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7화 (37/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37화

길레스피 백작 가문의 분위기는 며칠 내내 가라앉은 상태였다.

로완과 앨리샤는 각방을 썼으며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프레사가 연회에 나타난 후부터 시작된 냉전이었다.

늘 사랑스러운 부부였던 두 사람의 사이가 싸늘해지자 사용인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로완은 설마 프레사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기에 당황한 탓에 앨리샤를 달래는 데에 실패했다.

앨리샤는 앨리샤대로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로완이 자신에게 무언가 감추고 있다고 예상하기야 했지만, 설마 그게 프레사 소프와 관련된 일일 줄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로완은 앨리샤를 사랑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숨겼을까?

‘설마 로완이 프레사를……’

그럴 리가 없었다. 로완은 앨리샤가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속삭여 왔다.

프레사가 끼어들 틈은 조금도 없다는 듯, 앨리샤만이 전부라고.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로완은 앨리샤를 달래다 말고 체념하기까지 했다.

‘고작 조금 고집을 부렸다는 이유로, 말도 안 돼.’

원래 로완은 앨리샤가 조금만 토라져도 종일 비위를 맞춰 주곤 했었다.

지금은 더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지도 않았다.

파로 마을에서 프레사를 만났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서 말이다.

‘설마 프레사 소프의 말을 믿는 거야, 앨리샤?’

‘당신은 파로 마을에서부터 이상하게 굴었어요! 제가 뭘 믿어야 하나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믿었을 거야. 실망이군.’

로완과의 대화를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로완은 도리어 앨리샤 탓을 했다.

지금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이 누군데 그토록 뻔뻔하게 피해자인 척이라니.

아침 식사를 거른 앨리샤는 창문을 활짝 열고 정원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프레사 문제를 해결하면 로완과의 사이는 저절로 나아질 것이다.

앨리샤의 싸늘한 눈동자가 천천히 눈꺼풀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어떻게 죽은 척 위장했을까? 게다가 그레나딘 대공과 약혼한 사이라니.’

로완에게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굴던 프레사가 그새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해서 제국으로 떠난다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앨리샤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로완의 애정을 되찾고자 했다.

그녀에게는 로완의 명예와 부, 넘치는 애정이 필요했으므로.

‘하지만 프레사는 로완에게 집착했어. 어쩌면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몰라.’

앨리샤는 죽음을 위장하기까지 한 프레사를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는 벌이기 힘든 일이야. 도움을 준 누군가가 있을 거야.’

소프 저택에서 프레사와 가까이 지낸 사람이 누구였더라.

앨리샤는 한때 소프 가문의 하녀로 일했기에 그 저택의 사정이라면 꽤 잘 알고 있었다.

‘로렌. 유일하게 프레사와 가까운 사람이었어.’

지난번 소프 저택에 다녀왔을 때 분명 로렌이 차를 내왔었다.

‘그 여자가 프레사의 약점일지도 몰라.’

만약 프레사가 정말 로완을 노린다면 로렌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유리한 패는 많이 들고 있을수록 좋았다.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운 앨리샤는 잠시 말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화는 나지만,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어. 로완과 화해해야겠어.’

앨리샤는 억지로 입매를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