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6화
“네?”
프레사의 호미가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니.
다행히 리카온은 어제보다 상태가 나아 보였다.
“우리 둘 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도 없잖아요. 전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리카온이 또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가 아프다는 사실 때문인지 유독 안쓰러워 보였다.
프레사는 갈등하다가 어제 그의 도움을 받은 일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다면요.”
“사실 제가 요리를 좀 하거든요. 혼자 먹기에는 너무 아쉬워서요.”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내뱉은 리카온은 턱 끝으로 그의 집을 가리켰다.
“가시죠. 아, 일단…….”
리카온의 시선이 흙투성이인 프레사의 손으로 향했다.
“손부터 깨끗하게 씻고.”
“……네.”
프레사는 어쩐지 흙으로 장난을 치다 걸린 아이처럼 머쓱한 기분이었다. 분명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슥슥 대충 닦으며 말했다.
“금방 씻고 나올게요.”
“천천히 와요.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리카온은 한쪽 손을 흔들어 인사한 후 먼저 등을 돌렸다.
프레사는 호미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가 깨끗한 물로 손을 씻었다. 그리고 앞치마와 작업복 대신 편안하고 깨끗한 상아색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보통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면역력이 약했다.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됐으니 위생적이지 않은 복장으로 찾아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아, 뭐라도 가져가야겠어.’
프레사는 주방을 뒤적여 쿠키가 담긴 통을 챙긴 후 리카온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리카온이 나타났다. 그는 당근이 그려진 흰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의외의 모습에 프레사가 흠칫하는데, 리카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아, 왔습니까? 들어와요.”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쿠키를 좀 가져왔어요.”
프레사는 안으로 들어서며 쿠키 통을 내밀었다. 리카온이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프레사와 눈을 맞췄다.
“직접 구운 겁니까?”
프레사는 빙긋 웃었다.
“그럴 리가요. 샀어요.”
“뭐, 마음이 중요하니까요. 잘 먹을게요.”
리카온이 픽 웃더니 쿠키 통을 받아 들었다. 그의 집에서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프레사는 리카온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빵을 구웠나요?”
“아침이라 가볍게 준비했어요.”
“직접 반죽한 건 아니시죠?”
“그럴 리가요. 샀죠. 전 굽기만 했습니다. 편한 자리에 앉아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한 리카온은 화덕 앞으로 가더니 잘 익은 빵을 꺼냈다. 그리고 삶은 달걀과 살구 잼을 함께 내왔다.
프레사는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토마토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상큼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자, 여기.”
곧 프레사 앞으로 빵과 삶은 달걀 그리고 통통한 소시지를 담은 접시가 놓였다. 신선한 샐러드가 가득 담긴 그릇도 식탁 중앙을 차지했다.
프레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리카온을 올려다보았다.
“엄청나게 빨리 준비하셨네요.”
사실 별 기대 안 했는데 놀랐다.
번지르르한 귀족 도련님처럼 보여서 사용인을 두고 시키기나 할 줄 알았지, 이렇게 직접 차려 먹을 줄은 전혀 몰랐다.
리카온은 그런 프레사의 속내를 읽었는지 앞치마를 벗고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실력 좀 발휘해 봤죠. 왜요, 제가 요리하는 게 이상합니까?”
“조금요.”
프레사는 사실대로 대답했으나 리카온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기사분이 있으시지 않았나요? 그분은 어디 가셨어요?”
“아, 제드? 잠시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렇군요.”
“얼른 식사부터 해요. 아침부터 텃밭을 가꾸었으니 허기가 질 텐데.”
리카온이 재촉했다.
프레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삭한 빵에 살구 잼을 듬뿍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다음으로 육즙이 풍부한 소시지를 잘라 먹었다.
‘음식 재료가 다 신선해.’
그만큼 맛도 좋았다.
소프 백작 저택에서 먹던 음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 그때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지.’
프레사는 충분히 말랐는데도 가족들은 그녀에게 살이 쪘으니 먹는 양을 줄여야 한다며 식단을 철저히 감시했다. 덕분에 프레사는 매번 시들시들한 채소만 먹어야 했다.
로렌이 가끔 빵과 고기를 몰래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에이미에게 들킨 후로는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다 언니를 위한 거야. 내 마음 알지? 그 못된 성격에 살까지 찌면 누가 결혼하려 하겠어.’
에이미의 얄미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때요?”
리카온이 불쑥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에이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프레사는 조금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맛있어요. 정말로요.”
“그래요? 다행입니다.”
리카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종종 같이 먹어요, 아침.”
“얻어먹기만 하는 건 조금 그런데요.”
어느새 식사를 끝낸 프레사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되받아쳤다.
꽤 근사한 식사를 한 것과 별개로 계속 받기만 하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는 당신이 초대해 주면 되겠네. 안 그래요?”
리카온이 기다렸다는 듯 뻔뻔한 눈길로 프레사를 응시했다. 프레사는 그게 진짜 그의 목적이었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제 보니 완전 여우네, 여우.’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프레사로 살아가면서 직접 요리를 한 적이 없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독립했으니 요리 실력도 키울 겸 슬슬 음식을 만들어 볼 때가 되긴 했다.
“네, 그렇게 해요.”
설마 못 먹을 음식을 만들기야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