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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5화 (35/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5화

약방 내부가 다소 어수선한 탓에 프레사와 아이작은 장소를 응접실로 옮겼다.

따뜻한 약차를 내온 프레사는 아이작이 내민 계약서를 확인했다.

“잘 살펴보세요. 나중에 사기당했다는 둥 딴소리하지 마시고.”

아이작이 높낮이 없는 말투로 내뱉었다.

‘저 말투만 아니었어도 분명 호감이었을 텐데.’

프레사는 볼을 긁적인 뒤 계약서 조항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프레사는 계약서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들어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비율 언급이 없네요. 어떻게 된 건가요?”

“그건 지금 정할 거니까요. 어느 정도를 원하세요?”

아이작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도리어 프레사에게 되물었다.

프레사는 아이작 쪽에서 비율을 제시할 줄 알았기에 조금 당황했다.

보통 이 세계에서 계약 비율이 어떤지 미리 살펴보지 않아서였다.

‘준비가 부족했네.’

하필 리카온과 제드가 없으니 곤란했다.

프레사가 고민에 빠지자 아이작이 재차 말했다.

“독점 계약 6개월, 비율 9:1. 어떠십니까?”

“……9:1이요?”

프레사가 눈을 크게 떴다.

“제가 9인가요?”

“네. 대신 방금 말했듯 독점 6개월입니다. 지원금 겸 계약금도 넉넉히 드릴 거고요.”

아이작이 내건 비율은 프레사조차 예상하지 못할 만큼 높았다.

심지어 계약금까지 주겠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물론 독점 기간이 있기야 했지만, 6개월 정도라면 그리 길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 주시는 건가요?”

“가능성, 당신의 사업에는 그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까 그 일도 있었고요.”

아이작은 눈가를 찡그리며 유리병이 담긴 가죽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저 흉측한 것을 꺼내 줬다는 데에서 추가 점수를 얻은 모양이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 위에 드리운 불쾌함이 조금 더 짙어졌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 여기.”

아이작은 어느새 계약서에 비율과 계약금 내용을 추가로 기재한 후 프레사에게 돌려주었다.

프레사는 계약서에 적힌 비율과 조건을 한 번 더 꼼꼼하게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계약해요.”

“여기 서명해 주세요. 그리고 한 부 더.”

프레사는 아이작이 내민 펜으로 간결하게 서명했다.

아이작이 그 아래에 서명을 끝낸 후 각각 한 부씩 나누어 가졌다.

완벽한 계약 성사였다.

프레사는 아이작을 향해 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악수라도 하실래요?”

“아.”

아이작이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프레사의 하얀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프레사는 얼른 악수하자는 의미로 손을 탈탈 흔들었다.

몇 초 동안 고민하던 아이작이 곧 프레사의 손을 가볍게 마주 잡았다.

“이제 동업자네요, 레사 님. 잘 부탁드립니다.”

“네, 케이드 씨.”

“그냥 이름으로 부르세요.”

아이작의 말에 프레사가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거두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이건 사업이니 예의를 갖추고 싶어요.”

“……뭐, 마음대로 하세요.”

아이작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프레사보다 조금 느리게 손을 거두었다.

‘리카온 씨에게 얼른 이 소식을 알리고 싶어.’

오늘 중으로 돌아올까.

프레사는 자연스럽게 리카온을 떠올렸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당분간은 무척 바쁠 것이다.

‘그리고 리스 님과 나눌 얘기도 있고.’

프레사는 계약서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리스가 사라진 지하실 쪽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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