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1화
앨리샤가 돌아가자마자 제롬과 에이미가 엘리아스를 찾아왔다.
엘리아스는 나잇값도 못 하는 동생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걸 알아차릴 만큼의 눈치조차 없어서 곧장 질문을 꺼냈다.
“형, 앨리샤가 뭐래?”
“언제까지 예의도 모르고 길레스피 백작 부인을 그따위로 부를 거냐, 제롬.”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오빠! 길레스피 백작님을 설득해 주겠대? 응?”
싸늘한 엘리아스의 지적에 에이미가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반면 제롬은 금세 기가 죽어 시무룩해졌다.
엘리아스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레스피 백작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마을에 사람을 보내야겠다.”
“……뭐? 거기는 왜?”
제롬이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물었다.
엘리아스와 에이미가 동시에 그를 응시했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앨리샤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데? 게다가 사람을 쓰려면 돈을 써야 하잖아.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아차 싶은 제롬이 헛기침을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프레사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거 아니야?’
프레사에게 잡힌 약점 때문에 제롬은 지금껏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고, 프레사가 그 탓을 제롬에게 돌리게 되면 곤란했다.
‘젠장, 그 검만 내다 팔지 않았어도 그 계집애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텐데!’
제롬이 안절부절못하며 엘리아스의 눈치를 살피는데, 다행히 엘리아스가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길레스피 백작이 그곳에 다녀온 후로 어딘가 이상해졌다더군. 그 이유를 알아내면 백작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설득이 아니라 협박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겉으로 둘러대기에 적당한 이유였다.
동생들에게까지 그 속내를 숨기는 것은 이들을 믿지 못해서였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만큼 엘리아스는 제 동생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
엘리아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제롬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 그런 우연은 한 번으로 족했다.
아무리 마을이 작다고 해도 프레사를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롬은 창백하게 질린 채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는 엘리아스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반박하지 못했다.
엘리아스가 그런 에이미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이미의 가느다란 목에 걸린 목걸이로.
“네 장신구를 팔아야겠다, 에이미.”
“뭐? 안 돼!”
에이미가 날카롭게 소리치더니 목에 건 보석 목걸이를 감추려는 듯 뒤로 주춤 물러났다.
엘리아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길레스피 백작이 우리를 돕겠다고 나서면 이 정도 목걸이쯤은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에이미.”
엘리아스의 냉정한 눈길에 에이미가 칭얼거림을 멈추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이나 더 시간을 끈 후에야 겨우 그러겠다고 답했다.
제롬은 제롬대로 혼란스러웠고, 아끼는 장신구를 빼앗긴 에이미는 에이미대로 착잡했다.
영 찝찝하기는 엘리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그 작고 초라한 마을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엘리아스는 에이미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 내려다보며 부디 이 도박에 소득이 있기를 바랐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