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78화
“혹시…… 수석 약제사님의 기록지를 가져가셨나요?”
지난번에 프레사가 챙긴 그 기록지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프레사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아직 카를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무슨 기록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그렇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오해했나 봐요. 미안해요.”
카를라는 안경을 살짝 추켜올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하더니 후다닥 사라졌다.
‘흠.’
프레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내가 가져가는 걸 봤나? 아니면 카를라도 그 기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거나.’
여러 가지 추측을 떠올렸지만,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카를라는 이 약제부에서 유일하게 프레사에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도 신경은 좀 쓰이네.’
카를라가 말한 기록지는 프레사의 방 서랍에 잘 보관해 두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조사를 시작하지 못했지만, 카를라 덕분에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셈이었다.
‘사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보를 얻기 편하지만, 다들 수석 약제사 눈치를 보니까 그건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엘리엇이 그 약초의 효능을 누구에게 속인 건지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유 없이 잘못된 정보를 기록해 두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약제사들이 알면서도 눈감아 준 건지, 이 약초에 대해 아예 모르는 건지 그것도 알아내야 해.’
사실 프레사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무게를 더 실었다.
비록 대체할 약초가 많아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해도, 약초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텐데 모른다는 건 좀 이상했다.
그래서 프레사는 다들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보조 약제사들은 추천장을 받지 못할까 봐 엘리엇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고, 정식 약제사들은 수석 약제사가 되기 위해 엘리엇의 행패를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확실히 주요 부서가 아니니 이런 일이 벌어져도 다들 관심조차 없구나.’
제국에서도 약제부는 의원의 보조 부서 취급을 받으며 약만 지어 주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정식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약사마다 다른 조합법이나 재료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식이었다.
즉 약제사라는 사람이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여튼 조만간 기회를 노려야겠어.’
프레사는 이제 약제부에 완전히 적응을 끝낸 상태였으니, 조만간 엘리엇의 눈을 피해 서류 창고에 들어가 볼 계획을 세웠다.
‘그때까지는 얌전히 있어야지.’
괜히 눈에 띄는 짓을 더해서 엘리엇의 경계심만 높일 필요는 없었다.
프레사는 작은 콧노래를 부르며 엘리엇이 넘겨준 조제법을 차곡차곡 분류하기 시작했다.