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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26화 (26/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26화

‘알버트 씨가 연고를 사용한 거야.’

솔직히 도박이나 다름없는 계획이었다.

다행히 알버트는 자라라 머리털 연고를 사용했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알버트의 머리숱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렛 영주는 흔쾌히 연고 판매를 허가했다.

알버트는 그 이야기를 전해 주러 왔었는데, 두 배는 풍성해진 그의 머리카락을 보며 프레사와 리카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리숱이 늘어난 알버트는 묘하게 인상이 부드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낯설기만 한 미소는 덤이었다.

‘역시 머리숱은 소중하구나. 그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게다가 데이지의 약이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어린 데이지가 이제 햇빛 아래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다.

‘알버트 씨 덕분에 연고 홍보 효과도 제대로 봤고.’

길레스피 백작 부부의 신혼여행이 끝났다는 소문을 듣고, 약방 영업을 다시 시작한 바로 오늘 아침.

한정판으로 만든 탈모 치료제가 순식간에 다 팔렸다.

‘이 작은 마을에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띤 반응이었다.

다행히 어제 제드가 돌아와서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제드는 오자마자 훌륭한 약방의 일꾼이 됐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엄청난 약을 개발하셨군요, 레사 님.”

제드는 이제 리카온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배를 타고 오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와 레사가 꽤 고생했지, 제드.”

반면 리카온은 벌써 놀랄 만큼 안색이 밝아졌다.

물론 아직 여기저기 아프다며 꾸준히 약을 받아 가기는 했지만.

프레사는 판매대를 정돈하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내일은 더 바쁠 텐데 괜찮겠어요? 아침 일찍 박하수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거든요.”

프레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모 연고에 박하수를 하나씩 끼워 팔았다.

서비스라고 말은 했지만, 이것도 판매를 위한 전략이었다.

아마 조만간 박하수를 찾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놀라울 만큼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었다.

“직원은 사장님 말에 따라야죠.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좋은데요.”

리카온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제드는 아니었다.

그는 그늘이 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침 일찍이라면 몇 시부터 시작입니까?”

“아마 5시쯤?”

“그건 아침이 아니라 새벽…….”

제드가 반박했으나 리카온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말이 끊어졌다.

제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프레사는 제드와 리카온을 향해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내일 새벽부터 일해야 하니까요.”

제드는 곧장 앞치마를 벗고 나갈 기세였으나 리카온은 아니었다.

그는 제드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프레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레사, 저녁 같이 먹을래요? 신약 판매 성공 기념으로.”

“음.”

프레사는 일부러 고민하는 척했다.

리카온이 눈매를 아래로 늘어트리며 꼬리 내린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싫어요?”

프레사의 생각이 길어지자 리카온이 조급히 물었다.

프레사는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당신이요?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리카온의 눈이 커졌다.

마치 프레사가 아주 큰 결심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프레사는 묘하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믿어지지 않으세요?”

“아, 그럴 리가. 그냥 좀 기뻐서.”

리카온이 언제 놀란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외모였다.

회복되는 중이라서 그런지, 리카온은 이제 아예 반짝이는 햇살 같았다.

어딘가 처연하고 사연 있어 보이던 때도 매력이 넘쳤지만, 지금은 대놓고 흘리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프레사는 그 반짝임을 감당하기 힘들어 시선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제드 씨도 같이 오세요.”

“……나만 초대하는 게 아닙니까?”

왜 이렇게 실망하는 티를 낸담.

“제드 씨도 돌아오자마자 고생했으니까요. 대신 준비 시간이 좀 걸릴 예정이니 넉넉하게 오세요.”

리카온은 여전히 실망한 기색이었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따 봐요, 사장님.”

리카온이 프레사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며 씩 웃더니 약방을 떠났다.

‘어휴. 정말 아무 데에서나 저렇게 웃고 다니면 안 될 텐데.’

사람 딱 홀리기 쉬운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니까.

프레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서 오늘의 수입을 확인했다.

‘파로 마을의 고객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마을에도 유통해야 하는데…….’

대충 알아본 바, 이 마을에는 따로 유통할 방법이 없었다.

외부의 업체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럼 또 수수료의 문제가 생겼다.

‘상단이나 길드를 통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기는 해.’

그렇다고 아무 곳은 또 곤란했다.

적당히 신뢰할 수 있는 곳.

‘사업은 참 힘들구나.’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 하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미리 대비했어도 실제로 부딪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대화할 시간도 없이 바쁘더구나. 나는 약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얘기할 상대도 너뿐이다. 얼마나 심심한지 아느냐.」

종일 조용히 약방을 둥둥 떠다니던 리스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프레사는 그제야 그의 존재를 떠올렸다.

너무 바빠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전혀 신경을 써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미안해요, 리스 님. 오늘 너무 바빴어요.”

「솔직히 내 도움도 크지 않았느냐, 레사. 조금 서운하구나.」

리스가 우중충한 잿빛이었다.

프레사의 관심을 받지 못해 우울한 색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위엄 있는 정령처럼 굴더니 이제는 감정 기복이 심한 노인 같았다.

프레사는 두 손으로 리스를 감싸듯 붙잡고 눈을 맞췄다.

“내일은 식물을 많이 심을게요. 마침 약초가 더 필요하거든요.”

「……정말이냐?」

“그럼요. 제가 감히 거짓말을 하겠어요? 위대하신 세계수의 정령님께?”

프레사가 과장되게 치켜세우자 리스의 털빛이 옅은 분홍색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것 같았다.

「흠, 흠. 그렇다면 오늘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마. 대신 약속 꼭 지켜야 한다.」

“물론이에요.”

리스는 프레사의 손을 스르륵 빠져나가더니 정수리에 자리 잡았다.

그때 누군가 현관을 두드렸다.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뒤늦게 찾아온 손님인가?’

프레사는 현관을 향해 질문했다.

“누구세요?

“까다로운 도토리…… 아니, 레사 님. 저예요. 스칼라 미치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내 집 마련 길드의 스칼라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기억 속에 또렷했다.

프레사는 짤랑짤랑 돈을 세어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서 문을 열었다.

스칼라가 활짝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레사 님! 오랜만이네요! 마을 적응은 잘하셨나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무척 기쁘답니다!”

“네, 덕분에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스칼라가 소란스럽게 안부를 물었으나 프레사는 단호하게 잘랐다.

지난번처럼 얼떨결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스칼라는 프레사의 싸늘한 반응에 상처를 입은 듯했지만, 프레사는 철저히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스칼라는 프레사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서둘러 용건을 밝혔다.

“조금 늦었지만, 길드 마스터께서 직접 사과를 전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지난번 이사 관련으로 문제가 살짝 있었잖아요.”

“길드 마스터님이요?”

내 집 마련 길드 마스터와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딱 한 번 마주쳤다.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레사의 머릿속으로 아주 좋은 계획이 스쳐 갔다.

프레사는 스칼라를 향해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전 언제든 괜찮다고 전해 주실래요? 빠를수록 좋다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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