따라가기로 했다. 이름 하여 닌자 관전 모드.

메모장을 들고 가 닌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체크한 후 가산점 또는 벌점을 줄 예정이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동굴을 꽉 채우고 있던 닌자들이 전부 떠난 걸 확인한 후 내 검은 도복을 벗어버렸다. 기쁨의 알몸 파티를 벌이기 위해 그런 건 아니고, 속에 입었던 새로운 닌자복을 오르페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건 또 뭐야?”

“뜬그림자에 최적화된 형태인, 국방색 닌자복이다.”

한국 남자라면 다 아는 초록색과 검은색, 갈색 무늬가 섞인 그 디자인 맞다. 트리보가 만든 특제다.

“국방색?”

이상한 표정을 짓는 오르페에게 내 도복을 간단히 소개해줬다.

“지구의 전사들은 위장을 위해 이런 옷차림으로 전선에 나선다. 자연적인 색의 조화와 배치로 이루어져 있지.”

“우리가 지금부터 갈 곳은 산속이 아니라 네오­네오­솔리트론인데?”

“거기도 풀떼기는 있을 것 아냐.”

“...그래. 나도 옷 좀 찾아볼게.”

“잠깐.”

오르페를 멈춰 세우고 물건을 하나 가져왔다.

“커플티야.”

정확히는 국방색 닌자복 세트다.

“이게…커플티라고?”

“빨리 입어. 시간 없음.”

미적거리는 오르페를 닥달해 닌자복을 입혔다. 용주골은 이제부터 트리보가 알아서 잘 관리할 거니 문제없다.

“출동!”

국방닌자 오르페와 함께 먼저 떠난 녀석들을 뒤쫓았다.

***

닌자들을 염탐, 아니, 엿보기­관전한지 3시간이 지났다.

뜬그림자 실력이 많이 늘은 오르페는 내 페이스에 맞게 잘 쫓아오는 중이다. 사갈의 꼬리 폐광산에서 나에게 뜬그림자 가르침을 청했던 그때의 오르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좋은 스승을 뒀기 때문이다.

“야쿠자 처치부터 시작이네요.”

“야쿠자가 그…범죄자 놈들 말하는 거 맞죠? 늙으니 깜빡깜빡해서…하하.”

“네. 될 수 있으면 같이 움직이라고 하셨으니 평범한 잡범들을 잡으라는 뜻은 아닐 거 같아요.”

“당연하지. 그 ‘검은 황소’ 막시무스와 ‘무슨 무슨 천재 기사’ 루녹스가 여기 있다고.”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 기사입니다.”

“그럼 도시 사람들에게 물어볼까요?”

“여기 가장 큰 범죄조직이 뭐냐고 물어보게? 너무 눈에 띄잖아.”

네오­네오­솔리트론에 도착한 닌자들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아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한 이틀 정도 시간을 두고 각자 조사해오는 게 어떨까요? 야쿠자 잡을 때만 같이 움직이면 되잖아요.”

“각자의 역할을 다 하라고 하셨으니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아니. 비효율적이야. 우린 상인으로 이 도시에 들어왔어. 누군가는 물건을 파는 시늉이라도 해야 의심을 피할 수 있을걸.”

“전투팀과 조사팀, 상인팀으로 나누는 건 어떨까요.”

“그거 좋네.”

‘다있소 상회’ 라는 이름을 내세워 도시 안으로 입성한 닌자는 20명. 나머지 30명은 의심을 피하고자 따로 들어왔다.

경비병들도 건성건성 일해서 별문제는 없었지.

“잠깐.”

똑똑한 척하던 안경잡이들의 말을 끊은 건 막시무스였다.

“내가 오늘 안까지 정보를 가져오겠다. 이후 문제는 나중에 논의해보자.”

빠르게 동의를 얻어낸 막시무스가 자리를 벗어났다. 이 자리에서 가장 경험도 많고 나이도 높은 편이라 그런지 임시 리더 같은 느낌을 풍긴다.

기사 작위를 받은 루녹스는 이끄는 자리에 있는 건 관심 없는지 그냥 멍하니 있다. 멋진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막시무스를 쫓았다. 행인을 붙잡고 모험가 길드의 위치를 물어보는 녀석.

모험가 길드에서 정보를 찾으려고 하는 건가? 길드 접수원들이라고 정보를 막 주지는 않을 거 같은데.

혹시 지인찬스?

“모험가를 찾으러 왔소.”

모험가 길드에 들어간 막시무스는 접수원에게 여러 가지­듣다가 살짝 졸았다­를 묻더니, 터벅터벅 걸어서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아니라 길드 벽에 귀를 대고 엿듣는 거라 집중력이 많이 흐려진다. 도중에 오르페가 살짝 꼬집어 주지 않았으면 꿈나라로 갈 뻔했다.

“오랜만이네요.”

4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골돈에서 들어본 적 있던 거 같은데, 누구였지?

내가 목소리를 기억할 정도면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는 얘기인데.

“아, 세일린. 잘 지냈니?”

막시무스의 반가운 목소리가 내 잠을 확 날려버린다.

세일린? 그 야쿠자 슬레이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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