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76화
리카온 그레나딘은 종종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를 이토록 눈으로 좇은 일이 지금껏 없었기에 더 그랬다.
사실 처음은 으레 그렇듯 호기심일 뿐이었다.
죽은 척 위장해 홀로서기를 시작한 미운 오리 아가씨, 프레사의 첫인상은 아마 고작 그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순간 모든 것은 달라졌다.
프레사를 위해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고 싶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죄다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프레사는 여전히 독립적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쉽사리 리카온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
‘입양이라.’
그런 프레사가 리카온에게 친부모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즐거우면서도 덜컥 겁이 났다.
간신히 라우렐을 설득해 프레사에게 그레나딘의 이름을 주었는데, 만약 친부모를 찾아 그쪽으로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프레사 곁에 본인만 남았으면 했다.
친구, 가족, 다른 소중한 이 한 명 없이 오로지 리카온 본인만이 프레사의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과한 욕심이고 이기적인 마음임을 알기에, 프레사가 혐오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 속으로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찾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리카온은 침실 창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프레사에게는 당연히 소프 가문의 집사를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프레사가 원하는 일이고, 리카온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런데도 이토록 고민이 되는 이유는 역시나 프레사가 떠날 것이 두려워서겠지.
지금껏 그가 지켜본 프레사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지금은 리카온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언제 또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가 버릴지 몰랐다.
‘하지만 감히 내가 뭐라고.’
만약 프레사가 떠난다고 한다면 놓아줄 것이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항상 준비해 둘 테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프레사를 붙잡고 싶었다.
“여러모로 곤란하네.”
스스로에게도 버거운 감정의 연속이었다.
프레사와 가까워질수록 갈망과 집착은 커졌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순전히 그가 억지로 참고 있어서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프레사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리카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때마침 제드가 방으로 들어섰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그래. 재단사를 불러와.”
“재단사를요? 또 새 옷을 맞추시려고요?”
제드는 리카온이 전에 없이 자꾸 새로 옷을 맞추는 게 의아한 모양이었다.
리카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제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곧 건국제잖아, 제드.”
“……프레사 님과 약속을 잡으셨나 봅니다, 전하.”
제드는 부쩍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빨라졌다.
하여튼 곁에서 오래 일한 부하들이란, 이래서 불편하다니까.
리카온은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치켜뜨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내 부하가 이렇게 말이 많아졌을까, 제드. 아예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오르는 건 어때?”
“설마 제가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전하. 얼굴색이 부쩍 좋아 보이시니 여쭈어본 것뿐입니다.”
심지어 제드는 전에 없이 뻔뻔해지기까지 했다.
리카온은 미간을 좁혔으나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래저래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문제가 남아 있어도, 프레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리카온은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않고 다른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소프 가문의 집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좀 알아봐야 할 거 같아, 제드.”
“갑자기 소프 가문은 어째서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 비밀이라서 말 못 해.”
제드가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냐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알겠습니다.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신 거죠?”
“하나 더 있어. 클로를 잘 감시해. 제멋대로 굴어서 거슬리는군.”
“요즘 얌전하지 않습니까? 이제 쥐 같은 건 잡아 오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 문제가 아니라, 제드.”
리카온은 클로가 감히 프레사에게 손을 대려고 했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제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상하다는 듯 리카온을 응시했지만, 이내 그마저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리카온은 그와 오랜 시간 지낸 상사였으니 다 생각이 있으리라 믿어서였다.
“네, 뭐 그것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건국제에서 뭘 하실지는 정하셨습니까?”
“그냥 다들 하는 걸 하려고 했는데.”
“젊은 귀족들은 건국제마다 황성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긴다더라고요. 전하께서는 지금껏 건국제에 참석하신 적이 없으니 모르셨을 것 같아 알려드립니다.”
제드는 리카온이 프레사와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 자리를 떴다.
리카온은 그가 남기고 간 말을 여러 번 되새김질했다.
‘뱃놀이라.’
뱃놀이라면 단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노를 저을 사공이 필요하겠지만, 리카온에게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