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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7화 (17/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7화

리카온은 프레사를 침대로 옮겼다.

놀라서 달려온 제드에게는 약방의 문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프레사는 잠든 것처럼 누워 있었지만,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마는 뜨거웠고 종종 앓는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리카온은 이러한 증상을 지겨울 만큼 겪어 보았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았다.

그런데도 프레사는 한 번도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 아직 아프다며 거짓말이나 하는 리카온을 걱정할 뿐이었다.

양심, 죄책감.

그 단어는 지금껏 리카온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이토록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은 왜…….”

홀로 다 짊어지려고 하는 거지?

리카온이 지금껏 병약한 도련님 연기나 하며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는데도, 프레사는 그를 완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다만 아픈 사람이니 그 선량한 성격 때문에 외면하지 못한 거겠지.

속이 쓰렸다.

프레사는 분명 상태가 좋지 않았다.

증상을 보면 리카온이 중독되었을 때 초기와 비슷했다.

‘죽은 척 위장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독을 마신 건가?

프레사라면 분명 해독제를 만들 능력이 있을 텐데 어째서.

제국에서 달려온 의사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온통 의문이었다.

리카온은 프레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프레사의 이마 위에 달라붙은 저 회색의 솜뭉치 또한 심상치 않았다.

처음에는 병균 덩어리처럼 생명력을 빼앗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오히려 정령에 가까웠다.

‘프레사 소프가 정령사였던가?’

정령은 계약자 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으니 리카온은 볼 수만 있을 뿐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답답했다.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상황, 리카온이 느끼는 감정, 프레사를 향한 두려움까지 전부.

그때 제드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리카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 폐하께서 귀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제드는 작은 영상구를 들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 호출이라니, 리카온의 형은 고작 며칠을 기다려 주지 못했다.

리카온은 손을 뻗어 식은땀을 흘리는 프레사의 이마를 문질러 닦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 제드.”

“하지만 전하…….”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리카온은 싸늘하게 중얼거린 후 입을 도로 다물었다.

제드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침실을 떠났다.

“일어나, 프레사.”

적어도 다녀오겠다는 말은 남기게 해줘요.

리카온은 두 눈을 감고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때 프레사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리카온은 재빨리 다정하고 좋은 이웃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레사, 정신이 들어요?”

“아……. 리카온 씨?”

프레사의 흐릿한 눈동자가 리카온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초점이 묘하게 어긋나서 리카온을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지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프레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없이 대꾸했다.

“아, 아뇨. 약 챙겨 먹는 걸 깜빡했어요. 미안해요. 놀라셨을 텐데.”

프레사는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사과부터 했다.

리카온은 그 점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누워 있어요. 열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 보이지 않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리카온은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내뱉고 입을 닫았다.

프레사의 눈이 조금 커졌다.

“화나셨어요?”

“그건 당신이 자꾸 픽픽 쓰러지니까…….”

“제가 할 말을 하고 계시네요. 갑자기 쓰러지는 건 아직 리카온 씨를 못 따라갈 것 같은데.”

프레사가 장난스럽게 내뱉으며 또 가짜 미소를 지었다.

리카온은 무슨 말을 더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약 잘 챙겨 먹어요. 넘어져서 머리라도 부딪쳤으면 어쩌려고.”

“리카온 씨가 때맞춰 붙잡아 준 덕분에 멀쩡하네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오늘 약방 영업은 무리겠어요. 기껏 약도 다 만들어 뒀는데.”

프레사가 중얼중얼 약방 걱정을 늘어놓았다.

리카온은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어디가 아픈지 말해 주면 안 됩니까? 난 다 보여줬잖아. 흉측한 상처까지 전부.”

그런데 왜 당신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지, 기이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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