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화
“네?”
프레사는 눈을 깜빡이며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씩 웃더니 그녀의 팔을 놓았다.
“햇볕이 뜨겁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프레사는 계속 같은 말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야?’
이쯤 되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초면인데 뜨거운 햇볕을 운운하며 걱정한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인신매매라면 모를까.
요즘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해 노예로 팔아 버리는 일이 잦다고 들었다.
단순히 걱정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흉흉한 세상에 그런 선량한 인물을 그것도 배 위에서 만날 확률?
‘없지, 없어.’
프레사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러나 미소를 지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은 눈앞의 남자였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 눈 밑의 검은 그림자, 피곤해 보이는 눈까지.
“리카온 님, 이만 들어가셔야 합니다. 또 쓰러지시면…….”
호위 기사로 추정되는 덩치 큰 남자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또 쓰러지면 안 된다며 걱정하는 말투를 보니 프레사의 추측이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리카온이 이 남자의 이름인가 보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흔한 이름은 아닌데 말이지.
아, 어쩌면 연회에서 스쳐 지나간 가문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리카온, 리카온, 리카온.
반복적으로 단어를 되뇌는 순간, 아직 약효가 남은 탓인지 속이 뒤집혔다.
“잠깐, 지나갈게요.”
프레사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황급히 리카온을 스쳐 지나갔다.
“멀미입니까? 제드, 멀미약을 챙겨왔던가?”
그러나 리카온이 프레사의 뒤를 바짝 쫓아오는 바람에 도로 멈추어 서야 했다. 그는 호위 기사에게 손을 내밀며 멀미약을 내놓으라고 하는 중이었다.
프레사는 가죽 주머니를 품에 꽉 안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요.”
“리카온.”
“네?”
“리카온이라고 불러요. 당신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리카온이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시도했다.
‘뻔뻔한 사람이네.’
프레사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쩌면 잘난 얼굴 덕분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일지도.
어쨌든 프레사는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아마 장미꽃으로 가득한 관이 지금쯤 땅 밑에 묻혔을 테니까.
묘비에는 ‘프레사 소프, 이곳에 잠들다.’ 따위의 진부한 문장이 새겨졌겠지.
“자, 이걸 먹으면 좀 나을 겁니다.”
리카온이 제드에게 빼앗은 작은 약병을 내밀었다.
사실 뱃멀미가 심하기는 했다. 공복인 데다가 심장을 멈추는 약까지 먹었으니 멀쩡할 리가 없지.
관에서 빠져나왔을 때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프레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약을 덥석 받아먹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하면 분명 지금처럼 또 들러붙을 테니 차라리 받는 척이나 해야겠다. 프레사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병을 건네받았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이름이라도 알려 줘요.”
리카온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햇볕을 정면으로 받은 보라색 눈동자가 아름다운 보석 같았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돌아서지 않겠다는 묘한 각오가 느껴졌다.
고민하던 프레사는 결국 입을 열었다.
“레사예요.”
“레사.”
리카온이 프레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가짜 이름이기는 했지만, 뭐 한 글자 빼고 똑같으니 애칭이라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즐거운 여행 되기를, 레사.”
리카온은 햇살처럼 미소 짓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프레사는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땀에 젖은 옷처럼 달라붙던 리카온은 어느새 등을 돌리고 반대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제드라는 호위 기사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뭐야, 진짜.’
다시는 마주치지 않고 싶다.
프레사는 푸른색 약이 담긴 약병을 들여다보다가 미련 없이 바다로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