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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60화 (60/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60화

프레사의 짤막한 용건이 끝났는데도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아 사방이 조용했다.

로렌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프레사를 쳐다보기만 했고, 리카온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낯이었다.

제드는 리카온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정말 갑작스럽습니다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아이작이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그 역시 꽤 당황한 듯했다.

프레사는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슬슬 제국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려고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직접 다녀오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칸체르의 황제 이야기는 비밀이었기에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언제 돌아오시는 건가요, 아가씨. 영영 떠나시는 건 아니죠?”

로렌이 프레사의 손을 꼭 붙잡으며 울먹였다.

사실 언제 돌아올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황제의 마력 중독이 빨리 치료된다면 그만큼 빨리 돌아올 수 있을 테고, 아니라면 오래 걸릴 테니까.

프레사는 로렌을 안심시키려고 다정히 대답했다.

“되도록 빨리 돌아올게, 로렌.”

“……네, 아가씨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릴게요.”

로렌은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프레사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녀 역시 당분간은 소프 저택을 관리하느라 바쁠 터였다.

프레사는 소프 저택 그대로 로렌이 사는 건 원하지 않았기에 인테리어를 새로 싹 바꾸기로 했다.

로렌이 원하는 대로, 로렌이 좋아하는 분위기의 저택으로.

공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으니 로렌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로렌에게는 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로렌, 내가 없는 동안 약방을 맡아줄 수 있어? 약초를 돌보아줄 사람이 필요해.”

“물론이에요, 아가씨. 제가 화초는 또 잘 돌보잖아요. 맡겨 주세요!”

로렌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 프레사가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케이드 씨.”

“그럼 약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 아이작이 질문을 던졌다.

동업자로서 가장 궁금한 내용이었을 터다.

사실 프레사는 이 약방을 무척 아꼈기에 이대로 떠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프레사는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었고, 이 작을 마을에만 머물러서야 그 소망을 이루기 힘들었다.

어쩌면 이것 또한 새로운 기회인 셈이었다.

“당분간 약방은 운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국에 가서도 약을 만들 수는 있으니까, 계약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점은 약속할 수 있어요. 리카온 씨와 제드 씨도 함께 가니까요.”

아직 계약한 6개월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프레사는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심지어 아이작은 채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파릇파릇한 신입 직원이었다.

동업자를 지켜보기 위해 직원으로 일한 거겠지만, 어쨌든 그가 불쾌해한다 해도 프레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뭐, 그런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레사 님께서 막대한 위약금을 무르면서까지 계약을 위반하실 생각은 없으셨을 테니까요.”

잠시 침묵하던 아이작이 냉정한 투로 말했지만, 그 단어 선택에서 묘한 신뢰와 장난기가 느껴져 프레사는 안심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케이드 씨.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프레사가 아이작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두 눈을 반짝이자 뒤쪽에 서 있던 리카온이 미간을 좁혔다.

“레사, 내 상태도 확인해야 한다면서요.”

마치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다소 불퉁한 어조였다.

프레사는 그제야 아이작의 손을 놓고 리카온을 돌아보았다.

“아, 그렇죠. 리카온 씨의 집으로 가요. 오랜만에 상처부터 살펴야겠어요.”

「저 인간이 질투하는구나.」

점잖게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리스가 프레사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질투라니, 그럴 리가.’

프레사는 리스가 또 나이 든 노인네처럼 오지랖을 부린다고 치부하고 말았다.

「둘이 너무 붙어 있지 말아야 한다!」

약방을 떠날 수 없는 리스는 현관 앞까지만 따라와 어이없는 발언을 하고 포르르 날아서 돌아갔다.

프레사는 민들레 홀씨 같은 그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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