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탈주닌자-105화 (105/119)

〈 105화 〉 105화. 모든 시대의 평화 (5)

* * *

“그, 이상하지만, 여기가 맞습니다.”

자칭 ‘추격탐색탐험모험가’ 닌자가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눈앞의 광경을 본 막시무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럴만하다.

매직먼키를 찾던 용주골 닌자들이 마주한 것은 바위로 만들어진 성이었다.

인간이 만든 것보단 투박하지만, 울퉁불퉁하고 큰 바위들을 이것저것 쌓아놔 붙여놓은 게 성이라는 느낌이 난다.

협력하는 인간 건축가가 있거나, 요괴 놈들이 치료제를 맞고 머리라도 좋아진 게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치료제 부작용, 이대로 괜찮은가?

“타고 올라가는 건 어떻습니까.”

눈으로 바위성의 높이를 재보던 루녹스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 둘은 가능하지만, 다른 닌자들은 할 수 없습니다.”

고민하던 막시무스가 고개를 저었다.

3미터 이상 되는 바위성을 뜬그림자를 펼친 상태에서 올라가는 게 가능한 닌자? 내가 생각해도 거의 없다.

“이런 씨…”

“오큘리우스. 올라갈 수 있겠어요?”

“웩?”

후크는 작게 욕설을 뱉고, 쪼커는 오큘리우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막시무스님과 루녹스님만 우선 성 위로 올라가 보는 건 어떨까요?”

“바위로 성을 쌓은 놈들이야.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두 분만 보낸다는 거야.”

“오큘리우스를 미끼로 쓰자. 요괴 친구니까 좋아할 거야.”

“미쳤어용?!”

닌자들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커질 때였다.

­ 인간들이여. 방문을 원하는가?

마법적인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화, 확성 마법? 원시마법이 아닌데?”

당황한 빅빵댕이가 눈을 크게 뜬다.

경험 많은 척 개쩌는 척 다 하더니 허당이였네.

“조용.”

혼란에 빠진 닌자들을 진정시킨 막시무스가 뜬그림자를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다 들킨 것 같으니 막 나가자 이건가.

“넌 누구냐.”

­ 내 이름은 쑨. 우리 종족의 왕이다.

“우리 종족? 매직먼키를 말하는 것인가?”

­ 인간들은 우릴 그렇게 부르지. 네가 이 인간 집단의 지도자군.

루녹스는 포복자세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귀를 쫑긋거리는 게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리의 근원은 바위성 안쪽에 있으니, 그녀가 찾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

­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이 뭔가? 우리가 사람을 공격하는 몬스터라 사냥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 그렇다면 잘못 찾아온 거군. 난 인간들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이 험하고 깊은 산골짜기에 동족을 이끌고 왔다. 우리는 인간 집단을 공격한 적이 없다. 먼저 공격을 시도한 인간에게도 자비를 베풀었지.

매직먼키의 왕, 매직먼킹의 목소리는 묘하게 차분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수컷 고릴라의 목소리 같달까.

파워드­마운틴 고릴라가 늙으면 저런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뜬그림자를 잘 유지하며 움직이던 용주골 닌자들을 탐지하다니.

매직먼킹. 보통내기가 아니다.

하지만 매직먼킹의 탐지기술은 내 뜬그림자에 비하면 일곱살난 애새끼가 만든 장난감 금속탐지기에 가깝다.

난 매직먼킹이 바위성 근처에 마법결계를 설치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주변에 특이한 풀(식물)을 심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풀이 이계에서 건너온 식물이며, 감시자의 협곡 부근에서 자주 발견되고, 마법적인 기운을 숨겨주는 기능이 있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이번 시련은 어디까지나 용주골 닌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기에 직접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이, 이런! 마법 결계가 있었어요.”

이제야 알아챈 빅빵댕이가 결계가 숨겨진 곳을 정확히 가리켰다.

하지만 매직먼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막시무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을 습격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

매직먼킹의 말에 기이함을 느낀 것 같았다.

­ 너희들이 치료제라 부르는 약물.

매직먼킹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 우리 집단에 속한 자들에게 전부 그것을 투여했다. 긴 세월 동안 퇴화를 거듭해 온 우리 종족이, 마침내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됐지.

그래서 사람을 습격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알 수 없는 대답이다.

­ 난 우리 종족의 문명을 다시 쌓아올리고 있다. 우리 종족을 부흥시키는 게 내 목적이며, 유일한 소망이다. 우린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하고, 인류와 공존하길 원한다.

“지랄, 사람 잡아먹는 새끼들이 공존은 무슨!”

잔뜩 열이 오른 후크가 뜬그림자를 풀고 뛰쳐나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얼굴이 곧 폭발할 것 같았다.

“막시무스님! 이 새끼가 하는 말들, 전부 개소리입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뿐이에요!”

­ 넌 우리 종족에 강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명심하도록. 널 분노케 한 자들과 우리는 다르다.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싹 다 죽여­”

“그만.”

막시무스가 후크의 말을 막았다.

“공존을 원한다는 게 사실인가?”

­ 왕은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네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라. 네가 하는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우리가 판단하겠다.”

­ 얼마든지.

꺼림칙한 소리와 함께 이름모를 굵은 나무로 만들어진 바위성의 문이 열렸다.

하나둘씩 뜬그림자를 푼 닌자들이 막시무스와 함께 문을 향해 다가갔다.

루녹스는 바깥에서 관찰하기로 했는지 아직도 움직임을 멈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결계에 탐지되지 않은 게 아닐까.

어느 마법 결계가 그렇듯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상대한테는 무력한 법이다.

루녹스가 매직먼킹보다 쎄다는 뜻이 아니라, 매직먼킹의 탐지 마법보다 루녹스의 뜬그림자가 수준이 더 높다는 뜻이다.

난 바위성의 감시탑에 있는 매직먼키들을 살피면서 바위성을 기어올랐다. 세 번 정도 소리없이 점프하니 금새 꼭대기에 도착했다.

감시탑의 매직먼키들은 성 안으로 들어오는 용주골 닌자들을 감시하느라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본다 해도 내 뜬그림자를 알아챌 만큼 감 좋은 녀석도 없겠지.

바위성 안에는 매직먼키들의 마을이 있었다.

그냥 원숭이 새끼들이 우끼끼 하며 뭉친 동굴이 아니라, 문명이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마을이다.

놈들은 외양간에 가축을 길렀고, 경비견 밑 탈것 역할을 대신하는 하이너 무리를 육성하고 있었다.

작은 매직먼키들은 작은 짐승을 몽둥이로 패면서 놀고 있었고, 큰 매직먼키들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는 수염 난 매직먼키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상한 식물을 땅에 심고 재배하는 게 농사도 짓는 것 같았다.

이들은 이성을 되찾고 온순해진 요괴들일까? 그저 과거의 문명을 되찾고 싶을 뿐일까?

난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웩…”

오큘리우스는 하이너를 보고 쫄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조용했다.

심마 후보인 오큘이 하이너에 밀리다니. 그래도 심마 정도면 요괴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편일 텐데.

지구로 따지면 천마, 혈마, 여러 요괴왕 다음 가는 게 심마다.

결국 완전한 심마가 되지 못했기에 하이너 같은 잡요괴한테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멈, 춰, 라.”

주변을 경계하며 걷던 용주골 닌자들을 멈춰 세운 녀석은 자동차만한 하이너를 탄 매직먼키 라이더였다.

힘겹게 언어를 구사한 매직먼키 라이더는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을 가리켰다.

“왕, 께, 서, 부, 른, 다.”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은 매직먼킹이 사는 궁궐이었다.

끼이익­

궁궐 안에 들어선 닌자들을 맞이한 건 윗머리를 전부 가리는 왕관을 쓴 거대한 유인원인 기간토피테쿠스였다.

­ 내 이름은 쑨, 간다브라족의 왕이다. 인간 이방인들이여. 내 궁궐에 온 걸 환영한다.

위엄을 차리기 위해서인지 성대가 아니라 마법으로 말하는 매직먼킹.

몸집보다 거대한 의자에 앉은 요괴왕은 길쭉한 손을 휘두르며 자신을 호위하고 있던 매직먼키들을 물렸다.

호위병들은 인간한테서 약탈한 게 분명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저 갑옷은 어디서 구한 거지?”

눈썰미 좋은 막시무스가 매직먼킹에게 물었다.

­ 자비를 베풀어도 탐욕을 버리지 않던 어리석은 사냥꾼들의 것이다.

철학책 좀 읽었는지 말이 고급스럽다.

­ 오는 동안 내 나라를 살펴봤을 테지. 어떤가?

“하이너를 기르고 있더군. 대장간도 만들고 있었고.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지. 어디까지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것뿐이다.

“...”

­ 내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군.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말이야.”

막시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 그렇다면 내가 묻겠다. 너희는 누구며, 무엇을 위해서 이곳으로 왔는가?

“우리는 닌자다. 백성을 위협하는 자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왔다.”

­ 닌자…탈주닌자와 연관이 있나?

“그렇다. 우린 그분의 제자다.”

­ 탈주닌자라.

매직먼킹, 쑨이 5미터는 넘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왕홀(왕들만 쓰는 존나 멋진 지팡이)을 지지대 삼아 왕좌에서 일어난 매직먼킹이 왕관을 벗었다.

왕관 속에는 머리 대신 비정상적으로 큰 뇌가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머리통을 열고 뇌를 키운 것 같은 비주얼.

파워퍼퓸걸의 몽조조조가 생각나는 모습이다.

“읏.”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하이디가 몸을 떤다. 쪼커도 깜짝 놀랐는지 오큘리우스와 서로 껴안고 있네.

­ 난 붉은고래 마탑의 연구소에서 태어났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나에게 온갖 실험을 가했지.

모니카, 또 너야?

천마가 이세계에 끼친 피해가 정말 막심하다.

­ 그들은 성장발육제를 투여해 내 몸을 키웠고, 지능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내 뇌에 주입했다. 놈들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전쟁병기를 만들고 싶어했지.

“...키메라였군.”

키메라. 붉은고래 마탑 본부에서 질리도록 나온 합성 요괴들이다.

일반 요괴보다 융합 요괴가 쎈 건 간트적,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 매직먼킹이 다른 원숭이들보다 크고 강한 이유가 설명된다.

­ 덕분에 난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전사가 됐다.

들고 있는 왕홀이 둔기처럼 생긴 이유가 그거였나. 빅빵댕이처럼 둔기 겸 마법봉으로 왕홀을 사용하겠군.

힘법사 또는 마법전사.

매직먼킹 또한 요괴왕답게 꿀벌여왕처럼 상당히 특이한 컨셉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 너희의 스승, 탈주닌자 덕분에 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난 실험실 바깥으로 나갔고, 처음으로 이 세상을 접했다.

매직먼킹의 눈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녀석은 삼장법사의 애완요괴인 돌원숭이 손오공일까, 아니면 그냥 빌어먹을 천둥벌거숭이일까.

“...”

묵묵하게 듣고 있는 막시무스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