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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70화 (70/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70화

프레사는 정확히 사흘 후부터 황실 약제부 보조 약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대충 설명을 듣기로는, 약제부에는 황실 수석 약제사가 단 한 명이고, 그 아래에 정식 약제사와 보조 약제사를 둔다고 한다.

수석 약제사는 보조 약제사에게 시험과 관련된 내용부터 실제 약제를 다루는 방식 등을 가르쳐 주는 소위 스승 역할이었다.

이후 보조 약제사 중 소수만이 제국법에 따른 약제사 시험에 통과해 황실의 정식 약제사가 되는 전형적인 승진 방식이었다.

‘가장 뛰어난 약제사가 수석 약제사가 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스승과 제자란 보통 관계와 조금 다르지 않던가.

스승이 사람인 이상 가장 아끼는 제자가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프레사는 그들에게 제국 출신도 아니었고, 갑자기 나타난 낙하산일 뿐이었다.

‘황제 폐하가 마력 중독을 앓았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리카온 씨 덕분에 약제부에 들어왔다고 생각할 게 분명해.’

물론 프레사가 이것저것 신약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역시 그런 상업적인 성공보다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가.

‘뭐, 어쩌겠어. 이미 하겠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걱정을 미리 해봤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프레사는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쉬기로 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여럿 남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꽤 지친 상태였다.

며칠 연속으로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이동한 것도 한 몫 더했다.

그래도 제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 정도 휴식은 괜찮지 않을까?

‘로렌에게 연락도 해야 하는데…….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제국에서 일하게 됐다고 하면, 분명 서운해할 거야.’

물론 마법 스크롤로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장소에 없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이 쓰이는 법이었다.

‘게다가 리스 님도 아직 저 상태고.’

창틀에 누운 채 밖을 내다보는 리스는 금방이라도 시들어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검은색에 가까운 잿빛의 털을 잔뜩 웅크려서 하찮고 작은 공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미 위로는 충분히 했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리스도 한결 편안해지리라 믿었다.

프레사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수정구를 집어 들었다.

불빛이 여러 번 깜빡이더니 곧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로렌, 나야.”

“아가씨! 약방에 들르셨다고 들었는데 바쁜 일이 있어서 바로 가셨다면서요? 너무 아쉬워요. 하필 그때 자리를 비우다니……. 그나저나 맡으신 일은 잘 끝나셨나요?”

로렌이 반가움이 물씬 드러나는 눈으로 프레사를 바라보며 떠들었다.

프레사는 그녀를 마주 보며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응. 덕분에 무사히 치료제를 만들었어. 황제 폐하께서도 이제 회복 중이시고.”

“정말 다행이에요, 아가씨. 그럼 파로 마을로 돌아오시는 건가요?”

이 질문이 바로 나올 줄 알았다.

치료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었으니 프레사가 제국에서 해야 할 일은 끝난 셈이었으니까.

잠시 입을 다물었던 프레사는 차분한 말투로 사실을 전했다.

“그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오늘 연락한 거야, 로렌. 나 제국의 황실 약제부에서 일하게 됐어.”

“……네?”

“미안해, 먼저 의논하지 못해서.”

“아니, 아가씨.”

로렌이 사뭇 심각하게 말문을 여는 바람에 프레사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 바닥을 응시했다.

아마 무척 서운할 것이다.

하지만 로렌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세상에! 너무 잘된 일이에요! 황실의 약제부라면 분명 무척 들어가기 어렵고 대단한 곳이겠죠? 역시 우리 아가씨께서 해내실 줄 알았어요!”

“……서운하지 않아?”

“전혀요? 너무 자랑스러운걸요? 어차피 마법 스크롤이 있으니 언제든 보고 싶으면 만날 수 있잖아요. 아가씨의 행복이 제 행복이에요.”

“로렌, 정말 고마워.”

로렌은 진심으로 프레사의 결정을 응원해 주었다.

물론 아예 서운하지 않는다면 분명 거짓말일 터였다.

그러나 로렌은 프레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서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프레사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로렌이 그녀를 응시하며 얕게 소리 내어 웃더니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파로 마을의 약방은 정리하시는 건가요?”

프레사 또한 고민했던 일이었다.

아무래도 약방이라는 곳은 꾸준히 신경을 써야 하는데, 프레사가 제국에 있으면서 수시로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파로 마을 사람들에게는 프레사의 약방이 기본적인 약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구매처였다.

소화제나 진통제 같은 삶에 필수적인 약을 말이다.

게다가 영주와 데이지가 프레사를 믿고 있는데 말없이 약방 관리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미리 편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은 아직 전하지 못했다.

생각을 갈무리한 프레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곳은 로렌이 계속 맡아줬으면 해. 약은 꾸준히 만들어서 보낼 수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에게도 약방은 필요할 거야.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내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잠깐 들를 수 있을 거야.”

“물론이에요, 아가씨.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에요.”

로렌은 이번에도 흔쾌히 프레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로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프레사는 고맙다는 말을 한 번 더 남긴 후 작별 인사를 건네고 수정구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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