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97화 (97/119)

〈 97화 〉 97화. 진짜 다 몰살함 (4)

* * *

뿔장어파를 움직이던 우두머리 세 명이 순식간에 다 죽었다.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였다.

“사, 살려­!”

“집에 아내랑 딸이 있어요!”

“오늘이 결혼기념일…”

“우리 아들이 내일 학교에 처음…”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데…”

“전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합니다!”

살려고 발악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닌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엎드려 살지 마세요. 서서 죽는 겁니다!”

우두머리 두 명의 목을 순식간에 잘라낸 루녹스의 검이 다시금 움직인다.

“응애~! 살려조~!”

동정심 유발 작전이 안 통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기야 바닥에 뒹굴면서 아기 우는 소리를 내는 야쿠자도 있었다.

“이 새끼, 유아퇴행 했는데요?”

“엄마 품으로 보내 주죠.”

당연하게도 그 행동에 동정심을 품은 닌자는 없었다.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 닌자 한 명이 아기 야쿠자의 머리통을 밟았다.

“깩!”

2층 야쿠자 처리가 끝날 무렵이었다.

“3층으로 간다.”

막시무스가 도끼에 묻는 피를 떨쳐냈다.

1층과는 다르게 2층은 소란스럽게 정리됐는데도 3층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우두머리들 또한 전부 2층에 있었으니 3층에 뿔장어파 조직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루녹스와 내가 앞장서겠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도착한 3층, 그곳에 적은 없었다.

“으븝…”

속옷 차림의 사람들만이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눕혀져 있을 뿐. 가죽으로 만들어진 재갈을 물고 있는 그들은 아무리 봐도 야쿠자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끌려 온 사람인 것 같군.”

막시무스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뿔장어파는 인신매매까지 벌이는 조직이니,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풀어 드리죠.”

“그러지.”

앞장선 후크가 피범벅이 된 뾰족한 의수로 밧줄과 재갈을 잘라냈다.

“누, 누구 신가요.”

입이 자유로워진 한 여자가 갓 태어난 아기 새처럼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물었다.

“우린 용주골의 닌자들입니다.”

대답한 건 루녹스였다.

“용주골이요? 닌자?”

“마스터, 아니, 탈주닌자님의 제자들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당신들을 구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앗! 여기 비밀장소가 있어용!”

오큘리우스와 함께 건물 이곳저곳을 뒤져보던 쪼커가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를 던지니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금괴에용!”

쪼커가 문을 열고 금속으로 된 통을 꺼냈다.

“이건 닌자발전기금으로 써야겠군. 챙겨놓지.”

쪼커 주변에 있던 닌자들에게 금고를 맡긴 막시무스는 곁에 멍하니 서 있는 하이디에게 다가갔다. 어린 소녀는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으로 뿔장어파에 잡혀 있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붉은고래 마탑주가 죽고, 변검경이 죽어도, 이런 짓을 벌이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아.”

“...”

하이디가 막시무스를 올려다본다.

“세상은 어리석은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막는, 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해.”

“...탈주닌자님처럼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잖니.”

하이디도 알고 있었다. 모두가 탈주닌자처럼 강해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닌자는 될 수 있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야. 뭐, 부족한 부분은 동료끼리 서로 채워주며 싸우는 거지.”

“닌자…”

그림자 속에서 백성을 수호하며 싸워나가는 전사들. 하이디가 탈주닌자에게 직접 들은 설명으로는 그랬다.

­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이건 탈주닌자의 의무긴 한데, 그래도 이세계인 만큼 이세계식 어레인지가 가미되어야 생각해서. 신성 로마 제국에 가면 신성 로마 제국법을 따르라,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나. 그런 이유에서 오늘은 내가 칠판에 적어놓은 닌자 십계명을 50번씩 공책에 적도록.

­ 그렇게 많이 적을 필요가 있나용?!

­ 넌 빨리 똥이나 치우고 와.

중간 중간 이상한 설명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네 안에 있는 감시자에 대해 들었다. 아주 강력하다고 하던데.”

막시무스는 로빈에게 하이디를 돌봐달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사정을 들었다. 감시자나 감시자로 변한 하이디의 모습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대략적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제가…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아시나요?”

하이디가 조심스럽게 말했고, 막시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렇겠지.”

“지금은, 요?”

“언젠가는 그분처럼 통제할 수 있게 되지 않겠어?”

용주골에서 탈주닌자는 자신이 감시자를 먹어치웠다는 얘기를 한 다섯 번 정도 했다.

“모,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이디는 그 사람처럼 될 자신이 없었다. 감시자 잔다­르칸은 말을 걸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놨고, 결국 폭주해서 안데스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요즘은 탈주닌자의 ‘맴매훈련’ 때문에 잠잠했지만, 이제 그가 주변에 없으니 언제 날뛸지 모른다.

“될 거야. 그분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막시무스가 강한 확신을 담아 말했다.

“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거다.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올곧은 신념. 그것 또한 중요하긴 하지만, 관철할 힘이 없다면 괴로울 뿐이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무력감을 느껴본 막시무스는 그 기분을 알고 있었다.

하이디는 말없이 밧줄을 풀어헤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아직은 잘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뭔가 이상하네요.”

의수에 맺힌 피를 닦아낸 후크가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본거지까지 이 사람들을 끌고 왔다는 건, 누군가에게 팔 때가 됐다는 거 아닌가요? 구매자는 어디 있는 거죠?”

“잠깐.”

루녹스가 손을 들어 올려 잡담을 나누는 닌자들을 제지했다.

“발소리가 느껴집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귀를 벽에 갖다 대었다.

“확실합니다. 갑옷 입은 사람이 두 명.”

발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고 느껴진다니. 어떻게 그걸 느낄 수 있는 거지?

“...모두 천천히 움직인다.”

막시무스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행동했다. 루녹스의 재능은 이미 증명됐으니, 따라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내려간 1층.

“천장에 붙어 움직입시다.”

루녹스가 폴짝 뛰어올라 벽에 붙었다.

“벼, 벽이요?”

“힘든데…”

많은 닌자들이 난감함을 표시했지만.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천장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좋은 기습은 없습니다. 마스터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루녹스는 강경한 태도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막시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장에 붙었다.

“뭐, 그렇다면야…”

신발의 피를 닦아낸 닌자들이 하나둘씩 천장으로 붙었고, 하이디를 비롯한 몇몇은 천장에 붙지 못한 채 2층 계단 근처에 숨었다.

“잠깐.”

작게 속삭이는 소리였고, 집 바깥에서 나는 소리였지만, 막시무스는 들을 수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네?”

“말 그대로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해.”

목소리가 걸쭉하다. 둘 다 중년의 남자가 아닐까. 그중 한 놈은 눈치가 좀 빠른 거 같았다.

“오늘 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약속 하나는 칼 같은 놈들인데…상품도 준비됐다 했고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눈치 빠른 남자가 문앞을 향해 걸었다.

“내가 열겠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망토를 걸친 두 남자가 들어온다.

“랜턴.”

“여깄습니다.”

누가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급하게 랜턴을 찾는 남자.

빠르게 그들을 스캔한 막시무스는 망토에 가려진 밤토끼 기사단의 문양을 볼 수 있었다.

“밤토끼 기사단이다.”

막시무스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루녹스의 손이 움직였다.

“이런!”

“닌닌.”

그녀는 구호를 외치며 수리검을 던졌고, 수리검은 랜턴을 든 기사의 미간에 박혔다.

“무, 무슨!”

당황한 밤토끼 기사단원이 검을 뽑아드는 사이.

‘“닌닌.””

수많은 수리검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씨­ 선배님!”

하지만 그는 야쿠자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밤토끼 기사단원, 아니, 사무라이는 검을 휘둘러 수리검들을 튕겨내고 박쥐처럼 매달린 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새끼들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닌자들과 사무라이가 충돌하기 직전, 문이 닫혔다.

“어, 엇?”

갑자기 찾아온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사무라이는 허우적거렸고.

“오악!”

불시에 찾아온 큰 도끼가 갑옷을 뚫고 그의 어깨에 박혔다.

“짜릿했나?”

어느새 사무라이의 뒤로 와 그의 목에 작은 도끼를 박으면서 씩 웃는 막시무스.

“코켁!”

사무라이는 목 꺾인 닭 울음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밤토끼 기사단이라면, 얘네들 뒷배 아닙니까?”

후크는 놈들의 망토를 벗겨 낸 후 갑옷에 새겨진 밤토끼 심볼을 노려봤다.

“그래. 보아하니 오늘이 거래 날이었나 보군.”

막시무스는 다시 문을 살짝 열고 주변을 확인했다. 다른 기사단원은 없는 거 같았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마법사가 뿔장어파 조직원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을 끌고 내려온다. 헐벗은 그들의 눈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려보내 줘.”

“집이 없다면요?”

대답한 건 한 소년이었다.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저 새끼들이 다 죽여서.”

뿔장어파 조직원의 시체를 노려보는 소년의 눈동자가 조용히 타오른다.

“정 갈 곳이 없다면 용주골에 와도 된다.”

이 또한 로빈님과, 정확히는 그의 반려자인 오르페 양과 합의가 된 부분이었다.

­ 지금 있는 인원들로 마을을 운영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잠깐 있을 전투조직이 아니라 수십 년을 가는 마을을 만들 거면, 계속해서 주민을 받아야 해요.

‘아주 총명한 분이었지.’

막시무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골이 뭔데요?”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용!”

“그러지.”

눈치만 보던 쪼커가 나섰다. 막시무스는 아까부터 말할 게 있다는 눈치를 계속 보내던 루녹스에게 다가갔다.

“밤토끼 기사단의 규모가 궁금합니다.”

“십삼 명입니다. 두 명 죽었으니 이제 열한 명이네요.”

“어떻습니까?”

루녹스가 검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뜬금없는 행동에 미간을 좁히는 막시무스.

“...밤토끼 기사단을 치자는 겁니까?”

루녹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는 그냥 말로 해 주라고…’

살짝 귀찮아진 막시무스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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