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5화. 아포칼립스 사이비 혈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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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인간의 피를 빨아 강해지는 요괴들의 왕을 일컫는 말이다.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인 모기와도 같은 존재들의 왕이라, 천마급은 아니지만, 상당히 위협적인 놈이다.
이름 모를 뚱뚱한 사이보그 전쟁광이 지휘하던 요괴나치 연합군의 잔존세력인 ‘최후의 부대’와 전투를 벌인 끝에 세력 전부를 하수인으로 만든 건 지구에서도 아주 유명한 일화다.
입 닫아라. 너는 개먹이다.
그때 나름 명대사도 많이 남겼다고.
내 눈앞에서 빌빌거리는 노친네가 그 혈마라면? 나와 똑같이 이세계로 떨어진 거라면?
어으, 우으. 에.
…그냥 병신인가?
뭐, 너무 오래 살아서 치매가 생긴 혈마일수도 있지.
어쨌든 딱 봐도 혈마같이 생긴 새끼의 대가리를 날려버렸다.
안개로 변하고 못생긴 것으로 보아 혈마가 아니더라도 요괴 종류 중 하나일 게 뻔하다.
싹뚝!
자다 일어난 것처럼 부스스한 차림이라 그런지 별다른 저항 없이 목을 내어주는 혈마.
“사요나라.”
궁극인술인 궤도 폭격의 술까지 써버렸기에 속전속결로 끝냈어야 했다.
어차피 상대는 비열하기로 유명한 혈마. 약해졌을 때 기습하는 것 정도는 봐주겠지.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뒤진 놈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
“닌닌.”
날아간 혈마의 목과 몸통을 확인했다. 요괴 아니랄까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상관인 천마보다는 허무하게 갔지만, 녀석 또한 하수인들을 부려서 우리 용주골 닌자들을 곤란하게 했으니 나름 활약하고 간 셈이다.
뭐, 그래도 보아하니 하이디 각성도 한 것 같고, 흡혈귀 무리와 열심히 싸운 닌자들의 우애도 깊어진 것 같다.
나름의 일거양득이랄까.
확인사살은 철저히 해야 하는 법, 목이 날아가고 숨통이 끊긴 제이드도 비탄의 쇼군이 되어서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시체를 잘게 쪼개려고 다가갈 때였다.
기기기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혈마의 몸통이 안개에 휩싸였다.
뭔가 싶어서 일단 탈주닌자도로 베었다.
“닌?”
물리면역인지 베이지를 않는다.
인술을 쓰기 위해 탈주닌자도에 마나를 불어넣을 때였다.
“아…!”
목 없는 듀라한 노인네가 갑자기 20대 여자로 변해 있었다.
젊어진 게 아니라, 성별이…변했다?
“트랜스젠더?”
정치적 올바름 가산 아니, 어차피 상대는 혈마. 보나 마나 자기가 예전에 피를 빨았던 사람으로 변신한 거겠지.
그딴 개짓거리에는 속지 않는다.
“역시, 저주가…중화됐었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혈마가 입가를 쭉 찢으며 소름 끼치게 웃었다.
저주? 트리보가 예전에 말했던 감시자의 저주인가를 말하는 것인가?
[루베나르. 역시 너였군.]
혼자서 느릿느릿 성혈령으로 다가오던 트리보가 손가락으로 혈마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혈마를 견제하느라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새끼는 자기가 불사신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접근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힘을 아껴 두라고 했잖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아 보여서…”
저 멀리서 오르페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바로 합류하지 못한 걸 신경 쓰고 있는 건가. 물론 난 별생각 없다.
혈마가 약하면 빨리 죽이면 되는 거고, 강하다 해도 지금까지 고생한 하이디를 비롯한 용주골 닌자들을 굴릴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혈마는 피를 빤 상대를 하수인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기에 나 혼자 상대하는 게 편했다.
뇌세포가 부족한 사람처럼 쪼개던 혈마가 고개를 돌려 트리보를 봤다.
“아, 고그마그 족의 수호자! 반갑네. 오랫동안 휴면기에 들어갔다 지금 깨어난 참이거든.”
이때가 기회다.
“사시미 살법.”
바로 강력한 인술을 날렸다.
궁극인술을 사용한 직후라 그런지 반동이 컸지만, 감수할 만한 공격이었다.
“푸홧!”
바로 몸을 돌려 방어자세를 취한 혈마의 몸통을 두 동강 냈으니까.
혈마의 방어자세는 등에서 솟아난 거대한 박쥐 날개로 몸을 감싸는 형식이었는데, 사시미 살법에 맞기 전 강화되듯이 날개 색이 하얀색으로 변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뭐, 그래 봤자 살법에 썰려버렸지만 말이다.
이 정도 일격으로는 죽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바닥에 널브러진 혈마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난폭한 친구네.”
아니나다를까 아직도 명줄이 붙어있던 혈마가 입을 움찔였다.
“...자네가 이 시대의 용사인가?”
내가 다시 탈주닌자도를 들어 올린 순간 안개로 변한 녀석이 도망쳤다.
근거리에서 놓칠 내가 아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마나를 실어 일격을 먹였다.
쐐액!
“큭.”
이번에는 공격이 먹혔는지, 안개가 쩍 하고 갈라진다. 인상을 쓴 혈마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용사가 아니라, 탈주닌자다. 탈주닌자는 수많은 감시자를 처치했으며, 위대한 다섯 성령 중 하나와 융합한 자를 소멸시켰고, 모니카를 무찔렀다.]
트리보가 내가 해야 했을 자기소개를 먼저 해주네.
“모니카? 그 ‘잘못 부름 받은 자’를? 대단한”
“제트킥.”
“컥!”
마법소녀가 변신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며 엉덩이나 긁적이는 괴인처럼 놈이 말하는 동안 기다려줄 생각은 없었다.
바로 제트킥을 날린 후 놈의 허리를 꺾어버렸다.
“우고갓!”
너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길래 ‘이빨탈곡기’ 인술을 사용해 이빨도 전부 털어버렸다. 이제야 조용해지는 혈마.
“됴아! 쏴우귈 원한다묜 그룧게 해주지!”
다 새어나오는 발음으로 고함을 지른 혈마가 온몸에서 안개를 뿜어냈다.
유독성 물질이나 그와 비슷한 불청결한 물질을 뿜어낼 수 있기에 살짝 뒤로 빠졌다.
놈의 생성해낸 안개 속에서 수십이 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신술은 아니고…하수인들을 불러낸 건가?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로 변한 혈마가 큰소리를 쳤다.
“코름갈드가 내 은신처인 성혈령을 아주 잘 써먹은 모양이야! 왕국 최강의 기사단까지 주둔시키고!”
안개 속에서 만들어진 자들은 하나같이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눈이 퀭해 보이는 게 의식이 없을 것 같았다.
혈마의 하수인이 되면 영혼을 붙잡힌다는 게 진짜였나.
“적혈구 기사단이…”
“어쩐지 시체가 없더라니!”
경비병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적혈구 기사단’이라는 것 같다.
칠검경 같은 규격 외의 강자는 없었지만, 평균적으로 수준이 높아 보이긴 했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하나하나가 막시무스급은 되어 보인다.
“나 혼자 상대하겠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개입할까 봐 미리 선언했다.
오르페나 하이디, 루녹스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만, 셋 다 에코 테러리스트 사무라이를 잡기 위해서는 힘을 아껴야 했다.
혈마는 나 혼자 쓰러뜨린다.
[루베나르는 흡수한 이들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종복으로 부릴 수도 있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트리보의 설명은 무시했다.
[내 인공두뇌만 멀쩡했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아깝군. 루베나르는 기운을 전부 갈무리한 채 대성당 지하에서 수면을 취했던 것 같다. 고래의 숨결 때문에 대성당이 파손되면서, 그 기운이 성혈령 바깥으로 새어나온 거겠지. 그래서 공동묘지의 시체들이 일어난 거다. 다시 돔으로 햇빛을 가린 영향도 크겠군. 햇빛 앞에서는 약해지는 놈들이니.]
계속 말하네. 누가 물어봤어?
“얘기를 들어보니, 네가 이 시대에서 가장 강한 자 같구나. 저주를 받았다 한들, 그 모니카가 당할 줄이야.”
적혈구 기사단 뒤에 숨은 혈마가 입을 털었다.
“...헌데 내 눈에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단 말이지.”
괘씸한 말이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혈마, 좆밥은 너다.”
짜증나니까 그냥 했다. 이런 놈들은 한 번 기세를 잡으면 기고만장해져서 입만 털어대니, 딴지를 안 걸 수가 없다.
어쨌든, 한 달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궁극인술 사용 후라 그런지 마나량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천마 모니카의 영혼 파괴 공격만 아니었다면 이딴 새끼쯤은 스시를 떠 먹었을 텐데.
“혈마? 뭐, 됐다. 널 내 하수인으로 만들면, 온 세상을 권속으로 물들이는 것 또한 가능하겠지. 오랜 세월, 감시자와 고대 용사 일행이 자멸할 때만 기다려왔다. 내 긴 기다림이 이제야 결실을 보는구나.”
이제야 악당다운 야심을 드러내는 혈마.
저 개소리에 굳이 반응해줄 필요는 없다. 적혈구 기사단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 놈을 토막난 사이 기사단이 날 앞뒤로 포위했다. 얌전히 걸려줄 내가 아니다.
“삼단 점프.”
누벨피어를 쓰러뜨리면서 얻은 새로운 인술을 사용했다. 슈퍼 마루오가 사용했던 이단 점프에서 착안해 만든 인술이다.
다리를 굽히고 점프해서 공중에 뜬 후, 다시 다리를 펴서 또 점프하고, 마지막에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또 점프하면 된다.
포위를 벗어나자마자 이리저리 움직여 놈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참살했다.
챙챙챙챙!
몇몇은 나와 검을 맞대보려고 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몇 합도 겨루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갔다.
전체적으로 내가 밀어붙이고 있다. 난 여유롭게 기사단을 학살하며 혈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계속 확인했다.
“칫.”
혀를 찬 혈마가 두 손으로 마법진을 맺었다. 마법봉 없이 즉석에서 마법을 사용할 정도면 엄청난 대마법사라는 뜻인데.
혈마가 대마법사일까? 아니면 놈에게 육체를 빼앗긴 중년 남자가 대마법사일까?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푸슝! 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에서 발사된 마법송곳들을 ‘DDR 뛰기’ 인술로 피하면서 천천히 놈에게 접근했다.
극한으로 단련된 내 고속 이동술은 세계관 최강자급. 이미 내 시야에 들어온 혈마는 피할 수 없다.
기겁한 혈마가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놈의 팔이 검은색으로 물들면서 오돌도톨한 파충류 비늘이 돋아났는…
잠깐, 검은 파충류 비늘?
“델라미온?”
잊을만하면 또 나오는 늙고 병든 도마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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