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6화
소프 백작 가문이 발칵 뒤집혔다.
백작이 거의 전 재산을 들여 뛰어들었던 재개발 사업이 사기를 당했다.
어쩐지 사업이 너무 허황하더라,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했다, 이제 백작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용인들이 모여서 수군거렸다.
백작 부인은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정신을 놓고 쓰러졌다.
이 일을 해결해야 할 백작은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혔다.
재판을 앞둔 그가 장남 엘리아스에게 ‘가문을 부탁한다’라고 말했을 때, 엘리아스는 이를 갈았다.
엘리아스는 아버지의 뜻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시골에서 큰 금광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백작과 백작 부인, 그리고 제롬은 욕심에 눈이 멀어 투자를 강행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이러다간 소프 백작 가문이 무너지게 생겼다.
엘리아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아버지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고소장과 은행의 독촉장, 백작을 믿고 함께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협박 편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응?”
“형, 형이 해결할 수 있는 거지?”
“제롬 오빠는 조용히 좀 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닥치지 못해?”
에이미와 제롬은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쉬지 않고 엘리아스를 재촉했다.
로완 길레스피는 하필 신혼여행 중이었고, 가까운 귀족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엘리아스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사가 있었다면.’
그래, 프레사가 로완 길레스피와 무사히 결혼만 했었더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로완은 기꺼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이 빚을 감당해 줬을 테니까.
그가 지금 앨리샤에게 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찌나 극진한 애정인지.
“제롬.”
엘리아스는 고개를 들어 검밖에 모르는 무식한 남동생을 응시했다.
에이미와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하던 제롬이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 불러?”
“길레스피 백작을 직접 만나고 와야겠다.”
“형이?”
“아니, 너 말이다.”
단호한 엘리어스의 말에 제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신혼여행 중이잖아. 파고 마을인지, 파로 마을인지 이상한 곳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제롬이 우물쭈물하며 내키지 않는 듯 말끝을 흐렸다.
엘리아스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찡그렸다.
“당장 찾아가서 무릎을 꿇든, 울든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 이대로 길거리에 나앉고 싶지 않으면.”
엘리아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제롬은 마지못해 힘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젠장, 형만 아니었어도 패 버리는 건데.’
속으로는 엘리아스를 욕하면서도 차마 대들 용기는 없었다.
이럴 때 마음껏 화풀이해도 되는 프레사가 살아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터.
제롬은 입술을 꽉 깨물며 집무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