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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탈주닌자-106화 (106/119)

〈 106화 〉 106화. 모든 시대의 평화 (6)

* * *

결국 닌자들은 공존을 선택했다.

­ 내 동족들은 퇴화한 채로 고통받고 있었고, 지배자인 인간들은 큰 혼란에 빠져있었지. 그럼에도 처음 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매직먼킹의 그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 것이리라.

막시무스는 매직먼킹과 몇 마디를 더 나눈 끝에 물러가기로 정했다. 후크가 반발했고, 루녹스가 염탐을 계속했지만, 막시무스를 비롯한 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 너무 감동적이에용~!

불쌍하다며 찡찡 우는 쪼커 때문에 시끄러워서 그냥 갈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의 훈련교관이자 용주골 건물주인 나는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열심히 흔적을 찾던 루녹스도 별다른 단서(요괴라는 단서)를 찾지 못했고, 용주골의 임시 리더인 막시무스가 돌아가자고 정했더라도, 난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난 용주골 닌자들이 전부 바위성을 떠난 후에도 이 안을 샅샅이 뒤졌고, 내가 옳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용주골 닌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았고,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니 태양이 질 무렵 하이디 혼자 쓰는 천막에 살금살금 들어온 것도 부처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다.

“하이디.”

간이침대에 죽은듯 누워있던 하이디의 이름을 불러 내 존재를 알렸다. 많이 피곤했는지 금방이라도 잘 기세다.

“우앗! 갑자기 뭔가요…?”

자기 목소리에 놀란 하이디가 볼륨을 낮추고 날 보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 같은 하수는 내 뜬그림자를 볼 수 없다.

“...무슨 일이신가요?”

“무슨 일이 있으니까 왔겠지?”

“그, 그때처럼 또 난입하시게요? 우리가 얼마나 당황했는데요.”

난 고개를 절레절레(보이지 않겠지만) 저었다.

“너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맡기러 왔다.”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의 반대쪽을 보던 하이디가 눈을 크게 떴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그래. 너처럼 조, 그마한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좆만하다고 할 뻔했네.

“어떤 일이죠?”

“바위성 밑에 있는 지하통로에 침입해 진실을 보고, 알려라.”

“진실, 이요?”

“아 그냥 일단 나와 봐.”

아직까지 감을 못 잡고 있는 하이디를 부추겼다. 이제야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꼬맹이.

아직도 닌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준비가 빨랐다.

“지하통로는 어디죠?”

“그건 네가 찾아야지.”

“...”

“네 목소리를 따라와.”

이 정도까지는 도와줄 수 있다.

난 하이디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하면서 그녀를 지하통로까지 인도했다.

하이디의 뜬그림자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멍청한 매직먼키들 눈을 속일 정도는 됐다. 매직먼킹이 숨겨둔 마법결계와도 좀 떨어져 있는 곳이니 침입하는 건 쉬웠다.

마법결계는 만들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마나가 소모되니 그냥 앞문에만 딱 박아놓은 게 틀림없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은 지구나 이세계나 중요한 법이다.

“여기는 어떻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파놓은 것 같더군.”

왕국 군대의 습격 같은 걸 받았을 때 빤스런을 치기 위한 통로가 분명했다.

불 붙은 몽둥이를 들고 순찰 중인 매직먼키들을 피해 하이디가 도착한 곳은 토굴의 입구였다. 너무 작고 잘 가려놓아 루녹스나 막시무스도 찾이 못한 작은 토굴.

그 입구가 너무나도 작아 잼민이인 하이디만이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

그곳에 들어간 하이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아…!”

아쉬움과 놀라움, 분노, 한탄이 섞인 감탄사.

나도 공감하고, 동감하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자마자 ‘와자뵷!’하고 뛰쳐나가 바위성을 개박살낼 뻔했으니까. 내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지 않았다면, 용주골 닌자들은 성장 기회를 잃었겠지.

“어우, 아으.”

“부…”

혀가 잘려나간 성인 남녀들과 ‘응애’하고 울을 힘조차 없는 아이들이 토굴 안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로 떨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며 불타오르기 시작한 하이디.

내가 먼저 그들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뭐, 하이디가 안 구해준다고 내빼도 내가 구할 거지만.

“아으아…”

혀와 이빨이 없는 여자가 바닥을 질질 긴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음식물 찌꺼기가 담겨 있는 그릇이었다.

“하부.”

허겁지겁 음식물 찌꺼기들을 들이키는 여자. 그 모습에서 지적 생명체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짐승을 기르는 것처럼…”

“것처럼 이 아니라, 짐승처럼 기르는 거다.”

이 찢어 죽일 원숭이 새끼들은 인간을 사육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납치했는지, 아니면 바위성에 침입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잡아온 건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을 사육하고 있었다는 거다.

“놈들이 왜 인간을 기를까?”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라 하이디 맞추라고 물어본 문제다.

“...잡아먹기 위해서요.”

“그래.”

평화니 공존이니 지껄이며 우호적인 척하던 매직먼킹은 식용 인간 사육장의 주인이었다.

“이게 요괴인가요?”

요괴가 잘 나오지 않는 오지의 마을, 안데스에서 살았다는 하이디. 이 꼬맹이가 아라크네를 보고 벌벌 떨던 일이 어제 같다.

“이것 또한 요괴다.”

난 어른으로서, 스승으로서 이 아이에게 세상의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사람을 증오하고, 농락하며, 기만하는 것도 요괴다.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압도해 잡아먹는 것도 요괴다. 익숙해질 새도 없이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지.”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요괴한테 대항할 수 없다.

“그래서 닌자는 요괴와 공존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전부 없어질 때까지 사냥할 뿐이다.”

오큘리우스나 트리보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러면 멋이 안 난다.

“닌자는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건가요.”

“언제나 이겨왔다.”

정확히는 탈주닌자만이다.

일반 닌자는 불명예스럽게도 요괴왕이나 야쿠자 클랜의 음모에 빠져 죽기도 한다.

20세기 말 야쿠자들이 멕시코의 마약왕들과 손잡아 도핑 야쿠자로 진화하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모두에게 알려야겠어요.”

각오를 다진 하이디가 몸을 돌려…아니, 이게 아닌데.

“야. 사람들 안 챙겨?”

“아.”

“뭐가 먼저야.”

“이, 인명구조요.”

“너도 인간수업 듣고 싶어?”

개빡치네 진짜.

“죄, 죄송해요.”

다시 또 몸을 돌린 하이디가 뜬그림자를 풀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하이디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 그들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구출해줄 테니 협조해 달라는 말이었다.

“아, 으.”

“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여자는 아이들을 품에 끌어안았고, 남자들은 걷지 못하는 노인들을 업었다.

“이쪽이에요.”

사육당하는 사람들이 하이디를 앞세워 엉금엉금 기어나간다.

“이쪽으로.”

토굴을 벗어난 하이디와 사람들이 불빛을 피해 움직였다. 한 번이라도 들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완벽한 닌자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견디기 힘들다.

백성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한 명이라도 목숨이 위험해지면 훈련이고 교육이고 나발이고 바로 나설 거다.

“다 왔어요. 이쪽으로.”

하이디는 내 우려와는 다르게 훌륭하게 가이드 역할을 해냈다. 지하통로를 무사히 통과한 하이디는 사람들을 용주골 천막으로 안내했다.

“하이디! 너 어디가 있던­”

넝마 차림의 사람들을 본 난쟁이 닌자는 말을 잃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데려온 거니?”

다시 입을 연 건 홀쭉이 닌자였다.

“매직먼키 성에서요.”

“설명이 좀 더 필요하겠는데.”

“막시무스님, 루녹스님, 아니, 전부 모여야 해요.”

그래, 하이디. 요괴 사냥을 시작할 때란다.

***

갈색바위 부족의 부락.

몬스터 퇴치제 역할을 하는 연기가 자욱하게 번진 부락 안으로 오십이 넘는 병사들이 들어왔다.

세상은 병사들을 버마재비 용병단이라 불렀다.

“카리­!”

“푸싸­앗!”

입구 경비를 서던 야인족들이 창대와 몽둥이에 맞고 쓰러진다.

경비대 전원을 제압한 버마재비 용병단은 광장 역할을 하는 부락의 중심지에 섰다.

산세리프의 호위무사들이 쓰러진 장소였다.

“탈주닌자는 떠난 게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혼자서 호위무사를 전부 제압한 용병왕이 뚜둑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헤, 헬베티카.”

산세리프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족, 그것도 친언니 같던 사람이 자신을 습격했다니.

“산세리프. 길게 말 안 할게.”

“네가 어떻게…!”

베아트릭스는 왕국어로 말했고, 산세리프는 야인족어로 말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거야. 그래, 지금처럼.”

“어째서 이런 짓을­”

“성물을 내 앞으로 가져와.”

“성물? 성물이 목적이야?”

산세리프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래.”

“성물은 절대로 넘겨줄 수 없어.”

산세리프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강경한 태도였다.

“셋을 셀 때마다 한 명씩 죽일 거야.”

“...”

“어린아이들부터 죽인다.”

“무, 무슨…”

버마재비 용병단원 중 하나가 허리춤에 찬 도끼를 들고 천막 안에 들어갔다.

“아파!”

이윽고 밤톨 머리를 한 소년이 용병에게 끌려나왔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소년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산세리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나.”

무덤덤하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베아트릭스.

“...헬베티카. 성물은 넘겨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둘.”

“정령들께서도 노하실 거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생각­”

“셋.”

용병이 소년의 머리 위로 도끼를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컥!”

어디선가 날아온 황금창이 용병이 몸을 꿰뚫었다.

“사람들부터 대피시켜요!”

모두가 뜻밖의 공격에 당황한 순간,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쏴!”

용병들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화살들은 바닥에 꽂히거나 무언가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미친…!”

한 용병의 욕설과 함께 황금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설 속에서나 전해져 내려오는 물건이었다.

방패를 든 손이 내려옴과 동시에 소년을 죽이려던 용병의 몸에 꽂혀 있던 황금창이 방패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미친 건 당신들이야.”

황금갑옷을 입은 오르페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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