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56화 (56/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56화

앨리샤는 홀로 저택에 돌아온 후부터 며칠째 초조하고 불안했다.

연회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로완의 뺨을 내리친 건 그렇다고 쳐도, 프레사를 처리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낸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서였다.

‘왜 아직 연락이 없는 거지?’

분명 처리한 후에 남은 의뢰 대금을 받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 유명한 살인청부업자가 설마 귀족 여자 한 명 처리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설마 실패한 건가?’

프레사 소프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을 것이다.

늘 옆을 지키던 그레나딘 대공은 제국으로 떠났고, 왕성 연회에 새로 데리고 나타났던 아이작 케이드라는 남자는 길드장일 뿐 이렇다 할 전투 능력은 없다고 들었다.

프레사 역시 시시한 약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제외하면 힘없고 약한 귀족 아가씨였다.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자라고 했어.’

그러니까 조금 늦어지는 것뿐일 터였다.

앨리샤는 애써 불안함을 억누르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미 차갑게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침실의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꺄아악!”

앨리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넘어졌고 찻잔이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귀부인! 괜찮으십니까?”

침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위 기사가 놀라서 달려왔다.

앨리샤는 깨진 유리 조각에 얼굴과 팔, 목을 형편없이 베인 채 덜덜 떨었다.

건장한 호위 기사가 재빨리 깨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창문을 깬 것은 틀림없었다.

호위 기사는 겁에 질린 백작 부인을 힐끔 쳐다보고 무엇이 창문을 깨트렸는지 알아내기 위해 침실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탁자 옆에 떨어진 작은 수정구를 발견하고 들어 올렸다.

그가 수정구를 집어 들자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프레사 소프를 죽이라고 당신을 고용했죠?

-길레스피…… 백작 부인…….

“이게 무슨…….”

호위 기사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눈을 크게 뜨며 앨리샤와 수정구를 번갈아서 보았다.

앨리샤 역시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창백하게 질린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실패한 거지? 이걸 왜 나한테 보낸 거야?’

이 밤중에 누가 앨리샤의 침실 창문으로 수정구를 던진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프레사가…… 전부 다 알게 됐어. 이건 경고인 걸까?’

아니. 프레사가 본인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까지 고용한 앨리샤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로완이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나, 난 어떡하지?’

앨리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호위 기사의 손에서 수정구를 빼앗아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단단한 수정구는 깨지지 않고서 같은 목소리만 반복적으로 송출했다.

-누가 프레사 소프를 죽이라고 당신을 고용했죠?

-길레스피…… 백작 부인…….

“그만, 그만해!”

앨리샤가 발작처럼 비명을 지르며 연신 수정구를 쾅쾅 내리찍었으나 금조차 가지 않았다.

보다 못한 호위 기사가 그녀의 손에서 다시 수정구를 빼앗아 갔다.

“진정하십시오, 귀부인.”

앨리샤는 힘없이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지듯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수정구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증거를 굳이 앨리샤에게 넘겨줄 필요는 없었으므로.

프레사에게 또 다른 수정구가 있을 테니 이걸 부순다고 진실이 감추어질 리도 없었다.

“흐흑…… 이게 다 프레사 때문이야……. 돌아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언제 왔는지 로완이 침실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앨리샤는 깜짝 놀라 서둘러 수정구를 빼앗아 감추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호위 기사가 예상했다는 듯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는 명목상 앨리샤의 호위 기사이기 전에 로완의 부하였으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수정구에서 다시 프레사와 암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프레사 소프를 죽이라고 당신을 고용했죠?

-길레스피…… 백작 부인…….

“누가…… 누구를 죽여? 앨리샤 루미스, 이게 무슨 뜻이지?”

로완이 험악한 표정으로 저벅저벅 들어와 앨리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단단한 힘에 앨리샤가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프레사를 죽이려고 했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다, 당신이…… 그 여자를 입에 올리지만 않았어도…… 그 여자를 다시 사랑한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이런 일은 없었어! 이게 순전히 내 탓이야? 아니야!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당신이!”

앨리샤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로완의 가슴을 거세게 때렸다.

“하.”

로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리더니, 호위 기사에게 수정구를 건네받고선 앨리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혼하자.”

로완 길레스피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내뱉었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단호한 태도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란 앨리샤를 향해 쐐기를 박았다.

“백작 부인이 살인 청부라니, 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따로 없군. 당신처럼 끔찍한 사람이 내 가문을 망치게 둘 수는 없어, 앨리샤.”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로완. 나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헤어져요? 우리는 특별하잖아요!”

앨리샤가 로완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지만, 로완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아무런 대꾸도 없이 침실을 떠났다.

그 뒤를 호위 기사가 따라갔고 앨리샤는 난장판이 된 방에 홀로 남겨진 채 간헐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프레사 탓이다.

“아니, 아니야.”

프레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건 전부…….

“로완 길레스피, 당신 탓이야.”

앨리샤는 두 눈을 차갑게 빛내며 복수를 다짐했다.

절대 혼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