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98화 (98/119)

〈 98화 〉 98화. 진짜 다 몰살함 (5)

* * *

밤토끼 기사단.

질서유지군 소속이었던 기사들이 모여 만든 기사단이다.

잔당이라고 하지만 그 변검경 제이드가 직접 선정했고, 이끈 기사들이 속해 있다. 다짜고짜 그런 곳을 공격한다니.

‘검은 황소’ 시절의 막시무스라면 미친 소리라고 대꾸해준 후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닌자’ 막시무스는 그러지 않았다.

이쪽에는 평범한 기사보다 우월한 전투능력을 지닌 자신과 루녹스, 그리고 탈주닌자님이 지어주신 별명이 너무 강렬한 탓에 실명을 까먹은 고위 마법사가 있다.

또한 용주골의 닌자 전원이 마나 사용자였다. 갓 입문한 쪼커와 후크, 하이디 정도를 제외하면 나름대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전사들이었다.

기사에게 수적 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가 상대하는 적이 마나 사용자가 아닐 때 한정이다.

기사 하나에 닌자 다섯 명씩 달라붙기만 해도 상대할만 했다. 대단한 실력자가 나온다면 루녹스와 막시무스가 상대하면 됐고.

계산을 끝낸 막시무스는 루녹스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그럽시다.”

닌자는 야사요를 보고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용주골에서 수백 번 넘게 들었던 말이다.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를까. 직접 상대했고, 인신매매를 한 정황까지 나왔으니 그냥 모른 척하고 보내줄 수는 없었다.

“쪼커와 오큘리우스, 사람들을 안전한 곳까지 안내해라. 나머지는 밤토끼 기사단을 친다.”

막시무스는 용주골의 닌자를 모아 밤토끼 기사단 본부까지 가는 길을 설명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세일린에게 들어놓은 게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기사는 특별한 날이나 주말이 아니라면 기사단 본부에 머무른다.”

“전부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군요.”

스태프의 상태를 살피던 마법사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 기사단원 두 명이 지금 여기서 죽었고, 놈들은 모르는 상황이다. 속전속결로 끝내자.”

몇몇이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기사단과의 싸움. 제 지역에서 나름대로 난다 긴다 했던 용주골 닌자들도 긴장하기 충분했다.

“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예상은 하고 온 거 아니오?”

산적같은 생긴 중년의 남자가 짧은 침묵을 깼다.

“하급 몬스터 몇 마리나 이런 깡패 새끼들 좀 잡자고 닌자가 된 건 아닐 것 아냐. 그런 머저리도 있나?”

“당연히 아니지.”

“그랬으면 훈련할 때 집에 갔다.”

“6개월 동안 버텼으니, 이제 그 덕 좀 보겠군.”

“그래, 이왕 칼 뽑은 거 좀 더 해보자고.”

긴장을 푼 닌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뱉는다. 손바닥 뒤집듯 바로 여유를 되찾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그 개만도 못한 놈들, 다 찢어 죽여야지.”

뭐라 중얼거리는 후크 빼고는 전부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다.

막시무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용주골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반골기질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악인 처단과 백성 보호.

탈주닌자님의 비유를 따르자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의 완성을 위해 모인 자들이었다.

그런 동화 속 꿈같은 목표를 가진 채로 이 험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는 법이다.

아니, 지금까지 살아남았기에 그런 강단이 있는 거겠지.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전부 끝낸다.”

준비를 마치는 용주골의 닌자들을 보며 막시무스가 선언했다.

***

밤토끼 기사단의 본부는 2층 높이의 저택을 큰 정원이 둘러싼 모습이었다.

2층은 기사단장 혼자 쓴다 했으니, 기사단원들은 전부 1층에 있을 터였다.

경비를 서고 있는 자들은 기사 둘과 경갑을 걸친 남녀 열다섯 명이었는데, 견습기사로 보였다.

‘꼬맹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처리 대상입니까?’

닌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막시무스에게 다가와 수화로 말을 전했다. 꼬맹이란 견습기사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제압만 하지.’

막시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잡심부름이나 할 그들이 밤토끼 기사단의 은밀한 악행에 협력했을 확률은 높지 않았다.

‘아까 말한 대로 움직인다.’

막시무스의 신호가 떨어지자 뜬그림자를 시전한 닌자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림자들이 천천히 흔들리며 퍼져 나간다.

가장 먼저 정원을 가로질러 본부 앞에 도착한 건 루녹스였다.

“읍­”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기사 한 명의 목을 수리검으로 그었다.

암살은 기사들 사이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행위 중 하나였지만, 루녹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무라이 하나 처치.’

이미 탈주닌자식 세뇌교육에 완벽하게 적응한 루녹스였다.

사무라이. 야쿠자, 요괴와 손잡고 인간을 위협하는 비열하고 사악한 어둠의 전사를 뜻한다.

루녹스의 세계관에서 이 기사는 더는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유일하게 아쉬워하는 건, 멋진 대사를 뱉을 수 없다는 것 하나였다.

이윽고 루녹스를 뒤따라 나선 닌자들이 견습기사들을 하나둘 붙잡고 쓰러뜨렸다. 정원의 수풀 쪽으로 몸을 던져서인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치, 침입자다! 침입자야!”

문제는 다른 쪽에서 터졌다. 반대편의 사무라이를 맡은 닌자가 기습공격에 실패한 것이다.

“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사무라이는 닌자 일곱 명을 동시에 상대하다 후크의 갈고리 의수에 절명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밤토끼 기사단 본부의 불이 켜졌고, 그 벽에 새겨진 보호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상시 발동형 마법진은 유지비가 미친 듯이 들어 왕족이 아니라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괴한 동작음과 함께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뒤덮인 벽은 금속이라도 된 듯이 단단해졌다.

“이건 철벽거북 마탑의…잠깐만요.”

고위 마법사가 빠르게 마법진을 파훼했지만, 본부 안에 있을 사무라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빨리 진입한다!”

막시무스가 창문을 깨고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맞이한 건 준비되어 있던 날카로운 창이었다.

“흡!”

도른의 도끼로 그 공격을 방어한 막시무스는 낙법을 취해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했다.

“정신 나간 놈, 기사단을 습격해?”

음울하게 생긴 여자 사무라이가 창을 휘둘러 막시무스의 접근을 막았다. 무기의 사정거리를 이용해 우위를 취하려는 행동이었다.

기회를 노리던 막시무스가 몸을 슬쩍 뺀 후 작은 도끼를 던졌다. 말이 작은 도끼였지, 사람 목 정도는 그냥 날려버릴 수 있는 흉기였다.

“칫!”

방어하다가는 다음 공격을 방어하기 힘들겠다 판단한 사무라이는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그게 막시무스가 노리던 ‘기회’였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뒤의 랜턴이 깨져나가고, 막시무스의 몸이 어둠에 잠긴다.

“젠장, 온통 검어서 안 보여…!”

사무라이가 땀을 흘리며 막시무스가 있었던 자리를 노려봤다. 그래도 보이는 건 없었다.

검은 어둠과 대치를 이어 나가던 그녀는 막시무스의 하얀 이빨이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막시무스의 은신술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래, 마치 은신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이 말이다.

“으겍­”

가볍게 사무라이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막시무스가 도끼로 그 목을 내리쳤다. 마지막에야 눈치챈 사무라이가 몸을 돌렸고, 막시무스와 그녀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사무라이의 눈동자는 당황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사요나라.”

적의 죽음을 확인한 막시무스는 작은 도끼를 챙기고 방을 벗어났다.

“너희들은 누구냐? 암살자인가?”

“지옥에 있는 제이드한테 가서 물어봐라!”

“이 새끼가!”

복도에선 닌자와 사무라이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창문을 깨고 들어간 닌자들이 사무라이와 힘겨루기를 하다 복도까지 밀려난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좀 부족했나.’

그래도 아직은 사망자 없이 잘 싸우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근거리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닌자 중에는 피투성이가 된 자들도 있었지만, 루녹스가 적절히 끼어들어 위험을 막아 주고 있었다.

6개월 간의 전투 훈련과 협동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쪽이다! 질서유지군의 떨거지들아!”

막시무스는 도른의 도끼를 휘두르며 가세했다. 위협적인 공격에 사무라이들이 살짝 물러났다.

“너, 너는 ‘검은 황소’?”

그중에는 막시무스를 알아보는 사무라이도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두건을 두르고 있는 막시무스였지만, 그의 체급과 피부색은 상당히 눈에 띄는 편이었으니.

“날 아나?”

“모를 수가 없지. 게다가 10년 전에는 같이 싸우지 않았나.”

“...그렇군.”

이제야 사무라이가 기억나는 막시무스였다. 그는 이르갈 왕국 내전 때 제이드와 같이 지원을 나온 질서유지군 중 한 명이었다.

막시무스를 알아본 중년의 사무라이가 인상을 구겼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왕국의 사냥개라도 된 건가?”

“그렇게 생각해라.”

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검은 황소라.”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속옷 차림의 여자가 무장한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무장한 남자는 단장임을 상징하는 배지를 차고 있었다.

밤토끼 기사단장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자 쪽은?

“별 볼일 없는 용병 나부랭이였군.”

얇은 천을 어깨에 걸치고 있던 여자는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오오…

검에서 불길한 검은 불꽃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마검경…!”

그녀의 정체를 깨달은 막시무스가 침음을 흘렸다.

밤토끼 기사단장과 연인 관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필 이날 이때 마주할 줄은 몰랐는데.

단지 운이 더럽게 없었을 뿐이었다.

“너희 때문에 흥이 다 식어버렸으니, 책임져라.”

섬뜩한 눈빛을 닌자들에게 보내며 실실 웃던 그녀가 한 발자국 더 움직였을 때였다.

휘리릭­!

검은색과 갈색, 노란색과 초록색이 묘하게 섞인 잔상이 막시무스를 스쳐 지나갔다.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여 마검경을 붙잡는 잔상.

텅­!

“꺄­아아아악!”

마검경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천장을 뚫고 날아갔고.

펑! 펑! 펑!

무언가가 엉망진창으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다.

“...”

그 갑작스러운 사건에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뻥 뚫린 천장에서, 한 사람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세우는 손동작이 어딘가 기괴하다.

“힘의 균형은 유지되었다.”

그 말이 끝나자 남자의 따봉이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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