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99화. 진짜 다 몰살함 (6)
* * *
뭐, 당연하지만 닌자들의 활약은 내가 전부 지켜보는 중이다.
“이 건물이 확실합니다.”
“준비하지.”
으슥한 곳에 숨은 닌자들이 두건을 두른다. 약속했다는 듯이 동시에 똑같은 동작으로 두르는 게 인상적이다.
우리 닌자들이 노리고 있는 곳은 야쿠자들의 본거지였다. 사라진 능력인 닌자레이더를 사용해서 야쿠자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불가능했다.
야쿠자면 아무리 수가 많아도 오합지졸이겠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내가 무려 6개월이나 심혈을 기울여 키운 닌자들이 죽으면 내 맘이 찢어질 거다.
그 닌자들을 죽인 놈은 물리적으로 찢어버릴 테고.
아, 이게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일까. 게으른 나무늘보처럼 축 처져서 배를 긁고 있었던 부성애가 깨어난 느낌이다.
과잉보호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정도로 닌자들을 걱정하고 있다’ 라는 의미였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난입해서 적들을 다 죽여버리지는 않을 거니까.
시련과 성장 또한 닌자 육성에 중요한 포인트다. 전투 중에 일어나는 파워업 이벤트나 각성 이벤트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다.
처음부터 내가 나서는 순간은 ‘규격 외의 강자’ 또는 ‘히든보스 등장’ 을 막을 때뿐이라고 정했다.
그런 새끼랑 우리 닌자들이 싸워봤자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실력 차이가 너무 큰 적은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몰살엔딩만 줄 뿐이다.
뜬금없는 고인물의 등장이 파릇파릇한 뉴비들의 희망을 꺾는 것처럼 말이다.
혼자서 용주골 전부를 쌈 싸먹을 수 있는 녀석이 나타난다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몰래 나설 거다.
어쨌든 또 6개월 동안 촌동네만도 못한 시설의 마을에서 지내기는 싫으니, 이런 식으로 닌자들을 보호 및 감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이디지만.
“읏…”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하이디가 이곳저곳으로 눈을 돌린다.
그녀의 영혼에 붙은 기생충 잔다르칸은 평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전을 틈타 용주골 닌자들을 기습할 수도 있었고, 하이디의 멘탈이 터졌을 때 호롤롤로 하고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차분하게 하이디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볼 수밖에.
준비를 마친 닌자들은 뜬그림자를 사용해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기술이 많이 미흡한 하이디와 후크, 쪼커, 오큘리우스는 맨 끝에서 거의 거북이 기어가듯이 움직였는데, 그렇게 해도 주위가 일렁이는 티가 났다.
일반인이 이 주변을 한 번 슥 훑어 본다고 해도 5초 안에 들통이 날 정도다. 다행이라면 아무도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특별전형으로 들어온 애들이라 어쩔 수 없긴 하다.
쾅!
루녹스가 야쿠자 클랜 본거지의 문을 걷어차고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가는 닌자들과 함께 나와 오르페도 안으로 들어왔다.
파직!
빅빵댕이가 마법봉으로 본거지를 깜깜하게 만들었다. 용주골에서 뭘 자꾸 만지작거리던 게 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나.
“뭐야?”
“어?”
갑자기 찾아온 어둠에 당황한 야쿠자들이 벌떡 일어났지만, 닌자들의 수리검이 그들을 다시 쓰러뜨렸다.
일명 야쿠자 원위치.
원거리는 수리검, 근거리는 닌자도. 닌자들은 나에게 배운 대로 착실히 움직였다.
1층을 순식간에 정리한 닌자들은 2층의 야쿠자들도 쾌속으로 끝냈고, 붙잡혀 있던 인질 구출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런 와중에 용주골 영입까지. 짜식들, 다 컸다.
라고 생각한 건 잠시였다.
존나 크고 중대한 문제를 방금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래?’
오르페가 말없이 입만 움직여 뜻을 전한다. 나도 똑같이 행동해서 답해줬다.
‘이 새끼들, 와자뵷을 안 하고 있어.’
용주골 닌자들이 지금 야쿠자 클랜 본거지에서 한 짓이라곤 소곤거리면서 ‘닌닌’ 몇 마디만 한 게 끝이다.
심지어 그 루녹스조차 결정타를 날릴 때 자기가 만든 명대사를 썼고.
내 가르침을 잊은 건가?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그런 거 아닐까?’
오르페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와자뵷’은 강적과 만났을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그냥 이번 공격이면 죽겠다 또는 치명타다 싶을 때 쓰거나 교란시킬 때 쓰는 건데.
“...”
갑자기 툭 튀어나와 왜 안 하냐고 물어보긴 그러니 일단 지켜봐야겠다.
그때, 내 감각에 두 사람의 기척이 감지됐다.
그냥 두 명이 아니라 마나 사용자 두 명이다. 그들은 야쿠자 클랜 본점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변수 등장인가?
“잠깐.”
얼마 되지 않아 루녹스가 귀를 쫑긋 움직였다. 이 친구도 감각이 뛰어나다.
“발소리가 느껴집니다.”
루녹스의 말에 닌자들이 아직도 깜깜한 1층을 향해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닌닌.’”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침입자들과 닌자들의 교전이 시작됐다.
“개새끼들이!”
“오악~!”
루녹스가 기습으로 한 명을 짜르고, 다른 닌자들이 어그로를 끌 때 막시무스가 한 명을 죽였다.
막시무스 피셜에 의하면 놈들의 정체는 밤토끼 기사단 소속 기사들.
기습이라고 하지만 루녹스와 막시무스는 등급표 3점은 되는 기사를 빠르게 처리했다. 우리 용주골의 자랑이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궁금하긴 하다.
일단 직접 만났고 악행을 확인했으니 용주골의 규율에 따라 죽여야 하는 건 확정. 뿔장어파를 처리한 다음 잡기로 한 아보카드 운송 연합에 이어 밤토끼 기사단까지 상대해야 한다.
우선 하루 정도 쉬고 정비를 한 다음 뿔장어파 기지 쪽으로 유인하려나?
내가 보기엔 기사단 전원이 지금 죽인 놈들 수준이라면 기습만 잘하면 피해 없이 이길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뭐, 오늘 안에 밤토끼 기사단을 처리하는 건 무리니까 아침이 되기 전까지 차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는데.
“밤토끼 기사단을 치자는 겁니까?”
무리가 아니었다?!
루녹스와 막시무스의 이해할 수 없는 비언어적 소통 때문에 시작된 꿀잼 전개.
이 녀석들, 신명 나게 죽이다 보니 탄력이 붙은 모양이다.
오히려 좋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일 아침까지 밤토끼 기사단이 조용히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새벽에 잠깐 나가 인질을 데려온 후 내일 아침까지 신나게 놀기로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모름지기 기습이란 상대가 대비하거나 수상함을 느끼기 전에 해야지.
용주골 전원에게 가산점 1점 추가다. 하지만 ‘와자뵷’을 안 한 죄로 100점이 마이너스 되었으니…대충 감점이 더 큰 셈이다.
서둘러 밤토끼 기사단 본부까지 간 용주골 닌자들은 빠르게 담을 넘고 정원을 가로질렀다.
네 방향으로 나뉘어 경비들을 제압하는 닌자…중에서 한 놈이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치, 침입자다! 침입자야!”
한 번에 수리검으로 목을 긋기 위해 적에게 다가가던 닌자의 발소리가 생각보다 컸던 탓이었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단 본부에 결계가 발동됐다.
빠르게 결계를 해제하는 빅빵댕이였지만, 고요한 기습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
막시무스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였다. 50점이나 되는 감점을 부른 실수 때문에 당황에 빠진 닌자들의 정신을 깨우고 가장 먼저 진입한 것이다.
“뭐 하고 있어! 우리도 빨리 움직이자!”
급하게 창문을 부수고 본부 안으로 들어가는 닌자들.
짜식들,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감점을 먹다가는 전원 닌자실격이니까.
깨진 창문을 타고 오르페와 함께 본부 안으로 들어섰다.
슬슬 뜬그림자를 유지하기 힘든지 오르페의 호흡이 가빠진다.
‘인공호흡이라도 해줄까?’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왜 인공호흡이야?’
‘싫음 말고.’
‘뽀뽀하고 싶어?’
‘미쳤군.’
적당히 하다 정 안 되겠으면 빠지라고 해 줬다. 어쨌든 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런 빌어먹을…!”
후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도비만 사무라이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후크 근처에서는 닌자 여섯 명이 멀대같이 키가 큰 사무라이 한 명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는데, 다들 제 살길 찾기 바빠 보였다.
난 고도비만 사무라이의 뱃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전에 꿀벌요괴 벌집에서 본 남자처럼 사과 파이를 수백 개나 먹어서 저렇게 찐 걸까?
기사라면 운동도 미친 듯이 했을 텐데 저 살은 왜 빠지지 않는 걸까. 사실 임신한 여자인데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거나, 뭐 그런 건가?
“건방진, 파오, 녀석, 파후, 네놈은, 후욱, 죽는다.”
굵은 목소리. 남자 확정이다.
그건 그렇고 이대로 가다간 후크가 두 동강이 나버릴지도 모른다.
수리검 하나를 재빨리 던져 고도비만 사무라이의 등짝에 꽂았다.
원래라면 도와주는 건 안 되지만, 후크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친구니까 한 번 정도는 도와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기울어진 연병장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꾸에에에엑!”
사무라이의 비명과 함께 생성된 입김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이쯤되면 파오운, 아니, 돼지 오타쿠 구름이다.
“병신!”
틈을 노린 후크가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 눕혔고, 그 몸에 올라타 갈고리 의수로 얼굴을 사정없이 찔렀다.
피로 흠뻑 젖은 모습이 참…좀 더 깔끔하게 죽이면 안 될까 싶다.
“후, 좆될 뻔했네. 고맙다.”
“뭐?”
가까이에서 멀대 사무라이의 검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던 난쟁이 닌자한테 감사를 표한 후크가 닌자들에게 합류했다.
“수리검 던져준 거 고맙다고!”
“뭔 소리야!”
이쪽은 해결됐고.
방을 벗어나 복도로 나왔다. 이쪽이 진짜 난장판이었네.
“너희는 누구냐? 암살자인가?”
“지옥에 있는 제이드한테 가서 물어봐라!”
“이 새끼가!”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이 본디지 마스터의 속박 플레이처럼 얽히고설켜 싸우고 있었다.
근데 이 새끼들, 끝까지 ‘와자뵷’을 안 하네?
살짝 괘씸할지도???????????
일단 균형은 맞으니 구경이나 해 볼까.
“검은 황소라.”
싶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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