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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46화 (46/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46화

“무슨 짓을……!”

엘리아스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프레사가 시약병 뚜껑을 따고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그리고 두꺼운 창살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리카온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콰직.

프레사가 붙잡은 창살이 종이처럼 양옆으로 구겨졌다.

“와.”

급하게 만드느라 미처 실험해 볼 시간이 없어서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프레사도 놀랐다.

물론 인간의 신체에는 한계가 있기에 고작 30초가 최대였지만, 이 정도 창살을 넓히기에는 충분했다.

한 번 더 힘을 주자 성인 남성 한 명 정도는 빠져나올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미친…….”

에이미의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호호 웃으며 내숭을 부리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가느다란 프레사의 손목에서 이런 괴력이 나오는 걸 보면 그 누구라도 침착하기 힘들 것이다.

프레사 본인과 리카온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엘리아스는 유령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얼른 나와, 로렌.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네.”

프레사가 로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얼떨떨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던 로렌이 조심스럽게 그 손을 맞잡고 창살 너머로 빠져나왔다.

“아가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건 이따 설명해 줄게.”

프레사는 지저분해진 로렌의 드레스를 탁탁 털어 주었다.

그리고 그새 핼쑥해진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속상한 투로 말했다.

“설마 이 인간들이 밥도 안 준 거야? 왜 이렇게 말랐어?”

“그, 그게…….”

로렌이 힐끔 엘리아스와 에이미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여전히 그들의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프레사는 두 손으로 로렌의 볼을 감싸듯 쥐고서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얼른 돌아가서 맛있는 걸 좀 먹여야겠어.”

나직이 중얼거린 프레사가 천천히 손을 거둔 후에 엘리아스 쪽으로 돌아섰다.

“정말 잔혹한 처사네요. 어떻게 저택을 위해 평생 일한 사용인을 감금한 것도 모자라 굶기기까지 해? 이 일은 잊지 않을 거예요.”

“……프레사, 한 번 더 생각해 봐라. 너도 소프 가문의 사람이다. 이대로 가문이 무너지면 너까지 곤란해질 거란 말이다.”

엘리아스는 프레사의 말은 흘려넘기면서 사과는커녕 또 같은 말만 반복했다.

프레사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어차피 이들을 위한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기에 오늘은 괜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이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서. 그럼 다음에 봐요.”

생각을 가다듬은 프레사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로렌의 손을, 다른 손에는 리카온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리카온이 묘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두 사람이 미리 정한 신호였다.

“프레사!”

엘리아스가 잔뜩 화난 음성으로 으깨듯 내뱉으며 손을 뻗었으나 리카온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순간, 세 사람은 순식간에 지하 감옥에서 사라졌다.

엘리아스의 절박한 손은 허공을 짚으며 아래로 툭 떨어졌다.

“젠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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