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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102화 (102/119)

〈 102화 〉 102화. 모든 시대의 평화 (2)

* * *

트리보가 심혈, 아니, 고철을 기울여서 만든 마차를 타고 닌자들을 쫓았다.

아니, 쫓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더 늦게 출발한 우리는 ‘상표 없는 상회’의 마차들을 추월한 상태였다.

“트리보, 용주골에서 진화했구나.”

트리보 마차는 탑승자의 예상을 훨씬 추월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히힝~!

똥색, 아니, 갈색 말 한 쌍이 울부짖으면서 발을 구른다. 그 모습이 퍽 여유롭다.

가벼운 재질­뭐라 말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로 마차를 만들어서 말이 끌기 편할 거라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달릴 줄은 몰랐다.

마차가 아무리 빨라 봤자 자동차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아니, 이게 아니지. 자동차보다는 못하지만, 평소에 타고 다녔던 마차보다는 훨씬 빨랐다.

용주골 닌자들이 이틀 후에 도착한다고 계산한 거리를 하루 만에 왔다. 무려 2배나 빠르게 온 것이다.

유검경 아가사의 특급 탈것인 정령마가 이 마차를 끌면 어떻게 될까?

­ 붉은 섬광은 보통 말보다 3배 빠르다.

2배 빠른 마차에 3배 빠른 말이면…대충 50배 정도는 빠르지 않을까 싶다.

이세계의 자동차가 될지도 모른다.

“자,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고용한 마부가 껄껄 웃으면서 마차의 문을 열어줬다. 도착한 곳은 상록수 마을과 가장 가까운 수선화 마을.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한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전 여기서 두 분이 오실 때까지 대기하고만 있으면 되는 거죠?”

“네. 말했듯이, 값은 후하게 쳐 드릴게요.”

선불을 지급하는 오르페.

“아유, 저야 좋죠.”

오르페의 장담과 선불을 받은 마부가 두 손을 삭삭 비비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며칠 대기하면서 말 여물이나 주고 있어도 운전할 때만큼의 값을 지불하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개꿀이다.

오르페가 이렇게 돈 낭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내가 닌자발전기금을 많이 벌어서 그렇다. 그녀는 나에게 좀 더 감사해야 한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닌닌.”

재빨리 눈을 돌렸다.

“또 이상한 생각 했지?”

“닌?”

“됐어. 야인족이나 찾으러 가자.”

“닌닌.”

스무스하게 대화를 끝낸 후 흑령산에 도착했다. 흑령산은 3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대로였다.

야인족. 성물을 되찾은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사실 아직도 흑령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매직먼키 무리 때문에 흑령산을 떠났을 수도, 그들의 공격을 받고 전부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색을 포기할 순 없었다.

네오­네오­솔리트론과는 다르게 마을도 작고 용주골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록수에서는 잘 수가 없다. 그런다면 용주골 닌자들이 눈치챌 테니까.

상록수 마을에서 짐을 놓고 매직먼키를 찾을 게 뻔한 용주골 닌자들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나와 오르페도 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 내 도움을 받은 산세리프와 야인족은 나와 오르페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죽든 살든 내 잠자리는 제공하고 가.

라고 말하면 좀 정 없으니 그냥 떼인 돈 받으러 간다고 생각하자.

“어떻게 찾을 거야?”

“글쎄다.”

예전같이 닌자­레이더가 있으면 금방 찾았겠지만,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마나로 기척을 계속 탐지하면서 걸을 수밖에.

해가 질 때까지 계속해서 산세리프와 야인족 부족을 찾았다.

“이쪽이다. 여기서 모기향 냄새가 나.”

“모기향? 그게 뭐야?”

“냄새나는 모기로 만든 살충제야.”

“냄새나는 모기? 모기가 모기를 잡는 냄새를 풍겨?”

“지구는 그래.”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곳이네.”

빠르게 오르페의 궁금증을 해결해준 후 향이 짙어져서 안개처럼 펼쳐진 곳으로 향했다.

야인족은 요괴의 습격을 피하려고 요괴를 쫓는 특수 모기향을 쓴다.

문명인에 비해서 그다지 강하지 않은 야인족이 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조금 더 걸으니 규모가 꽤 큰 부락이 하나 나왔다. 천막 하나만 있었던 저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산세리프! 나 왔어!”

큰 소리로 야인족 리더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아누트 위 다른 테스카?”

머리를 긁적이며 천막에서 하나둘 나오는 야인족들.

“쉬리정크!”

근처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야인족 경비병들이 창을 들이대며 우릴 위협한다. 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너네 대빵이랑 나랑 아는 사이야.”

“살렘 지키드­곤 투 쿼케이 슬로!”

뭔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지 경비병들이 악을 쓰며 창으로 찌르는 시늉을 했다.

아, 언어의 장벽. 너무 높다.

“산­세­리­프­!”

그냥 사자후를 질렀다. 이러면 어딘가에서 배꼽이나 긁적이고 있을 산세리프한테도 들리겠지.

“후밧~!”

“데사가~!”

야인족들이 귀를 붙잡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게 조용히 얘기할 때 들었어야지.”

야사요가 아닌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순 없다. 그렇다.

폭력 말고는 전부 해도 된다는 뜻이다.

“자만타 데카…! 탈주닌자?”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의 산세리프는 날 보더니 토끼눈을 뜨고 뛰어왔다. 뛰어오는 것도 그냥 뛰어오는 게 아니라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온다.

“탈주닌자! 오랜만이다! 반갑다!”

“산세리프. 지금이 대체 몇 시인데 쳐 자는 거니. 너 때문에 인간 사이렌이 됐잖아.”

뭐, 해가 진 저녁이기는 하다.

“어쩐 일로 온 건가?”

“그건 나중에 말하고, 일단 밥부터 해 줘.”

원래 용건은 밥부터 먹고 말하는 게 국룰이다. 오늘 점심을 안 먹어서 그런가 너무 배고프다.

“밥…? 여기까지 온 건가? 밥 먹으러?”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산세리프.

아잇~싯팔!

언어만 다른 게 아니라 문화도 달라서 참 귀찮네.

“밥을 먹어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여기 굶주린 들개처럼 눈 뜬 오르페 안 보여?”

“그렇게 안 떴거든?”

굶주린 늑대 같은 눈으로 날 흘겨보는 오르페.

“어쨌든 군소리 말고 밥이나 차려.”

진짜 한마디만 더 하면 바로 딱밤 맛을 보여줄 수도 있다.

“조, 좋다. 기다려라. 조금만.”

산세리프가 구경 중인 야인족 몇 명에게 뭐라고 말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이 나오는 천막을 향해 갔다.

저기가 부엌인가? 음식 냄새가 조금 풍기는 것 같기도 한데.

“넌 우리의 은인이다. 밥, 언제든지 대접할 수 있다.”

당연하지. 대가를 위해 싸우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밥을 줘야 할 맛이 난다.

“배트­닌자만한 박쥐랑 보아뱀만한 애벌레만 대접하지 말아줘.”

“걱정 마라. 우리 부족, 수 늘어났다. 다른 부족 받아들여, 커졌다.”

다른 부족을 받아들였다? 저번과 비교하면 부락이 커진 게 그것 때문이었나.

새로운 사람들을 포옹하게 되면 새로운 요리와 요리사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오늘은 ‘미식’을 기대해도 될까?

“됐다. 와라, 이쪽으로.”

몇 분 기다린 후 부엌 옆의 큰 천막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밥 먹는 곳 같다.

“먹어라, 양껏. 우리 갈색바위 부족 요리, 아니다. 자색구름 부족의 요리다.”

야인족 요리사들이 접시같이 생긴 큰 토기에 담아온 음식들을 구경했다.

“오…”

노란 소스로 양념이 된 훈제 통닭과 이상한 나뭇잎과 함께 구워진 도마뱀 구이, 무슨 고기인진 모르겠지만 잘 익은 삼겹살과 비스무리한 색깔을 띠는 고기까지.

보기만 해도 평균 이상은 갈 거 같은 요리들이다.

“자색구름 부족, 가축을 기른다. 사육사뿐만 아니라 요리사도 있다. 그들의 요리 실력, 매우 뛰어나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됐구나.”

야인족이라고 다 같은 빡대가리들이 아니었나. 그래, 유인원이 진화하듯이, 야인족도 진화한다.

음식의 진화.

그것은 전인류의 소원이며, 문명의 흔적이다. 서서히 발전해가고 있는 야인족 또한 ‘문명’의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괜찮네.”

디즈니 프린세스, 아니, 이르갈 프린세스 출신이라 입맛이 까다로운 오르페도 잘 먹고 있다.

훈제 통닭을 네 마리 정도 집어먹은 후 입을 열었다.

“성물은 잘 있고?”

“물론이다. 덕분이다. 정말 감사한다.”

좋아. 안부는 여기까지만 물어도 된다.

“여기 근처에 매직먼키 살지?”

“매직먼키? 모르겠다. 우리와 왕국 사람들, 특정 명칭을 부르는 이름 다르다.”

이런 빌어먹을 야만인 새끼들.

“원숭이를 닮은 몬스터들이에요. 간단한 왕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스태프 역할을 하는 막대기도 들고 다녀요.”

듣다 못한 오르페가 설명을 시작했다.

“아, 테트라 포 타카나였나.”

테트라 포 타카나. 요괴를 부르는 야인족만의 명칭이다.

“간다브라들이다. 이 산에 살고 있다.”

간다브라는 대체 무슨 브라인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르페를 봐서 참았다.

미성년자가 있으면 자극적인 용어는 삼가야 한다.

“어쨌든 매직먼키가 있다는 거지?”

“그렇다. 그들, 몇 년 전부터 이 산에 살았다. 가장 깊숙한 곳에.”

“놈들에게 공격을 받은 적 있어?”

“공격?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짓는 산세리프.

“그들의 왕, 우리에게 제안했다. 평화를.”

“뭔 소리야.”

요괴가 인간에게 평화를 제안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쨌든 공격당하지는 않았다는 거지?”

“그렇다. 간다브라, 이쪽으로 잘 내려오지 않는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가서 죽이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군.”

“아, 음료 가져왔다. 마셔라.”

산세리프가 진흙 병에 담겨 있는 액체를 진흙 컵에 따라줬다. 나와 오르페가 한 잔씩 들이켰다.

이 쓰고 텁텁한 맛은…

“뭐야? 이거 술이잖아? 오르페, 넌 금지야.”

그녀의 컵을 압수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약삭빠른 오르페가 컵을 움직여 빼돌리는데 실패했다.

“너도 마시면서 왜?”

“난 되지만 넌 안 돼.”

“완전 억지야.”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하에 마셔야 한다.

아, 이때는 내가 보호자가 되는 게 맞나?

“그래. 마시렴.”

어차피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하는 법, 내가 가르쳐 주는 게 낫겠지.

“전에도 같이 마셨으면서.”

그때는 미성년자인지 몰랐지.

아무튼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마셨다.

***

다음 날 아침.

“베아트릭스?”

“아.”

눈이 마주친 순간, 베아트릭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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