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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화 (11/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화

‘갑자기 왜? 어쩌지?’

당장 이 숲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과 리카온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맞부딪쳤다.

리카온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리카온 씨, 정신 차려요. 의식을 잃으면 안 돼요.”

프레사는 먼저 리카온의 품에서 벗어났다.

리카온은 지지대가 사라지자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프레사는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체격 차이도 컸고 리카온의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탓에 프레사까지 넘어질 것 같았다.

프레사는 간신히 한 걸음 떼어내며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리카온이 들을 리 없겠지만, 프레사는 계속해서 괜찮다고 중얼거렸다.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를 어떡하지.’

그러나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리카온은 점점 더 무겁게 늘어졌고 숲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둘 다 들짐승의 먹이가 될지도 몰랐다.

프레사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전하?

프레사가 낯선 호칭에 앞을 바라보았다.

리카온의 기사 제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어디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사는 그의 등장에 안도했다.

제드는 서둘러 리카온을 부축했다.

“전하, 정신 차리십시오!”

프레사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났다.

다행히 제드의 체격이 크고 탄탄해서 리카온을 지탱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다.

프레사는 미안함이 담긴 눈으로 제드의 뒤통수를 응시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몸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 줄은 몰랐어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던 제드가 프레사를 돌아보았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다 이분께서 원하신 일이었으니까.”

리카온이 원하는 일.

고작 약초를 함께 캐는 것이?

프레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으나 제드가 다급히 앞으로 걸어가는 바람에 더는 묻지 못했다.

제드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빠르게 멀어졌다.

프레사는 그 뒤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저녁이 내려앉기 시작한 숲을 빠져나오자 리카온과 프레사의 집이 보였다.

리카온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가까운 숲으로 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분명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프레사는 괜히 리카온을 끌고 온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착각했다.

리카온이 힘든 티를 크게 내지 않아 가볍게 여긴 것이다.

‘무사해야 할 텐데.’

어느새 리카온의 집 현관이었다.

제드는 익숙하게 문을 열더니 프레사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리카온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프레사는 단호한 눈으로 제드를 마주 응시했다.

“제 집으로 가요. 도울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요.”

“의사를 불러야 합니다.”

“약을 만들 줄 알아요. 리카온 씨에게 들으셨겠지만, 약방 허가도 받았고요. 상처 치료도 해봤어요. 부탁할게요, 제드 씨.”

제드의 눈동자가 살짝 찌푸려졌다.

“으윽…….”

리카온이 인상을 쓰며 신음을 흘렸다.

제드는 시간을 더 잡아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프레사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보다 먼저 앞서 달려간 프레사는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제드가 황급히 집으로 들어섰다.

프레사는 침실을 가리켰다.

“저쪽에 눕혀 주세요.”

제드는 리카온을 침대에 눕힌 후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리카온에게 먹였다.

“으, 으, 윽…….”

리카온이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분명 몸은 불덩이인데 안색은 창백하게 질린 채였다.

프레사는 침을 삼키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병인가요? 확실하게 말해 주셔야 해요.”

제드가 약병 뚜껑을 닫으며 대답했다.

“마물의 독입니다.”

프레사의 눈이 커졌다.

마물의 독이라니.

책으로 공부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누군가 마물의 독으로 앓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게 바로 리카온일 줄은 더욱.

프레사의 시선이 제드가 들고 있는 약병으로 향했다.

“그 약은 뭐죠?”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아직 해독제를 찾지 못해서…….”

제드가 말끝을 흐렸다.

해독제만 구할 수 있다면 리카온이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프레사는 두 눈을 반짝 빛내며 제드를 빤히 응시했다.

“정확히 어떤 마물의 독인가요?”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제가 해독제를 만들어 볼까 해서요.”

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레사를 영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프레사는 자신이 있었다.

무슨 마물의 독인지만 알아낸다면 반드시 해독제를 만들어 낼 자신이.

정확히 말하자면, 해독제의 주재료가 될 해독 약초를 키울 생각이었다.

제드는 잠깐 고민했다.

프레사는 재촉하지 않고 끈기 있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리카온이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꾹 다물려 있던 제드의 입술이 열렸다.

“드래곤입니다.”

프레사는 조금 당황했다.

‘드래곤은 멸종하지 않았나?’

드래곤은 사악한 마법을 다루며 인간을 살육해 온 고등 생물이었다.

마지막 드래곤이 불과 1년 전, 제국의 마탑주의 손에 심장을 빼앗기고 죽었다.

그렇다면 리카온은 그보다 더 훨씬 이전에 중독되었을 텐데.

긴 시간 동안 이렇게나 괴로워하며 살아왔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제드가 리카온의 상의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허리를 꽁꽁 싸맨 붕대를 풀었다. 왼쪽 옆구리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레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상에.”

너무 끔찍했다.

새카만 독이 벌어진 상처 틈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검은색 연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분명 상처가 아문 지 한참이 된 듯한데, 그 틈은 하나의 또 다른 공간처럼 벌어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이런 몸으로 움직인 건가요?”

“예. 고집이 참 센 분이십니다.”

제드가 쓰게 웃었다.

프레사는 조금 더 바짝 다가가 리카온의 상처를 꼼꼼하게 살폈다.

‘상처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 이 독만 해결한다면 얼마든지 나을 수 있을 거야.’

프레사는 머릿속으로 약초 몇 가지를 떠올렸다.

어렵게 구한 해독제 조제법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프레사는 결연한 얼굴로 제드를 쳐다보았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제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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