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100화 (100/119)

〈 100화 〉 100화. 진짜 다 몰살함 (7)

* * *

헐벗은채로 검 하나만 들고 있는 여자와 급하게 무장한 티가 나는 남자가 복도 끝에서 등장했다.

굶주린 치타처럼 날렵하게 생긴 년과 이번 달 최고의 강간범처럼 생긴 놈이었다.

둘다 수준은 비슷하니…4점(기사단장급) 정도는 될 것 같은데.

4점 두 명이라. 루녹스와 막시무스가 동료 닌자들 지원을 받고 힘낸다면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아슬아슬하게 패배해 죽을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회적 약자가 아닌 두 명이기에 이번은 지원해줄 수 없다.

“별 볼일 없는 용병 나부랭이였군.”

치타녀가 검을 들어 올렸고, 검은 불꽃과 함께 안개가 피어올랐다.

오우. 그냥 멋지게 보이는 게 아니라, 전투력도 상승하고 있다.

적어도 5점인 델바나스나 델라미온급은 될 것 같은데.

평균적인 칠검경보다 약한 스펙이지만, 용주골 닌자들을 압도하기에는 더없이 높은 수치다.

“마검경…!”

몇 수 앞의 강자를 본 막시무스가 식은땀을 흘린다.

저게 예전에 도둑맞았던 흑룡검인가?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치타녀의 얼굴을 봤다. 예전에 내 닌자도를 훔치고 도망간 까까시 MK2 주제에 상판대기가 깔끔하다.

이세계 새끼들은 도벽이라도 있는지 맨날 내 아이템을 훔쳐 간단 말이지.

이건 죽음으로 갚을 수밖에 없겠는데.

용주골 입장에서는 던전을 공략하던 도중에 히든보스가 튀어나온 셈이니, 내가 난입해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너희 때문에 흥이 다 식어버렸으니, 책임져라.”

그건 내가 할 말이었는데.

휘리릭­!

비탄의 쇼군을 쓰러뜨리고 얻는 내 전리품을 다시 회수할 때가 왔다.

긴장한 루녹스와 똑같이 긴장했지만 침착한 척하는 막시무스를 제친 후, 흑룡검 도둑의 멱살을 잡고 공중으로 날랐다.

“꺄­아아아악!”

갑자기 애새끼처럼 소리를 지르는 도둑년.

그것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자애 울부짖는 소리 그대로네.

‘조용히 하세요!’

먼저 닌자펀치로 이빨을 전부 깨부신 후, 삼연격을 먹였다.

펑! 펑! 펑!

일명 머리 가슴 배 펀치.

도둑녀는 코리안 롱노즈 캣의 장난스러운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토막이 나버린 곤충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옷에 피가 좀 엉망진창으로 묻었긴 했지만, 탈주닌자복이 아니라 국방닌자복이라 괜찮다.

방해꾼은 처리했으니, 이제 용주골 닌자들의 사무라이 사냥을 느긋하게 지켜보면 된다.

다시 뜬그림자를 사용하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

닌자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놈들도 바보 같은 표정으로 내가 박살낸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큰지 파리 10마리는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밤토끼 기사단장은 덤이다.

일단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따봉을 날려줬다.

“힘의 균형은 유지되었다.”

이렇게 말해줘도 움직이지 않네.

“뭐해! 다 죽여버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 멍 때리는 사이, 스페인 토마토 축제라도 갔다 왔는지 온몸이 붉게 물든 후크가 고함을 질렀다.

후크의 기합 한 방으로 정신을 차린 막시무스와 루녹스가 기사단장한테 달려들었다.

“바, 방금 전의 그놈은 누구냐! 어떻게 마검경을…!”

자신과 엇비슷한 실력의 적수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어지간히 힘든지 악을 쓰는 밤토끼 기사단장.

그렇지만 사무라이 따위가 악을 쓴다고 파워업을 할 수는 없는 법.

“­헬리콥터 검법.”

열심히 분전하던 기사단장이었지만, 막시무스의 도끼질과 루록스의 연검을 동시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퓩퓩퓩퓩퓩!

“그아아아앗!”

결국 얼굴에 구멍이 송송 뚫린 채로 쓰러지는 녀석.

집요하게 맨살만 찌른 루녹스와 도끼로 방패를 부순 막시무스의 승리였다.

“갑옷 찌르지 말고 눈이나 엉덩이를 노려!”

“엉덩이는 또 왜?”

“갑옷이, 그나마, 얇아!”

“미친! 고간은 왜 찌르는데!”

“거기도 얇을 줄 알았지!”

닌자들은 압도적인 머릿수를 앞세워 여섯 명 남짓한 사무라이들을 공략했다.

인해전술식으로 동료를 고기방패 삼아 공격을 시도한 건 아니고, 적당한 거리를 확보한 후 약점을 찾아냈다는 뜻이다.

마검경도, 기사단장도 잃은 기사단원들이 싸워봤자 얼마나 잘 싸우겠나.

녀석들은 벌벌 떨면서 수비적인 태도로 전투에 응하다 하나둘 쓰러졌다. 질을 양으로 압도하는 전투, 꽤 볼만한 광경이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눈치만 보던 사무라이 한 명이 하이디에게 달려들었다.

“읏!”

질 좋은 판금 갑옷을 걸친 거한의 돌진에 앞을 가로막은 닌자 몇 명이 튕겨 나간다.

벽에 딱 붙어 있었기에 도망칠 구석도 없던 하이디가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코앞까지 도착한 사무라이가 검을 휘두른다.

난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다.

“흐압! 앗?”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사무라이의 검이, 검고 끈적한 촉수에 휘감긴다.

“으으읏!”

문어의 빨판에 붙잡힌 물고기처럼 검을 빼기 위해 발버둥치던 사무라이와 하이디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후앗?!”

하이디의 몸에서 새로 돋아난 촉수가 검과 함께 질질 끌려온 사무라이의 몸을 갑옷째로 꿰뚫는다.

그야말로 오토 디펜스 앤 오펜스 시스템.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아…?”

허겁지겁 달려오던 닌자들이 하이디의 몸에서 돋아난 촉수를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괘, 괜찮아요. 잇…”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짜 미소를 만들어낸 하이디가 갑자기 골약근에 힘이라도 주는지 얼굴을 구겼다.

츄르르륵, 하는 불길하며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촉수들이 다시 하이디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보셨죠? 괜찮아요.”

“그, 그렇구나.”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촉수는 하이디의 의지로 들어간 게 아니라, 숙주 보호라는 임무를 마치고 들어간 것에 가깝다.

내가 근처에 있기에 피를 본 후 날뛰지 않는 것뿐이다.

“저놈까지 포함해서…13명이야. 확실해.”

“우리가 기사단을 무너뜨린 거야?”

“부처님 맙소사…”

승리의 기쁨에 찬 닌자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지 눈을 비볐고 , 부처님에 관한 공부를 철저히 한 닌자는 무릎을 꿇고 합장을 했다.

결과적으로 야쿠자도 사무라이도 잡았으니 합격이라고 해줄까.

조금 더 닌자들을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올라온 오르페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닌?”

아, 흑룡검을 놓고 왔네.

닌자들이 챙겼겠지? 그렇다고 믿는다.

***

아보카도 운송 연합까지 처리한 닌자들은 은밀하게 네오­네오­솔리트론을 빠져나와 용주골로 복귀했다.

야쿠자와 사무라이를 급하게 처리하고 빠져나왔기 때문에 빠른 이동을 위해 버리고 간 물품들이 있어 용주골에서 한 번 정비한다는 것 같았다.

어차피 그들이 치러야 할 시험은 이제 요괴 사냥 하나뿐이었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사망자는 없었고, 중상을 입은 닌자는 끽해야 네다섯 명 정도였다.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저, 탈주닌자님.”

“마스터…”

왜 복귀한 막시무스와 루녹스가 내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걸까?

뭔가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하기 힘들다는, 그런 복잡한 표정이다.

“말했지 않나. 지금까지는 합격이라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 빨리 대꾸해줬다.

“그게 아니라, 음.”

“그, 마스터. 제가 감히 의문을 제시해도 될지 질문을 하는 것에 있어서 허락을 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대답을 듣고자 여쭤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궁금한 것이 가능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루녹스, 띄어쓰기도 잘 안 하더니 이제는 말까지 이상하게 한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말하려고 이러는 걸까.

“너무 예의 차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해라.”

‘마스터’부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밤토끼 기사단에서­”

“용주골 닌자들은 이번 싸움에서 ‘와자뵷!’을 외쳤는가?”

망설이던 루녹스의 말을 끊었다. 용주골 닌자들의 동심을 위해 내가 난입한 건 어디까지나 비밀로 해야 한다.

“아, 아닙니다. 모두 정신없이 싸우느라­”

“너는 외쳤나?”

“외치지 못했습니다.”

“너도 정신없이 힘들게 싸웠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닌자로서 첫 임무였기에­”

“그래서 ‘와자뵷’을 외치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내 가르침을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지 않습니다!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공책에다 모두 적었­”

“그렇다면 왜 ‘와자뵷!’을 외치지 않은 거지?”

루녹스는 야쿠자와 사무라이를 벨 때 ‘와자뵷!’이 아닌, 자기가 만들어낸 명언을 외쳤다.

그야말로 괘씸하기 짝이 없는 행동.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나네.

“...멋진 말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죄송­”

“내 ‘와자뵷!’은 멋지지 않다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다음부터는 꼭…우으…”

갑자기 울먹이는 루녹스.

여기까지 했으면 됐다. 이제 밤토끼 기사단 본부와 내 행적의 연관성을 물어볼 만한 여유는 없겠지.

내가 언제든 지켜보고 있고 언제든 난입할 수 있다는 걸 알면 닌자들이 게을러질 거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니, 진짜 웬만하면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가 난입했다는 걸 인정하면 안 된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비밀 엿보기니까.

“다음부터는 꼭 하렴.”

“네에…”

적당히 상황을 끝내고 막시무스의 보고를 들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우릴 지켜보던 흑인 닌자가 차분히 물건을 들고 온다.

“이번 원정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금은보화(닌자발전기금)과 흑룡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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