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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66화 (66/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66화

쾅쾅쾅!

누구지? 프레사는 다급한 노크 소리에 서둘러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붉은색 머리카락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와 곧장 눈이 마주쳤다.

“당신이 마탑주와 함께 온 약제사지?”

“네, 그런데 누구…….”

마법사인가?

짙은 남색의 로브 차림인 걸 보면 이 탑에 소속된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남자는 프레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둘러 재촉했다.

“설명할 시간 없어. 당장 약이 필요해.”

“무슨 약이요?”

남자가 짙은 녹색 눈으로 프레사를 빤히 내려다보며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라면 만들기 어려운 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염증이 어느 정도인지, 증상이 어떤지, 열은 있는지 없는지 세세한 확인이 필요했다.

프레사는 다급한 남자와 달리 차분하게 필요한 정보를 요구했다.

“일단 약을 먹을 사람의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상태에 따라 쓰이는 약이 다르니까요. 환자는 어디에 있나요?”

“……이쪽으로.”

남자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서 걸어 나갔다.

프레사는 비상용으로 뒀던 약 여러 개를 바구니에 담아 챙긴 후 남자를 뒤따랐다.

급하긴 한 모양인지 남자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놓치지 않으려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다행히 마법으로 구성된 마탑답게 계단 몇 개를 밟아 올라가자 금세 목적지였다.

“여기.”

남자가 문을 열어젖히며 옆으로 비켜섰다.

프레사는 묘하게 긴장한 듯 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분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은 해주셨어야죠.”

안에 있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는 아니었다.

“끼잉…….”

늑대처럼 보이는 거대한 회색 짐승이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기르는 동물인 듯했다.

황당한 프레사를 이해시킬 생각은 없었는지 남자는 프레사를 재촉하기 바빴다.

“급했다니까. 그래서 쟤도 약 먹을 수 있어?”

“음, 사람이 먹는 것보다 농도를 약하게 조절하기는 해야 해요. 어렵진 않지만, 시간이 조금 걸려요.”

“얼마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기다려 주세요. 약제실에 가서 다른 약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전에 상태를 잠깐 봐도 될까요?”

프레사의 질문에 남자가 대답 대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 짐승은 늑대인지 개인지 정확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그 덩치가 꽤 컸으므로 조금 무섭기는 했다.

하지만 낑낑 아프다고 울고 있는 짐승을 모르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프레사는 천천히 침대로 다가가 털 여기저기를 헤집어 보았다.

‘열이 나는 건지 잘 모르겠어. 털이 있는 동물은 원래 체온이 높으니까…….’

그럼 어딘가에 상처가 있는 건가?

남자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 말은 염증이 눈에 보일 정도라는 의미였다.

“여기, 다쳤어.”

남자가 프레사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짐승의 배를 가리켰다.

프레사는 남자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아, 그렇네요. 다행히 심하지는 않아서 바르는 약으로도 충분하겠어요.”

짐승의 배 중앙에 살짝 찢어진 상처가 있었는데,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했다.

프레사는 이러한 상처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 어떻게 생긴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시덩굴에 찔렸나요?”

“……맞아. 사냥 도중 의욕이 지나쳐서 그랬어.”

남자가 짧게 긍정하며 사건의 경위까지 덧붙였다.

가시덩굴이 꽤 날카롭고 컸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며칠 약을 잘 바르면 나을 것이다.

“약제실에 다녀올 필요는 없겠어요. 연고를 챙겨왔거든요. 이건 동물에게 사용해도 되는 약이에요. 이 친구는 늑대인가요? 아니면 개?”

프레사는 바구니에서 상처용 연고를 꺼냈다.

양을 조절하기는 해야겠지만, 이 덩치를 보면 사람보다 오히려 더 많이 발라야 할 정도였다.

남자가 프레사의 질문에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개와 늑대도 구분할 줄 몰라? 당연히 늑대잖아.”

“미안하지만, 전 개와 늑대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요.”

남자는 처음부터 다소 시건방진 구석이 있었지만, 프레사는 소프 가문 덕분에 이런 사람에게는 면역이 있었다.

건성으로 되받아친 프레사는 낑낑거리며 우는 늑대의 상처를 소독한 다음 연고를 정성껏 발랐다.

그리고 연고 통을 닫아 남자에게 내밀었다.

“자주 발라 주세요. 상처가 물에 닿지 않도록 하시고요. 많이 아파하는 것 같아서 동물용 진통제를 만들어 올 테니 그것도 먹여 주셔야 해요.”

“……알겠어.”

“그럼 약은 제 사용인을 통해서 전달해 드릴게요. 이름을 알려주세요.”

남자는 연고 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프레사가 이름을 묻자 그제야 눈을 마주쳤다.

“클로.”

“당신 이름 말고요. 늑대 친구 이름이요. 환자 이름을 알아야죠.”

프레사의 말에 클로가 조금 당황한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치치야.”

“네, 그럼 약은 곧 드릴게요.”

프레사는 고개만 살짝 까딱해 보이고 바구니를 챙겨 그곳을 벗어났다.

클로가 하도 다급해 보이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러다 연회에 늦겠어. 리카온 씨가 기다릴 텐데…….’

마탑 중앙의 시계탑을 확인한 프레사는 조급히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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