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96화 (96/119)

〈 96화 〉 96화. 진짜 다 몰살함 (3)

* * *

“...”

용주골 닌자들이 은신한 채 숨어 있는 골목길.

막시무스는 손에 든 작은 도끼를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10년 전 일어난 이르갈 왕국 내전. 왕국군에 고용된 막시무스는 반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내전이 일어난 계기는 세금이었다. 몇 년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왕족들은 작심했는지 세금을 평상시의 네 배를 넘는 가격으로 올렸다.

농사조차 잘되지 않는 해였다. 백성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왕족들은 굽히지 않고 나아갔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베아스에서 시작된 불길은 블로펠트로 번졌고, 블로펠트에서 흩어진 불길은 텔라스에서 결집했다.

백성을 중심으로 저항 세력이 만들어졌고 , 그들은 어느새 반란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함께 반란군을 죽이던 막시무스는 지독한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그가 죽여야 하는 적들은 괴물도 아니고, 전사도 아니었다.

도끼로 직접 머리를 쪼갠 여자는 농사지을 때 쓰는 한손낫을 들고 있었고, 포로로 붙잡은 반란군은 전부 아이들이었다.

반란군의 편에 선 귀족들과 기사단, 용병단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머리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잔혹함에 익숙해진 몸은 지칠 사이 없이 계속 움직였다.

누군가의 명령으로 검을 잡고 살아온 자의 한계이자 숙명이었다.

그가 속한 군대는 승승장구하며 반란군의 근거지까지 진출했다. 위축된 반란군은 기지를 버리고 도망쳤고, 기세 등등해진 지휘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군을 명했다.

당연히, 함정이었다.

반란군은 세력을 모두 모아 근거지까지 쳐들어온 왕국군을 공격했고, 잔당을 잡기 위해 흩어져 있던 왕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패배가 가까진 순간이었다.

­ 벼, 변검경이다! 변검경과 질서유지군이다!

­ 북부의 용사! 북부의 용사!

변검경 제이드와 그가 이끄는 질서유지군이 환호성과 함께 도착했다.

­ 폭도들이 전부 여기 모여 있었군요. 벌레 같은 것들이…좋습니다.

제이드가 칼을 들어 올리자 전쟁터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무기가 천천히 공중에 떠올랐다.

­ 질서를 어지럽힌 대가를 치르시죠.

그날 막시무스는 수천의 무기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화살처럼 쏘아진 무기들이 반란군의 방패와 몸을 꿰뚫었고, 전세는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반란군 중에서는 이름 높은 마법사도 있었고, 칠검경이었던 자들도 2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변검경의 공세를 이겨낼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 포로를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조리 목을 치세요.

전쟁이 끝난 후, 질서유지군은 반란군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협력하고 있던 자들의 아이까지 잡아 죽였다.

­ 북부의 용사! 북부의 용사! 북부의 용사!

환호성은 커졌고, 바닥에 고인 피는 마르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막시무스는 도망치듯이 용병단을 떠났다. 제이드의 압도적인 힘을 보고 겁에 질린 게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제이드가, 살짝이지만 확실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사명을 다 했다는 듯이 밝고 개운한 미소였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도 웃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정의라는 명목하에 당당히 날뛰고, 평범한 자들은 그들의 무자비함 앞에서 스러질 수밖에 없는 시대.

막시무스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로빈님은 달랐어.’

그게 내전 이후 조용히 살아가던 그가 다시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이유였다.

그는 절대 평범한 자들을, 백성을 건들지 않았다.

그는 정의롭고 올곧은 신념과 악을 벌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적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있었고, 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용사에 걸맞은 인물…

“어떻게 할 겁니까?”

막시무스의 상념이 끊겼다. 날카로운 눈매의 여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녹스.

3년 전의 기사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다.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 기사’ 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이 있긴 했지만, 그 실력만은 진짜였다.

검을 몇 번 맞대본 막시무스는 루녹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홍염룡 기사단에 들어가 유검경의 직속 제자가 되었지만, 닌자가 되기 위해 성공이 약속된 그 길을 거절할 정도로 과감한 자.

“좀 더 기다리죠.”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그녀에게 존중을 표하는 건 같은 전사, 아니 닌자로서 당연한 일. 20살이나 어린 그녀에게 막시무스가 존댓말을 하는 이유였다.

뭐,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도 좀 있긴 했지만.

“아, 저기 오네요.”

한 닌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껄렁해보이는 외모와 폭력배들이나 입고 다닐법한 가죽옷. 왼손이 없는 남자, 후크가 모자를 흔들면서 오고 있었다.

막시무스와 용주골 닌자들이 네오­네오­솔리트론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상인으로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든 자들도 있었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직종에 뛰어든 자들도 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아보카도 운송 연합’ 이라 불리는 범죄조직에 잠입한 후크는 압도적인 싸움 실력을 보여주면서 조직 보스의 환심을 샀다.

운 좋게도 아보카도 운송 연합은 도시에 온 지 얼마 안 된, 자리를 잡아가는 조직이라 인재풀이 적었다. 후크가 며칠 만에 보스의 호위를 맡을 정도였다.

“조금 늦었군.”

“눈 피하는데 시간이 걸려서…어쩔 수 없었습니다.”

“잘 됐나?”

막시무스가 물었고, 후크는 웃으며 대답했다.

“거, 잘 된 거 같습니다.”

뿔장어파와 운송 연합은 사업이 겹치지 않아 별다른 충돌 없이 임시적인 동맹 관계를 맺은 상태였다. 정확히는 운송 연합 쪽에서 뿔장어파에게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기는 쪽이었지만.

막시무스는 세일린에게 들은 뿔장어파 본거지의 위치를 확인했고, 한 번의 공격으로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적절한 시일을 찾고 있었다.

“이 건물이 확실합니다.”

항상 따로 움직였던 조직의 간부들이 주기적으로 모이는 날. 그게 오늘이었다.

“준비하지.”

막시무스와 닌자들이 파란색 두건을 둘렀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두려움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목숨을 건 전투를 벌여본 적 없는 어린 소녀만 빼고 말이다.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지켜보기만 하면 돼.”

막시무스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하이디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줬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뒤에 있으면 안전하니까.”

가죽옷을 벗고 도복을 드러낸 후크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자 하이디는 그제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시무스의 손짓에 뜬그림자를 시전한 닌자들이 발을 놀렸다. 목표는 창문 하나 없는 3층 주택인 뿔장어파의 본거지.

초저녁이라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6개월 동안 갈고 닦아 온 그들의 뜬그림자가 들키는 일은 없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루녹스가 막시무스와 마법사­탈주닌자님에게 빅빵댕이라고 불린다­에게 신호를 준 후 문을 걷어찼다.

“뭐야?”

“어?”

탁자에 앉아 간트를 하던 녀석들부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키듯이 서 있는 놈들까지.

전부가 뿔장어파 조직원임이 확실했다.

놈들이 뭘 하기도 전에 마법사가 스태프를 들어 올렸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정전 마법이 발동했다.

파직!

“치! 침입자가­”

위층의 동료에게 기습을 알리려는 남자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엑.”

미간에 수리검이 박힌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다 쓰러졌다.

쉭­! 쉬쉭!

닌자들이 던진 수리검이 적들의 얼굴을 정확히 노리고 쏘아졌고, 일체의 빗나감 없이 적중했다.

“히, 히익~!”

재빨리 뒤로 돌아 다음 층으로 올라가려는 놈들이 막시무스의 눈에 들어온다.

수리검을 던져 맞추기엔 좀 먼 거리라고 판단하고 있을 때, 먼저 움직인 건 루녹스였다.

“­헬리콥터 검법.”

타타타타타!

공기 가르는 소리와 함께 채찍과도 같이 움직인 연검이 적들의 몸을 무자비하게 난타했다.

“에부밧!”

“배밧!”

몸 이곳저곳에 검상이 새겨진 범죄자들이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피를 뿜었다. 도끼나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있던 놈들이 무기를 꺼내지조차 못하고 허물어진다.

후크는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 악에 받친 채로 칼을 휘둘렀다.

오른손으로 적의 입을 막은 채 의수의 갈고리로 범죄자들의 배를 마구 쑤셔대는 후크의 모습은 용주골에서 로빈님께 들었던 야쿠자들의 습성과 정확히 일치했지만, 막시무스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피범벅 난장판이 된 1층. 그렇지만 소음은 없었다. 닌자들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야쿠자들을 학살했고, 야쿠자는 별다른 저항도 못한 채 학살당했다.

마법사는 스태프를 휘둘러 놈들의 골통을 부수고, 쪼커의 품에서 뛰쳐나온 오큘리우스는 뒷발의 신경독을 적에게 주입한다.

루녹스는 도망치는 야쿠자들을 쫓아가 검을 찔러넣었고, 막시무스는 전체적인 싸움의 흐름을 읽으면서 적절하게 끼어들어 닌자들이 다치게 않게 도왔다.

“으아…”

하이디는 그 적나라한 폭력의 현장을 실눈을 뜬 채로 지켜봤다.

­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사명감을 가져라. 사명감을 가지면 감시자도 이겨낼 수 있다.

탈주닌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하이디는 아직도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행위에서 어떻게 사명감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안데스 마을에서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던 그녀에게는 낯설고 두려울 뿐이었다.

“2층으로 간다.”

정리를 끝낸 막시무스가 속삭이자 닌자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벽에 찰싹 붙어서 움직이는 그들은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쉭!

경비 역할을 하고 있던 몇 명의 미간에 수리검이 꽂힐 때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얼굴빛이 불그레한 남자가 철퇴를 휘두르며 닌자들에게 달려들었고, 막시무스가 ‘개백정 도른의 도끼’를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냈다.

“얼굴만 봐도 알겠군.”

철퇴를 가볍게 튕겨낸 막시무스가 픽 웃었다.

눈앞의 거한의 생김새가 세일린에게 들은 인상착의와 정말 닮았기 때문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이 남자의 이름은 ‘불콰한’ 룩사우가 분명했다.

“미, 미친 놈이!”

“욕은 하지 말자고. ‘딸깍발이’ 루들리와 ‘불청객’ 토토란도 여기 있겠지?”

룩사우는 자신하던 공격이 막혀 화가 났는지 콧김을 픽 뿜었다.

“그래!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룩사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들이 천 번을 일어선들…그 앞에 승리는 없습니다.”

타타타타타!

한 여자가 칼춤을 추자마자 자신과 함께 조직의 권력을 삼분하던 루들리와 토토란의 머리통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리 문명인답게 협상을 하자고!”

얼굴이 노랗게 변한 룩사우가 철퇴를 바닥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야만적인 행동은 좋지 않네!원하는 걸 제시하면, 내가­”

룩사우의 머리통에 작은 도끼가 박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몰랐나? 닌자는 야쿠자와 협상하지 않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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